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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최근연재일 :
2021.08.25 00:21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895
추천수 :
88
글자수 :
118,855

작성
21.07.3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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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
추천
13
글자
12쪽

평범한 동생(2)

DUMMY

휘익-


콰앙!


공 한 개가 날아가 아까 맞춘 전봇대를 또다시 두드렸다.


“3구째.”


수영이가 카운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휘익-


쿵!


이번에는 공이 땅으로 향했다.


“4구째.”


아이씨, 공이 왜 이리 빗나가지.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으니 수영이가 나지막이 한마디를 던져왔다.


“다른데 보지 말고 미트를 봐. 미트를.”


“그래, 그래.”


나는 적당히 대답하면서 수영이의 말대로 가만히 미트를 노려봐 보았다. 갈색의 커다란 장갑.


상상해 보았다. 9회 말. 2아웃, 2스트라이크. 투수는 나다. 가상의 타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아마 저곳으로 꽂히면 그대로 스트라이크가 되지 않을까.


“유인구야.”


“닥쳐.”


...마지막 다섯 번째 공을 조용히 움켜잡았다. 그리고 내 손은 머리 위를 지나 세차게 휘둘러졌다.


“여기서 뭐하고들 있- 으악!”


아, 공이 빠졌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탓에 집중력을 잃은 모양이었다. 나는 굉장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안녕.”


불이 밝혀져 있는 신호등 아래. 그곳에는 형 방우성이 왜인지 무언가를 피한 자세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바로 옆에 같이 서 있던 신지혜는 나를 향해 살짝 손을 흔들었다. 아마도 집을 가다가 서로 마주쳐서 같이 집에 오는 길일 것이다.


“안녕... 뭐야, 왜 그러고 있어 형.”


“네가 할 소리냐! 공 맞아서 죽을 뻔했구먼.”


“아, 그쪽으로 갔나.”


어쩐지. 좀 더 힘을 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 됐다. 용케 피한 모양이었다.


우성이 형이 손으로 이마를 쓱 쓸어내리고는 한숨을 내뱉었다.


“휴우, 내가 얼마나 귀한 몸인데 말이야. 곧 있으면 대회도 나간다고.”


그렇게 형이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신지혜가 의아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왔다.


“그런데 진짜로 뭐 하고 있던 거야?”


음? 그러고 보니...


나는 고개를 돌려 수영이를 바라보았다.


“아니, 뭐. 미트로는 꽂혀야 말이지.”


...그건 그렇네.


“너 진짜로 떡볶이 4인분 혼자서 먹냐?”


수영이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아. 내 돈.



이제는 해가 완전히 저물어서 골목길에는 전등들이 모두 켜져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10시쯤. 생각보다 늦은 시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영이는 중간에 우리와 돌아가는 길이 달랐다. 나에게 다음에 둘이서 보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는 유유히 떠나갔다. 대체 얼마나 먹으려고...


“그나저나 어쩌다 그런 내기를 하게 된 거야?”


터벅터벅 걷던 도중 우성이 형이 내게 물었다.


“왜. 뭐 이상해?”


“투수도 아닌데 갑자기 120km 공을 어떻게 던지냐?”


뭐야, 안 되는 거였나?


“형이 한 초6 때부터 그 정도 던졌다면서. 그 정도면 나도 던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 나는 둘째치고. 원래 안 던지던 사람이 그 정도 던지려면 좀 힘들지.”


그러자 문득 내기의 내용을 늘어놓을 때 수영이의 유독 자신만만하던 표정이 떠올랐다. 그래서였구나...


하지만 뭔가 마지막 공만큼은 던졌다면 120km와 제구 모두 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갑자기 말소리가 들려와서 집중력이 깨지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된 것이 틀림없다.


“뭐든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게 아니겠어?”


“그건 그렇지.”


얄밉게도 신지혜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더 얄밉게도 그 말에 형이 따라서 웃었다.


거참. 소꿉친구건 형제건 아무도 믿을 게 못 된다.




***



그러고 보니 작년 여름엔가, 형의 고등학교가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준결승까지 진출한 적이 있었다.


