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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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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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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대회 전의 일(3)

DUMMY

“흐...헉... 갑자기 왜...”


“말하는 순간 한 바퀴 더 추가한다, 실시.”


“...”


야구부 훈련이 끝나고 이번엔 벌칙으로 새로 추가된 형의 특별 훈련. 솔직히 야구부에서 훈련할 때만 하더라도 그냥 해본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젠장, 이게 말이 되나? 내기 내용을 이기고 나서 알려주는 게 어딨어...


“네가 선택한 길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운동장을 현재 49바퀴째 돌고 있는 나를 향해 형이 소리쳤다. 아니, 선택한 적도 없는데? 하지만 바퀴 수가 진짜로 추가될까 봐 말로 하지는 못했다.


같이 옆에서 뛰면서 해대는 터라 뭐라 하지도 못하겠고 아주 죽을 맛이었다. 게다가 정작 같이 훈련을 소화하면서도 그다지 지쳐 보이지 않는 기색이었다.


“이건 내가 3년 전부터 소화하던 내용이었지. 지금은 다른 훈련을 더 추가해서 하고 있고.”


진정 이게 같은 사람이 맞나. 뭔가 의심이 들 정도로 괴물 같은 소리였다.


드디어 한 바퀴만 더 돌면 마지막. 나는 온 힘을 다해 마지막 바퀴를 다 돌고, 이내 흙바닥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으얽!”


이제 더는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은 강력한 탈력감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전에 종종 해봤던 형의 지옥훈련. 그건 쨉도 안되는 수준이었다. 이름에 ‘특별’이 들어간 순간부터 경계했어야 했는데... 처음에 내심 할만하다고 생각하며 대충대충 넘겼던 나 자신을 저주하는 순간이었다.


“좋아, 이제 슬슬 일어나.”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소름이 끼치는 표정으로 형을 바라보았다. 아니, 설마 아직도 남아있다고?


“너무 힘들어도 스트레칭은 하고 마쳐야지. 안 그러면 내일 큰일 난다.”


휴, 다행이다. 만약 한 개 더 있었으면 진짜로 가족이고 뭐고 바로 하극상이었다. 주먹 날릴 힘도 없었겠지만.


“끄으윽...”


형이 팔을 잡아당기자 팔다리가 죽 늘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대충 스트레칭을 받고 나니 무거웠던 몸이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보름달이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여름의 밤. 문득 생각해보니 형이랑 이렇게 있었던 적이 최근에는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늘 바빴으니 말이다.


각종 대회와 주말에 열리는 야구리그. 그야 바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겠지?”


“응...”


나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나도 처음 할 때는 거의 죽을 뻔했지. 다 끝내고 지쳐서 집에 돌아갈 힘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거의 기어들어 오는 수준이었어.”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루는 형이 굉장히 늦게 들어오길래 무슨 일이 생겼나 했었다. 그런데 거의 반쯤 죽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는 우리 부모님이 기겁하고 달려갔었다.


‘헤헤... 훈련 완료...’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털썩하고 쓰러졌다. 그때 종이 한 장도 팔랑하고 떨어졌었는데 그 내용에 부모님이 경악했던 기억이 있었다.


아마 그게 지금 내가 한 이 훈련이었을 것이다. 새삼 형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실감이 났다.


“내가 갑자기 왜 너를 훈련시킨 줄 알아?”


문득 형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걸었다. 아마도 하늘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글쎄.”


혼자 훈련하기 심심해서 아닌가. 뒷말은 그냥 마음속으로 삼켰다.


나도 똑같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주변이 어두워서 그런지 별이 꽤 아주 총총 달려있었다.


“너한테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뭐?”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재능이 있다니. 정말로 뜬금없는 소리였다.


“네가 지금 투수를 한 지 얼마나 된 줄 알아?”


“흠... 아마 1달 조금 넘었나.”


내가 처음 투수로 뛰었을 때가 야구부 내에서 홍백전을 한때였으니 아마 그쯤이 맞을 것이다. 뜬금없이 끌려가서 공을 던졌는데 왠지 그날부터 눈에 띄어서 계속해서 공을 던지게 됐었다.


“아마 내가 한 중학교 1학년 때쯤 그런 공을 던졌었지.”


“...음.”


뭐지. 자기 자랑인가. 형의 한 3년 전의 공 정도가 딱 내 수준이라는 것이겠지.


“나는 거의 한 다섯 살 때부터 공을 던져왔는데 말이야. 투수를 처음 해보고 1달 조금 넘겨서 던져보더니 벌써 내 3년 차까지 따라오다니. 솔직히 억울하지.”


그렇게 말하는 형의 표정은 쓸쓸한 줄 알았으나 의외로 기뻐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정말로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형의 착각이겠지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평생을 걸쳐서 쌓아온 노력을 순식간에 배반당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아닐까. 겨우 한 달에 9년. 그리고 남은 간격은 3년 차. 그리고 그 대상은 심지어 한 살 더 어리니.


그런데 형은 어째서 웃고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억울해 보이는 표정은 아닌데.”


“이제 억울하지 않지. 사실 내가 너에게 시킨 훈련은 투수를 죽이는 훈련이거든.”


“진짜?”


“설마.”


헉, 통수였어? 하지만 나는 이게 형이 가끔 하는 농담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렇다면 겨우 한 번 시키고 알려 줄 리도 없고.


“만약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네가 나를 따라잡는다? 그러면 나는 그 만큼 더 뛰어오르면 돼.”


“형 답네.”


노력과 근성의 결정체다운 말이었다.


“그렇게 쭉쭉 이어나가다 보면 우리는 거의 최정상급 투수가 되어있겠지.”


