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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최근연재일 :
2021.08.25 00:21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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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5
추천수 :
88
글자수 :
118,855

작성
21.08.0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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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시작

DUMMY

야구 배팅장의 문이 철컥, 소리를 내고 닫혔다. 우리가 뭔가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말이다. 관리원은 문만 열고 바로 닫은 후 빛의 속도로 사라져버렸다.


“우리 갇힌 건가?”


“...아마도.”


참 곤란한 상황이었다. 당장 다음 날 학교도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집에는 돌아가야 하는데...


우선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위쪽 천장 근처에 창문이 달려있어서 불이 꺼졌어도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초록 그물망과 불 꺼진 배팅 기계. 어쩐지 낯설어서 조금 으스스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뭐가 더 없다고 판단하고 오락실로 통하는 문 앞에 서보았다. 딱 봐도 굉장히 두꺼워 보이는 문.


“소리쳐도... 들을 것 같지는 않은데. 오락실이 너무 시끄러워서.”


배팅장은 10시. 그리고 오락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열려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오락실 사장님께 들은 얘기가 있었다.


-여기 문만 왜 이래요?


어린 시절에 너무 무거워서 나와 형, 그리고 신지혜가 동시에 밀어야 겨우 밀 수 있었던 문. 대체 왜 이런 걸 달았냐는 질문이었다.


그러자 오락실 사장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여기서 해보니까 너무 시끄럽더라고. 야구를 할 땐 야구에 집중해야지!


하면서 여기에 방음이 되는 크고 두꺼운 문을 달았다는 이야기. 야구를 진심으로 좋아하시던 사장님이었다. 지금은 좀 곤란한 사랑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다 맞아떨어지는 건지...”


신지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만약 소설에 이런 설정이 들어갔다면 작위적이라고 욕을 좀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큰일 날 일도 아니었다. 90년대 만화도 아니고 어디에 갇혀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상황이 오기는 오겠는가?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형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형이 가장 편하니까. 하지만 뚜르르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약간 실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장면을 들키면 좋지 않은 게 아닌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형이 신지혜를 좋아하는 모양인데. 뭐, 그냥 잘 설명하면 알아서 풀리겠지. 괜히 숨기는 게 아마 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뭐야, 왜 전화했어.


“혹시 지금 바빠?”


-아, 응. 지금 지혜 어딨는지 찾고 있거든. 집에 아직 안 돌아왔데. 야, 넌 짐작 가는 데 없냐?


아니, 집에 지금 나도 없는데 신지혜만 찾고 있네.


“마침 잘됐네. 지금 나랑 같이 있거든. 그리고 좀 도와줘.”


-뭐? 어딘데.


“예전에 다니던 오락실 있잖아. 거기 안쪽에 야구 배팅장. 밖은 시끄럽고 철문이어서 두드려도 잘 티가 안 나는 모양이야. 그래서 갇혀버렸어.”


-...뭐. 대충 알 것 같네. 마침 근처니까 금방 갈게.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뚝 끊겼다. 근처에 있다니까 아마 금방 올 것이다.


“우성 오빠?”


“응. 근처에 있으니까 금방 온다는데?”


“잘됐네.”


이 말을 끝으로 대화가 잠시 끊겼다. 할 말이 없기도 하고 낯선 상황에 부닥치다 보니 뭔가 어색했다. 그저 배팅장 안의 대기실에 놓인 나무 벤치에 약간 거리를 두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앉아서 시간을 보내니 왠지 그리운 느낌이 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 사이의 거리. 이 정도 거리감은 예전부터 익숙했다. 항상 어딘가 둘이 앉아 있을 때면 이렇게 떨어져서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대화를 나눴다.


예전에 같이 있을 때는 대체 뭔 말을 했더라? 그러니까...


“그러고 보니.”


“응?”


내 물음에 신지혜가 고개를 돌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달빛이 들어와 녀석의 머리카락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옛날에는 서로 야구를 그렇게 좋아했는데도 야구 이야기는 그렇게 많이 한 것 같지도 않네.”


