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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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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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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경기(4)

DUMMY

1회 초는 기경중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우리의 1번 타자는 어쩐지 결의에 가득 찬 표정으로 상대 투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름이 그러니까...


“누구더라.”


“좀 너무한다. 한태범이잖아...”


옆에서 뭔가를 중얼거리며 종이를 노려보고 있는 김수영이 내게 알려주었다. 아, 맞다. 저번에 홍백전에서 나한테 삼구삼진을 당한 그 친구.


아무튼, 잘 쳐주길 바란다. 우리 선발 투수를 좀 잘 도와줘야 나한테까지 안 올 수 있다.


경기 시작 후, 상대 선발 투수가 마운드 위에 올라서서 발로 지긋이 땅을 고르고 있었다. 이름은 모상준으로 저번 대회에서 MVP를 받은 투수이다.


우리 감독님께서는 이 사실을 알려주면서도 절대 쫄지말라고 했지만, 과연 얘들에게 그게 될지는 모르겠다. 옆을 보니 새롭게 탄생한 외야 트리오도 몸을 벌벌 떨며 긴장을 하는 기색이었다.


차례로 백상호, 강현식, 그리고 좌익수인 한승호가 자기네들끼리 한마디씩 나누었다.


“어우, 긴장되네.”


“내가 칠 수 있을까?”


“현식아, 걱정하지 마라. 우리한테 아무도 기대 안 한다...”


아니, 근데 저놈들은 하위 타선이라 아직 멀었는데 벌써 긴장을 하냐. 걱정된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다시 모상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잠시 몸풀기로 공을 던지는 모습을 봤었는데 과연 엄청난 녀석이었던 기억이 났다.



‘네가 모상준이야?’


경기가 시작하기 이전, 나는 수영이의 부탁으로 녀석에게 한 번 말을 걸어보았다. 어떤 녀석인지 알아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참고로 수영이는 어딘가에 숨어서 이곳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녀석이 나를 위아래로 힐끗 훑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뭐야 넌. 기경중 에이스야?’


‘아닌데.’


‘난 에이스가 아닌 사람이랑은 말 안 해.’


그냥 미친놈이었던 것 같다. 나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어 그냥 조용히 다시 돌아왔었다.



“어떤 녀석인지는 대충 알 수 있었으니 어느 정도 수확은 있는 셈이네. 자존심이 엄청 세다는 거. 그나저나 특이하다는 말은 들었었는데 저 정도일 줄 몰랐다.”


수영이가 모상준의 얼굴을 보자 다시 그 장면이 떠올랐는지 웃음을 참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일단 다시 돌아와서 저놈은 빠른 공이 특기인 친구지. 아직 중3인데 평균 구속이 130 정도, 최고 130 후반까지 나오는 어마어마한 속도. 물론 우리 레벨에선 말이야.”


“성격은 이상한데 공은 잘 던지네.”


천재들은 비뚤어진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보다.


팡!


드디어 경기가 시작하고 첫구. 과연 수영이의 말대로 빠른 공이 세차게 날아가 포수의 미트에 꽂혔다. 판정은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콜이 경기장을 크게 울렸다.


“호오. 저게 130정도 나온다는 말이지?”


“그렇지. 그나저나 우리 상대니까 좀 설렁설렁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빡세게 던지는데?”


맞아. 전년도 우승팀이면 우리 팀을 상대로는 좀 느리게 던져주고 하는 서비스 정도는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상대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우리 팀이 있는 자리와 상당히 가까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무리 상대가 약팀이라지만! 우리는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나한테 죽어!”


““네, 감독님!””

소리통이 대단히 크신 분인 모양이었다. 아주 운동장 저 끝까지 목소리가 들릴 판.


“일부로 우리한테까지 들리라고 저렇게 하는 거겠지. 이번에 기 좀 살려서 이번 대회에 영향을 끼치려고 하는 거 같은데?”


수영이가 그 찰나에 상대 감독의 생각을 읽어내며 중얼거렸다. 대회 직전의 큰 승리는 언제나 좋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기세를 대회 끝까지 이어가면 꽤 큰 나비효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 다시 한번 말한다. 우리들-”


타악!


상대 감독이 다시 선수들을 독려하려고 하는 순간 울려 퍼진 타격 소리. 움찔하면서 상대 감독이 뒤를 돌아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말이 끊겼다.