“말한 대로가 다 된다면.”


“그리고 우리 둘은 리그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두 투수가 되는 거야. 막 경기 날마다 뭐 형제 대결이다 뭐다 해서 막 뉴스가 나오고.”


“그거 재미있겠네.”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형이 그렇게 되어있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겠다. 지금 상태에서는 집중이 될 때가 아니면 잘 던져지지도 않고.


“언젠간 아마 그런 날이 올 거야.”


하지만 형은 왠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건가?”


“그런 거지.”


그리고 형이 마지막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야구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말이야.”


야구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먼 미래까지 내다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글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정말 모르는 이야기였다. 현재는 이루어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그러니 우선 나는 다음에 다가올 대회를 철저하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번 여름 대회에도 이 버스를 타고 갔던가?”


나는 도로 위를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있는 김수영에게 말을 걸었다. 워낙 심심했기 때문이다.


“그랬었지. 그리고 하루 만에 다시 돌아왔고.”


그렇게 말하며 수영이는 피식 웃었다. 참 씁쓸했던 기억이었다. 경기는 10:0으로 6회 콜드 패.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비까지 와서 눈물을 찔끔 흘렸던 날이었지.


“이번엔 다르겠지?”


“뭐, 네 컨디션에 따라 아마 달라질걸?”


“너무 부담 주지 마라. 그런 말 하면 진짜로 첫 번째 공부터 폭투를 날릴지도 몰라.”


“어유, 이제 귀하신 선발 투수 몸인데 내가 실언을.”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킥킥 웃는 김수영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쥐여줄 수밖에 없었다.


“야야, 머리카락 건들지 마! 빠질 수도 있어!”


“그거 좀 건든다고 빠지겠냐?”


“우리 할아버지가 탈모여서 혹시 모른다니까?”


수영이가 손으로 머리카락을 보호하듯 감싸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진심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특별히 이 사실은 비밀로 해줄 수밖에 없겠군. 잠깐 약하게 잡았던 내 손바닥 위에 놓인 머리카락들을 말이다.


음, 우연이겠지. 내 잘못은 아니니까.


나는 몰래 바닥으로 손을 가져다 대고 툭 털었다. 나는 털면서 손오공마냥 소원을 빌어주었다.


이 머리카락들이 나중에 다시 풍성하게 자라나기를...




***




버스는 계속해서 달려갔다. 아마 거의 다 왔을 텐데... 한 10분 정도면 도착하려나?


“다음 시합이 세울 중학교였지?”


갑자기 뒷좌석에 타고 있던 한태범이 불쑥 고개를 내밀고는 물어보았다. 세울중학교. 나는 잘 모르는 곳이었다. 물론 아는 데가 거의 없기도 하지만.


“그렇지. 그렇게 강한 팀도 아니고 대회에 나가서 성적을 낸 전적이 거의 없어.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될걸?”


“아니, 우리도 대회 나가서 성적을 낸 적이 없는데.”


나는 씁쓸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말했다. 무수한 광탈의 역사를 지닌 우리 기경중. 아마 거의 비슷한 처지의 팀일 것이 분명하다.


“물론, 한 1년 전이였다면 여기도 솔직히 간당간당했겠지만...”


그러자 한태범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그렇지. 무려 승매중학교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낸 거포가 이 팀에 들어왔으니까.”


“그거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냐...”


강팀홈런때렸도르를 받고 한태범은 아직도 시상대 위에서 수상소감을 줄줄 읊어대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건 둘째치고 우리에게도 이제 든든한 에이스가 생겼으니까.”


에이스라. 버스를 타기 전 감독이 내게 그렇게 말했었지. 이제 너는 에이스니까 몸을 귀중히 다루라고.


‘아니 그러면 전에는 안 귀중했어요?’


‘...더 귀중히 다뤄라.’


참 훈훈했던 장면이었다.


“자,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그때 버스 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 창문 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멀리서 빼꼼 고개만 내밀고 있던 경기장이 코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코치는 버스가 멈추자 버스 입구로 나와 목을 풀더니, 뭔가 연설 같은 것을 시작했다. 참 저분은 이런 걸 좋아한단 말이야.


“잘 들어라. 우리는 이 뜨거운 여름날을 다 견뎌내고 훈련을 했다. 흙먼지를 마시고, 바닥에 뒹굴고. 비가 와도 우리는 다 이겨냈다. 이제 우리의 성과를 보여줄 시간이다. 다들, 지금부터 경기에 집중해라! 가자!”


“코치님. 우리 경기는 내일부터 시작인데요?”


수영이가 손을 번쩍 들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킥킥 웃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일부터 집중해라!”


코치는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지만 이내 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리는 우선 마련되어 있는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세면도구, 수건, 옷가지들. 그리고 잠시 짐을 뒤적거리다 보니 뭔가 팔랑하고 튀어나왔다.


작은 쪽지였다.


‘우리 아들, 힘내라.’


아마 엄마가 내 짐을 싸주면서 같이 넣어둔 쪽지인 모양이었다. 나는 순간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참. 이렇게 중요할 때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데. 나는 다시금 마음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이내 다시 쪽지를 집어놓고 다시 정리를 시작했다.


짐 속에서는 또 이상한 것이 들어있었다. 뭐야 이건. 프로틴?


‘훈련 더 해라.’


흠. 딱 봐도 형이구나. 그리고 또...


부스럭.


“종이비행기?”


이건 또 뭐야. 이건 정말로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한데...


“야, 방성우. 나와봐라.”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불러서 이내 생각을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강현식? 왜?”


“누가 너 찾는데?”


여기까지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다고? 대체 누구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가보니 정말로 뜻밖의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


밖에서 신지혜가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보내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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