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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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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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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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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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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5)

DUMMY

만루홈런. 모든 주자를 바로 홈으로 불러들이는 강력한 한 방. 4라는 숫자가 0을 대체하여 붉게 빛났다.


그걸 바라보는 투수의 마음은 어떨까? 6회 말까지 어떻게든 무실점으로 막아온 경기인데. 정말 공들여서 만든 탑이었을 텐데.


그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


“볼!”


경기는 급속도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배트를 쥐고 있던 기경중 타자가 단 한 번도 휘두르지 않은 배트를 던져놓고 1루로 나갔다. 그 1루에 있던 주자가 2루로 올라가고, 2루는 3루로, 3루에 있던 주자는 별 감흥 없는 표정으로 홈플레이트를 밟고 지나갔다.


전광판에 적혀있던 4라는 숫자가 순간 반짝이더니 5로 바뀌었다. 이로써 점수는 5대 0.


“만루홈런 맞고 스트레이트 볼넷이 네 개라.”


김수영은 이기고 있으면서도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상대 투수를 바라보았다.


물론 만루홈런을 때렸을 때야 마구 환호하면서 기뻐했지만, 그 이후로 16개의 공이 모두 볼로 빠지는 것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대 감독 미친 새끼 아니냐? 아니, 저 정도면 바꿔줘야지. 벌투라도 던지게 하는 건가?”


나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생각이 있으면 상식적으로 바꿔주는 것이 옳았다. 게임적으로도, 선수 보호의 차원에서도.


눈가를 훔치면서 고개를 떨구다가 이내 다시 부들거리며 힘겹게 팔을 들어 올리는 상대 투수. 너무나도, 안쓰러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저 투수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네. 언더핸드는 분명 희귀한 타입의 선수일 텐데 말이야.”


“...이름이 뭐였더라?”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저 투수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전의 소명중학교의 전력에 대한 브리핑 시간에도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흠... 아마 여기에 이름이 써 있을텐데...”


김수영이 이내 출전 목록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찾았다.”


경기장에서는 아직도 타임이나 투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공을 던지는 한 사람이 있었을 뿐이었다.


계속 흔들리던 몸이 이내 잦아드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다시 냉정함을 되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마침내 다시 와인드업에 들어가고, 공이 지면을 스칠 듯 날아갔다.


파앙!


배트는 휘둘러지지 않았다. 공은 그대로 포수의 손에.


“스트라이크!”


첫 번째 스트라이크가 꽂혔다.


“한가도.”


그의 이름은 한가도였다.




***




어려서부터 나는 뭔갈 던지는 것을 좋아했다. 왜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는 정말 다양한 물건들을 던졌다.


내가 야구의 길로 향하게 된 것은 그리 어색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던지고 던지다가, 이내 야구공을 처음 잡았을 때 나는 그것을 힘껏 집어던졌다.


공이 날아가, 담벼락에 그려진 동그라미 안에 부딪힌 뒤, 데구르르 굴러갔다. 많은 물건을 던져왔으니 원하는 위치에 공을 던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잘 던지는구나.”


굉장히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공을 던지는 나를 바라보며 문득 그렇게 말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온종일 공을 던졌다. 이유 모를 사소한 인정욕구. 단지 그런 마음으로 나는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공을 던지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나에게 넌지시 말했다.


“야구부에 한 번 들어가 보는 게 어떠냐.”


“네.”


나는 별말 없이 아버지의 제안을 수락했다.


야구. 나는 항상 공을 던졌지만, 야구 경기를 해본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의 투구는 그저 던지기에 불과했다.


그래도 뭐가 그렇게 다를까 싶었다. 그저 던지는 것에, 치는 사람이 추가되었을 뿐인데.


아버지 손에 이끌려 나는 초등학교에 있던 야구부로 찾아갔다. 한창 연습 중인지 운동장이 시끌시끌했다.


야구부 감독은 근엄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뭔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눠보더니 이내 아버지는 내게 잘해보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한 번 던져봐라.”


나는 야구부 감독의 지시에 따라 포수의 미트를 향해 공을 던졌다.


팡!


늘 던지던 그대로 야구공은 미트에 꽂혔다.


공을 바라보고 있던 잠시 감독은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나를 데리고는 한창 연습경기 중인 운동장으로 향했다.


거기서도 감독은 뭔가 얘들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내 나를 마운드 위에 세워놓고 이렇게 말했다.


“저 녀석이 내미는 미트, 그러니까 글러브를 향해서만 던져봐라.”


나는 야구를 잘 몰랐지만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자주 야구 경기를 틀어놓곤 했기에 얼떨결에 같이 따라보며 간단한 규칙에 대해서는 알게 되었다.


너무 문외한 취급하는 것이 약간 못마땅했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늘 던져왔던 야구공. 새삼 다르게 느껴질 것도 없었다. 던지는 것에 그저 치는 것이 추가되었을 뿐. 거기다가 잡는 사람까지.


포수는 나를 힐끔 노려보더니 이내 아예 한가운데로 미트를 내밀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한가운데로 던지면 타자가 치기 쉽다는 것을.


나를 무시하는 걸까.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까 감독이 그렇게 던지라고 했으니 어쩌겠는가. 그대로 던질 수밖에.


늘 하던 대로. 공을 던졌다.


공이 빠르게 쇄도하여, 순식간에 포수의 미트를 향했다.


팡!


배트는 굳고, 포수의 미트에서는 공이 흘러나왔다.