세우 고등학교. 그 이전까지는 결코 야구 명문이라고 불릴 만한 학교는 아니었지만 엄청난 기세로 강팀들을 이기고 계속 위로 올라갔다. 엄청난 기세라고 하는 것은 타선 쪽이 아닌 투수 쪽이었다.


경기마다 두 자릿수 이상의 삼진을 잡아내고 심심하면 완봉승까지 거두어 팀을 거의 억지로 끌고 갈 정도로 강한 투수의 힘. 그 투수의 이름은 바로 방우성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8강까지 진출했을 때. 나도 그 현장에 같이 있었다. 8강쯤 되니까 옆에서 현장 중계하는 해설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자, 세우 고등학교와 도하 고등학교.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8강이 시작됩니다!


-오늘 세우고의 선발투수는 당연하게도 1학년 방우성 선수입니다. 어린 선수이지만, 지난 경기에서 무려 15탈삼진을 기록하며 언더독의 반란을 아주 시원하게 보여 줬었죠.


-노히트 노런의 기록을 달성하기도 한 방우성 선수. 저 선수의 미래가 대한민국 투수의 미래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야, 들었어? 역시 대단하긴 대단해!”


내 옆에는 김수영과 신지혜가 같이 있었다.


“2년만 더 있었으면 내가 너희 형 공을 받고 있었을 텐데...”


“꿈 깨라.”


“우 씨, 나도 괜찮은 투수 딱 한 명만 있었어도!”


얘 작년에도 이런 소리를 하고 있었구나. 참 변한 거 하나 없는 한결같은 친구이다.


-자, 첫 구를 던집니다.


탁!


상대 타자가 초구를 건드렸지만, 공이 높게 떴다. 솔직히 말해 엄청나게 쉬운 공이었다.


-자, 우익수. 공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공을, 찾지 못합니다! 주자는 2루까지!


“뭐 해!”


“정신 안 차리냐!”


신지혜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아무래도 8강전까지 오르니 선수들이 좀 긴장한 것 같습니다.


-방우성 선수. 이 위기를 침착하게 헤쳐나가야 합니다.


1회 초부터 굉장히 긴장감 있는 분위기로 경기가 흘러갔다. 형도 표정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형이라도 첫 구부터 주자가 나가는 일은 굉장한 부담이 되는 일이니까.


그런데도 공은 침착하게 구석을 노렸다.


-바깥쪽, 3구 삼진! 두 번째 주자를 손쉽게 돌려보냅니다!


-끌려나갈 수밖에 없는 좋은 공!


다음 주자는 희생 번트로 주자를 3루까지 보냈다.


형은 이런 상황에서도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2아웃이라고 동료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와, 성우야 봤냐? 저게 진짜 투수의 모습이다...”


수영이가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멋 부리고 앉아 있네!”


나는 이렇게 대꾸하면서 옆을 힐끗 바라보자 신지혜는 주먹까지 불끈 쥐고 경기장에 빨려 들어갈 듯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주자를 3루까지 보내는 희생 번트. 서로 좋은 투수를 보유하고 있는 팀이기에 만약 이 한 점을 내주게 된다면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주자 3루. 2아웃 2스트라이크 3볼. 풀카운트의 상황에서 어떻게 위험을 헤쳐갈지.


승부의 순간. 형의 팔이 뒤로 당겨지고, 공은 화살처럼 빠르게 쏘아졌다.


상대 타자가 동작을 크게 가져가나 싶더니, 빠르게 팔을 접고 번트 자세를 가져갔다.


“번트!”


-아, 2사에 기습 스퀴즈!


공이 또르르 굴러가서 형 쪽을 향했고...


-그러나! 투수가 공을 잡고 침착하게 위기를 마무리합니다. 이닝 종료!


“뭐야, 2사에 스퀴즈를 하는 놈들이 어딨어?”


“명장 병인가?”


옆에서 수영이와 지혜가 떠드는 모습을 보며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스퀴즈 플레이란 타자를 희생시켜서라도 한 점을 먼저 빼내거나 동점 또는 추가점을 올리기 위한 기습전술이다.


