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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렁
작품등록일 :
2021.07.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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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5 00:21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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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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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3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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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잠시, 대회 전의 일(2)

DUMMY

“맛이 어떠냐!”


형, 방우성은 주먹까지 쥐고 외쳤다. 젠장, 열 받네.


“치사하게 프로 비슷한 사람이 변화구까지 던져?”


나는 툴툴대며 말했다. 치사하지 않은가? 형은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프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투수이다. 아마추어 타자에게 변화구를 섞는 것은 거의 반칙 수준이다.


“직구만 던지는 핸디캡 정도는 줄 수 있잖아.”


“자존심이 밥을 먹여주진 않잖아?”


형은 태연하게 공을 위로 던졌다가 툭 받아 보이며 말했다. 거 뻔뻔한 것 좀 보소. 아우한테 양보 좀 할 수도 있지. 참 인정머리 없는 형이다.


내가 억울함에 치를 떨고 있자 이번에는 형이 또 다른 제안을 들고 나왔다.


“그러면 이번엔 너가 던져봐. 요즘 투수로 전향했다면서? 나도 투수니까 이렇게 하면 공정한 승부가 되겠지.”


그리고는 내게 공을 던져서 건네주었다. 딱히 뭐 그런 승부를 한 적은 없지만, 언뜻 보면 참 공정한 제안인 듯 보인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형은 타자로서의 재능도 거의 던지는 것과 동등한 수준이었던 것을.


요즘은 공만 던지고 있지만,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형은 대회에서 타자 부문에서도 MVP를 받을 정도였다.


최근에도 종종 타자를 겸업하는데 타율이 엄청나게 무시무시했다. 솔직히 뭔가 잘못 만들어진 사람 같다. 좀 적당히 해 먹어야지!


“...이 씨. 콜!”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또 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니까. 왠지 모를 승부욕이 불타오른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던지는 공이 수준급 타자에게도 먹힐 수 있는지 궁금한 것도 있었다. 전의 상대도 명문이라 불리고 강팀이었지만, 그것은 정확히 중학생 수준에서 한 이야기.


형은 고등학생에다가 수준급의 대회에서도 통하는 타자였다. 과연 내 투수로서의 수준은 어느 정도까지 도달한 것일까?


나는 글러브를 다시 가져와서 낀 다음에 마운드 위로 올라갔다. 이제는 왠지 타석보다는 투수의 자리가 더 익숙해진 기분이다.


“혹시 여태까지 나는 허송세월을 하고 있던 건가?”


문득 이런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생각해보니 이제까지의 내 우익수의 역사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늘 타율은 거의 평균을 유지했고, 어깨가 조금 강하다는 평가는 있었지만,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그런데 투수로서는 벌써 전향하자마자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기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뭔가가 기분이 이상했다.


“자, 빨리 던져! 시간 다 가겠네!”


형이 배트를 붕붕 돌리며 재촉하기 시작하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와인드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공을 던지려고 딱 팔을 휘두르려는 순간.


“타임!”


갑자기 미트를 내밀고 있던 수영이가 타임을 외쳤다. 형이 수영이를 빤히 바라보자 수영이는 뻔뻔하게 팔을 들어 올리며 설명했다.


“아니, 수준급 타자를 상대하는데 당연히 투수와 상의를 해봐야죠, 우성이 형.”


그리고는 내게 총총 달려와서는 뭔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무조건 전력으로 던져라. 네 형은 타격도 엄청나니까.”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한 번 던져보는 거지.”


갑자기 올라와서는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군. 그것도 모르면 내가 형제겠냐.


“그래? 흠, 뭐. 알겠어.”


김수영은 그 소리를 듣더니 그대로 다시 돌아갔다. 뭐야, 그런 거면 왜 올라온 거지. 상의는? 의미를 모르겠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라는 뜻이려나?


아무튼, 다시 승부는 시작되었다. 타자는 형 방우성. 나무 배트를 위협적이게 휘적이며 나를 찌릿하고 노려보고 있었다.


수영이가 가리키는 방향은 몸쪽 꽉 찬 직구.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늘 하던 대로 공을 던졌다.


파앙!


공의 실밥이 내 손에서 긁히는 것이 느껴지고, 빠르게 회전하며 수영이의 미트 속으로 정확히 꽂혔다.


“좋아!”


나는 주먹을 쥐어 보였다. 형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자세를 잡았다.


방금 것은 그냥 거른 것일까, 아니면 때리지 못한 것일까. 나는 조금 헷갈렸다. 그렇지만 고민할 필요는 딱히 없었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다음 공.


이번에는 몸쪽 높은 직구.


똑같은 방향에 약간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나는 또다시 공을 던졌다.


파앙!


그러나 이번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 형.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파앙!


세 번째.


파앙!


네 번째.


그대로 움찔하는 기색도 없이 4개째 공까지 흘려보냈다. 흠, 이쯤 되니 왠지 의도를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너랑 똑같은 조건이다?”


형이 히죽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아까 나의 타격 때 마지막 구를 제외하고 흘려보낸 것을 도발이라고 착각하는 기색이다.


아니, 진짜로 못 쳐서 그런 건데...


“괜히 힘만 뺐잖아...”


나는 투덜댔다. 어차피 그럴 거면 그냥 말로 하지.


그렇다면 다음 공은 진심으로 치겠다는 소리가 된다. 나는 아직도 모른다. 형이 내 공을 온전히 보고 있었을까.


여기에 대한 나의 답은 또다시 신경 쓸 필요 없다였다. 아무튼, 공은 던지면 그만인 것이었으니.




***




처음에 동생이 공을 던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방우성은 의아해했다. 평생을 배트를 잡아 왔으며 우익수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전향해서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그러고 보니 신지혜가 동생이 야구를 그만둘 생각이라고 했지...”