정확하게 뭐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으나 적어도 야구에 대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게.”


신지혜는 조용히 달빛이 들어오는 창문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대화가 끊겼다.


그러나 이번의 침묵은 아까와 같이 불안한 침묵은 아니었다. 어쩐지 익숙하고도 편안한, 그리운 향기마저도 나는 듯한 침묵이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문밖에서 철커덕하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툭 하고 열렸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났다.


“나 왔다. 이 불량 청소년들아.”


여전히 시끄러운 오락실 소리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형 방우성이 짓궂게 웃으며 입구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형, 왔구나!”


“우성 오빠!”


아아. 이것이 영웅의 모습인가? 그렇게 우리는 형의 도움으로 오락실 안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




찌르르-


시끄러운 밤의 시내를 벗어나 길을 걷다 보면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특히 하천 근처를 걸을 때는 풀벌레 소리뿐만 아니라 강이 흐르는 소리, 밤의 시원한 바람에 나무가 쓸리는 소리가 모두 아우러져 더더욱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하면 거기서 갇히는 거야?”


형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거기 관리원이 이상하다니까? 무슨 문틈에서 사람 없냐고 목소리만 내고 빛의 속도로 그냥 문을 닫아버리더라?”


생각해보니 억울하네? 거기서 좀만 들어와서 확인만 했어도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 드는 일도 아닌데. 덕분에 귀가가 늦춰졌다.


“사장님이 계셨다면 그런 일 없었을 텐데 말이지.”


신지혜가 맞장구를 치며 대답했다. 맞아. 그랬을 것이다. 야구에 진심이신 사장님이라면 야구 배팅장도 꼼꼼히 점검하고 돌아갔을 테니까.


“에휴, 고민 상담 좀 해주려고 했더니만. 집에 가면 혼나겠네.”


“고민 상담?”


신지혜의 한탄에 형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얘가 고민이 있는 것 같아서 제가 직접 부른 거였거든요. 그런데 갇힐 줄까진 몰랐네요.”


“뭐야, 너. 뭐 고민이 있었어?”


고민 소리를 듣자 형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내게 물었다. 윽. 괜한 소리를. 내가 원망의 눈빛으로 녀석을 째려보았지만 이미 고개를 돌려버린 뒤였다.


하지만 뭐 그렇게까지 비밀스러운 고민도 아니었기에 그냥 다 털어놓기로 했다.


“아. 내가 야구 그만둔다는 얘기를 했었거든.”


“뭐? 야구 그만두려고?”


형이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니, 다들 내가 야구 그만둔다는 소리가 그렇게 놀라운가?


“내가 야구를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까지는 절대로 못 갈 테고 말이야. 이제는 공부에 집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서.”


“아니, 뭐.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아이씨, 다들 진짜 너무하게들 대답하네. 신지혜도 그렇고. 하지만 진짜로 사실이 그러니 뭐라 말할 게 없었다.


“그만두면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하고 형이 되려 물어왔다. 글쎄. 잘 모르겠다. 여태까지는 야구만 하고 살아와서 다른 게 뭔지 잘 모르는 탓이었다.


“...차차 생각해봐야지.”


아직 머릿속에서 정리된 생각도 아니고. 조금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문제이다. 사실 이번에 내가 말한 것도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었다. 원래 나는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야구를 그만둔 다라. 아마 10년 전의 내가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굉장히 놀랄 것이다.


성우야, 넌 사실 그다지 재능이 없었단다. 그러면 무슨 답변이 돌아올까?


“상관없어요. 그냥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죠.”


갑자기 옆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옆에서 형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신지혜의 목소리였다. 나를 향한 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어두운 밤. 이제는 진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야, 일어나.”


“10분만...”


내가 비몽사몽 하며 이불을 다시 끌어쓰자, 갑자기 엄청난 힘으로 이불이 당겨져 그만 껍데기를 잃어버린 달팽이 신세가 되었다.


