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최근연재일 :
2021.08.25 00:21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894
추천수 :
88
글자수 :
118,855

작성
21.08.11 23:56
조회
159
추천
2
글자
13쪽

연습 경기(5)

DUMMY

초구는 스트라이크. 미트에 묵직하게 꽂힌 공에 나는 가볍게 환호했다.


“좋아.”


그렇지. 아까까지는 집중이 영 안 됐는데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역시 사람은 여유를 되찾아야지만 본 실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 심호흡을 하니 아까까지 불안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뭐,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신지혜가 정말 약속대로 찾아온 것도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건 아마 덤으로 추가된 거겠지. 한 1% 정도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럴 거야.


아직까진 1아웃에 만루. 그리고 겨우 1스트라이크를 방금 잡았을 뿐. 위기와 위기의 순간이다. 다시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모자를 고쳐 썼다. 그리고 자세를 낮춘 뒤 뒷짐을 지고 수영이의 사인을 지켜보았다. 몸쪽 빠른 공. 물론 나에겐 빠른 공밖에는 없긴 하다. 힘을 좀 빼거나 전력으로 던지라는 정도만 있을 뿐.


그리고 지금은 전력으로 던질 때였다.


파앙!


“스트라이크, 투!”


공은 수영이가 요구한 그대로 미트에 강하게 꽂혔다. 타자가 억지로 배트를 휘둘러보았지만, 허공을 갈랐을 뿐이었다.


좋아. 이제 2아웃까지 남은 공 하나. 이것을 잡으면 이제 남은 아웃 카운트는 비교적 쉽게 가져갈 수 있을 터였다. 지금은 공이 외야로만 빠져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바깥쪽으로 낮은 공. 평소에는 죽어도 못 던지는 위치들을 지정해주는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 위험한 상대인가 싶었다.


그렇다면 내게 던질 수 있는 비밀 병기가 하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김수영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다른 위치에 미트를 가져다 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다른 거! 나는 답답한 마음에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다른 위치에 가져다 대는 녀석. 그리고 나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기를 여러 차례.


김수영이 타임을 외치고는 마운드 위로 달려왔다.


“뭐가 문제야, 이 녀석아! 이 정도 말곤 없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구종을 바꾼다고.”


나는 수영이의 귀에 가져다 대고 소곤거렸다. 그러자 더더욱 황당한 눈빛을 보내왔다.


“대체 뭔 구종?”


“저번에 세 번 던진 그거 있잖아. 나 그때 잘 던졌던 것 같은데?”


“뭐? 고작 세 번 던져보고 지금 커브를 던져보겠다고?”


확실히 그렇게 들으니 이상하긴 한데. 이상하게도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못 미더우면 그냥 던지고.”


물론 아직 나는 투수로써 미숙하니 전적으로 수영이의 판단을 믿는 것이 맞는 것이긴 하다. 그렇기에 나는 결정권을 수영이에게 넘겼다.


“쓰읍...”


김수영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결정은 빠르게 되었다.


“진짜 도박인데... 씨. 오케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커브는 손가락 두 개. 직구는 주먹. 간단한 사인을 즉석에서 전해 듣고 다시 경기는 재개되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낮은 위치. 약간 빠지는 유인구를 던지라는 모양이었다.


미트를 잠시 노려보다가, 이윽고 나는 손을 글러브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손에서 꺼내든 공은 이번에도 힘차게 날아갔다.


약간의 불안. 혹여나 변화구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조금 더 높은 위치로 향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까보단 조금 느린 공에 같은 코스. 당연히 붙잡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타자의 몸이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노리던 코스였을까? 다리가 들어 올려지고 체중이 실린 힘으로 공을 쳐 내기 위해 배트를 휘두른다.


역시 노리던 코스가 맞은 모양이었다. 배트가 돌아가면서 그 궤적이 정확히 아까와 일치했다. 만약 저게 맞는다면? 끔찍한 상상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상상을 하던 찰나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배트는 돌아갔고, 미트의 문은 닫혔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모두의 시선이 나와 마주치는 것이 느껴졌다.


정적을 깨뜨리듯 심판의 콜이 힘차게 울렸다.


“스트라이크, 아웃!”


공은 아슬아슬하게 배트를 피해 도망가는 데 성공했다!


“좋았어!”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고, 내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전에 동료들의 환호성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너무 집중해서 피곤한 감이 좀 있었다. 자, 완벽하게 막았으니까 이제 들어가야-


“야, 아직 남았어!”


아, 맞다. 수영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마운드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마주하는 비장한 눈빛의 상대 타자.


이제야 두 번째지만 벌써 질릴 것 같다.


틱-


내가 던진 공을 아슬아슬하게 빗맞은 타구는 힘없이 내야로 높게 떠올랐고, 그대로 위기의 6이닝은 지나갔다.




