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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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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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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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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경기(3)

DUMMY

비교적 이른 시간에, 나만 연습이 끝나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직 해가 지고 있지도 않았다. 늘 돌아갈 때면 보통 해가 져서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어쩐지 일탈을 저지르고 있다는 기분도 살짝 들었다.


공이 배트에 맞아 깡- 하고 날아가는 소리가 났다. 내 뒤에는 아직 힘들게 훈련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나의 동료가 남아있을 터. 그래서인지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오히려 좋아.


그렇게 마음 편하게 집에 가려고 막 교문을 나선 참이었는데.


“아.”


참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내가 무심코 낸 소리를 들었는지 그대로 신지혜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방성우. 아까까지 훈련하고 있지 않았어? 땡땡이야?”


“뭘 땡땡이야. 너무 잘해서 포상 휴가받은 건데.”


그나저나 하는 말을 들으니 내가 훈련받고 있는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스탠드에 앉아있으면 아마 타격하는 모습은 보였겠지만, 투수들이 훈련받는 곳은 좀 운동장 깊숙이 있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그런 것치곤 오늘 운동장에 잠깐 보이다 말던데.”


아까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를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녀석이 물었다.


“오늘은 안쪽에서 공을 좀 던졌거든. 그래서 안 보였을 거야.”


“그렇구나.”


의외로 신지혜는 내가 공을 던졌다는 말에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조금은 놀랄 줄 알았는데.”


나는 투덜대듯 말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들 내가 투수가 됐다는 사실이 당연한 듯 여기는데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었다.


“전에 경기에서 공 던지는 모습을 봤었는데 왠지 그렇게 될 것 같더라.”

처음에 들을 때는 뭔가 가슴이 간질간질하면서 부끄러운 기분이었는데 하도 듣다 보니까 이젠 좀 익숙해진 느낌이었다.


허 참. 나도 모르게 모두의 기대감만 잔뜩 올려놓은 것 같다. 아마 평소에 내가 던지는 공을 본다면 그런 말들이 싹 사라질 텐데.


“그렇게 될 것 같다니. 난 아직 1경기, 그것도 2이닝밖에 던져본 적 없는 사람이라고.”


“그렇긴 하네.”


나의 투덜거림에 신지혜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서 실전에서는 언제쯤 던져보는데?”


“바로 다음 경기에.”


그것도 전국에서도 강팀이라고 분류되는 승매 중학교를 상대로.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뭐? 다음 경기면 승매중이라면서? 걔네한테 던진다고? 처음부터?”


내가 말해주지도 않았는데 야구부 일정을 꿰뚫고 있다니. 심지어 나도 오늘 안 사실인데 말이다.


“그렇게 됐습니다...”


“뭐, 힘내. 응원은 해줄게.”


전혀 힘이 나지 않는 목소리로 신지혜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그런 무성의한 기색에 나는 문득 심술이 나서 말했다.


“그럼 나 경기할 때 직접 와줄 거야?”


아마도 내 연습경기 날은 우리 형의 대회 예선 날짜와 같을 것이었다. 거의 모든 형의 경기를 직접 가서 관람하는 신지혜로서는 곤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당연히 형 쪽으로 가겠지. 그러면 그것으로 놀려주면 그만이다. 그만이었는데.


“좋아. 갈게.”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녀석의 목소리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 그래도 돼?”


“안될 게 뭐가 있어. 그냥 가는 건데. 아, 혹시 비공개 시합이야?”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하긴. 이제 형의 팀 정도면 대회 예선 첫 경기는 가볍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특별한 경기는 아니겠지. 이렇게 생각해보니 그렇게 이상한 대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녀석의 얼굴을 보며 혹시 내가 얻어맞는 장면을 보려고 찾아오는 게 아닌지. 그런 의심을 하면서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




밤의 공기는 확실히 낮의 데워진 공기와는 다르게 시원하다.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나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달렸다. 잠이 잘 오지 않은 탓이었다. 내 주머니에는 공 한 개가 들어가 있었다.


