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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최근연재일 :
2021.08.25 00:21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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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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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글자수 :
118,855

작성
21.08.07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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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연습 경기(2)

DUMMY

“저요?”


“그래. 너.”


감독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나 직전까지도 우익수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경기 중간 계투로 나온다. 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따로 찾아오고. 이상!”


그렇게 감독님의 엔트리 발표는 충격적인 발언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당연하게도 감독님이 10분 뒤에 훈련을 시작하겠다고 하고 잠시 나간 뒤 아이들이 굉장히 시끌시끌했다.


역시 나의 투수 선정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투수로서의 경력도 거의 없거니와 보여준 것도 그거 하나가 다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의 투수진들에게는 더더욱 불만이 될 수밖에 없...


“야, 나 드디어 8번 됐다!”


“전엔 몇 번이었는데?”


“9번.”


“이씨, 이번엔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 관심이 없었다. 내 얘기보다는 다들 자기 자리에 더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나와 같은 포지션이었던 강현식이 나를 툭 쳤다.


“야, 덕분에 내가 선발로 나가보네. 고맙다!”


그러고 보니 내가 투수 쪽으로 옮겨가면 얘가 우익수 자리에서는 붙박이 주전이 되겠구나. 뭐, 현식이는 당연히 좋아하겠지.


다음에 내게 말을 건 얘는 이름이...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내가 전에 공을 던져 삼진을 잡은 적 있던 아이였다. 처음 나와서 처음 삼진을 잡았던 상대인지라 기억에 남았다.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2구나 흘려보내기에 무시하는 건가 생각해서 마음이 조금 아팠었는데.


“젠장, 이제는 같은 편이니 인정해주지... 넌 정말 나중에 대단한 투수가 될 거야...”


? 뭐라는 거야. 정체불명의 소리를 늘어놓기에 나는 그냥 대충 상대하고는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걸어보았다. 우리 야구부의 3명뿐인 투수 중 하나, 2학년 좌완 투수 김경식. 그리고 저번에 잠시 작은 부상으로 빠졌다가 금세 돌아오기도 하였다. 안경을 쓰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 그야말로 무색무취한 외형이 그의 특징이었다.


“성우 형? 왜요?”


“야, 넌 내가 중계진으로 들어간다는데 안 이상해?”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나 같으면 좀 불만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식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소 뜻밖이었다.


“아뇨, 이상할 건 없는데요. 애초에 중학교에서는 포지션 변경도 많이 하지 않나요?”


아, 그렇긴 한가. 하지만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은 다른 성격의 이야기였다.


“경기하는데 투수가 초보자면 불안하지 않나? 심지어 다음 경기는 꽤 강팀이라면서. 너네한테도 부담이 될 거고 말이야.”


나는 당연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경식이는 손까지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어휴, 누가 그런 소리를. 그런 생각 하는 사람 한 명도 없을걸요?”


더더욱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나는 대체 그 홍백전에서 뭘 보여준 거지? 마침, 내 옆으로 다가온 수영이를 보자마자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대체 뭘 던졌었기에 반응들이 그렇지? 아무리 내가 잘 던졌다고 하더라도 그건 단순한 홍백전이었잖아. 다들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


그러자 수영이는 씨익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무리 작은 경기라고 해도 다들 느껴지는 건 똑같단 말이야. 네가 2이닝 던진 게 우리 사이에서 엄청 놀라워했었다고. 분명 이전 5이닝까지 무실점으로 던진 경식이보다도.”


“...그런가?”


아무리 말해도 나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딱히 대단한 기록을 세운 적도 없었고 실전을 겪지도 않았다.


“자, 휴식 끝! 이제 훈련 시작이다!”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훈련을 하러 뛰어가야 했으므로, 나의 의문은 잠시 미뤄두게 되었다.


그리고 우익수 자리로 자연스럽게 옮겨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현식이가 나의 옆구리를 툭 찌르며 째려보았다. 마치 자기 자리를 지키는 고양이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야, 넌 이쪽이 아니라 이제 저쪽이야.”


아, 맞다. 깜빡했네.




***




공을 던지고, 감독님이 1루 쪽으로 공을 툭 쳐 낸다.


“1루 커버!”


그러면 나는 1루수가 공을 잡으러 뛰어나온 사이 빠르게 1루 베이스로 뛰어간다.


“투수 정면 땅볼!”


그러면 나는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을 빠르게 잡아 1루수에게 송구를 한다.


“홈 쇄도 상황! 홈 베이스 커버!”


그러면 나는 또다시 빠르게 달려 포수 뒤쪽으로 달려가 위치한다.


“자, 이렇게 간단해 보이는 상황도 실전에서는 긴장해서 쉽게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수많은 반복을 통해 몸이 알아서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하는 건데 왜 갑자기 설명을...?”


당연히 초보 독자를 향한 설명이-


“이 녀석아, 오늘 처음 온 녀석이 있잖냐.”


생각해보니 나도 초보였네. 내게 있어 투수는 처음이었기에 이런 기본적인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코치가 말했다.


“야구를 하면서 투수에게 온갖 상황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1루 주자의 도루 여부, 번트로 느리게 굴러오는 공, 스퀴즈 등등. 평소에 보면 당연하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뭐든지 돌발 상황이다. 따라서 공을 던지는 것 말고도 여러모로 계속 생각하면서 경기에 임해야겠지.”


“네, 알겠습니다!”


투수 수비 훈련을 끝마친 뒤, 나는 피칭 전에 간단하게 캐치볼을 하면서 수영이에게 말했다.


“아, 우익수 볼 때가 마음이 편했는데...”


