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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최근연재일 :
2021.08.25 00:21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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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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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4)

DUMMY

다음 상대는 소명중학교.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간간이 본선에 진출하는 정도에 그치는 평범한 팀이었다.


아무리 전 경기에서 크게 이겼다고 하더라도 저번 상대는 거의 중학 야구계에서 최약체 수준의 팀인 세울 중학교.


아마 외부에서 보았을 때 승률은 반반 정도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수영이는 말했다.


그래서인지 소명 중학교 선수들은 크게 기세가 올라있는 우리를 보고도 별로 기죽는 느낌이 없었다.


“어차피 약팀 꺾고 올라온 약팀인데, 뭘.”


“우리였어도 그 정도는 했을걸?”


가끔 가만히 듣다가 보면 이런 말소리들이 간혹 들려올 정도였다.


“절대로 못 할 거면서 저런 소리를 지껄이기는.”


한태범이 허공에 배트를 힘차게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수영이는 이런 말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 봐야 최대 성적이 본선 진출인 팀인데 말이야. 경기 두 번만 이기면 본선인데.”


오히려 껄껄 웃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본선 진출을 한 번도 못 하지 않았냐.”


한태범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중학교 생활 내내 대회 성적이 바닥인 것은 역시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었다.


“뭐, 어때. 최초 본선 진출 팀이 우승까지 차지한다면 그게 더 멋진 일 아니겠어?”


김수영은 야심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문득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승이라. 참 꿈에 불과한 이야기다.


“야, 그거 좋네. 개 멋지긴 하겠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 듯 태범이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소명중학교의 덕아웃을 향해 배트를 치켜들고 선언했다.


“좋아, 그러면 이번 경기에 홈런 한 3방쯤 쏴줄까? 우승하려면 이 정도는 가볍게 이겨야지!”


벌써 우승은 이미 결정되었다는 듯한 뻔뻔한 말투였다. 거 참. 속 편한 녀석들이다.


막연한 낙관. 그러나, 역시 나도 야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끓어오르는 느낌이 났다.


무슨 일을 시작하면 응당 그 일의 최정상을 노리는 것이 당연한 이치. 공을 던지면 맞지 않는 투수가 되어야 하고, 배트를 쥔다면 공을 쳐 내는 타자가 되어야 한다.


시합했다면 이겨야 하고, 대회에 나간다면 1등을 노려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작년 우승팀도 한 번 이겨봤는데 말이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잠시 뒤에 있을 2차전을 위해 몸을 풀기 시작했다.




***




1회는 소명중학교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플레이볼!”


오랜만에 들어본 플레이볼 선언. 저번 경기는 아예 초반이 통편집 당해서 아마 못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때도 진짜 열심히 던지고 있었는데 말이지. 이러니까 왠지 내가 날로 먹고 승리하는 줄 아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응? 지금 마운드에 안 올라가고 뭐 하냐?”


“아니, 아무것도.”


나는 서둘러 마운드 위로 뛰어 올라갔다.


마운드 위에 서서 나는 가만히 상대 타자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어떤 식으로 공략을 해야 할까?


상대 1번 타자의 이름은 김영덕. 어쩐지 대게가 먹고 싶어지는 이름이었다.


장타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달리기와 컨택이 좋은 전형적인 1번 타자. 저번에 세울 중학교 1번 타자의 상위호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걔는 달리기만 빨랐기 때문이다.


우선 한 구 던져볼까?


나는 글러브에 넣었던 손을 꺼내 힘차게 투구했다.


부웅-


퍼억!


“스트라이크!”


묵직하게 미트에 꽂혀 들어가는 야구공. 그에 비해 배트는 타이밍이 한참 늦게 돌아갔다.


“좋아, 역시 잘 먹히는군.”


어쩌면 내 공이 약팀에게만 먹히는 공이 아니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었는데. 막연한 불안감이 약간은 해소되는 첫 구였다.


컨디션도 딱히 나쁘지 않고, 공도 착착 감긴다.


그렇다면 이제 거리낄 것이 없었다.


퍼억! 몸쪽 높고 빠른 공.


“스트라이크!”


퍼억! 바깥쪽 낮은 빠른 공.


“스트라이크, 아웃!”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심판의 아웃콜. 나는 가볍게 첫 번째 주자를 삼진으로 돌려보냈다. 산뜻한 출발이었다.


그리고 그 기세를 이어나가 나는 곧바로 이어 나오는 2번, 3번 타자를 각각 삼진, 내야 땅볼로 막아내며 11의 공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몸 가벼워 보이네.”


덕아웃에 들어서며 나는 수영이와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무거워질 이유도 없는걸.”


어제 콜드 게임이 선언되어 겨우 60구로 경기가 끝이 났기에 팔이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만약 이 경기에서 이긴다면 본선까지는 이틀이나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조급하게 경기를 운영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이겼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1회 말이 되었다. 타석에 들어간 것은 1번 타자인 한태범. 역시 특유의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투구를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칠까?”


“치겠지.”


상대 팀 투수가 가만히 서서 포수의 미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뭐야, 어디 갔어.”


잠시 한눈판 사이에 상대 투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내려갔나?


“저기 있어... 바로 포수 뒤에 말이야.”


나는 각도를 조금 틀어서 마운드 위를 바라보니 과연 자세를 낮추고 사인을 확인하고 있는 투수의 모습이 보였다.


“...키 진짜 작네.”


