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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최근연재일 :
2021.08.25 00:21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887
추천수 :
88
글자수 :
118,855

작성
21.08.18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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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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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예선

DUMMY

“하암...”


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밖으로 나왔다. 이상하게도 일찍 깨어난 탓이었다. 아마 내가 긴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직 이른 새벽인지라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 가만히 숙소의 마당에 있는 의자에 잠시 앉아있으니 수영이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왜 벌써 일어났어.”


“...그러는 너는.”


“나? 나야 뭐.”


그러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수영이. 아마 나와 같은 이유에서 일찍 깨어난 탓이겠지.


“오늘이 첫 시합이라...”


“새삼스럽게 무슨. 예선 정도는 매년 치러왔는데.”


물론 예선만 하고 바로 돌아오는 것의 연속이기는 했다. 그러다 보니 한 작년쯤에는 별로 감흥도 없었던 것 같다.


“너도 알잖아. 이번엔 꽤 가능성이 있다는 거.”


가능성이라. 솔직히 나도 느끼고 있던 부분이었다. 엄청나게 늘어난 수비력은 어느샌가 그 승매중학교를 꺾을 정도였으니. 연습경기라고 하더라도, 스스로가 체감할 정도로 최근에는 기세가 좋았다.


내내 삽질만 하다가 중3 마지막에 와서 겨우 생긴 가능성. 어쩌면 내게 있어서 큰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은 모르지. 어떨지.”


“그래. 그렇긴 하지.”


경기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아무리 잘하고 있어도 방심하는 순간 경기는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의외로 첫 경기부터 엄청나게 어렵게 흘러갈 수도 있고.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나는 몸을 으스스 떨었다.




***




타악!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야.”


하고 나는 저 멀리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타구가 바람까지 탔는지 저 멀리 쭉쭉 뻗어 나갔다.


“야, 저거 넘어가나... 응? 뭐라고?”


“아니, 아니다.”


경기가 시작한 지 이제 3회. 우리의 선공으로 시작해서 이상하게 초구부터 홈런이 터지더니 벌써 5:0. 그리고 현재 2아웃이지만 득점권에 주자가 나가 있던 상태였다.


“으아! 아깝다... 저게 담장을 맞네.”


중견수 백상호가 머리를 탁 때리며 아쉬워했다.


“돌아!”


코치가 외치는 소리. 코치의 요구에 발 빠르게 달려 들어온 주자는 여유롭게 홈으로 들어왔다.


“벌써 6대 0이네...”


어쩐지 오늘 아침에 했던 걱정 자체가 바보 같아질 지경이었다. 이제 그러니까...


“콜드 게임이 언제부터더라?”


“어... 5회에 10점 차이였나?”


맞다. 그랬지. 그렇다면 이제 겨우 4점이 남은 셈이군. 그러면서 중얼거리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우리의 등 뒤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 녀석들아, 벌써 콜드 생각하면 어떻게 하냐! 정신 차리고 경기나 해!”


“전 안 그랬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척 슥 빠지는 백상호.


저 자식, 두고 보자.


“경기에 집중해라. 그런 거에 신경 쓰면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야.”


“네, 알겠습니다!”


다행히도 더 크게 혼낼 생각은 없는지 그렇게 말하고 감독님은 조용히 물러갔다. 휴, 살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내 옆으로 다시 돌아온 백상호.


“야, 뭐 할 말 없냐?”


“아니... 근데 사실이잖아.”


음. 그렇긴 하네. 근데 사실이어서 더 얄밉군. 나는 강현식이 친 공이 높게 뜨는 것을 보고 녀석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러주었다.


“으악! 갑자기-”


“아, 교체네. 수비하러 가야지.”


나는 바로 재빠르게 마운드 위로 달려갔다.


잠시 스트레칭으로 몸을 한 번 풀어주고, 글러브가 손에 잘 자리 잡았는지 확인하였다. 나쁘지 않군.


