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최근연재일 :
2021.08.25 00:21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897
추천수 :
88
글자수 :
118,855

작성
21.08.03 23:59
조회
309
추천
8
글자
11쪽

평범한 동생(4)

DUMMY

눈 깜짝하는 사이에, 나는 어느샌가 마운드 위에 올라서 있었다. 코치님이 나를 불러내고는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 뭐냐. 프로에서도 보면 가끔 우익수가 공을 던지는 경우가 있잖냐. 남은 투수가 없으니 네가 대신 마무리 좀 해줘라.”


“예?”


아니, 단순한 홍백전인데 그냥 경기 끝내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내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코치를 바라보자 그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말이야. 감독 이 새... 아니, 자기는 끝을 봐야겠다는 거야. 이런 상황도 염두에 두고 경기에 임해야 한다면서. 아이, 완전히 틀린 말은 또 아니니까 말하기도 좀 뭐하더라고. 그러니, 부탁한다!”


그리고는 다시 덕아웃으로 돌아가 버렸다. 마운드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수영이와 나. 나는 맨탈이 깨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 이제 2회 남았는데...”


이러다 진짜로 내가 몸소 야구는 시간제한이 없는 스포츠라는 사실을 입증시킬 것 같았다. 콜드 게임은 있겠지?


“그나저나 다른 얘들도 있는데 왜 하필 내가 걸린 거야...”


“내가 추천했어.”


수영이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자기가 저지른 일을 고백했다.


“뭐? 왜?”


내가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생각지도 못했다. 수영이는 아주 진지한 기색으로 말을 이어갔다.


“내가 보기엔 다른 얘들은 리드해주는 데로 던지기는커녕 스트존도 제대로 못 던져. 너도 알 것 같지?”


음... 그렇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왜 나한테?


“그런데 적어도 너는 그게 되거든. 그래서야.”


“받아봤으니 아는 거다, 뭐 그런 거?”


“그렇지.”


예전에 던지기 내기를 한 것부터 나비효과가 일어난 거였나. 내 업보니까 별수가 없다. 나는 그대로 단념하고 글러브를 다시 고쳐매었다. 실제 경기도 아니니까 부담 가질 필요도 없고.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 몇 시지?”


마운드에서 내려가려던 수영이가 문득 내게 물었다. 나는 학교 위쪽 한가운데에 있는 시계를 보고는 대답했다.


“6시 40분.”


“좋아. 이번 이닝 10구 이내로 끝낸다. 네 위기는 네가 해결해야지.”


거참 위로 안 되는 말이네.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내가 해결할 문제. 그 해답은 내가 던지는 공.


나는 손을 휘휘 저어서 수영이를 돌려보냈다. 이제는 집중할 때였다.


어깨를 휙 돌려보고, 다리를 쭉 펴보고, 제자리에서 점프도 한 번 뛰어보았다. 하나하나씩 상태를 체크해보니 이미 어느 정도 몸이 풀려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쁘지 않고. 이제 공을 던져볼 차례였다.


일단 가볍게 동작만 가져가는 느낌으로 연습 삼아 한 구 던져보았다.


온몸의 힘을 빼고, 천천히. 정확하게.


휙-


툭.


데구르르르...


던진 공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굴러서 수영이에게 닿았다. 아, 힘을 너무 많이 뺐네.


“야, 이거 괜찮은 거냐?”


왠지 비웃는 듯한 느낌으로 타석에 들어서 있는 얘가 외쳤다. 덕아웃 자리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우 씨, 괜히 익숙하지 않은 걸 해가지고.


그때 경기를 재개하는 콜이 울리고 드디어 5회 초. 나의 첫 투수 데뷔전이 시작되었다.




***




백팀 4번 타자 1루수 한태범. 그는 명백히 방심하고 있었다. 아니, 깔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저딴 투수한테 못 칠순 없지.’


오늘 한태범은 4번 타자로 올라가기 위해 이번 홍백전에서 제대로 어필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이번 기회가 다음 연습 시합 때의 주전 멤버에 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잔뜩 기합을 넣었음에도 2타수 무안타의 성적에 우울해하고 있었다.


단순한 연습 투구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땅볼로 굴려버린 녀석. 이참에 답답했던 기분을 여기서 다 풀어야겠다! 그런데 칠 수 있는 공이 오기는 올까? 라는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공이 오기를 기다리던 찰나.