무사 또는 1사에 주자가 3루에 있을 때, 작전 지시에 따라 3루 주자가 홈으로 뛰어 들어오고 타자는 번트를 하는데 보통 2사 상황에서 하기엔 힘들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네, 이번 작전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제 생각에는 말이죠. 이번 작전은 투수의 경험 미숙을 이용하려고 한 작전인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스퀴즈 플레이를 하기에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긴 합니다. 그러나 아직 1학년이다 보니까 2사에 예상치 못한 스퀴즈 플레이가 나오면 보통 당황하기 쉽거든요. 원래 틀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니까요. 그러나 투수 방우성 선수가 이를 잘 극복하고 침착하게 마무리를 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1학년이지만 굉장한 침착함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심지어 지금 보면은 마지막 움직임이 상당히 번트를 의식하고 있던 것 같거든요. 예측까지 뛰어난 선수입니다. 마치 1학년이 아닌 베테랑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데?”


“...역시 너희 형은 대단해!”


“우성 오빠, 파이팅!”


갑자기 태세전환을 하며 말을 돌리는 녀석들. 뭐, 어쨌든 실패한 거니까 상대 감독의 명장 병이라고 말해도 딱히 상관없지 않나? 실전은 적지만 형은 수많은 훈련을 겪어왔다. 침착하게 하지는 못했어도 몸이 저절로 움직여서 스퀴즈를 틀어막을 확률이 더욱 높을 것 같은데.


만약 나였으면 어떨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주자 3루 풀카운트 상황. 그런데 갑자기 공이 바닥을 구르며 나에게로 다가온다.


손은 땀으로 가득 차고 주자들은 지면을 박차고 흙먼지를 가르며 달려가는데...


끔찍하다. 분명히 공을 던지다 힘이 확 들어가서 관중석으로 넘어갈 것이 분명할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해볼 만한 작전이기도 하군.


문득 환하게 웃으며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형의 모습이 멀어져 보였다. 정말이지, 약점이 없는 형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도 형은 상대의 타선을 완전히 봉쇄하며 결국 3대 0으로 준결승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준결승전에서 힘을 너무 쏟은 나머지 130개 한계 투구 수를 넘겨버린 형은 준결승전에서 결장하고 팀은 5회 콜드 게임으로 패배를 겪고 만다.


이 엔딩을 그러니까 뭐라고 하더라...


그...




*****




아침 햇살이 비추는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조용히 중얼거렸다.


“북x엔딩...”


거참 허망한 엔딩이었지...




*****




또 다른 어느 날 아침. 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집 밖으로 나갔다. 우성이 형은 이른 아침부터 훈련에 나가 집에 없는 모양이었다.


“역시 저 정도는 해야 야구 인생을 피는 건가.”


결국, 북산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이후 형은 완전히 야구계에 눈도장을 찍었다. 계속 이대로의 활약을 보여준다면 프로 입성은 꿈도 아닐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글렀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저 정도로 야구에 열정을 내서 해본 적이 없었고,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될 실력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정도에 불과하다.


역시 공부나 하자.


아침부터 우울한 생각을 하며 나는 그대로 등굣길에 올랐다. 그리고 골목길을 하나 돌았을 때.


“워!”


돌자마자 김수영이 곰만 한 덩치로 휙-하고 튀어나왔다.


“아 씨 깜짝이야!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분명 쟤 집은 이쪽이 아닐 텐데?


“할 말이 있어서.”


아니, 무슨 아침부터. 그냥 학교에서 말하면 될 텐데. 하지만 급한 부탁인가 싶어 나는 녀석이 뭘 말하는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뭔데.”


“그... 우리 곧 있으면 배성고랑 연습경기 할거잖아?”


“아, 그랬나?”


몰랐네. 까먹고 있었다.


“그 시합에 대비해서 내 포구 훈련을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아침저녁으로.”


포구 훈련? 나랑 하는 포구 훈련은 딱히 의미 없을 것 같은데. 그것보다 아침저녁으로 하기는 좀 그렇다.


“싫은데.”


“떡볶이값 대신.”


...이것도 까먹고 있었는데. 지갑에 돈이 남아있던가? 흠, 아슬아슬하게-


“4그릇은 최솟값이야.”


“젠장, 콜.”


아주 그냥 돼지 같은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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