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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최근연재일 :
2021.08.25 00:21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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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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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글자수 :
118,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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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9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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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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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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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예선(2)

DUMMY

김한솔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반응도 하지 못한 모습이 뭔가 이상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딱히 상관없을 것이다.


2아웃. 우연히 주자를 한 명 내보냈었지만, 견제로 주자를 잡으며 아주 마음 편한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저런 방식으로 어이없는 아웃을 당하는 것은 분위기에도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나, 그게 아주 간신히 잡은 기회일 경우엔 추격 의지까지 꺾을 가능성까지 있다.


그게 우리 팀이었다면 상당히 암울했을 테지. 다행이다.


퍽!


“스트라이크!”


퍼억!


“스트라이크!”


퍽!


“스트라이크, 아웃!”


그렇기에 3개의 공으로 완벽하게 상대 타자를 돌려보내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상황이 투수에게 유리했기 때문에.


“아자!”


그래도 삼진을 잡는 일은 기쁜 법이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지르며 친구들과 함께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




“야, 방금 그거 뭐한 거야? 정신 안 차려?!”


상대 덕아웃 쪽에서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방금 주루사를 당한 김한솔을 향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안 혼나면 오히려 그게 비리가 아닌지 조사를 해봐야 할 수준이다.


“쟤는 뭐 잘 치고 나갔으면서 그렇게 죽냐. 우리한테 좋기는 하지만.”


수영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래도 전에 같이 많이 놀았던 친구로서 이상한 플레이를 보는 것은 좀 꺼림칙하긴 하다.


“저러면 끝나고 말 걸기도 뭔가 그런데...”


“그러게.”


궁금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타악!


그렇게 잠시 잡담을 나누는 사이 또다시 터져 나온 타격음. 꽤 멀리 날아간 타구는 외야의 한가운데에 떨어져 2루타가 되었다.


벌써 3타석째 안타. 그것도 장타와 홈런으로 꽉꽉 채워서 말이다.


“한태범 요즘 타격감 미쳤네. 저렇게 잘 쳤던가?”


나는 2루 베이스를 밟으며 기합을 내지르는 한태범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한 1년 전. 아니, 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잘 치기는 했지만 뭔가 아쉬운 느낌에 그쳤었는데.


이제는 그 아쉬운 느낌도 모두 해소한 모습이었다.


“덕분에 내 4번도 내주게 생겼군.”


김수영이 그렇게 아쉽지는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히려 흐뭇한 듯한 기색. 나는 본인 스스로 자신이 전국에서 봤을 때는 타격이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 기억이 떠올랐다.


어쩌면 수영이는 본인보다 팀이 보다 전력을 갖추어 가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금방이겠네. 그런데 이게 우리 마지막 대회 아닌가?”


“어차피 이 근방 고등학교는 하명 말고는 야구부가 없는데 거기서 만나겠지.”


생각해보니 그렇겠군. 야구를 계속한다면 어차피 만나게 되겠구나.


타악!


나무 배트와 가죽 공이 만나 발생하는 충돌음. 우리 팀에게는 어쩌면 그렇게 익숙하지마는 아닌 소리였지만, 듣다 보니 벌써 적응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번엔 1, 2루의 내야를 뚫어내는 안타. 우익수가 바운드 되는 공을 잡고 두리번거렸지만 이미 모든 상황은 끝이 난 상태였다.


무사 1, 3루. 그리고 현재 스코어는 6대 0. 4회 초. 여기서 만약 상대가 무너진다면, 그대로 끝이 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투수 교체!”


상대 팀 감독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투수 교체 사인을 보냈다. 4이닝에 벌써 2번째 투수 교체. 세울 중학교 선수들의 표정에 초조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했다.


“이번 녀석은 좌완에 사이드암이라. 게다가 키도 크고. 좌타자들 상대로는 아주 좋겠네.”


수영이가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다음 투수를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응? 우리 팀에 좌타자는 너랑 지금 한영이밖에 없는데?”


“그러니까 지금 아주 완벽히 쥐어짜서 나온 녀석인 거겠지. 그리고 마냥 틀린 선택도 아니야. 다다음 타석이 나니까.”


아하. 그러니 일단 지금 이닝만은 막고 보겠다는 건가? 지금이 위험하니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아까 불펜에서 던지는 모습을 봤을 때는 상당히 나쁘지 않은 투구를 보여주고 있던 녀석이었다.