설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투수나 한 번 체험해볼 생각을 하는 것일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자신이 관여할 부분은 없었다.


어쨌든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고, 야구를 포기한다고 해서 형에게 그것을 막을 권리도 없었다. 무엇을 하든 동생 자유니까.


그렇지만 바로 다음 경기에서 중계 투수로 나와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도 무려 승매중학교를 상대로 말이다. 승매중은 소문난 강호였기에, 방우성도 알고 있었다.


직접 상대해본 적이었으니까.


“대단한데?”


솔직한 심정이었다. 자신도 꽤 고전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은 승매중학교 야구부를 상대로 선발로 나와 완봉승까지 해냈다. 그런데도, 기억에 꽤 남는 강팀이었다는 사실이 머리에 남아있었다.


비록 자신이 상대했던 타자들은 대부분이 고등학생이 되었겠지만 명문 팀이 1년 만에 어디 가겠는가?


이러한 방성우의 활약상을 신난 듯 말하며 자신에게 말해주는 신지혜의 모습은 어쩐지 좀 그랬지만. 형의 마음으로써 동생을 응원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전에 던지는 것을 봤을 때는 완전히 엉망진창의 제구를 선보이고 있었다. 물론 던지는 구위와 때때로 나오는 집중력 있는 공들은 위력적이긴 했지만.


그 정도로 승매중학교를 꺾기에는 역부족일 것이었다. 특히나 제구가 그런데 어떻게 투수를 하겠는가.


대체 그새 얼마나 성장한 것일까.


그래서 이번에 직접 찾아가 보았다. 신지혜의 건으로 약간 골탕 먹이는 감도 있었지만, 방성우의 공을 타자로서 직접 봐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선 첫 번째 포석으로 동생에게 공을 던질 때였다. 적당히 잡아내고 다음 내기로 동생에게 공을 던지게 하기 위해.


솔직히 내기 중의 외야로 날아가는 공을 한 번 봤을 때는 순간 가슴이 철렁이기도 했다. 가끔 동생이 쳐내는 저 배트는 언제나 방심할 수가 없었다.


원래는 빠른 공으로만 잡아내려고 했었지만, 갑자기 느껴진 투수로서의 감이 나를 살린 것이었다.


‘어우씨, 큰일 날 뻔.’


그러고 보니 옛날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방우성은 생각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동생은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몸쪽 빠른 공. 전제 봤을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날카로움이 엿보였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리고 두, 세 번째도 역시나 좋은 공이었다. 빠르기와 코스가 모두 까다로운 수준. 물론 수영이라는 실력 있는 포수의 도움도 있겠지만 말이다.


네 번째로는 큰 낙폭을 보이는 빠른 커브. 평소에 직구를 던지는 폼과 거의 달라지지 않을 정도로 정말로 완벽하게 구사되고 있었다.


실제로 방우성이 휘두르려고 생각한 궤적으로는 쳐봤자 데구르르 굴러가는 땅볼이 되었을 것이라고 스스로가 직감적으로 느꼈다. 휘두르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5구를 모두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지막 다음 공. 방우성은 일부로 정말로 전력으로 던져 보이라고 도발을 했다. 과연 마지막에는 어떤 투구를 보여줄 수 있을까?


방우성이 문득 손에 땀이 묻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스스로 몰래 손의 땀을 슥 닦고는 다시 배트를 다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공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코스. 방우성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지만 마지막 공은 가져가 주지.’


하지만 금세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스피드. 방우성은 순간 놀라서 다급하게 배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늦는 건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갈 정도로 빠른 공이었다. 혹시 더 숨겨둘 여력이 있을 것이라고 방우성은 상상치도 못했다.


총알처럼 날아가는 공과 이에 질세라 따라 나가는 배트.


타격감은 약간 늦게 느껴졌다.


탁!


공은 방우성의 배트에 맞았다. 그리고 그대로 빠르게 내야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방우성은 씁쓸한 미소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빗맞았다.


‘내가 정확히 노린 코스의 공을 빗맞혔다고?’


방우성은 빠르게 굴러나가는 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저 멀리 데구르르 굴러가는 공. 정확히 1, 2루 사이로 빠져나가는 타구였다.


“...이거 송구하면 아웃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옆에서 승부를 지켜보고 있던 신지혜가 피식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우씨, 좀 한 번이라도 편들어주면 덧나나. 나는 찌릿하고 신지혜를 쳐다봤다. 그러나 녀석은 딴청을 피우고 있을 뿐이었다.


“2루타.”


“뭐?”


형이 뜬금없이 손가락으로 브이 표시를 보여주길래 뭔가 했다.


“내가 쳤으니 2루타라고.”


아니, 진짜 한술 더 뜨네. 그건 아니지 않나?


“맞습니다! 우성이 형!”


“으딜 우성이 형한테 토를 달아!”


“2루타가 아니라 3루타도 될 것 같은데요?”


주변에서 형을 마구 치켜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이 팀을 뜨든가 해야지...


그와는 별개로 뭐, 안타 정도면 인정한다.


역시 형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인가. 하늘이 내린 재능충을 상대하는 건 굉장히 어리석은 일이라는 사실만을 깨달았다.


그렇게 분하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형을 존경하는 편이기도 했기에. 어릴 때의 그 엄청난 형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어 내가 졌는데도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승부의 대가로-”


잠깐만. 뭔가 수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진짜로 뭘 걸 생각이었어?


“어, 뭐야. 아무것도 안 걸려 있다면서!”


나는 경악하면서 외쳤다.


“승부가 다 그런 게 아니겠냐. 벌로 넌 강제 특별 훈련코스 당첨이다.”


방우성, 나의 짓궂은 형은 미소를 가득 띤 얼굴로 태연하게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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