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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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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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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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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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Stella Pictures.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밤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류지호가 아침 일찍 캐서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캐롤코와 오라이언에 대한 것도 알고 싶어요.”

- 그 영화사들은 왜?”


본래대로 흘러간다면 90년대 중반 부도가 나는 영화사들.

현재는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영화사들이기도 했다.


“트라이-스텔라처럼 회계자료나 재정 상태까지 바라는 건 아니에요. 그간의 필모그래피하고 앞으로의 라인업에 대해 알아봐 줄 수 있어요?”

- ......흠.


수화기 너머에서 캐서린의 고심하는 호흡소리가 전해져 왔다.


- 왜 알고 싶은지 물어봐도 될까?

“다각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려고요. 그 이상은 저도 생각이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말씀드릴 수 없어요.”

- 너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온 변호사들이 조언한 거야?

“아니요. 제가 개인적으로 더 세밀하게 알고 싶어서 그래요.”

- 이번 비즈니스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정보인거고?

“물론이에요.”

- 알아봐 줄게. 대신 큰 기대는 하지 마. 시간을 두고 알아보면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지만, 하루 이틀 가지고는 공개된 내용밖에 알 수 없어.

“내밀한 것까지는 기대 안 해요. 대략적인 것만이라도 부탁해요.”

- 내일 저녁까지 보내줄게.


딸깍.


류지호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이왕 판이 벌어진 거, 과감하게 나아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3개의 영화사를 한꺼번에 인수해 몸집을 키우면 어떻게 될 것인가.

류지호가 고심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하암.


하품이 터졌다.

밤새 온갖 것들을 놓고 고민하다보니 새벽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솔솔 졸음이 몰려왔다.


“큰오빠~!“


덥석.


레오나가 종종종 달려와 류지호의 품에 안겼다.

레오나가 기대감 가득한 눈망울로 물었다.


“이제 놀아줄 수 있는 거야?”


류지호가 다소 졸린 기색으로 되물었다.


“뭐 하고 놀까?”

“아빠, 엄마 놀이!”

“그냥 병원 놀이 하자.”

“병원 놀이?”


류지호가 레오나를 안고, 푹신한 소파로 걸어갔다.

레오나를 바닥에 내려준 류지호가 소파에 엎어져 누웠다.


“레오나가 간호사, 내가 환자.”

“좋아. 내가 큰오빠 아픈 데 다 고쳐줄게.”


레오나가 어디론가 달려갔다.

내년에 8살이 되는 레오나지만, 여전히 류지호에게는 어리광이 심했다.


잠시 후 -


집사 브래드의 손을 잡고 레오나가 다시 나타났다.

브래드의 손에는 병원놀이 세트가 들려있다.


“....힝.”


레오나가 당장 눈물을 떨어뜨릴 것처럼 눈시울을 붉혔다.


쿨쿨.


류지호가 소파에 엎어져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래드가 담요를 한 장 가져와 덮어주었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류지호는 미동도 없이 깊은 잠속에 빠졌다.


❉ ❉ ❉


“캐롤코와 오라이언까지 인수하면 어때요?”


류지호는 신효정과 변호사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하루를 꼬박 고민했던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신효정이 일단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신효정 역시 류지호가 할리우드의 배급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로 판단했다.

때문에 캐서린이 보내준 두 영화사의 정보를 나름 철저히 분석 했다.

두 영화사의 재정 상황, 대략적인 지분구조, 의결권 등등.

신효정이 복잡한 두 영화사의 사정을 설명했다.

캐롤코 픽처스(Carolco Pictures)는 1976년에 이탈리아 출신인 마르코 카사르와 헝가리 출신인 앤드류 바이낙이 합작해 만든 영화사다.

주로 저예산 영화나 TV용 영화를 만들다가 <람보>로 대박을 치면서 중급 배급사로 부상했다.

<람보> 1편은 오라이언 픽처스가 배급을 했고, <람보> 2편부터 배급사를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로 바꿨다.

캐롤코 픽처스는 일 년에 2~3편 제작하던 프로덕션이었다.

그런데 <람보>가 대박이 나면서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5편, 올해는 9편까지 제작편수를 계속해서 늘렸다.

불행하게도 그 기간 대박을 친 영화가 단 한편도 없다.


“<탈옥>은 스탈론 영화중에서 유일하게 잘 안된 영화일 겁니다. 난 재밌게 본 영화인데 이상하게 흥행에 실패했어요.”


류지호가 말하자 신효정이 부연설명을 했다.


