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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최근연재일 :
2021.08.25 00:21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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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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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0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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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3)

DUMMY

김수영의 쓰리런 홈런 이후 아쉽게 점수를 더 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9점이라는 점수 차는 상당히 무거운지 줄줄이 나오는 상대 타자들의 발걸음이 상당히 기가 죽은 느낌이었다.


“빨리 마무리하고 팔 쉬어라. 내일도 던져야 하니까.”


마운드에 올라가는 나를 바라보며 감독님이 그렇게 말했다. 언뜻 보면 그저 굳어있는 표정. 하지만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힘차게 대답하며 마운드 위로 올라갔다.


“아까까지는 그냥 말해 본 건데. 이제는 코 앞이네.”


콜드가 선언되기까지 말이다. 벌써 1점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런 압도적인 경기를 해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적어도 중학교 바로 올라와서 경기를 뛸 때는 이런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잘했지?”


이번 한 경기만 반짝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마냥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




“기세가 아주 완벽히 올랐군.”


“그렇죠. 전체적으로 아주 매서워졌어요. 우리 야구부가.”


감독 박상영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코치 강상식이 그의 말에 대답했다. 불과 한두 달 전만 해도 빌빌대던 팀이 어느샌가 안정감과 날카로움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정말 형편없었지. 기경중 야구부는 그리 유명하지 않았으니까 아예 처음 하는 얘들까지 받을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3년간 기본기에 집중하게 하면서 다들 기량은 꽤 괜찮아졌어.”


박상영은 지난 3년을 회상해보았다. 처음 들어왔을 때의 아이들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감개무량한 성장이었다.


“그런데도 성과가 나오지 않았던 것은 지난 패배들 때문이겠지.”


기본기의 충실함은 단기간의 성적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패배를 거듭하고, 그것을 매번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내보이기도 쉽지 않다.


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필요한 건 계기였죠.”


“...그렇지.”


자신이 하려던 얘기를 뺏어가자 박상영이 잠시 강상식을 째려보았다.


“그 계기는 방성우, 저 녀석이 피칭을 시작하자 다들 눈빛이 달라졌다.”


누가 봐도 압도적인 파괴력의 투구. 게다가 던진 사람은 3년간 배트만을 잡아 왔던 그런 녀석.


“어쩌면. 이라는 생각이 다들 머리에 스쳐 갔을 거야.”


그리고 승매중학교와의 시합이 가장 중요한 때였다. 모두가 예상치 못한 승리. 그 중심에는 끝내 찾아온 위기를 무실점으로 극복한 방성우가 또다시 있었다.


이긴다. 이길 수 있다.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어느새 가능성은 일종의 믿음이 되었고,


타악!


멀리 날아가는 타구. 생각보다 잘 맞은 타구를 뒤쫓아 외야수들이 내달린다.


휘익!


몸을 내던지는 우익수 강현식.


그러한 믿음들은 모두에게 힘이 되어.


공이 떨어지고, 강현식의 몸도 같이 땅바닥을 내 뒹굴었다.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랑스레 글러브를 들어 올리는 우익수.


“압도적인데도 더 압도적으로 보여주는군.”


누가 봐도 거의 다 잡은 경기. 그러나 모두가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경기를 뛰고 있었다.


“강팀이 되는 과정이죠.”


코치 강상식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




4회 말은 아슬아슬하게 몸을 던져 공을 잡아낸 강현식의 슈퍼 플레이로 마무리되었다. 하마터면 꽤 큰 장타를 얻어맞을 뻔했다.


“야, 나한테 밥이나 한 번 사라.”


아니나 다를까 한껏 뻐기면서 내게로 다가오는 강현식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면서 하이파이브를 했다.


“자리 준 거로 퉁치자고.”


“그건 또 그렇네.”


강현식은 캬하하 웃으며 다른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생각보다 제법 맞는데.”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컨디션은 최고일 텐데. 고개를 갸웃해보았지만, 답을 낼 수 없었다.


그때 김수영이 웃으면서 내 등을 툭 치며 다가왔다.


“야, 뭐하냐?”


숨길 마음도 딱히 없었으므로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니. 그냥. 오늘은 꽤 얻어맞는다 싶어서.”


피안타 2개. 경기 초반에 우연히 내준 볼넷 하나. 여태 이런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김수영은 오히려 나를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뭐야, 벌써부터 기만 질이야? 그게 얻어맞은 거면 세상에 투수가 어디 있어?”


아, 그런가?


“아무리 잘 던지는 투수도 안타 맞고, 볼넷 던지고, 그리고 홈런도 맞을 수 있는 거야. 그게 야구니까. 오히려 지금까지가 너무 이상했던 거지.”


하긴. 내가 너무 완벽하게만 생각한 모양이다. 어쩌면 이게 자만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반성해야지.


“저기 봐라. 저기 있는 투수가 바로 네가 될 수도 있다고.”


김수영이 굳이 방금 공을 던지고 있는 상대 투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5회 초.


초구가 포수의 미트를 향해 쭉 나아간다. 목적지까지는 다다르지도 못했다.


타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달려나가는 타구. 그리고 그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뻗어 나갔고, 이쯤이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더욱 뻗어 나갔다.


“어?”


공을 친 타자의 목소리였을까, 아니면 공을 던진 투수의 목소리였을까. 혹은 공을 보며 쫓아가던 좌익수의 목소리?


아무튼, 누구라도 그 얼빠진 소리를 내뱉을 수 있는 결과였다.


“저게 넘어가네?”


홈런이었다.


초구를 얻어맞은 상대 투수가 뒤를 돈 채 미동도 하지 못했다.


