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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최근연재일 :
2021.08.2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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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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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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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평범한 동생(3)

DUMMY

바로 집 앞에 있는 공터. 흙바닥에 풀이 듬성듬성 피어있어 그 이슬이 발목에 스쳤다. 그 기분이 뭔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듯했다.


“자, 우선 여기에 던져봐.”


스트레칭을 간단히 한 다음, 김수영이 미트를 턱 하고 주먹으로 친 다음 커다랗게 벌려보았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면서 어깨를 휘휘 저어보다가 야구 글러브를 슥 꼈다.


“내일부터 하면 안 되냐? 왜 갑자기 오늘부터인데.”


“내일부터 해도 싫어할 거면서.”


그건 그렇지. 역시 오랜 내 친구답게 나를 잘 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등교 시간까지는 꽤 여유가 남아있었다. 한 1시간 정도. 게다가 여기서 학교까지는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대충 여기서부터 던지면 되는 건가?”


“맞아.”


수영이가 나에게 던지라고 정해준 자리에서 야구공을 잡았다. 마운드에서 본루까지의 거리는 18미터 40센티라고 한다. 실제 마운드라면 조금 더 높은 자리에서 포수를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멀어 보이기도 하고 가까워 보이기도 한 거리. 그러고 보니 그때 수영이와 내기를 했을 때 보다 가까워 보이는 기분이었다. 착각인가?


“우선 첫 번째는 힘 너무 주지 말고 던져봐.”


나는 그 말에 전에 던졌던 그 감각을 생각하며 야구공의 그립을 쥐었다. 중지와 검지를 실밥에. 그리고 엄지손가락의 날을 그 아래 실밥에 위치하도록. 생각해보니 이게 맞는 그립인가?


“뭐해? 시간 없어.”


거참, 재촉하기는. 아직 1시간이나 남아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수영이의 말대로 힘을 빼고 공을 던졌다.


휙-


퍽!


공은 좋은 느낌으로 미트에 꽂혔다. 손이 조금 움직이긴 했지만, 그때 마구잡이로 던질 때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조금 던 좀만 힘을 뺐는데도 꽤 정확하게 제구가 된 것을 보니 나름 뿌듯했다. 그날 이후에 뭔가 억울해서 혼자 몰래 던져봤는데 성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거 힘 빼고 던진 거야?”


“음? 왜?”


“이거라면... 좋아. 다음!”


왠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곧바로 다음 공을 요구했다.


휙-


퍽!


휙-


퍽!


이런 느낌으로 공을 잠시 던지다가 이내 공을 턱 붙잡더니 수영이가 앉은 상태로 내게 외쳤다.


“몸풀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전력으로 한 번 던져보자!”


오케이. 아까부터 뭔가 답답한 기분이 들던 차였다.


“좋아, 간다!”


훅-


터엉!


훅-


쿵!


훅-


콰앙!


“후우, 어땠어?”


나는 공 여러 개를 전력으로 던지고 뿌듯한 마음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 정도면 저 친구에게 충분한 연습이 되었을 것이다.


“헉...헉... 연습 됐네... 블로킹 연습.”


뭐, 공이 들어가야 말이지. 하지만 포수에게 블로킹 능력만큼 중요한 게 또 없지 않은가? 수영이에게 좋은 연습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녀석은 용케 내 빗나가는 공들을 다 받아내고 있었다.


핸드폰을 다시 힐끔 바라보니 남은 시간은 10분 남짓. 이제 슬슬 갈 시간이었다.


“자 이제 가자.”


“아니, 마지막으로 집중해서 딱 3구만 더 던져봐. 적어도 삼진은 하나는 잡아야지.”


아이, 귀찮게.


세 구만 더 던지면 되는 거지?




***




공터의 가장자리에서 미트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김수영. 그는 야구를 했을 때 두 번 정도 느꼈던 희열을 다시금 되새겼다.


처음에 느꼈던 때는 포수 미트로 공을 처음 잡아보았을 때. 그리고 두 번째로 느꼈던 때는 바로 방성우의 형, 방우성의 공을 받은 그 순간에 느꼈던 것이었다.