“<람보>는 1,500만 달러 예산으로 만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1억 2,5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뒀고, <람보Ⅱ>는 2,500만 달러로 제작해 전 세계적으로 3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뒀습니다. <람보Ⅱ>는 트라이-스텔라가 배급했습니다. 이후 슈발츠네거의 <레드 히트>와 스탈론의 <탈옥>을 제작했지만, 둘 다 엄청난 손해를 봤습니다. 그 외에 영화들 역시 실망스러운 수익을 얻었지요.”


엄청난 양의 영화를 봤다고 자부하는 류지호다.

그럼에도 캐롤코 픽처스가 제작한 영화들 다수가 생소했다.

한국영화시장이 워낙 작아서 영화가 수입이 안 되었을 수도 있다.

혹시 한국에서 개봉할 때 영화제목이 바뀌었을까봐 시놉시스까지 읽어보았다.

미국 박스오피스를 확인하는 순간 그럴 수도 있겠다고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영화가 미국에서조차 망한 영화들이었다.

금융과 기업재무에 밝은 신동혁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재정이 엉망인 상황입니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오라이언 픽처스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얼마나 안 좋기에...?”

“3년 안에 부도가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업인수합병의 전문가라고 소개한 김정호 변호사가 말을 받았다.


“내년에 개봉하는 6,500백만 달러짜리 <토탈 리콜>이 대박을 거두지 않으면 당장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입니다.”


류지호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오라이언과 트라이-스텔라는 배급과 영화 투자에 집중하고 캐롤코는 제작능력에 올인 한다면 서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신동혁 변호사가 단언했다.


“세 회사가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서로에게 돌리는 상황에 처할 겁니다.”

“상반기 개봉할 영화들이 터져도요?”

“잠시 목숨을 연명하는 것밖에는 안됩니다. 만성 부채와 금융권 이자만 부담하다가 쓰러질 겁니다.”


세상에 쉽게 먹는 떡 없다고 하더니, 상황이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류지호가 이번에는 신효정에게 시선을 보냈다.


“캐롤코와 트라이-스텔라의 배급계약은 언제까지 되어있죠?”

“94년까지 되어있습니다.”


류지호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뇌를 쥐어짜는 것처럼 기억을 고통스럽게 헤집었다.

슈발츠네거의 <토탈 리콜>, 스탈론 주연의 <클리프행어> 그리고 섀런 스톤을 스타로 만든 <원초적 본능>.

대략 이 정도 영화가 캐롤코 픽처스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재앙 같은 영화 두 편이 떠올랐다.

<쇼걸>과 <컷스트로트 아일랜드>.

만약 이 두 영화가 캐롤코 픽처스에서 제작될 예정이라면 제작투자는 물론이고 배급까지도 절대 맡으면 안 된다.


“일단은 트라이-스텔라에 집중하길 조언합니다.”


신효정에 음성이 상념에 잠겨있는 류지호를 현실로 끄집어냈다.


“아, 네.”

“트라이-스텔라도 만만치 않은 준비를 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내 손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벌써부터 겁을 주고 그러십니까?”


류지호가 무거운 분위기를 의식해 짐짓 밝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에도 분위기는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그만큼 이번 비즈니스를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다.


“캐서린에게 얻은 시간에서 5일이 지나갔네요. 모든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은 나의 몫입니다. 여러분은 이틀간 뉴욕 관광이라도 하면서 지내세요. 여러분들의 조언이 필요하면 신 변호사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류지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효정이 일행을 대표해 물었다.


“마음에 결정은 내렸습니까?”

“멀리 있는 성공이란 놈과 대면하려면, 그 먼 길을 떠날 도전정신과 용기가 필요한 법이죠.”


류지호가 뜬금없는 말을 남겨놓고 미팅룸을 떠났다.


“신 변호사, 저 젊은 대표가 트라이-스텔라를 먹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글쎄요. 류 대표는 우리가 잘 아는 한국말을 해도 해석이 필요할 때가 간혹 있어요.”

“서포트하기 힘든 부류구만.”

“지나치게 신중해서 그렇지, 일단 결정하면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으니까 넋 놓고 있다가는 낭패를 볼지도 몰라요. 외모만 보고 만만하게 보다간 큰코다쳐요.”


새로 합류한 변호사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생각했다.


‘파커와 그레이엄 가문의 관심을 받는 청년이 오죽하겠어?’


❉ ❉ ❉


후웁. 훕!


류지호가 대형 거울 앞에서 태권도 품새를 수련하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3단 승단심사를 볼 예정이다.

때문에 미국 체류기간 내내 가볍게라도 수련을 쉬지 않았다.