모두의 어리둥절한 시선이 내게로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시선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렇게 계속 던지다가, 나는 어느새 야구의 매력에 흠뻑 젖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야구부원이 되었다.


나는 정말로 잘 던졌다. 수많은 삼진을 잡았고, 또래, 아니 형들까지 포함해서 내가 최소 실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야구선수가 되리라 생각했다. 남들보다 내가 잘하니까. 콧대가 너무 높아져 있었다.


중학교에 올라왔다. 한동안은 잘 던졌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나의 성적은 부진하기 시작했다. 나는 늘 똑같았는데.


하지만 늘 똑같았던 것이 문제였다. 키가 많이 자라지 않았다. 남들은 쭉쭉 커서 어느새 나보다 빠르고 좋은 공을 던지고 있었다.


날로 커지는 주변과는 다르게 나는 그대로였고, 서서히 가라앉았다.


포기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쳐 가는 순간이었다. 공을 던지면서 홀로 연습을 하는 내게 감독이 다가왔다.


“많이 힘드냐.”


“...예.”


“이걸 한 번 시도해보는 것이 어떠냐?”


그가 가져온 것은 하나의 영상. 바로 언더스로를 던지는 투수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내가 일반적으로 던지던 폼과는 다르게 팔을 허리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듯 공을 던지고 있었다.


그날부로 나는 언더스로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늘 던지던 폼과 많이 달라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그러나 포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던지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었고, 이제 돌파구가 있지 않은가. 언더스로라는.


폼은 언제부턴가 안정되기 시작했고, 기회는 찾아왔다.


“정말 괜찮겠냐.”


중3 마지막 대회. 1차 예선은 간신히 이겼지만, 우리 선발진에 부상이 너무 많았다.


“네. 자신 있습니다.”


“중간에 바꿔줄 투수가 없다.”


굉장히 미안한 표정으로 감독이 내게 말했다. 우리에게 마지막 대회일 텐데 제대로 경기를 치러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오는 표정일 것이다.


“만약 맞더라도 교체를 최대한 미뤄주십시오. 어떻게든 막아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기경중학교 야구부와의 예선 2차전이 열리는 경기장 위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호언장담을 했는데 말이야.”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조금 잘 막나 싶더니 어느새 만루. 게다가 홈런까지 맞아버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스트레이트 볼넷을 무려 4번. 팔이 떨려온 탓이었다.


“감독님을 볼 낯이 없네.”


참 한심한 지표였다. 경기는 아마 이쯤에서 거의 기울었을 것이다. 상대 투수의 공을 관찰하니 정말 대단한 공이었다. 점수를 내서 뒤를 쫓는 것은 아마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나갈 수도 없고...”


바꿔줄 투수가 없다. 아마 내가 나간다고 말한다면, 투수가 없는 우리는 그대로 콜드 게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그것만은 절대로 막아야 했다. 우리의 마지막이 절대 그런 것이어서는 안되었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팔 떨림은 꽤 멎었다.


휴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나는 늘 던지던 대로, 공을 던졌다.




***




“저 친구, 갑자기 기세를 되찾았는데.”


“그러게 말이야.”


아까까지 연속으로 16개의 볼을 던진 녀석이 어느 순간 스트라이크를 하나 잡고는, 순식간에 삼진을 잡았다.


“공도 눈에 띄게 좋아진 것 같고. 심지어 초반에 던지던 때보다.”


파앙!


“스트라이크!”


미트에 박히는 공의 소리 자체가 달라졌다. 대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다행이네.”


그대로 경기가 쭉 이어졌다면 저 선수에게는 아마 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 결정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바꿔줘야 하는 순간이 맞는데 말이야. 이미 너무 많이 던지기도 했고.”


김수영은 나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더니, 뭔가를 떠올린 듯 주먹을 탁 쳤다.


“아, 알았다.”


“뭘?”


“왜 안 바꿔줬는지.”


“뭔데.”


그러자 김수영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차분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마 지금 저 팀에 남아나는 투수가 없을 거야. 기존의 전력이 아니었던 저 친구를 데려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게다가 애초에 언더스로는 선발로 적합한 투구폼이 아니고. 무브먼트가 특이하긴 하지만, 몇 번 보면 파악이 될 수밖에 없거든. 구속이 잘 나오지도 않고.”


과연.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갔다.


“그럴듯하네.”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수영이가 말한 것이 가능성이 커 보였다.


“후훗, 내 이름은 탐정, 수영이죠.”


갑자기 오글거리는 포즈를 지으며 자축하는 김수영을 내버려 두고, 나는 다시 공을 던지는 투수를 바라보았다.


공을 던지고, 또 던진다.


스트라이크 콜이 울리고, 때로는 볼이 선언되기도 하였으나, 점차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스트라이크, 아웃!”


이닝의 마지막을 알리는 아웃 콜과 함께, 투수가 포효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저게 정말로 야구를 좋아하는 거구나.


나는 어떨까. 과연 저 투수와 비교될 만큼의 투지와 근성이 내게 있을까. 저 투수를 이길 만큼의 자격이 내게 있을까.


얼마 전까지 포기를 생각하고 있던 나는.


잘 모르겠다.




***




상대 투수 한가도는 이후 끝날 때까지 엄청난 피칭을 선보였으나, 경기는 이미 기울어진 상태였다.


나는 7이닝에 체력 분배를 위해 교체되었고, 후배인 경식이는 1실점을 내주기는 하였으나 상당히 잘 던져주었다.


그 결과.


5대 1.


기분 좋은 승리였고, 이제 본선 진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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