“아침 훈련 가야지.”


형의 목소리였다. 아침 훈련? 오늘은 일요일인데? 일요일에는 야구부 훈련이 없는 날인데?


“대체 무슨... 오늘 훈련 없는데...”


“나랑 말이야. 일류 야구선수가 되려면 매일매일 훈련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해야 하는 거 몰라?”


아니, 나는 일류가 될 생각이 없는데... 분명히 형이 혼자 훈련하기 싫어서 하는 소리임이 분명했다. 가끔 그런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의 형은 집요하고 귀찮기 짝이 없어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웬일로 빨리 일어나네?”


“나는 학습하는 존재거든.”


관절기와 간지럼에 약한 나는 눈물을 머금고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하는 것이었다.



거실에서 간단히 반찬을 놓고 아침을 먹은 다음,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조깅을 마치고서는 왠지 요즘 갈 일이 많은 그 빈 공터로 향했다. 딱히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이 공터는 어려서부터 우리들의 아지트였고, 지금도 가끔 우리가 훈련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었다.


“오! 일찍 왔네? 그리고... 우성이 형, 안녕하십니까!”


당분간 아침마다 같이 훈련하기로 한 수영이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차피 나가야 할 거, 한 번에 해치우는 게 나으니까. 나의 완벽한 전략이었다.


“수영이잖아! 마침 잘됐네! 우리도 훈련하려고 왔는데.”


“네... 네?”


수영이가 갑자기 몸을 움찔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형의 훈련 코스는 거의 지옥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너도 좀 맛봐라!


“자, 우선은 말이야...”


“아니, 저는 지금 좀 바빠서...”


“어딜 가시나.”


나와 똑같이 관절기와 간지럼에 약한 수영이. 그렇게 수영이도 나와 함께 훈련을 진행하게 되었다.


잠시 뒤.


“흐... 헉... 이 자식...”


수영이가 숨을 헐떡거리며 내게 작게 말했다.


“하.. 헉... 맛이 어떠냐...”


어차피 때릴 힘도 없을 테니 상관없었다. 그보다 나도 그냥 죽을 것같이 힘들었다.


그래도 그나마 내 상태가 조금은 더 나아 보였다. 나는 이미 그 지옥 훈련에 많이 끌려가 본 경험자였으니까.


“휴, 이제야 좀 운동한 것 같네.”


우리가 죽을 듯 바닥에 널려있는 동안 형은 상쾌한 표정을 지으며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있었다. 아니, 저게 사람이야? 사실 배다른 형제이고 형은 종족 자체가 다른 게 아닐까?


“그런데 너네는 나와서 뭔 훈련을 하려 그랬냐?”


그걸 이제야 묻다니. 하지만 따로 항의할 힘도 없어 수영이가 축 처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요즘 포구 훈련을 좀...”


마구 빗나가는 공을 막는 블로킹 훈련이기도 했다. 랜덤 야구공 막기. 어디서든 공이 날아오게 만드는 나의 투구에 수영이도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오, 그래? 그럼, 내 공 좀 받아볼래?”


“부탁드립니다!”


그 제안에 수영이는 엄청나게 힘들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으며 포수 장비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야, 안 힘드냐?”


“아무리 힘들어도 공을 잡아야만 하는 게 포수지!”


역시 쟤도 야구에 미친 놈이다. 나는 잠시 쉬고 있어야지...


“야, 너도 잘 봐둬.”


“내가 왜?”


“혹시 모르잖아? 도움이 될지.”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뒤.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미트에 공이 꽂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폭탄인가?


그렇게 몇 구를 던지고는 수영이가 형에게 뭔가를 말하더니 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한테 다가왔다.


“너 전 경기에서 한 번 투수로 뛰었다면서? 내가 봐 줄 테니까 던져보는 거 어때?”


다소 뜻밖의 제안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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