‘어라? 아까랑은 뭔가...’


그런 온 잡생각들을 하고 있었기에, 한태범은 다음의 공을 절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방성우의 다리와 팔이 치켜세워지고, 온몸의 집중력을 전부 끌어다 쓴 전력투구. 공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갔다.


훅-


파아아앙!


그대로 공이 미트로 빨려 들어갔고, 스트라이크 콜이 한차례 늦게 울려 퍼졌다.


“스트라이크!”


한태범은 몸이 굳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다. 몸이 굳지 않았어도 과연 이 공을 받아낼 수 있었을까? 혹은 그 누구라도 이 공을 받아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이 정도 레벨에선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야, 괜찮겠냐?”


김수영이 한태범에게 히죽 웃으며 작게 말했다. 잠시 어버버하고 있는 한태범에게 또다시 달려들었다.


“너 말이야.”


파앙!


그제야 한태범은 이를 악물고 공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겨우 우익수에게 삼 구 삼진을 당하는 것만은 면해야 한다!


투석기처럼 쏘아진 공이 또다시 포수에게로 향했다. 포수가 주문한 공은 전에 두 차례 모두 한가운데 스트라이크. 되려 깔봐지고 있다고 생각한 한태범은 더더욱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젠장!’


공이 달려들자, 정확한 위치로 배트가 맞이하기 위해 따라갔지만, 그런데도 늦어버린 것이었다. 지금의 방성우는 우익수가 아니라 투수라는 것을 잊었기에. 그렇게 당하고도, 한태범은 그랬다.


훅-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한태범은 그대로 타석에서 걸어나갔다.




***




휴우. 공 던지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너무 힘이 들어간 건가? 그렇게 공을 잡은 손을 잠시 보고 있자니 김수영이 뭔가 할 말이 있는지 마운드 위로 올라왔다.


“야, 집중한 건 좋은데 처음부터 너무 쎄다. 그렇게 던지면 겨우 10구라도 지칠 거야.”


“음, 그러게.”


하지만 왠지 이렇게 전력투구하지 않는다면 얻어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변화구는 아예 던질 줄도 모르고.


“지금 수비 상태도 좋으니 네가 아침에 던졌던 정확한 제구가 될 정도의 수준의 빠르기로만 던져도 괜찮아. 내가 신호 보낼 때만 전력으로 던져.”


“진짜?”


“그래. 지금의 너는 체력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어. 그리고 정확히만 들어온다면 내 리드는 믿을 만 할 거야.”


수영이는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미트를 툭 두들겼다. 어쩐지 투수와 포수라는 관계로 만나니 듬직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는 절대로 이런 친구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참고로 말이야, 지금 네 공 나중에 비디오 돌려서 보면 너도 놀랄걸?”


수영이는 신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떠나갔다. 내 공에 뭔가 신기한 게 있나? 흠. 지금은 생각할 필요 없겠지.


“그래, 뭐. 오케이.”


또다시 나는 마운드 위에 올라갔다.


정확한 제구가 되는 공. 딱 그 정도로만 던지라고 했다. 아침에 던져보았던 공이라. 나는 그 감각을 다시 되새겨보기 위해 잠시 공을 어루만져 보았다.


그리고 다시 눈앞을 바라보니 미트를 앞으로 내밀고 있는 수영이의 모습이 보였다. 상당히 낮은 위치를 요구하고 있었다.


뭐, 수영이가 자기를 믿으라고 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온전히 수영이에게 모든 결과를 맡긴다는 생각으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다리를 최대한 길게, 릴리스 포인트는 최대한 끝까지. 정말로 귀에 딱지가 얹을 정도로 들어온 형의 투구 강의. 그리고 지금 그 강의는 도움이 되는 모양이었다.


“스트라이크!”


다음으로 들어온 타자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휘둘러볼 생각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좋아, 꽤 괜찮은 모양이다. 나는 안심을 하고 계속 투구했다.


다음 공은 바깥으로 살짝 빠져나가는 공.


휙!


그러자 타자의 방망이가 힘없이 돌아갔다.


“스트라이크!”


손에 돌아오는 짜릿함. 좋아. 투아웃까지 마지막 하나.


그리고 마지막 공도 뭔가 말할 것도 없이 맥없이 타자를 돌려보냈다.