“...뭔가 유전자라도 있는 건가?”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거칠고, 강렬하다.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지만 그건 당연한 거였다. 오히려 그 부분이 공을 잡으면서 더욱 소름 돋게 했다.


“쟤는 무조건 투수 해야 해.”


그런 묘한 사명감이 생긴 김수영은 재촉하는 방성우의 뒤를 바라보았다.




***




“넌 무슨 아침부터 땀에 절어있냐?”


서둘러 학교에 도착한 뒤 반에서 얌전히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앉아 있자 뒤에서 신지혜가 말을 걸어왔다. 집도 가깝고 학교에서도 같은 반인지라 여러모로 만날 일이 많다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응? 아니, 공 좀 던지느냐고.”


엎드린 상태로 그대로 대답했다. 지금은 에어컨의 냉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수업 들을 때에도 땀이 나 있으면 최악이니까.


“언제부터 그렇게 열심이었데.”


“오늘은 수영이 연습을 도와준 것뿐이니까.”


“연습?”


“응. 갑자기 나한테 연습 좀 도와주라고 하더라고. 떡볶이값 대신에.”


잘못했으면 정말로 거의 3만 원 정도 나올 뻔했다. 돈 없으면 몸으로 때우는 것이 자본주의 세상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저기...”


하면서 갑자기 신지혜가 말꼬리를 늘였다. 나는 뭔가 이상한 마음에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원래 뭔가 말하려고 할 때 망설이는 타입이 아닌데. 중요한 일인가?


“학교 끝나고 잠시 만나지 않을래?”


순간 움찔했지만 사실 잠깐 만나는 일이야 흔한 일이었다. 형이랑 함께하던가 아니면 부모님의 심부름이라던가. 무거운 물 같은 걸 사 오라고 시킬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보통 나를 불러서 같이 가져오게 했다.


힘든 일은 꼭 나한테 시킨다니까.


“문자로 보내면 됐을 텐데.”


“실수로 핸드폰을 두고 와서.”


“아.”


그거 큰일이네. 세상 살아가기 힘들 텐데.


“...그래.”


“그럼 7시까지 시내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땀을 식히기 위해 책상 위에 엎드렸다.




***




“흐헉!”


딩동댕동-


뭔가 대충 만든 듯한 종소리가 흘러가고 정신과 시간의 방 뺨칠만한 수업이 종료되었다. 누군가에겐 순식간이겠지만 나에게는 힘든 시간이었다. 배움과 학업의 길로 나아가려는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었다.


“뭐야, 방성우. 방금까지 졸고 있었으면서.”


“...”


뭐, 공부는 고등학교 올라가서 열심히 해도 되잖아? 수능만 잘 보면 인서울은 하겠지.


이런 언젠가는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을 하며 나는 수영이와 함께 야구부로 향했다.


“오늘도 기본 훈련만 하고 끝내겠지.”


그러면 대충 7시쯤이면 끝날 것이다. 나는 방과 후의 약속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내 목소리를 들은 수영이는 의아하다는 듯 내게 말했다.


“뭐야, 오늘 우리끼리 홍백전 한다고 못 들었어?”


처음 듣는데.


“분명히 저번 전달 시간에 말했을 텐데.”


아. 맞다.


하지만 지금이 무슨 90년대 시절도 아닌지라 그런 플래그는 꽂히지 않는다. 21세기 사회라는 최첨단 시대에는 휴대폰이 있기 때문이다!


하고 전화를 걸려는 순간. 아까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 안 가져왔댔지.”


“응? 뭐를.”


“아, 아니야.”


“거기, 빨리 움직여!”


그때 불현듯 들려온 감독님의 소리에 우리는 서둘러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



스트레칭과 간단한 훈련을 모두 마치고 5시 30분. 슬슬 홍백전이 시작할 때였다. 대충 반으로 갈라진 뒤 포지션을 맞춰보며 점검을 하는 시간에 나는 할 수 없이 아까의 사정을 수영이에게 설명해주었다.