3단 심사의 지정 품새인 '금강'은 발차기가 없다.

그래서 저택 실내에서도 수련이 가능했다.

류지호는 '금강' 품새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한편으로 머릿속으로 이번 뉴욕방문을 돌아봤다.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다.

비록 인사치레였지만 미국에서 유명한 정치인과 안면을 텄다.

브루클린에서는 불량배들과 격투도 벌였다.

어쨌든 미국만 방문하면 항상 행운이 찾아오는 것 같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할리우드 배급사를 얻을 지도 모른다.

류지호는 고민 끝에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국의 사업보다 수십 배 아니 어쩌면 수백 배 큰 사업에 도전해보기로.

당장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행운이라기보다는 골칫덩어리일 가능성이 높았다.

한편으로는 뭔가 아귀가 맞는 느낌이다.

때마침 오동석에게 대박을 쳤던 영화 두 편을 긴급히 수소문하라고 했다.

기존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라인업에 그 영화들이 추가되면 한동안은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여전히 이 같은 기회가 얼떨떨하기만 했다.

내친걸음이다.

류지호는 실패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다.

비록 승승장구하지 못할지라도 실패할 것 같지도 않았다.


“떨어질 바닥도 없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은 거야! 아자! 빠샤!”


휘익.

팡. 팡. 팡!


류지호가 '금강' 품새에 없는 발차기를 허공에 퍼부었다.

온몸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물 먹은 솜처럼 변해있다.


쏴아아아.


찬물로 샤워를 하자, 피곤이 몰려갔다.

새로운 활력이 재생되는 느낌이다.

몸과 머리가 모두 개운해진 류지호가 욕실을 빠져나왔다.


“할아버지?”


언제 방에 들어왔는지 창가에 윌리엄 파커가 서있다.


“운동은 다 마친 것이냐?”

“제가 좀 시끄러웠죠? 하하.”

“오랜만에 함께 산책이나 할까?”

“좋죠.”


저택을 빠져나온 두 사람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파커 저택의 정원을 거닐었다.


“고요하군요. 마치 집주인의 성품을 닮은 것 같아요.”

“나도 네 나이 때는 천방지축이었다. 겁도 없고 자신만만했었지.”

“청년시절은 그게 정상 아닌가요?”

“내가 아는 어떤 소년은 그렇지 않던데? 항상 신중하지.”


류지호는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 딴청을 피웠다.

윌리엄은 미소 지으며 잘 가꾸어진 정원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자랑 같지만 이 정원은 아침이 다르고, 점심이 다르고, 저녁이 다르단다. 보통은 사람들이 정원을 산책할 때면 풍경을 먼저 보기 마련인데 넌 다르더구나. 길이나 통로 같은 지리부터 먼저 파악하는 것 같더구나.”

“......?”

“항상 쫓기는 표정을 하고 있어. 무언가에 빠져있을 때만 빼고.”


류지호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그랬어요?”

“원래 네 나이에는 감정 폭이 큰 법인데, 넌 침착하지. 그러다가 어떤 순간에는 충동적으로 행동하기도 하고. 매우 드물지만 말이다. 넌 정말 바쁜 십대를 보내고 있다. 얼마나 피곤하고 소란스러운 삶이냔 말이야. 앞으로 갈 길에 비하면 아직 그리 바쁜 삶을 살고 있지도 않아도 되는데, 네 녀석은 여유가 없어.”

“제가 그렇게 보였나요?”

“언제나. 이 할아버지가 너를 볼 때마다.”


류지호는 윌리엄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들뜬 기분이 안정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대니얼은 열정과 욕망을 자극하고, 윌리엄은 안정과 여유를 주문한다.

류지호가 평범한 십대였다면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을지도 몰랐다.

그럴 정도로 두 노인은 극과 극이다.

류지호가 어렵게 입술을 뗐다.


“제 딴에는 항상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했는데... 어쩌면 성공이라는 강박관념에 잡아먹혔는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는 여유를 가지도록 노력할게요.”

“네가 강해지면 된다. 진짜 강자는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이지.”

“네.”

“콜롬비아스 픽처스를 달라고 했다면서?”

“....하하.”


류지호가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며 검지로 볼을 긁적거렸다.

윌리엄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농담을 던졌다.


“10억 달러 줄까?”

“설마, 진심인 줄 아신 거예요?”

“1억 달러는 어떠냐? 공짜로 준다는 게 아니라 투자를 하겠다는 게야.”

“투자요?”

“네가 G&P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부자펀드의 0.5%. 그걸 네가 운영해 보라는 게다.”

“여유를 가지라면서요?”