“1루, 아웃!”


정말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1루에 도착했지만 아쉽게도 아웃을 당한 한태범. 어쩔 수 없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수영이는 의외로 이것을 높게 본 모양이었다.


“태범이가 원래 빠른 볼에 그렇게 강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엔 용케 맞췄네. 평소 같았으면 세 번 붕붕붕하고 나갔을걸?”


잠시 뒤 굉장히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돌아온 한태범의 모습이 보였다.


“아, 보였는데. 다음번엔 홈런 칠 듯.”


“컨택은 잘 됐는데 이번엔 배트가 좀 빨랐다.”


코치가 태범이를 맞이하며 피드백을 했다. 그러자 한태범이 나를 묘하게 바라보더니 한마디를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저것보다 빠른 공을 봐서 그런지 착각했네...”


정말 영문모를 소리였다.


한태범은 공을 건드리기라도 했지만, 나머지 둘은 공에 손도 건드리지 못하고 그대로 아웃. 삼자범퇴로 이닝이 마무리되고 그대로 우리의 수비가 되었다.


“야, 혹시 모르니까 일단 1회부터 나가서 몸 좀 풀고 있어. 너무 힘 빼지는 말고.”


감독님은 나를 일찌감치 불펜에 내보내게 했다. 나는 불펜에서 가볍게 공을 던지며 경기 상황을 불안하게 지켜보았다.


“야, 우리 괜찮은 거냐? 아까보니까 막 장난 아니던데.”


내가 불안한 마음에 내 공을 받아주던 아이에게 물었다.


“그러게. 이러다 너 1회부터 나가야 할지도?”


“어우, 그런 소리 하지 마.”


무섭잖아...


하지만 의외로 경기는 기묘하게 흘러갔다.


1번 타자. 낮은 공을 잘못 건드려서 1루수 정면. 2번타자. 이번엔 타구가 빗맞아서 포수 플라이.


그리고 3번 타자. 덩치가 큰 녀석이었는데 진짜로 죽일 듯한 기색으로 공을 때려내서 처음엔 넘어가는 줄 알았다.


타앙!


“어, 어?”


하고 얼빠진 소리를 내던 우리 우익수 강현식의 글러브로 공이 쏙 들어가며 그대로 플라이 아웃이 될 때까지는 말이다.


아마 우리 포수의 리드가 좋았을 것이다. 우리 선발 투수인 김경식도 공은 좀 느리지만 제구에 강한 투수였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우리의 성적이 여태 나오지 않은 이유는 수비에 구멍이 너무 나서였다. 아무리 좋은 코스로 공을 보내도 송구 미스, 포구 미스 등등 다양하게 에러를 뽑아내던 우리 팀이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수비가 생각보다 집중력이 좋았다.


우연인가 싶었지만 그대로 무실점으로 경기는 4회를 넘기고 있었고, 오늘 기록한 에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좋아, 드디어 수비 훈련만 시키던 보람이 있었구나! 물론 타격이 그만큼 죽었지만!”


감독이 주먹을 불끈 쥐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우리 타격 훈련 시간이 점점 줄어들더라. 왜 그러나 했더니 드디어 그 이유를 깨달은 듯싶었다.


“야, 오늘 뭔가 느낌이 좋은데?”


“그러게? 실점이 없어! 물론 우리는 아직 안타가 없지만!”


안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상대이기 때문에 4회가 끝날 때까지 무실점을 기록한 것에 우리 팀의 분위기가 꽤 좋아졌다.


나는 불펜에 나가 계속 공을 던졌다. 슬슬 뭔가 느낌이 오는가 싶어 이번에 빠르게 공을 던져보았다.


쿵!


그러자 늘 그렇듯 내 공은 자연스럽게 빠져나가 한참을 빗나갔다.


“아니, 씨. 나한테 빠른 공 던지지 말라고 했잖아?”


“이상하네, 오늘은 좀 될 줄 알았는데.”


담벼락에 공을 던지는 연습을 한 이후로는 이제 좀 잘 던질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착각이었나보다.


“야, 쟤네 불펜 봐라. 오늘 쟤만 끌어내면 그 이닝에 바로 끝나겠는데?”


“슬슬 끝낼 때가 됐지?”