긴 팔을 쭉 뻗어 공을 던지니 그만큼 앞에서 날아온다. 구속이 그렇게 빠르지는 않지만, 체감으로는 아마 조금 더 빠르게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좌타자 기준으로는 거의 몸쪽으로 날아오는 것처럼 보이니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상당할 터.


퍽!


“볼!”


예상대로 우리 3번 타자 김한영은 공이 던져지는 순간 움찔하며 몸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첫 번째는 아마 일부로 몸쪽에 바싹 붙여서 던진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위압감을 보여줘야 다음 던지는 공에서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퍽!


다음은 정확히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가는 공. 그러나 한영이는 위축된 모습을 보여주며 배트를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다.


“무리도 아니지. 전에 공 맞아서 한동안 고생한 적도 있는 얜데 말이야.”


김수영이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수영이 말대로 우리 한영이는 머리에 공이 맞아 거의 기절할 뻔한 적이 있었다.


물론 헬멧에 맞아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트라우마가 남았는지 한동안은 타석에 들어가는 것도 무서워했었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트라우마라는 게 완전히 사라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


수영이는 다시 스트라이크 존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대로 가면 아마 다음 공으로 끝이 나겠지.


나는 긴 팔을 쭉 뻗어 공을 던지는 투수를 바라보았다.


퍽!


“스트라이크, 아웃!”


공은 마치 타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가운데로 꽂혀 그대로 끝이 났다. 김한영은 몸이 잔뜩 굳은 채 그대로 터덜터덜 덕아웃으로 돌아 들어갔다.


“저 녀석, 일부로 그런 건가?”


공을 아예 건드리지도 못하니 투수가 일부로 아예 한가운데로 던져 도발하는 느낌이었다. 뒤처지는 상황에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한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 보기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수영이의 생각은 좀 달랐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지고 있는 상황에서 저런 도박은 안 하지. 배트가 많이 빗나가는 스윙을 하기는 했어도 그걸 보면 혹시 하는 생각이 드니까. 저건 실투야. 그냥 한영이가 못 친 거지.”



과연. 지금은 도발하려고 해도 상황과 심리를 봤을 때 절대 일부로 그렇게는 못 던진다는 건가.


1, 3루에 주자. 게다가 무사. 긴장을 하지 않으려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긴 했다. 오히려 마음을 놓고 던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그냥 제구가 잘 안 되는 것이니 더 좋은 일이다.


“좋아, 가볼까.”


김수영은 배트를 부여잡고 당당하게 타석으로 나갔다.


아주 길게 잡은 배트. 몸쪽의 공을 치기 위해서는 그렇게 좋은 선택은 아니겠으나, 분명히 노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뭐야, 돌아왔냐.”


나는 상당히 다운되어있는 한영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형...”


아무래도 방금 아무것도 못 하고 아웃당한 것이 큰 충격이었나보다.


“제가 이제 완전히 극복한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네요.”


김한영이 낮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 나은 줄 알았던 병이 재발하는 것은 상당히 두려운 일일 것이다.


어쩌면 평생 이를 달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마음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뭐, 어쩌겠냐. 트라우마라는 게 다 그런 건데.”


살아가면서 트라우마 기억은 계속해서 되살아난다. 특히 이 녀석의 경우에는 야구를 계속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녀석을 괴롭히게 될 것이다.


“역시 그렇겠죠...”


그리고 우리 둘은 거기서 침묵에 빠져들었다. 한영이는 얼굴을 푹 숙이고 경기도 보지 않은 채 무언가를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뭘 고민하고 있는지는 내 눈엔 뻔히 보였다.


“설마 야구를 그만둬야겠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타석에 나갈 때마다 계속 이럴지도 모르고. 이대로라면 팀에 민폐만 끼치게 되지 않을까요.”


자기만이 아닌 팀까지 생각하며 야구에 대해 고민하는 김한울의 모습에 나는 어쩐지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녀석이 그 사고를 당한 다음 날 배팅 센터에 가서 온종일 공을 보고 있던 모습을.


하루라도 빨리 이를 극복하여 타석에 나가고 싶어 하는 녀석의 눈빛은 틀림없이 야구를 사랑하는 눈이었다.