막중한 부담을 주는 것 아니냐는 약간의 투정이다.


“지갑에 달러가 가득 차있으면, 없던 여유도 생기는 법이지.“

“......”

“지호야.”

“예. 할아버지.”

“대니얼과 대화를 해보 거라. 그는 나와 다르다. 그는 나와 다른 현명함이 있단다.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관과 그들의 성공비법을 듣고 좋은 점을 훔쳐. 그런 건 좋은 도둑질이야.”


적절한 충고다.

문제는.


‘상대하기 참 불편한 양반인데. 하아~.’


류지호는 윌리엄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 ❉ ❉


뉴욕, 이스트할렘의 레스토랑 라오스(Rao's).

이미 한 번 와본 곳이라 류지호는 두리번거리는 촌스러운 행동을 하진 않았다.

대니얼 그레이엄이 대뜸 류지호에게 성질을 부렸다.


“내 시간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전 그냥 밥 사달라고 말씀드린 것 밖에 없어요. 같이 밥 먹자고 하신 건 할아버지에요.”

“밥값을 말하는 게 아니잖느냐.”

“손자에게 용돈 줬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까?”

“입만 살아서는... 쯧.”


대니얼이 마음이 안 든다는 듯 혀를 가볍게 찼다.

류지호는 성질 못 된 노인네의 카리스마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나름 애쓰고 있다.

또박또박 말대꾸라도 하지 않으면, 눈도 못 맞추고 쩔쩔맬 것만 같았다.

그럴 정도로 대니얼 그레이엄 자체가 가진 아우라가 대단했다.

윌리엄이 류지호에게 메뉴판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무얼 먹을지 골라보자.”

“네.”

“얄미운 놈. 윌리엄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굴면서 내게는 참 뻔뻔하단 말이야.”


류지호는 못들은 척 바쁘게 메뉴판의 페이지를 넘겼다.

대니얼이 그 모습을 보며 남몰래 피식 웃어버렸다.

종업원이 세 사람의 음식을 주문받고 돌아갔다.


“자료는 충분히 검토해 보았냐?“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려라고 생각해?”


윌리엄은 시비조로 나오는 대니얼을 제지할 겸 홍차가 담긴 잔을 내밀었다.


“지호 마셔봐. 꽤 향과 맛이 일품이야.”


후르륵.


“하아~”


류지호가 처음으로 경험한 차향과 맛이다.

향긋한 차 맛에 잠시 넋을 놓을 뻔했던 류지호가 아차 하며 정신을 차렸다.


“아, 죄송해요.”


대니얼이 툭하고 물었다.


“어떠냐? 이제 부자가 될 준비가 되었느냐?”

“부자가 되고 싶다고 되는 건가요? 최선을 다 해보려구요.”


대니얼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류지호에게 긴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자라고 하는 이들은 부를 획득하고 축적하는 것을 간절히 바랐고, 그 간절한 바람은 결국 성공을 가져왔다. 그래서 매우 열정적이며 집요하지. 대부분의 부자들은 30대를 가장 치열하게 살았다. 그 나이에 일해서 번 돈이 그 외에 투자를 통해 벌어들인 수입보다 많다. 나이가 들면 돈이 요리조리 잘도 피해간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돈을 모으기보다 지키는데 주력하게 되는 거다.”


대니얼이 물을 한 모금 마셔 입안을 적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기회는 선전포고 없는 전쟁처럼 다가온다. 꾸준하게 총알을 재어놓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전쟁은 터지게 되어 있어. 그 전쟁은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재앙이다. 승리자가 모든 것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미 늦었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아.”


류지호가 농담을 담아 말했다.


“부자도 군인처럼 훈련이 필요하겠네요?”

“당연하지. 부자가 되는 출발점은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욕심은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목표를 정하면 집요하게 실천을 하지. 또, ‘돈을 쓰는 맛’보다 ‘돈을 벌고 모으는 맛’을 즐긴다. 부자들은 일찍 돈에 눈뜨고 남들보다 빨리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다. 그 실천의 와중에서 자신들을 위한 기회를 만나는 거고.”


윌리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기 원칙을 칼처럼 적용하는 사람이 부자야.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칙이 중요한 법이지. 누구나 한번쯤은 실수할 수도 있어. 하지만 다시 한 번 원칙을 어기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걷잡을 수 없단다. 조언에 귀를 기울이거라. 무인도에서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혼자만의 힘으로 성공할 수 있겠느냐. 부자들은 자신이 잘 아는 분야라도, 웬만하면 남의 의견을 들어 요모조모 따진 후에 결정한단다.”


