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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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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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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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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DUMMY

“기경중 야구부, 파이팅!”


우리는 모두 모여 승리를 자축했다. 본선 진출의 기쁨은 오래 묵었던 만큼이나 큰 것이었다. 무려 3년 만에, 학교 전체 역사를 따지자면 10년 만의 역사라고 하더라.


“우리가 정말로 본선에 진출할 줄이야!”


강현식이 들뜬 듯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모두가 축제 분위기였다.


“정말 좋은 공이었어. 방성우.”


경기가 끝나고 상당히 눈시울이 붉어 보였지만 한가도는 경기장에서 서성거리던 내게 가볍게 인사하며 말을 걸었다.


“...너도 잘 던지더라.”


이건 진심이었다. 무려 9이닝을 그 위기를 이겨내고 혼자서 맡았다. 게다가 위기 순간에 더더욱 성장하는 모습. 마치 어디 만화의 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네가 훨씬 잘 던졌어. 애초에 위기를 자초해버린 건 나였으니까.”


굉장히 씁쓸한 표정. 하지만 어딘가 후련해 보이는 느낌도 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말해버리면 나는 할 말이 없는데...


나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지만 한가도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너희 형이 와서 던지는 줄 알았어. 그런 공을 던지면 우리 팀 타자한테 뭐라 할 수도 없지.”


응? 우리 형?


“내 형을 알아?”


“왜 모르겠어? 기사에도 꽤 자주 나오는 이름인데. 감독님한테 여기에 그 동생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니까? 그래서 어떻게 던지나 궁금했는데 진짜 소문대로 잘 던지더라.”


형은 이제 고교 야구계의 거의 셀럽 취급을 받는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지나가다가 형과 관련된 뉴스를 얼핏 본 적이 있던 것 같다. 완전 유명인사구먼.


그런데 나는 뒤이어서 나온 소문대로라는 말이 궁금했다. 애초에 공식전에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나를 알만한 것이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소문대로? 내 소문이 있어?”


“그럼! 약간 다들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하는 그런 거긴 한데... 그 너희가 승매 중학교랑 붙어서 이긴 경기 있잖아.”


그 경기? 그건 진짜 연습경기에 불과한 작은 경기였을 텐데. 그게 그렇게 퍼질 일인가?


“처음 보는 기경중의 무명 투수가 위기 상황 때 딱 등판해서 끝날 때까지 무실점으로 틀어막아서 이겼다는 내용이었지.”


한가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승매 중학교가 워낙 강팀이다 보니까 다들 관심이 많단 말이야. 그런데 그런 팀을 기경중이 이긴 데다가 심지어 무실점으로 막았다니까 야구부 얘들이 다 놀랐었어. 뭐 죄다 2군을 투입했다거나 대충대충 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그건 좀 너무하네...”


정말 간신히 이겼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한가도가 나의 눈을 그대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보니까 역시 승매중학교도 제대로 했었을 것 같네. 네 공을 보니 딱 알 것 같아.”


그것참 오글거리는 말이다. 나는 쑥스러운 나머지 마주 보는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운이 좋았지. 그때는.”


“그래? 그러면 다음 경기가 어떻게 되는지 한 번 지켜볼게.”


상당히 뜬금없는 얘기였다.


“왜?”


“연습경기에 예선 1차, 그리고 2차까지. 3번이나 좋았으면 설마 4번까지 운이 좋을까. 만약 그게 운이라고 한다면 말이야.”


뭘 말하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다음에도 잘 던진다면 결국 그건 운이 아니라 온전한 나의 실력이라는 것이겠지.


“뭐, 땡큐.”


나는 그렇게 말하고 뒤를 돌아 숙소로 향하는 버스로 향했다.




***




본선 경기는 3일 뒤에 시작이었다. 상대는 꽤 명문중이라 평가받는 고명중. 대진표를 자세히 보니 승매중의 이름도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음... 다시 만날 가능성이 적어서 다행이군. 솔직히 다시 경기를 한다고 치면 이길 자신이 별로 없는 팀이다.


고명중은 어려운 상대였다. 그래서 이 남은 3일간 지옥훈련에 들어갈 예정이었겠지만...


“뭔 놈의 운동장이 비어 있는 데가 없다냐.”


김수영이 숙소 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 투덜거렸다.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그러게.”


또다시 생겨버린 자유시간. 몸을 쉬어두는 것도 중요한 훈련이라고 하더라. 솔직히 운동장을 제대로 잡지 못한 학교 측의 잘못이 아닐까 싶겠지만, 어쩌겠는가.


“어, 고양이네.”


어느새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삼색으로 얼룩진 녀석이었다.


“야옹!”


고양이가 폴짝 뛰어올라 수영이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원래 자기 잠자리인 양 그대로 드러누웠다.


“사람을 생각보다 잘 따르는데?”


“그러니까 이런 곳에 붙어서 사는 거겠지.”


그나저나 나한테는 안 오네. 섭섭했다.


“심심하네...”


자유시간이지만 딱히 할 것이 없었다. 평소엔 뭘 했더라.


생각해보니 요즘 들어서는 거의 매일 훈련만 하면서 산 것 같다. 주중 훈련에 주간 훈련까지. 휴일에는 형이랑 같이 운동까지 했고.


확실히 쉬는 것도 중요한 훈련일지도 모르겠다. 계속해서 뛰기만 하면 어느 순간 지쳐버릴지도 모른다.


애초에 지금까지는 그렇게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중3 후반기에 들어서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 것뿐이니까.


항상 그렇게 살아왔었는데.


“...나 잠깐만 뛰고 올게.”


“응? 그래라...”