“야, 지금 쟤 보이냐?”


나는 타석에 들어선 김수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


김한울은 어리둥절하게 나를 쳐다보았지만 이내 나의 말대로 김수영의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김수영은 자신만만하게 배트를 붕붕 휘두르며 공을 기다렸다.


그리고 첫 번째 구. 몸쪽 높게 날아가는 빠른 공. 좋은 코스였지만, 스트라이크 존에서는 약간 빠지는 듯 보였다.


부웅!


그리고 그곳으로 배트가 묵직하게 바람을 가르며 쏜살같이 달려나가고...


타악!


공이 꽤 큰 타격음을 내며 날아갔지만, 방향이 좋지 않아 그대로 파울이 선언되었다. 김수영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배트를 다시 다잡았다.


“역시 저렇게 자신감 있는 스윙을 해야 하는 데 말이죠.”


김한울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건 정확하게 본 것이 아니었다.


“네 눈에는 저게 지금 정상적인 모습이라 보이냐?”


나는 한울이에게 물었다.


“네? 저건 상당히 운이 없는 타구가 아니었나요? 조금만 더 잘 맞았으면 장타였어요.”


“아니, 오히려 저게 최대로 잘 맞힌 거지. 평소였으면 쟤 저런 공에는 안 휘둘렀어. 게다가 나가기 전에는 노리는 것이 따로 있다는 느낌으로 나갔다고.”


아마 마지막에 보았던 실투성 투구를 노리는 것이겠지. 거의 무조건 나오리라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김수영은 평소였으면 골라냈을 공을 세게 휘둘렀다. 왜일까?


“쟤도 한 번 너랑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거든.”


어쩌면 거의 데자뷰라고 느껴질 정도로 비슷한 장면이었다. 투구한 공이 머리를 직격했고, 그대로 김수영은 쓰러졌다.


그리고 한동안은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이내 극복할 수 있었다.


“무서워하면서도 계속 타석에 들어가더라고. 처음엔 거의 눈 감고 쳤었지. 생각해보면 눈을 감는 게 더 무서울 것 같은데.”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아예 눈을 감는 무서움을 이겨내고 타석에 들어갔다. 참 주먹구구식으로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몸부림치는 흔적인 것이다.


“뭐, 저건 그냥 이제 약간 남은 흔적 같은 것이고, 이제 녀석은 공을 무서워하지 않지.”


퍼억!


“볼!”


두 번째 공을 그대로 걸러내고, 김수영은 매의 눈으로 다음 투구를 기다렸다. 계속해서 승부가 이어졌다. 좋은 코스로 걸치는 공은 쳐 내고, 빠지는 공은 귀신같이 찾아내었다.


어느새 승부는 풀카운트. 아무래도 수영이가 원하는 공은 아직도 찾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얼마 공을 던지지 않았지만, 투수의 표정은 상당히 지쳐 보였다. 아마 수영이가 단기간에 온 신경을 쏟게 만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공이 던져졌다.


공은 몸쪽으로,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몸쪽에서 공이 튀어나왔을 뿐이었다.


공은 대각선으로 튀어나와, 그대로 한가운데로-


투수의 동공이 커다랗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타아악!



당연하다는 듯 나와 있는 배트에 정면으로 대결하는 공. 트럭에 덤비는 사마귀처럼, 어이없을 정도로 시원하게 날아가는 타구.


“어때, 저렇게 될 수 있겠어?”


나는 관중석 너머로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며 한울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내 말이 맞지? 역시 저럴 줄 알았다니까!”


돌아온 수영이는 낄낄거리며 좋아했다.


“그런데 너는 괜찮은 거 맞냐? 너도 공 맞은 적 있었잖아.”


어쩌면 수영이도 꾹 참으며 치고 있던 것이 아닐까. 걱정하면서 물었다.


“뭐? 내가 그랬나?”


응?


“아니, 그래서 막 너 눈 감고 타석에 들어간 적도 있었잖아.”


“아아. 그때는 내가 만화를 보고 와서 말이야.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라...! 이런 거를 진짜로 믿어버렸던 거지. 그거 조금 하다가 질려서 안 했는데.”


흠.


뭐, 좋은 말이었으니까 상관없겠지.


나는 또다시 떠오르는 타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 이번엔 아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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