“...그거 좀 잔인하네.”


저게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소리가 갑자기 확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




5회 말은 아주 허무하게 끝이 났다. 세 명 모두 삼구 삼진.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는 순간, 그대로 콜드 선언이 되었다.


결과는 12대 0. 홈런 이후 추가 득점까지도 해내어 추격의 의지조차 꺾은 결과였다.


경기에서 진 팀은 곧바로 짐을 싼다. 그 말은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작년까지의 우리가 겪어왔던 일이었고, 이번에는 상대 팀이 겪을 일이었다.


잠시 고개를 돌려보니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고 있는 상대 팀 선수들이 종종 보였다. 아무래도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대회가 이렇게 끝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것이리라.


나였어도 울음이 찔끔 나왔을 것이다.


“흠, 역시 김한솔을 만나기엔 좀 그렇겠지?”


“좀 쓰레기 같은 짓이지. 나중에 우연히 만나길 빌자.”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하지만 놀랍게도, 경기가 끝나고 김한솔을 만날 수 있었다. 수영이와 함께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잠시 경기장 밖에 나온 그 틈에 녀석이 직접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야, 오랜만이네.”


설마 경기 졌다고 직접 복수하러 온 것은 아니겠지? 그래도 2대 1이니까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러게.”


“거의 10년은 된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는 수영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네가 한번 물어봐라. 하지만 돌아온 것은 똑같은 찌르기 공격이었다.


어쭈?


그렇게 전쟁 모드로 들어가려던 사이, 김한솔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젠장, 그렇게 노려봐도 네 공을 치기 힘들더라. 대체 언제부터 투수가 된 거야.”


굉장히 투덜대는 기색이었다.


“아니, 뭐. 한 달 전쯤?”


“농담하지 말고... 진짜?”


그러자 옆에 있던 수영이가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너희 형도 그렇게 잘 던졌는데 너라고 못 던지겠냐. 에이, 잘 사귀어라! 내가 졌어!”


응? 정말로 뜬금없는 소리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누굴 사귄다는 말이지?


“뭔 소리야. 사귀다니.”


게다가 졌다는 말은 또 뭐고?


“맞아. 이 녀석은 절대로 여자랑 사귈 일이 없는데.”


봐봐. 김수영도 이렇게 말하잖아... 나는 수영이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찔렀다.


“모르는 척하지 마. 전날 니네 중학교 숙소 앞으로 지혜가 널 만나러 간 거 아니었어? 겨우 예선전인데도 찾아오는 사이가 사귀는 거 아니면 뭔데?”


엇. 어떻게 그 장면을 본 건가.


“뭐야, 신지혜가 찾아왔었다고? 난 못 봤는데?”


수영이조차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 오해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그런 장면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당황하며 해명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우리 형 경기를 보러 왔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그냥 한 번 찾아온 거야. 딱히 날 만나러 온 건 아니었다고.”


말하니까 뭔가 이상한 변명 같은데 아무튼 아니었다. 이걸로 잘 변명이 됐을까? 내심 노심초사하며 김한솔을 바라보는데.


“뭐야, 겨우 그런 거로-”


젠장, 틀렸나?


“찾아간 거였어? 난 또 뭐라고. 그럼 관중석의 그 여자도 다른 사람이었나? 아직 기회가 남았군! 안녕!”


그렇게 어째선지 신난 듯 외치며 빛의 속도로 어디론가 뛰어갔다. 어떻게든 해결이 된 모양이군. 믿어줘서 다행이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눈을 거두지 못한 것은 김한솔뿐만이 아니었으니.


“신지혜가 홀로 찾아왔다라. 우성이 형이 경기하는데 굳이 주변에 있다고 말이야. 흐음.”


“아니야, 그런 거 아니라고...”


버스를 타기 위해 지정해준 장소로 이동하며 같이 걷는 순간 그 의심스러운 눈빛은 계속 이어졌다.




***




투수 방성우의 공식전 첫 성적.



5이닝 무실점 2피안타 1볼넷 9탈삼진. 총 60구.



“형제끼리 참 대단하네에...”


한 소녀가 자신이 직접 기록한 메모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궁금한 사람이 문득 생겨서 찾아왔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기록을 보여주고 있는 신인 투수.


“그보다 얘는 투수 시작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이 정도면 엄청난 거 아닌가?”


엄청난 것이 맞았다.


“우성이 말대로 상당히 지켜볼 만한 선수네.”


소녀는 경기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어쩌면 숙소로 빠져나갈 때 가까이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직접 말을 걸어 볼 수도-


“음? 저 애는... 왜 여기에 있지?”


밖에 나오자마자 문득 보인 여자. 무척 자주 듣고, 본 적도 있는 아는 사람이었다. 출처 대부분은 방우성이었지만.


그리고 방우성이 자주 말할만한 여자라면?


“신지혜...”


당연히 신지혜밖에 없을 것이다. 자세히 보니 그녀도 무언가를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자로서의 감인지, 소녀는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혹시 방성우를 찾고 있는 건가?”


아마도, 아니, 틀림없을 것이라고 소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 문득 눈에 들어온 한 남자. 방성우가 아까 함께 공을 주고받던 포수인 김수영과 떠들면서 가는 모습이 보였다.


“흐음.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니 서비스를 줘볼까?”


그렇게 말하면서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소녀는 신지혜에게 향했다.


“저기, 혹시 성우 선수를 찾고 있는 건가요?”


“네... 어, 누구세요?”


"아, 저요? 제 이름은-"


그리고 소녀는 총총거리는 걸음 그대로 사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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