수영이는 무릎 위에 잠들어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대충 손을 휘저었다. 평소 같았으면 따라왔을 녀석이 고양이한테 정신이 팔린 모양이었다.


나는 혼자서 숙소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마 저녁 시간이 되기 전까지만 돌아가면 될 것이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마침 산책 코스로 좋아 보이는 곳을 본 적이 있었다. 이 근처였으니 찾기 쉬울 것이다.


얼마 걷지 않아서 나는 그곳에 도착했다. 잘 관리된 길에는 초록색 고무가 깔려있고 바로 옆에는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뛰기 딱 좋은 곳이었다.


다리를 조금 풀어주고, 스트레칭을 한 다음 나는 우선 가볍게 뛰어갔다. 지면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바람은 더웠고, 태양은 뜨거웠다. 몸 자체는 피곤하지 않은데 땀이 줄줄 흘러나왔다. 땀 때문에 몸에 옷이 달라붙는 느낌이 났다.


“너무 더운데. 괜히 나왔나.”


조금 뛰어보려고 했건만 더위가 선을 넘었다. 3시간 정도 뛰었을 때쯤. 나는 살기 위해 나무 그늘에 설치된 벤치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이게 사람 날씨냐...”


물을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나온 터라 핸드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


내가 가만히 중얼거리고 있을 때. 순간 목덜미에 차가운 무언가 닿았다.


“자, 마셔.”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날 일이 없을 텐데? 타지에 와 있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뭘 그렇게 놀라냐.”


놀랍게도 형이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으며 내게 물을 건네주었다.


“뭐야, 왜 여기 있어.”


나는 물을 받아들고 놀란 표정으로 형을 바라보았다. 형이 대회 때문에 근처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뭐긴 뭐야. 나도 시간 좀 남는 김에 뛰려고 나왔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아마 가뿐하게 본선 진출에 성공한 모양이다. 탈락했으면 애초에 여기 있을 리도 없겠지만.


그래도 야구라는 것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스포츠였기에 속으로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동안은 지쳐서 말도 잘 안 나왔다. 나무 그늘에 있어도 더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물이 있어서 다행이지. 안 그러면 진짜로 이 더위에 쓰러질 뻔했다.


“그러고 보니 너희 야구부도 본선 진출 성공했다며?”


형은 자연스럽게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옷을 보니 형도 상당히 많은 시간을 뛰고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 뭐. 요즘 이상하리만치 기세가 좋아.”


예선 두 번의 경기 모두 꽤 큰 점수 차로, 심지어 첫 번째 경기는 아예 이른 콜드 게임까지 만들어내었다. 전에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는데. 감개무량할 정도이다.


“우리 팀이 정말로 잘해졌어... 어쩌면 우리 팀이 잘해서 내가 잘 던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분명히 잘하고 있는 걸 텐데.”


이런. 이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형과 함께 대화를 나눌 때는 뭔가 이상한 말이 자꾸 튀어나온다.


“성우야.”


역시 대회 기간에 이런 투정 부리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컨디션 관리가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뭔가 한 소리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형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뜻밖의 것이었다.


“너네 야구부가 이번이 처음 본선 진출한 거라고 했지?”


“...맞아.”


“그리고 비교적 약한 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승매중을 꺾고, 예선전들은 압도적인 스코어 차이. 이게 불과 몇 달 사이 일어난 일이지?”


“...한 달 조금 넘었지.”


“그리고 그 한 달 전에 네가 공을 던지기 시작했지.”


형은 잠시 물을 마셨다.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넌 말이야, 너무 걱정을 많이 해. 솔직히 난 자만할 거라고 생각해서 말 안 했는데 말해줘야겠다. 그거 네가 한 거야.”


“아니, 그렇게까진...”


“뭘 아니야. 그때부터 팀 성적이 확 달라진 건 사실이잖냐.”


이렇게 말하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분명 그때를 기점으로 팀이 활기를 찾기 시작한 것은 맞으니까.


“물론 투수로서 쌓아온 게 별로 없으니 그 기분은 이해하지. 하지만, 투수로서 살아가려면 프라이드, 자신감으로 너를 무장해야 해. 지금 네가 무장할 수 있는 건 네가 며칠 사이에 겪은 이 경기들이지.”


프라이드와 자신감이라.


“잘한 것들은 온전히 받아들여. 그리고 그걸 토대로 다른 것들을 또 이루어내고, 또 받아들이고... 이렇게 너를 쌓아 가야 해. 알았지?”


말이 끝나자 형은 다시 아무렇지 않게 물을 다시 한 모금 마셨다.


나를 쌓아 가는 방식. 나는 잠시 머리에서 떠올려지는 생각들을 정리했다. 어쩐지 왠지 모르게 들었던 불안감 같은 것들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자기도 대회로 힘들 텐데 이렇게 생각해준 것이 고마웠다.


하지만 말로 직접 말하기도 뭣했기에 대신 하나의 도움을 주기로 했다.


“형은 마운드 위에서 뭘 생각하면서 던져?”


약간의 함정질문이었다. 전에 신지혜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지. 늘 경기할 때마다 형은 자기를 잘 찾아냈다고.


그렇다면 뭘 생각하는지는 뻔했다.


“응? 그, 뭐냐....”


예상했던 대로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혹시 신지혜라던가...”


“뭐야, 어떻게... 아니.”


말을 하다가 입을 탁 치며 끊는 모습. 참 만화 같은 야구선수가 만화처럼 반응하니 뭔가 어울렸다.


“흠. 뭐, 그건 됐고. 신지혜 걔가 요전에 말이야...”


내가 말을 시작하자 형은 금세 조용히 내 말에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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