키는 공을 던지는데 꽤 중요한 요손데 말이야.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투구를 할 때 그 힘 차이가 상당히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키와 덩치는 상대 타자에게 압박감을 넣는 하나의 수단으로도 쓰이기에, 키는 투수에게 상당히 중요한 요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투수, 한찬엽. 마침내 녀석이 첫 번째 공을 쏘아보냈다.


파앙!


“볼!”


“상당히 낮은 자세로군.”


나는 다시 와인드업에 들어가는 투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치 거의 땅에 닿을 법한 느낌의 언더핸드스로.


야구를 시작한 이후로 실제 시합에서 사용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참 오랜만에 본 것 같다.


아마 저 정도 높이에서 공이 날아오면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키가 작아서 더 그런 모양이야.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서 전략을 잘 짰나 보네.”


두 번째 공이 날아간다. 공이 상당한 변화를 보이며 정확하게 포수의 미트에 꽂혔다.


파앙!


“스트라이크!”


낮은 코스로 정확하게 들어간 공이었기에 한태범은 함부로 공을 건드릴 수 없었다.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내야 땅볼로 아웃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공이 그렇게 빨라 보이지는 않는데.”


나는 솔직한 감상을 털어놓았다. 공이 미트에 꽂히는 소리도 약간 빈약한 느낌이 들었다.


“그야 언더핸드로는 구속 뽑아내기가 그리 쉽지는 않으니까.”


“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게 빠르겠어, 아니면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게 빠르겠어?”


아하. 확실히 이해되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저 투구 폼 자체가 그렇게 체중을 크게 싣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워 보였다.


세 번째 구.


이번엔 몸쪽 낮은 코스. 상당히 생소한 각도로 공이 휘어 들어가자 한태범에게 상당히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스트라이크!”


심판의 콜이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어려울 것 같은데.”


“그야 거의 본 적도 없는 공을 쉽게 치기는 어렵겠지.”


“아까는 칠 것 같다면서.”


“그때는 내가 몰랐잖아.”


하긴. 그건 그렇다. 그런데 김수영은 오히려 웃음을 지으며 당당히 선언했다.


“이번 타석엔 아마 무리겠지. 하지만 한 타선 한두 번쯤 돌면 무조건 때릴 수 있을걸?”


배트가 돌아가고 공이 미트에 꽂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트라이크, 아웃!”


다시 고개를 돌려 경기장을 바라보자 수영이의 말대로 쓸쓸히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한태범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위로를 해주기 위해 돌아온 한태범에게 말했다.


“얘가 넌 무조건 아웃 당할 거라고 했었는데.”


“뭐? 수영아, 잠시 와볼래?”


넌 너무 잘난 척을 했지. 나는 헤드락에 걸린 채 끌려다니는 김수영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1회 말은 다들 생소한 공에 당황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돌아왔다. 다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그렇게 걱정되는 눈빛들은 아니었다.


“다음엔 때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태범이의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마운드 위로 올라갔다.




***




경기는 5회까지 생각보다 지지부진했다. 주로 타격적인 부분에서. 우리 타자들은 오버핸드스로의 생소함에 당했고, 상대 타자들은... 뭐. 내 말로 하기는 좀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다.


퍼억!


나는 차분히 공을 집어 들고 정확하게 포수 김수영의 미트 속으로 공을 꽂아 놓았다.


“스트라이크!”


뒤늦게 울려 퍼지는 스트라이크 콜에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5회 초. 1아웃 상황. 그러나 눈먼 타구에 당해 아쉽게도 1루에 주자가 나가 있는 상황이었다.


야구에서 얻어맞는 일은 흔한 일. 전에 수영이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별다른 신경을 크게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흐음. 거구의 타자라. 흉흉한 기색이 느껴지는 근육질의 팔뚝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숨이 턱 막히는 것이 느껴졌다. 문득 프로틴 향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느껴지는 듯했다.


“한 대만 얻어맞아도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인걸?”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안 던질 수도 없는 노릇. 나는 다리를 높게 들어 올리고, 그대로 체중을 한껏 실어 투구했다.


탁탁탁!


엇, 주자가 뛰는데? 하지만 공은 이미 내 손을 떠난 상태였다.


높은 몸쪽 코스로 정확하게 날아가는 공. 그대로 미트에 꽂힌다고 생각을 했으나, 묵직한 배트의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웅-


타악!


엇, 맞아버렸다! 공의 방향이- 하고 생각하는 순간 공은 내 정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굉장히 빠르고 묵직한 공. 마치 기차가 내 정면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맞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나도 모르게 나는 자세를 낮추며 눈을 질끈 감았다.


터업!


어? 이게 뭐지? 나는 손이 얼얼해지는 것을 느끼며 글러브를 들어 올렸다. 글러브 안에는 공이 들어있었다.


“어우씨, 큰일 날 뻔했네.”


손으로 들어와서 다행이다. 만에 하나 다른 부위에 맞았으면 그날부로 나는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주자가 뛰고 있었지?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1루를 향해 송구했다.


“한태범!”


“오케이!”


주자가 화들짝 놀라 방향을 바꾸어 1루로 귀루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완벽한 병살 플레이. 사실 완벽이 아니라 우연이긴 했지만, 기분 좋게 이닝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




6회 말. 타선이 이제 꽤 돌은 상태였다.


이제 공은 생소하지 않았다. 뭐든 한두 번 보면 익숙해지는 것이 인간이니까.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탁!


타악!


따악!


타아아아악!


주저앉는 투수와 환하게 웃으며 홈 베이스를 밟는 타자. 타자. 타자. 타자.


왜 네 번 타자를 썼느냐고 한다면, 그것이 만루홈런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두 번 남았다!”


그렇게 말하며 한태범은 손으로 브이를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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