승매중 야구부 녀석들의 비웃음 소리가 슬며시 들려왔다. 난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수비를 마치고 돌아오는 우리 팀을 향해 응원할 뿐이었다.


“그 유명한 승매중학교 타선을 무려 5회까지 무실점으로 잠재운 우리 기경중 잘한다! 이닝이 금방금방 끝나네! 파이팅!”


그야 사실이니 녀석들은 똥 씹은 표정이 될 수밖에.


때로는 이름값이라는 것이 대단히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아무리 99패를 해도 1등을 상대로 ‘너 개 못하잖아?’를 당하면 누구나 부들거릴 것이 틀림없다.




***




이제 거의 경기의 후반부로 다가가는 6회. 그리고 기경중의 1번 타자가 배트를 붕붕 돌리며 타석에 들어선 상태였다.


늘 그렇듯 타선에 대한 기대는 없는 상황. 승매중은 물론 기경중까지도 별 기대가 없을 정도로 평온한 기운이 흐르던 경기장이었다.


투수 모상준은 하품까지 늘어지게 하면서 모자의 챙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특유의 빠른 공을 또다시 던진 참이었다.


여태까지 무안타로 경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만이었을까. 모상준도 던지자마자 아차 싶을 정도로 가운데에 몰린 공. 하지만 자신의 빠른 공은 누구라도 제대로 맞춘 적이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약소 팀.


‘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것은 아마 기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근본 없는 기도는 늘 배반을 동반한다.


타아아앙!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뜬금포라고.


“어?”


1번 타자 한태범은 배트에 공을 맞히는 순간 아웃 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지만, 타구는 바람을 타고 그대로 담장을 넘겼다.




***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놀랍게도 한태범이 초구를 건드리던가 싶더니 엄청난 소리를 내며 그대로 홈런을 때려버렸다.


무안타로 침묵하다가 느닷없이 홈런이 터지자 그야말로 우리 팀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축제가 되었다.


“야, 봐라! 내가 다음엔 친다고 했지!”


“씨, 어캐 때렸어!”


“대단하다! 거포 한태범!”


아이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시장통처럼 떠들어댔고, 축제를 즐기는 사이 그대로 주자 3명이 연달아 아웃.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제부터 모두 막아내면 작년도 우승팀이자 전국구에서 노는 강호를 우리 팀이 이겨내는 것이었다.


“이거, 잘만 하면!”


계속 침착하던 코치도 주먹을 불끈 쥐며 이렇게 소리쳤다.


“저기, 조금 침착하는 게...”


나는 뭔가 불안한 마음에 그렇게 중얼거려보았다.


내 경험상 위기는 이렇게 찾아온다. 뭔가 기뻐하고 있을 때. 신기하게도 야구에서는 득점하고 난 다음 이닝에 큰 위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쓰읍, 갑자기 1아웃에 만루라...”


감독이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게도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 났다. 왠지 모르게 그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투수 교체!”


아이씨,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나는 별수 없이 터덜터덜 마운드 위로 걸어갔다. 가면서 우리의 선발 투수는 이런 말을 했다.


“꼭 막아주세요...!”


야, 부담 좀 주지 마라...





마운드 위에 올라가자 경기장의 중심은 이제 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랑은 또 다르군.”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연습경기이지만 살벌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명문 팀으로써 약소 팀에게 지기라도 하면 모양새가 좀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악으로 깡으로 노려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잠시 긴장을 풀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잔디와 흙이 깔린 경기장. 1루, 2루, 3루, 홈 베이스. 그리고 저 뒤에 있는 관중석.


아무래도 승매중학교 근처다 보니 학생들이 구경하러 왔는지 사람이 은근히 있었다. 그렇게 차분히 보다가 나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마주쳤을 것이다.


“진짜 왔네.”


나는 다시 모자를 고쳐 쓰는 척 고개를 돌리고 앞을 향해 바라보았다.


수영이의 약간 불안한 눈빛. 오늘따라 미트가 또다시 크게 보이는 기분이다. 나는 요즘 따라 던질 일이 많았던 공을 차분히 부여잡았다.


온몸으로, 손끝으로. 공은 나만의 힘으로, 세차게 던져진다.


경쾌하게 쏘아진 공은 그렇게.


파아앙!


“스트라이크!”


타자가 그대로 굳어있는 가운데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이 경기장 안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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