***




“투수는 말이야, 진짜 가끔 긁히는 날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게 하필이면 우리를 상대하는 선발 투수였던 거지.”


승매중학교 야구부의 감독 김상근은 슬슬 조바심을 내려고 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말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근본이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실력으로 쌓아 왔어. 어차피 느린 공이다. 다들, 슬슬 눈이 익었지?”


이 말에 다들 입가를 씨익 올리면서 화답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이닝이 진행됨에 따라 빠르게 아웃되던 타자들이 슬슬 진루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삼자범퇴의 1이닝. 1루 진루의 2이닝. 3이닝은 날려 먹었지만 1, 2루 진루에 성공했던 4이닝. 5이닝에는 운 없는 타구들이 몇 개 있었지만, 상대의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높고 멀리 뜬 공들.


그렇다면 6회에는?


김상근은 또다시 익숙한 소리를 들었다.


타악!


공은 아슬하게 내야로 굴러갔고, 유격수가 빠르게 잡아냈지만 뿌릴 수 없었다.


“운까지 돌아왔군.”


김상근이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지금까지 익숙했던 모습은 바로 이것이었다. 아까까지 빌빌대던 모습이 아니었다.


“얼른 저놈을 끌어내. 그리고 이제 게임을 마무리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김상근 감독이 중얼거린 대로, 포수와 감독이 마운드로 나와 잠시 상의하다 이내 투수 교체하는 콜이 있었다.


한데 나온 투수가 전혀 눈에 익은 모습이 아니었다. 이번 경기를 큰 점수 차로 벌려서 승리하여 기세를 끌어올려야 했기에 나름대로 기경중학교의 투수에 대한 조사가 되어있었는데.


“...쟤는 누구야?”


김상근이 다시 종이를 돌려 보니 저번 공식 경기까지 우익수로 뛰었던 선수였다. 특이사항은 어깨가 좀 좋은 것 빼고는 없었다.


“참, 그렇게 인재가 없나.”


이제야 김상근은 한숨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아까까지는 그 자신도 초조했었던 모양이었다. 다음에 있을 경기들이 산더미였다. 더 이 경기에 신경을 쓰기 싫었다.


“6회 콜드라. 이전 이닝들이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이제 다음 경기는... 하고 다시 고민에 들어가려던 그때.


경기장 위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승매중의 4번 타자가 막 타석에 들어선 참이었다. 김상근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분석용 보고서를 읽으려고 했었다.


파앙!


전혀 익숙한 소리가 아니었는데. 왜 이리 시끄럽지?


파앙!


김상근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경기가 어떻게 되는 건지를 알아보기 위해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투수는 공을 던진 동작 그대로 멈춰 있었고, 타자가 배트를 휘두른 마지막 모습만을 볼 수 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분명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저런 초보자를 상대로 우리 4번이 삼진을 당했다고?


“지금 몇 구로 아웃당했지?”


김상근은 아웃을 당하고 터덜터덜 돌아오는 4번 타자를 향해 물었다. 이번 기회에 따끔하게 혼내줄 작정이었다.


감히 방심을 해? 아무리 약팀을 상대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됐다.


“...3구요.”


“너... 지금 네가 우리 야구부를 얼마나 먹칠한 줄 알아? 초보자를 상대로 말이야! 정신 안 차려?”


하지만 이러한 일갈에도 4번 타자는 신기하게 무덤덤한 기색이었다. 오히려 김상근이 한 말에 더욱 놀라 하는 기색이었다.


“저런 공을 던지는 투수가 초보자라니, 진심이세요?”


마치 자신은 아웃당할 만했다는 뻔뻔한 태도.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공의 충격음 소리에 더 화를 내기 전에 김상근의 고개가 돌아갔다.


파앙!


공이 던져지고, 공이 꽂힌다. 미트에 깊숙이 박혀있는 공과 타자의 얼빠진 표정은 그 위력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130 초반... 아니면 후반까지 나올 것 같은데.”


4번 타자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하기야, 공은 빨라 보인다. 김상근은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너 그 정도는 빠른 공은 많이 쳤잖냐. 전국 대회도 나간 놈이. 그런데도 공도 못 건드리고 그냥 나왔다고?”


“아뇨, 그러니까...”


김상근 감독은 이름 모를 투수에게서 시선을 떼어내지 않고 물었다. 지금 막 공을 던져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던졌던 공보다는 느린 공. 그리고 배트와의 거리는 제법 가까워 보였다. 그렇게 공이 배트에 닿는가 싶더니.


“커브 구속이요.”


공은 바로 타자 앞에서 뚝 떨어졌고, 빗맞은 타구는 힘없이 내야 위로 떠 올랐다.


“쓰리 아웃, 체인지!”