“씨, 갑자기 익숙하지 않은 자리를 주니까.”


어디랑 경기해도 딱히 별생각은 들지 않던 나였다. 하지만 이번에 다가올 경기만큼은 상대의 이름값이라는 것이 대단히 크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승매중이라...”


궁금한 마음에 승매중에 대해 수영이에게 물어보니 강력한 타선이 특징인 팀이라고 대답했다. 아니, 강팀이면 타선이 강력하겠지.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실제로 가서 보면 어떤 느낌인지 대충 알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만큼 잘 친다는 뜻이겠지? 어쩌면 선발로 나온 우리 투수가 한참을 얻어맞고 그대로 경기를 끝내주지 않으려나. 만약 그렇게 되면 편할 것 같은데. 투수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약간의 러닝으로 몸이 약간 데워진 것이 느껴지자 나는 곧바로 늘 가던 공터로 향했다. 야구공을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말이다.


공터의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는 담벼락을 앞에 두고 나는 경기를 상상하며 앞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어느 특정한 위치에 동그랗게 자국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누가 많이 와서 던졌나 보네... 혹시 형이려나?”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형은 우리가 동네 야구를 하면서 마냥 놀던 시절부터 야구선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었다. 그러면서 자기 나름대로 진지한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었는데 항상 저녁 늦을 때쯤이 돼서야 집에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때도 텅 비어있던 이 공터에서 혼자 밤새도록 공을 던져댔을 형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나의 모습 또한.


딱히 내가 노력을 하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되는군. 살아온 삶이라는 것이 다르니까 당연할 수밖에 없나.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나는 공을 쥐고 저 자국을 향해 한 번 던져보려고 노력했다.


쾅!


공에 맞은 담벼락이 제법 큰 소리를 냈다. 그러나 내가 목표했던 저 자국과의 거리는 꽤 차이가 났다.


역시 제구라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이번엔 욕심을 버리고 약간 힘을 빼고 집중해서 던져보자.


쿵!


이번엔 전보다 작은 소리를 내는 담벼락. 그러나 아까보단 그나마 자국과 근접한 모습이었다. 흠. 이 정도도 수영이가 잡으려면 애를 먹으려나?


나는 굴러오는 공을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공을 단단하게 쥐고, 최대한 정확하게 던지려고 노력하자. 검지와 중지를 넓혀서 그립을 잡으면 제구가 좀 정확해질 거라고 코치님이 설명해주셨었는데.


우선 야구는 제구라는 코치님의 호통, 아니, 가르침에 따라서, 한 번 던져보았다.


쿵!


공에 맞은 담벼락이 작게 울렸다. 과연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모습이었다. 공의 자국이 남겨진 그 한 점보다 야구공 두세 개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날 듯싶었다.


물론 야구에서 야구공 두세 개 정도 차이나면 꽤 큰 거겠지만. 전에 재려고 했으면 야구공이 아니라 축구공을 가져다가 재야 할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럼 만족하는가? 전과 같았다면 만족했겠지만, 오늘따라 이해가 안 되는 기분이었다. 분명 투수로 교체한 지 겨우 하루. 이 정도 발전이면 제법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도 이 아쉬운 기분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또다시 던졌고, 또다시 던졌다.


“헉... 헉...”


계속해서 정확하게 던지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쩐지 그냥 마음 편하게 공을 세게 던지는 것보다 더 힘든 것 같았다. 이게 당연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렇게 수십 차례. 숨을 헉헉대며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계속 반복했지만, 그 수가 점점 늘어났다.


쿵!


그렇게 던지다 보니 마침내, 그 검고 금이 난 자국에 공이 약간 겹쳐졌다.


“좋았어!”


외치고 나서 조금 창피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물론 완벽하게 맞춘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드디어 맞췄는데.


