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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최근연재일 :
2021.08.25 00:21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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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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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대회 전의 일(5)

DUMMY

형의 끝내기 홈런으로 경기는 1:0으로 그대로 마무리되었다.



투수 방우성의 성적. 9회 100구 무실점. 16탈삼진.


타자 방우성의 성적. 4타수 4안타 1홈런. 사이클링 히트.



코치님이 경기를 보면서 가볍게 메모한 종이에 쓰인 것이었다. 이게 맞는 것인가. 경기를 직접 보고, 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도 믿기지 않은 성적이었다.


“이런 야구를 매일 한다고...?”


정말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매일 그러지는 못하겠지.


형이 타자로서의 실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모조리 때려낸다는 것은 정말 정상급의 타자라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은 정말로 컨디션이 좋았던 모양이야. 타격에서 말이야. 투수 성적은 뭐, 늘 그렇지만. 게다가 상대 팀도 그렇게 강한 팀이 아니었고.”


신지혜는 형이 경기를 마무리하고 인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대단한 일은 맞지. 약팀을 상대라고 하더라도 사이클링 히트는 어지간한 실력으로 때려내기란 힘든 일이거든.”


“역시 그렇죠?”


코치님의 말에 신지혜는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듣는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예전부터 형을 봐왔으니 잘하는 모습에는 이제 좀 무감각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도 있으니. 당연히 형이 더 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설마 투수인 저한테 저런 타격도 바라는 것은 아니겠죠?”


“저건 못하지. 애초에 타자였을 때 네 타격 성적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는데.”


“그렇긴 하네요...”


할 말이 없군. 말을 괜히 꺼냈나 싶었다. 본전도 못 건졌네.


“그리고 또...”


“앗, 저기 형이 저희한테 손을 흔들고 있네요!”


무자비한 팩트폭격이 더 이어지기 전에 나는 서둘러 손을 흔드는 형을 가리키며 화제를 돌렸다.


“용케도 잘 발견한단 말이야.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신지혜는 마주 손을 흔들어주며 말했다. 흐음. 왜일까. 난 알 것 같은데.


“고교 야구 관중석에 여학생 혼자 보고 있으면 너 말고 또 있겠냐.”


나의 대답이 나름 타당하다고 생각했는지 신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거 말고도 다른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말할 수 있는 종류의 내용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경기장 밖으로 나서자 문득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태양의 열기에 달아오른 뜨거운 바람.


이 날씨에 운동장 한가운데서 훈련을 해야한다라...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넌 이제 훈련하러 가야 한다고 했지?”


신지혜가 허탈하게 웃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지... 이 날씨에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공을 던지고...”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힘들겠네.”


“엄청 힘들겠지...”


그렇게 내가 푸념을 늘어놓는 사이, 어느새 오늘 경기를 모두 마무리 지은 형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응? 뭐야. 여길 왜 왔어.”


그대로 숙소로 돌아간 것이 아니었나?


“아... 너였구나. 그리고 이분은... 아, 코치님. 안녕하세요.”


아무래도 신지혜만 알아보고 관중석에 있던 우리는 못 알아봤던 모양이다. 그래서 시합이 끝나자마자 걱정이 돼서 달려온 건가.


“그런데 어쩌다가 지혜랑 같이 이렇게 셋이서 오게 된 거야?”


“아, 내가 이제 투수 경력은 좀 짧다 보니까 직접 경기를 관찰하고 느끼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더라고. 그리고 마침 가는 길에 마주쳐서 그냥 같이 온 거지. 코치님 차로.”


왠지 살기가 느껴지는 형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쫄아서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화기애애한 우리 형제의 대화를 듣던 신지혜가 눈을 반짝이며 끼어들었다.


“우성 오빠. 오늘 엄청 컨디션 좋아 보이더라. 게다가 사이클링 히트까지 치고.”


“응? 아, 그랬지. 이상하게 오늘 잘 쳐지더라고.”