심판의 콜이 울리고 무심한 듯 돌아서는 그 투수의 모습을 김상근은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젠장, 믿고 있었다구!”


“역시 불펜에서 던진 공들은 전부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페이크였구나!”


돌아오자마자 또다시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는 우리 기경중학교 야구부. 아직 남은 이닝은 3이닝 정도로 꽤 남았지만, 그 강한 타선을 자랑하는 승매중학교를 상대로 6이닝까지 무실점을 기록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역시 막아 주실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형!”


조금 전까지 침울한 표정으로 우리 진영으로 돌아갔던 우리의 선발 투수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아니, 뭐. 그래.”


나는 멋쩍은 나머지 모호하게 대답을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조금은 쉬어야지. 너무 집중해서 던지면 체력 소모가 크다.


붕!


“으악!”


붕!


“으헉!”


붕!


“이익...”


“아웃!”


이런 젠장, 쉴 틈을 안 주네.




***




다시 빠르게 마운드에 등판해서 무난하게 7이닝을 넘어간 뒤 8이닝. 빗맞은 타구가 빠르게 외야로 넘어가는 일이 있었지만, 중견수의 빠른 커버로 외야 플라이.


이후 넘어간 다음 타선들은 빠른 공과 커브를 섞어 삼진으로 타자들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또 우리 타선은 붕붕붕. 역시 강팀의 투수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인지 지금까지 우리가 때려낸 안타는 홈런을 제외하면 없었다.


“씨이... 남자대 남자로 붙자고! 변화구 던지지 마!”


홈런을 때려냈던 한태범조차도 변화구로 철저하게 공략되어 추가로 기록된 안타는 없었다. 그나저나 변화구 안 던지는 게 남자다운 거냐... 어떤 의미에서는 한결같은 녀석이었다.


9회 초를 빠르게 스킵하고, 드디어 9회 말에 마운드에 오른 나.


아무 생각 없이 공을 던지고, 또 던졌다. 몸이 벌써 지쳐왔기에 빠르게 끝내야만 했었다. 무아지경. 정말로 그런 상태에 도달했던 것 같았다.


“2아웃에 3볼이라...”


주자는 없지만 이제 팔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어쩌면 한 번 얻어맞으면 끝이라는 생각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나는 일단 던졌다.


파앙!


“스트라이크!”


일전에 혼자서 담벼락에 던질 때와 같이.


파앙!


“스트라이크!”


정확히 미트로 달려나간 빠른 공.


그리고, 상상 속에 있었던 그 누군가의 얼굴.


타앙!


경쾌한 타격음이 들려오고, 매섭게 날아가는 타구가 높이 치솟았다. 좌익수가 글러브를 들고 담장 쪽으로 달려갔다.


공을 따라 나는 시선을 옮겨갔고, 그 공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마주하는 시선이 하나 있었다.


나는 빤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공은 어디로 갔었을까? 잘 모르겠다. 오로지 어떤 의문이 내 머리를 가득 채울 뿐이었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 공을 열심히 던진 거지? 고작 연습 경기에 불과했을 텐데.


신지혜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방방 뛰었다. 갑작스러운 모습에 나는 무슨 일인가 다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웃! 시합 종료!”


다시 외야 쪽을 바라보니 글러브에 공을 잡을 채로 뛰어오는 좌익수의 모습이 보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카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본선 +1 21.08.25 55 0 11쪽
22 예선(5) 21.08.23 64 1 12쪽
21 예선(4) 21.08.21 88 1 12쪽
20 예선(3) 21.08.20 93 1 11쪽
19 예선(2) +1 21.08.19 114 3 13쪽
18 예선 21.08.18 110 2 12쪽
17 잠시, 대회 전의 일(5) 21.08.17 121 1 12쪽
16 잠시, 대회 전의 일(4) +1 21.08.16 133 2 12쪽
15 잠시, 대회 전의 일(3) +1 21.08.14 151 2 12쪽
14 잠시, 대회 전의 일(2) 21.08.13 150 2 11쪽
13 잠시, 대회 전의 일 21.08.12 160 1 12쪽
» 연습 경기(5) 21.08.11 160 2 13쪽
11 연습 경기(4) 21.08.10 172 1 12쪽
10 연습 경기(3) 21.08.09 196 1 12쪽
9 연습 경기(2) +4 21.08.07 234 2 12쪽
8 연습 경기 21.08.06 266 1 12쪽
7 시작 21.08.05 299 3 12쪽
6 평범한 동생(5) +1 21.08.04 295 4 12쪽
5 평범한 동생(4) +1 21.08.03 309 8 11쪽
4 평범한 동생(3) 21.08.02 342 8 11쪽
3 평범한 동생(2) 21.07.31 402 13 12쪽
2 평범한 동생 21.07.30 453 14 12쪽
1 프롤로그 21.07.30 528 15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