그리고 공을 잠시 손에 만지작거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초구는 이번 타석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 중요한 초석이 된다. 유리한 카운트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정확히 스트라이크에 꽂아야 한다.


물론 굉장히 강한 타자를 상대로 한다면 다른 선택지를 가져가는 것이 옳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훅-


배트가 돌아가고...


퍼억!


공은 돌아가는 배트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대로 미트로 꽂힌다.


“스트라이크!”


내 투구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엄청나게 좋았다. 상대와 격의 차이를 스스로 느낄 정도로 배트들이 휙휙 돌아갔다.


“내가 투수로서는 이번이 데뷔전이었던가?”


굉장히 오랫동안 공을 던져온 것만 같았다.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 자리. 어쩌면 나는 천생 투수였던 것이 아닐까?


“흐앗!”


나는 답지 않게 한껏 기합을 넣어 공을 던졌다.


탁!


아, 잠깐만.


타구는 꽤 큰 소리를 내며 높게 뻗었다. 다행히도 중견수 상호가 담장 근처에서 겨우 잡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휴, 한 끗 차이였군!”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슥 훔쳤다. 음. 지금 걸치다니. 좋은 승부였다.


“야 인마, 한가운데로 던지면 어떻게 하냐! 너무 힘이 들어갔잖아!”


아니, 뭐. 투수가 한 번쯤은 실투를 할 수도 있지. 하지만 딱히 할 말이 있던 것은 아니기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잠시 딴청을 피웠다.


이제 다시 집중해야지. 다시 이번과 같은 공을 던진다면 정말로 크게 얻어맞을 수도 있으니.


다음 타자는 감독님이 유의 대상이라고 특별히 강조했던 4번 타자 김한솔. 지금까지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지만 나를 계속 매서운 표정으로 노려보는 통에 영 집중이 되지 않았다.


“타임!”


그런데 갑자기 타임을 외치며 마운드 위로 올라오는 김수영. 뭐지?


“야, 이번에 아까처럼 공 던지면 진짜 큰일 난다. 알겠지?”


아. 난 또 뭐라고.


“알고 있어. 그런데 쟤 왜 자꾸 계속 날 노려보냐?”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이었다. 그냥 집중하는 건지.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뭔가 감정, 정확히 말하자면 살기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음? 그러게. 난 기억도 못 할 줄 알았는데. 혹시 너 쟤한테 뭐 잘못한 거 있었냐?”


“아니, 없었으니까 물어보는 거지.”


진짜로 뭐 없었는데. 게다가 야구 하러 몰려다닐 때 그 시절 빼고는 거의 본 적도 없었다.


“뭐, 신경 쓸 거 없겠지. 궁금하면 끝나고 물어보면 되고. 아무튼, 잘 던져라!”


김수영이 내 등을 팍 한 번 쳐주고는 이내 다시 자리로 들어갔다.


수영이 말대로 지금은 신경써봤자 의미 없는 것이겠지. 공이나 던지자.


3회까지 안타는 없었지만 적은 타석에서도 꽤 매서운 스윙을 보여줬던 김한솔. 확실히 집중해야 할 상대임은 분명했다.


“평범한 빠른 공으로는 맞을 테니까...”


우선은 간을 좀 봐볼까. 마침 마음이 맞았는지 수영이는 약간 빠지는 코스로 미트를 내밀고 있었다.





***



김한솔은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의 처참한 경기 상황이라던가, 혹은 연애 쪽 방면이라고 할지라도.


‘하필 이 녀석이랑 같이 있었을 줄이야!’




우연히 어제 김한솔은 기경중학교 야구부가 있던 숙소 앞을 지나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익숙한 얼굴이 갑자기 불쑥하고 나타났다.


“신지혜...”


그가 전학하고 난 뒤에 비극적으로 헤어지게 되었던,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다면! 하고 생각하는 그였지만 모두 착각이었기에, 사실 그렇게 비극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김한솔은 일종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타지에서 짝사랑 상대를 만나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 방성우잖아?”