저... 저 몰랐다는 반응! 참 열 받는 부분이다.


그냥 생각 없이 치다 보니 어쩌다가 사이클링 히트까지 달성하게 되었다. 이게 말이 되겠냐고.


당연히 마지막 홈런 치기 전에는 분명 자기도 전전긍긍하며 긴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기록 앞에서 의식하지 않는 선수는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니.


“특히 마지막에는 뭔가 빨리 경기를 끝내야겠다는 마음 밖에는 들지가 않아서.”


설마 나를 두고 말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그냥 연장까지 가면 피곤하니까 그런 것일 것이다. 저 형 주머니에 불룩 들어있는 야구공은 별로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역시, 오늘 경기를 보러 온 보람이 있네!”


그렇게 말하는 신지혜의 표정은 무척 밝아 보였다.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주 잠시 들른 것이라고 말하며 형은 그대로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엄청나게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니 아마 정말로 잠깐 나와서 우릴 찾은 모양이었다. 설마 무단으로 뛰쳐나온 것은 아니겠지?


음. 뭐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너는 다시 돌아가는 거야?”


“그래야지. 애초에 우성 오빠 경기만 보러 온 건데.”


흐음. 그렇구나. 나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안녕. 너도 내일 힘내.”


녀석은 손을 흔들며 그대로 등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까지 코치님이 직접 태워다 줄 수는 없으니 신지혜는 혼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코치님의 차를 타고 바로 연습용 운동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그래서 배운 게 뭐 있긴 하냐?”


“글쎄요.”


나는 대충 여러 가지가 떠오른 것이 있기는 했지만 대답하기 귀찮아서 그냥 얼버무렸다.


투수의 압박감. 팀원이 실수했을 때 그저 괜찮다고 웃어넘기는 모습. 형이 그 경기 하나에서 보여준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나는 돌아가는 내내 생각에 잠겨있었다.




***



“내일이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최대한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다들 열심히 훈련하도록!”


““넵!””


감독님의 연설에 우리는 운동장이 떠나가라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간단한 러닝, 캐치볼 훈련을 진행한 후, 너무 강도 높은 훈련을 시행하면 내일의 경기에 부담이 될 테니 주된 훈련은 포지셔닝 훈련이었다.


오늘도 늘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펑고를 치는 코치님과 감독님.


“1루!”


“3루!”


“외야!”


“유격수!”


조금은 경직되어서 실수가 조금 나올까 싶었지만 놀랍게도 우리 팀은 상당한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흔한 땅볼 코스부터 약간 빗맞아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는 타구까지.


“헤헤.”


특히 한태범이 몸을 던져서 잡아낸 슬라이딩 캐치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완벽하게 잡아내서 그대로 안정적인 송구.


이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문득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수비 부분에서는 형이 있는 팀인 하명 고등학교보다 좋지 않을까.


“적어도 간단한 뜬공을 놓칠 일은 없겠네.”


그리고 이런 간단하고 쉬운 일에도 확신이 생긴다면 이만큼 든든한 것이 또 없다. 확실한 상황에서도 매 순간 불안감을 가진다면 경기 내내 피로감이 엄청날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내 역할이 중요해지는 순간이겠군. 나만 잘 던져준다면 이번 경기도 마치 저번에 그 승매중학교와의 그 경기처럼 승리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좋아. 나도 여기서 투수로서의 안정감을 보여줄 시간이군!


“자, 나 던진다!”


나는 크게 외치며 수영이에게 사인을 주고 와인드업 자세에 들어갔다.


한 발짝 뒤로. 포수의 미트 위치를 정확히 확인한 다음. 손을 들어 글러브에 넣는다.


그리고 온몸의 힘을 실을 수 있도록 다리를 들어 올리고, 최대한으로 길게 뻗는다.


공은 마지막까지 체중을 실을 수 있도록.


던진다!


퍼억!