“호오. 그래서 지혜를 만나려고 경기를 일찍 끝마쳐야 한다.”


“뭔가 말이 이상하긴 한데 그렇지.”


분명히 무거운 물건을 들고 가야 하는 심부름을 부탁받았을 텐데. 늦게 가면 화낼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뭐 할 수 있는 건 없는데.”


“그러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간을 계산해보았다. 단순한 연습경기인 홍백전에서는 7회까지만 우리 야구부에서는 하고 있다. 그렇기에 평소 경기를 진행하는 것보다는 조금 빨리 끝날 것이다. 그런데도 1시간 만에 경기를 끝내는 건 조금 무리일 듯싶었다.


3자 범퇴, 노 에러, 삼 구 삼진. 이런 사례들이 7회 내내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야말로 중학교 레벨에서는 천운이 따라야 할 일이었다. 투수가 적고, 그렇게 강하지도 않은 우리 야구부에서는 특히 그렇다.


야구는 시간제한이 없는 스포츠.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도 있고 극도로 줄어들 수도 있다.


“기도나 해야겠다.”


“그래.”


“자, 경기 시작한다. 위치로!”


감독님의 말씀이 들려오고 그렇게 기경중학교의 홍백전이 시작되었다.




***




깡!


“아웃!”


터억!


“스트라이크, 아웃!”


툭.


“1루!”


“아웃!”


와아아아!



“이야, 대단한데?”


“오늘따라 수비가 왜 이리 좋냐.”


“평소였으면 안타일 텐데.”


나를 포함한 우리 타자진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려 이런 방식으로 계속 이닝이 지나오길 4회째. 6시 30분쯤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5회를 바라보고 있는 시점이었다.


“진짜 되겠는데?”


수영이가 내게 살며시 속삭였다. 수비와 공격이 모두 약하지만, 공격이 그나마 나았던 우리 야구부로서는 정말로 큰 행운이 따라주고 있었다.


“...수비는 웬일로 잘하는데 스윙이 그게 뭐냐? 정신 안 차려! 지금 집에 가고 싶어서 대충 휘두르는 거지!”


오늘 선풍기 스윙을 수십 번 휘두른 나는 움찔했다. 아니, 뭐 억지로 한 건 아닌데 말이야. 이럴 때는 투수를 칭찬해 주는 것이 더 좋은 교육이 아닐까요?


코치의 눈빛이 한순간 나를 향했지만 이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 좀 티가 났냐?”


나는 수영이에게 속삭였다. 그렇게 막 휘두르지는 않았는데. 설마 그렇게 티가 났을까?


“뭐, 좋을 때야 너는 꽤 때리는 데 안 좋을 때가 넌 더 익숙하니까.”


음. 맞는 말이다. 진짜로.


나는 수영이의 뒤통수를 퍽 쳤다.


“아니 왜. 맞는 말이잖아!”


한 번 더 쳤다.


“백팀 공격, 홍팀 수비.”


그리고 나는 재빠르게 필드 위로 뛰쳐나가 우익수 자리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데.


계속 기다려 보았지만, 경기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뒤에 마운드 위로 오른 우리 투수에게 감독님이 다가갔다. 그리고 조금 후에 우리 코치님도 올라가 투수와 이야기하더니 이내 투수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뭐지?”


“글쎄.”


뭔가 지지부진하길래 우리 외야수 삼인방끼리 모여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요즘 상길이가 팔꿈치가 좀 시큰거린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거 아닌가?”


중견수 백상호가 말했다.


“뭐야, 쟤 아직도 병원 안 가봤냐?”


“그러게.”


병원은 빨리빨리 다녀야 할 텐데. 걱정되었다.


그런데 그러면 우리 남은 투수가 없는데 경기를 어떻게 하려나.


“이대로 끝낼 수도 있지 않을까?”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조그만 가능성을 바라보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런데 저 멀리서 갑자기 김수영이 나를 향해 브이 표시를 하는 것이 보였다.


뭐지?


“포지션 교체! 우익수 방성우 투수로 들어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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