이제 아쉬운 것은 담벼락이 울리는 소리였다. 좀 더 큰 소리가 나면 좋겠는데. 하지만 팔을 계속 휘둘러 대느냐 이미 체력이 거의 고갈이 된 상태였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 이제 힘든데 돌아가야겠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려보며 땅바닥에 떨어져 흙투성이가 되어있는 공을 주웠다.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줄줄 흐르는데도, 다시 다리가 스스로 움직여 도착한 곳은 아까부터 계속 있었던 마운드 위.


만약 지금이 실제 경기 상황이었다면 어떨까. 2아웃 상황 풀카운트. 야구에서는 참 흔한 상황이다.


포수는 아마도 수영이겠고. 타자는... 뭐 아무렴 어떤가. 대충 강해 보이는 사람을 세워 놓자.


공을 붙잡고 나는 미트처럼 약간 움푹 들어가 있는 자국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주변 상황을 잠시 살펴본다. 주자는 3루에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더 뒤를 돌아보니 이상하게 어떤 여자애의 모습이 보였다. 흠. 관중석 쪽이라 멀어서 잘 안 보이는데. 혹시 경기를 보러 오겠다는 신지혜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어쩐지 저기까지 공을 보내기는 싫었다.


공을 다시 고쳐 쥐었다. 다리를 있는 힘껏 들어 올리고,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억지로 끌어올려, 그대로 공을 쥔 손을 최대한 앞으로 보낸 뒤.


던진다!


콰앙!


그리고 억지로 힘을 끌어쓴 탓에 나는 공이 어디로 꽂히는지도 보지 못한 채 그대로 흙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어우, 너무 과몰입했네.”


나는 혼자서 그렇게 투덜대면 몸에 묻은 흙을 툭 털어내었다. 그리고 담벼락을 다시 보니 피곤해서 그런지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에이, 뭐. 어떻게 됐겠지.”


공을 던진 순간부터 어차피 아무도 모르게 되니까. 나는 조용히 공을 챙긴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




“오늘은 승매 중학교와의 연습경기 날이다! 강팀이라고 해서 너무 주눅 들지 않고! 그냥 할 수 있는 플레이를 보여줘라!”


“넵!”


감독의 열성적인 말에 야구부원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뭐야, 내가 언제 버스에 타고 있던 거지?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이미 우리 기경중학교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시합을 승매 중에서 하던가?”


“그렇지. 경기하기엔 저쪽이 시설이 더 좋으니까.”


옆에서 눈을 부라리며 크게 뜨고 있는 수영이가 대답했다.


“근데 왜 그러고 있어?”


“기선제압 연습.”


뭐 이상한 걸 또 보고 온 모양이었다. 애초에 기선제압을 우리한테 하면 어떻게 하니...


버스는 금방 도착했다. 승매중학교는 어차피 우리 학교와 꽤 가까웠기 때문이다. 굳이 버스를 타고 가는 건 오바가 아닌가 싶었지만, 실제 경기와 최대한 비슷하게 하려고 버스를 탔다는 감독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타앙!


도착하자마자 들려오는 방망이에 공이 맞는 소리. 그리고 그 타구는 거의 초록색 그물망의 위쪽을 때리고 아래로 떨어졌다.


“야, 씨. 저거 뭐냐.”


“뭐, 연습용으로 대충 던져준 거겠지.”


“힘이 장난 아닌데? 너 내가 던져주면 저기까지 칠 수 있냐?”


“...글쎄.”


초장부터 살벌한 환영식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저 모습을 바라보며 웅성거리고 있을 때 혹시 사기에 영향이 있을까 생각한 코치가 우리에게 한마디 했다.


“다들, 상대는 강팀이지만... 뭐. 파이팅! 저건 그냥 잊어!”


코치는 말을 하다가 어물쩍하고는 다시 물러났다. 할 말 없으면 그냥 하지 말든가.



그렇게 승매중의 운동장에 들어서서 우리 감독님과 상대 감독님이 뭔가 이야기를 하고는 빠르게 경기가 준비되었다.


기경중의 선공. 우리의 1번 타자가 타석에서 방망이를 이리저리 휘둘러보는 모습이 보였다.


“플레이 볼!”


심판의 선언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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