내 손을 떠난 공은 내가 봐도 놀라운 속도로 날아가 수영이의 미트에 아주 깊숙이 꽂혔다.


“야! 미트로 던지라고! 내 머리 맞출 거야?!”


...약간 빗나갔지만.


“이런 건 전개상 좀 넘어가 주라!”


“뭘 넘어가야! 다시 제대로 던져!”


좀 넘어가 주면 덧나나. 던졌으면 됐지.


그래도 다시 몇 번 던져보자 꽤 궤도를 찾은 모양이었다. 던진 공들은 좋은 궤적을 그리며 수영이의 미트로 그대로 꽂혔다.


음. 나쁘지 않다. 힘은 좀 빼고 던졌지만, 연습 중에 이 정도로 제구가 되는 것은 컨디션이 좋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나이스 볼!”


수영이도 몇 차례 좋은 공들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자 나에게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한 몇십구쯤 던지자 이제 휴식 명령이 떨어졌다. 내일의 선발투수는 바로 나였기에, 체력 보충도 나의 중요한 역할이다.


“나도 이제 좀 쉬어 볼-”


“아, 수영이 형! 한가해 보이네. 내 공도 좀 받아 줘야지!”


“허허...”


하고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내는 수영이. 하는 수 없이, 나는 경식이에게 말했다.


“쟤 좀 피곤해 보이는데 약간만 쉬게 하는 거 어때? 한 10분 정도.”


“아뇨, 형. 내일이 바로 대회 시작인데 어떻게 쉴 수가 있어요! 게다가 아무리 형이 잘 던져도 받쳐주는 다른 투수의 존재는 필수적이에요. 규정 투구 수를 넘겨버리면 다음 경기에는 공을 던지지 못하는 규칙이 있어서-”


규정 투구 수 규칙이라. 생각해보니 형도 이것 때문에 대회에서 어처구니없이 패배했었다. 나 말고도 던질 사람은 무조건 필요한 것이었다.


“역시 포수는 굴려야 제맛이지. 자, 빨리 수영이 데려가라. 식는다.”


“넵!”


“흐어어...”


그렇게 김수영은 또다시 공을 받으러 저 멀리 떠나갔다. 불쌍하지만, 어쩌겠냐. 투수가 던지면 받아야지. 저렇게 후배 투수가 열정이 넘치는데 무려 10분이나 낭비하게 할 수도 없잖냐.


나는 그대로 체력과 컨디션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훈련을 끝마쳤다. 훈련이 모두 끝나고, 우리 기경중 야구부는 모두 모였다.


“자, 상대는 어제도 들었다시피 세울 중학교다. 딱히 자료가 없는 팀이긴 하지만, 몇몇 키가 되는 선수들이 있다.”


감독은 바로 뒤에 있는 보드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우선 1루수 조창식. 발이 빠른 타자로 주자로 나가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하지. 하지만 타격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번트 작전에 주의하도록. 전진 수비도 좋은-”


흠. 조창식. 기억해두었다.


그리고 감독님은 몇몇 선수들을 간략히 설명하다 강조하듯 말하는 부분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유격수이자 팀의 4번 타자인 김한솔을 주의해야 한다. 은근히 홈런을 잘 때리는 선수야. 이 친구를 잘 공략해야 한다.”


흠. 김한솔이라.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본 것 같은데...


앗, 혹시!


“그 신지혜 좋아하던 그 녀석 이름이 그거였지?”


수영이도 마침 깨달았는지 내게 물었다.


“맞아.”


호오. 여기서 걔를 만날 줄이야. 신기한 인연이구만.


“좋아, 그럼 이제 다들 해산!”


모든 브리핑이 끝나고 우리는 곧장 숙소로 돌아가 뭔가 이야기할 틈도 없이 잠들었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잠에 들기 전, 나는 조용히 결의를 다짐했다.


내일은 우리들의 첫 번째 발걸음이 될 것이었다.


별이 반짝이는 창문을 잠깐 바라보고, 나는 다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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