숙소의 입구로 들어간 신지혜의 앞으로 나타난 상대는 바로 방성우였다. 왜 갑자기 그녀는 방성우를 만나러 온 것일까? 심지어 경기 날도 아닌데?


분명히 뭐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 자식! 그때는 날 응원했던 주제에 뒤통수를 때려?’


하지만 사실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설령 사귄다고 해도 뒤통수라고 말할 것이 없었다. 거의 7~8년 전의 이야기인 데다가 그동안 볼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응원했다는 것도 ‘아, 응. 파이팅...’ 정도의 이야기였다.


잠시 흥분했지만, 김한솔 자신도 다시 생각해보니 그 정도는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고.


‘비참하네...’


잠시 흥분했던 것이 사라지니 비참함만이 그의 마음속에 남겨졌다. 그렇게 사랑했던 상대조차 이제는 과거가 되었다.


김한솔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되찾지는 못해도, 되갚아줄 수는 있잖아?”


물론 경기장에서! 아까 보니까 분명히 그 녀석은 기경 중학교 숙소에서 나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음 상대도 바로 기경 중학교!


“시원하게 한 방 날리고 털어놔야지...”


그리고 김한솔은 눈물을 한 방울 찔끔 털어내고 그대로 반드시 때려내겠다는 결의를 다짐했다.



‘그런데 벌써 6대 0이라...’


아직 3회이긴 하지만 콜드를 생각하면 5회까지 2회만 남은 ‘벌써’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


방성우는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굉장한 투구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 자신도 칠 자신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김한솔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신이 때려내어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일단 한 번만 때려내면!’


설령 지더라도 이렇게까지 크게, 그것도 무득점 경기로 패배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김한솔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첫 구가 날아온다.


‘무슨 속도가!’


퍼억!


“스트라이크!”


엄청난 스피드로 미트에 꽂히는 투구. 휘두를 타이밍조차 재지 못했다. 왠지 아까 던졌을 때보다 더 빨라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노리던 그 코스로 딱 한 번만 와준다면, 그는 홈런까지도 칠 자신이 있었다.


두 번째 공.


이번에도 순식간에 다가오는 공에 그는 움찔했다.


퍼억!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원하던 코스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대로 노리던 곳은 찾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제발 한 번만...’


이제는 거의 기도하는 심정이 되어버린 김한솔.


배트를 붕 휘둘러보고, 다시 방성우를 노려본다.


세 번째 공.


공은 아까와 거의 비슷한 폼으로 던져졌다. 하지만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는데, 공이 너무 빨라 생각할 틈도 없었다. 게다가.


‘거기다!’


몸쪽 낮은 공. 오직 이것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김한솔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여기면 아무리 공이 빨라도...!’


그는 즉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공이 저 멀리 날아가 담장을 넘어간다. 그리고 그 기세로 단숨에 역전한다. 경기에서 승리하여 다시 기회를 잡는다!


그렇게 상상하는 동안, 공이 갑자기 아래로 훅 꺼진다.


“잠깐-”


틱!


비켜 맞은 타구가 데굴데굴 굴러가고...




***




아이씨, 왜 공이 거기로 흘러가냐. 빗맞은 타구가 절묘하게 내야를 뚫어내어 결국 결과는 안타가 되었다.


이번엔 정말 잘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흐하하... 헉... 맛이 어떠냐!”


재빠르게 달리느냐 숨을 헐떡거리며 세리머니를 하는 김한솔. 아무래도 놈은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경기 끝나면 물어봐야지.


1아웃 1루. 주자에 누가 서 있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이참에 빡세게 연습한 견제나 한번 해보자.


나는 포수 쪽을 가만히 노려보다, 이내 재빠르게 몸을 돌려 1루 쪽으로 공을 던졌다.


툭.


“아웃!”


어?


2아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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