경기할 때 공도 많이 안 오고 말이다. 이런 복잡할 상황이 나올 경우의 수가 별로 없다. 기껏해야 공중볼을 못 잡는다거나, 다이빙했다가 뒤에 빈 곳으로 공을 빠뜨리는 경우밖에는 없으니까.


“투수들은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는 거지...”


“너도 지금 투수야.”


“...”


에라이. 공이나 던지자. 이게 차라리 마음에는 더 편한 것 같다.


슬슬 몸도 풀렸고 이제 본격적으로 던져볼 때가 되었다.


“자, 던진다!”


“그래.”


나는 한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낸 뒤, 그대로 와인드업 자세에 들어갔다. 주변을 보니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흠, 여기서 마구 공이 빗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떻게 되려나?


나는 문득 걱정되었다.




***



“우리 투수진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빈약하단 말이지.”


감독 박상영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중얼거림을 들은 코치 강상식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인재가 안 나오니까요...”


한 번은 아예 각잡고 투수 타자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공을 던져보라고 시켜본 적이 있었지만 뭔가 싹수가 보이는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죄다 나사가 하나 빠져있는 수준. 그리고 기대주였던 방우성의 동생은...


“응? 생각해보니 그때 걔는 안 던졌었나?”


문득 강상식이 과거를 되새기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생각해보니 그때 방성우가 거기에 있었나?


“그때만 잠시 빠졌었던가? 젠장, 운도 없지.”


강상식은 분통을 터트리며 내뱉었다. 만약 1학년 때부터 그 재능을 찾았다면 기경중도 분명 대회에서 상당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형에 버금가는 인재로 성장했을지도...


“뭐, 그건 모르는 이야기니까. 애초에 성우가 지금은 확실하지 않잖아?”


“아니, 아무리 조금이라도 저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 줬던 게 단순한 운은 아니죠. 분명히 저건 진짜가 틀림없어요.”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아무리 탐이 나는 인재라고 해도 신중히 해야 한다고 박상영은 생각했다.


“뭐, 싹수가 보인다고 하더라도 쟤는 그냥 중학생에 불과하니까. 너무 부담 주지는 말라고.”


“아뇨, 투수는 진짜 어려서부터 키워야 합니다. 지금도 늦었으니 억지로라도-”


차악!


강상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방성우의 손에 있던 공이 그가 있던 자리를 향해 쇄도하다가 파란 그물망에 막혀 툭 하고 떨어졌다.


“아, 공이 빠졌네. 죄송합니다!”


“...봐봐.”


“그렇...네요.”


강상식은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야구공에 순간 놀라서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구위만큼은 빠진 공이라도 대단하군. 저게 제구가 되면 아마 저번에 본 그 경기처럼 위력적인 투구가 되겠지.”


휘익-


차악!


휘익-


쿠웅!


휘익-


쾅!


“음... 존으로 꽂힌다면 이라...”


박상영은 미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했던 강상식은 김수영과 방성우에게 다가가 물어봤다.


“야! 너 손 다쳤어? 아니면 어깨라도?”


차라리 조금이라도 부상이 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저번에 본 그 투구 내용은 절대로 이렇지 않았다. 완벽히 제구가 되는 빠른 볼. 거기다가 변화구를 하나씩 끼워놓아 선발투수로 성장시키려던 강상식의 구상이 뭔가 이상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방성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 기대를 깨부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요? 저 굉장히 멀쩡한데요?”


“그럼 뭐야 이거. 혹시 시위하는 거야? 다시 우익수 하고 싶다고?”


“아니요. 평소에도 이랬습니다.”


김수영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참했다.


“원래 공을 잡은 지도 얼마 안 되는지라... 아마 경기 들어갈 때쯤이면 다시 제구가 잡힐 겁니다.”


그리고 다시 방성우가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김수영은 돌아가기 직전에 박상영에게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부탁했다.


그러자 박상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여전히 공이 빠지고 있는 방성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더도 말고 한 5구만 완벽하게 던지고 끝내! 그러면 일찍 보내줄게!”


“아니, 감독님. 지금 하나라도 더 던져서 폼을 끌어올려야 하는 시점에!”


코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지시였던 탓이었다. 하지만 박상영은 방성우의 오랜 친구이자 공을 받아온 김수영의 말이니 믿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까 쟤가 뭐라 한 줄 알아?”


“뭐라고요?”


“성우는 실전에 강한 타입이라 뭔가 제한을 걸어주면 더 잘하는 타입이라고.”


“예? 그게 말이 됩니-”


훅-


퍼엉!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성우가 던진 공은 마치 대포알과 같은 소리를 내며 김수영의 미트에 꽂혀있었다. 김수영은 찌릿한 느낌에 손을 툭 털고 씨익 웃으며 박상영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어?”


“말이 되긴 하는군.”


아까와는 다르게 완벽한 모습에 강상식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공은 또다시 던져졌다.


훅-


퍼엉!


훅-


퍼엉!


훅-


퍼엉!


훅-


퍼엉!


“어으, 드디어 들어가네. 감독님! 저 진짜 가도 됩니까?”


“...그래. 오늘 수고했고, 쉬어라!”


“넵!”


방성우는 감독의 말에 눈에 띄게 기뻐하며 짐을 챙기러 돌아갔다.


“참... 제가 기대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뭐, 기대를 하긴 해야지. 그게 우리 역할이니까.”


그렇게 둘은 방성우가 공을 던지고 있던 그곳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헤헤, 그럼 저도...”


“넌 다른 애들 공도 받아야지. 다시 돌아가.”


그러자 김수영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다시 연습하러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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