***




딱히 팀을 가릴 것도 없이 양 팀의 덕아웃 모두 굉장히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야 아까까지는 그저 우익수로서 경기하고 있던 선수가 갑자기 투수로 들어가서는 엄청난 호투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특히 가장 놀랐던 것은 감독 박상영이었다. 그리고 그 놀람이 지나가자 이내 그는 자책감이 몰려들었다.


‘나는 왜 저런 애를 못 알아봤지?’


감독으로서 충분히 자책할 상황이 맞았다. 선수, 특히 어린 선수들의 육성을 위해서는 개개인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선수는 어려서부터 적합한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그의 철학과도 같은 문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쟤 형이 방우성이었나?’


현재 프로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유망한 투수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형의 동생. 어쩌면 잠재력이 투수 쪽에 있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을까?


이런 온 생각이 마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이야, 저거 제구되는 거 아니야?”


“저게 재능인가?”


또다시 한 명의 주자가 그대로 아웃 돼서 돌아갔다. 그대로 이닝 종료. 이제 마지막 이닝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방성우가 덕아웃으로 돌아오자 동료들이 그대로 돌아온 그에게 질문세례를 퍼부었다.


“야, 너 뭐냐?”


“언제 혼자서 비밀 훈련했어?”


“대체 뭘 한 거냐?”


그러자 방성우는 그저 머리를 긁적이며 애매하게 답변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냥 아침에 공 몇 번 던진 거밖에 없는데.”


사실이긴 했다.


굉장히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감독은 모두를 뚫어내고 방성우의 앞으로 다가갔다. 역시 감독이 등장하자 아까의 시장통 같은 분위기는 조금 누그러진 모습.


“왜, 왜요?”


방성우는 감독의 기색이 뭔가 이상해 보였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렇게 어지러운 상황에서 감독 박상영이 물어보고 싶은 것은 단 하나였다.


“너 이대로 투수할 생각 있냐?”




***




순식간에 우리의 공격이 끝나고 7회 말. 이제 이것만 끝나면 시합 종료였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기합을 넣으며 마운드 위로 올라서기 위해 걸어갔다.


“야, 아까 감독이 뭐라고 했냐?”


올라가는 도중에 수영이가 감독이 무슨 말을 했을까 궁금했는지 물어보았다.


“응? 아. 투수해볼 생각 없냐는데.”


“오우. 빠르네.”


“그러게.”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


“그냥 좀 생각해보겠다고 했지.”


“하긴, 지금 이상황이 너한테는 더 중요할 테니 말이다.”


“그렇지.”


한 번 잘 던졌다고 이렇게 주목을 받는 것도 뭔가 떨떠름하다. 그렇기에 더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닝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약속을 지키러 가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잘 마무리 되겠지?”


“당연하지.”


수영이는 씨익 웃으며 그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번 이닝 단 10구로 막아내며 경기를 빠르게 마무리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카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본선 +1 21.08.25 55 0 11쪽
22 예선(5) 21.08.23 64 1 12쪽
21 예선(4) 21.08.21 88 1 12쪽
20 예선(3) 21.08.20 93 1 11쪽
19 예선(2) +1 21.08.19 114 3 13쪽
18 예선 21.08.18 110 2 12쪽
17 잠시, 대회 전의 일(5) 21.08.17 121 1 12쪽
16 잠시, 대회 전의 일(4) +1 21.08.16 133 2 12쪽
15 잠시, 대회 전의 일(3) +1 21.08.14 151 2 12쪽
14 잠시, 대회 전의 일(2) 21.08.13 150 2 11쪽
13 잠시, 대회 전의 일 21.08.12 160 1 12쪽
12 연습 경기(5) 21.08.11 160 2 13쪽
11 연습 경기(4) 21.08.10 172 1 12쪽
10 연습 경기(3) 21.08.09 196 1 12쪽
9 연습 경기(2) +4 21.08.07 234 2 12쪽
8 연습 경기 21.08.06 266 1 12쪽
7 시작 21.08.05 299 3 12쪽
6 평범한 동생(5) +1 21.08.04 295 4 12쪽
» 평범한 동생(4) +1 21.08.03 310 8 11쪽
4 평범한 동생(3) 21.08.02 342 8 11쪽
3 평범한 동생(2) 21.07.31 403 13 12쪽
2 평범한 동생 21.07.30 453 14 12쪽
1 프롤로그 21.07.30 529 15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