대니얼은 류지호를 몰아세우며 시험하려 한다.

반면에 윌리엄은 키우려고 한다.

류지호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답답함이 밀려왔다.


“찔끔찔끔 돈을 준다고 해서 섭섭해 하지 마라.”

“지금까지 많은 호의를 베푸셨는데 섭섭하다니요. 전 꿈에라도 그런 생각 안 해요.”


윌리엄이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부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뭔 줄 알아?”

“욕망이요? 원칙이요?”

“부자의 처음과 끝은 결혼에 있단다.”

“......?”

“내조 잘하는 여자를 만나는 것은 가장 큰 복이야. 이상적인 배우자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 가난도 상속될 수 있으며 돈 쓰는 습관은 유전돼. 자식을 망치기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식이 원하는 모든 걸 갖도록 해 주는 것이야. 그걸 아는 부자들은 자녀들에게 가난의 위험에 스스로를 대처하도록 훈련시켜준단다. 그걸 하는 것이 바로 현명한 어머니지.”

“흥!”


대니얼이 콧방귀를 뀌며 물 컵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자식 이야기에 속으로 열불이 터지는 대니얼이다.

류지호가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두 분 가문의 조상님들은 어떻게 부를 일구셨어요?”

“파커는 밀농사에서 시작해서 농업과 목축을 크게 일으켰지, 나는 뉴욕에 살고 있지만 가문의 고향은 서부란다.”

“아, 파커스 필드요?”

“그래, 나의 가문에서 키운 농작물들이 전 세계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단다.”

“우리 가문의 사업은 철도 침목을 공급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산림목재업에서 기원했고, 지금은 헬기까지 만들어내는 기업을 가지게 되었지.”


대니얼이 자부심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농사를 짓다보니 농기구를 만들 대장간이 필요했고, 나중에는 트랙터와 농작물의 가공공장까지 만들게 되는 거지. 같은 이유로 그레이엄은 전기톱을 만들고, 목재가공 공장을 만들고, 그러다보니 결국 항공기 사업까지 확장하게 된 거야.”


윌리엄의 말을 다시 대니얼이 받았다.


“나와 윌리엄은 현찰, 금, 미술품, 기업체, 주식, 채권 무수히 많은 재산이 있다. 헌데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건 산과 들이다. 나는 산을 윌리엄은 들을.”

“우리는 넓고 포근한 대지를 좋아하지, 그레이엄은 기상이 드높은 산을 좋아하고.”


가풍이 곧 자손들의 성품으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높은 곳에서 굽어보며 군림하고 싶어 하는 그레이엄.

넉넉한 품으로 타인을 품고 싶어 하는 파커.


“그럼 저는 세계의 지붕이라는 티베트 고원을 좋아해야겠어요. 높고 넓잖아요.”


하하하.


류지호의 말에 두 노인 대소를 터트렸다.

손님들이 시선이 일제히 그들의 테이블로 쏟아졌다.

세 사람은 그런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작가의말

사전투표를 하신 분들이거나 투표연령이 안 되신 분들에게는 오늘은 그저 휴일일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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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초심을 잃은 것은 아닙니까? (1) +10 22.03.21 7,322 185 19쪽
113 야망이거나 사명감이거나. (2) +6 22.03.19 7,464 184 24쪽
112 야망이거나 사명감이거나. (1) +9 22.03.18 7,507 189 20쪽
111 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타다! (5) +9 22.03.17 7,595 197 24쪽
110 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타다! (4) +9 22.03.16 7,529 198 25쪽
109 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타다! (3) +6 22.03.15 7,540 186 21쪽
108 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타다! (2) +7 22.03.14 7,591 193 27쪽
107 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타다! (1) +6 22.03.12 7,890 183 26쪽
106 Tri-Stella Pictures. (5) +6 22.03.11 7,639 195 22쪽
105 Tri-Stella Pictures. (4) +4 22.03.10 7,841 191 28쪽
» Tri-Stella Pictures. (3) +6 22.03.09 7,766 190 20쪽
103 Tri-Stella Pictures. (2) +5 22.03.08 7,830 185 22쪽
102 Tri-Stella Pictures. (1) +8 22.03.07 8,062 196 22쪽
101 흐르는 강물처럼. (2) +10 22.03.05 8,001 200 27쪽
100 흐르는 강물처럼. (1) +13 22.03.05 7,855 185 23쪽
99 시카고 국제영화제. (2) +23 22.03.04 8,090 212 26쪽
98 시카고 국제영화제. (1) +8 22.03.03 8,091 181 23쪽
97 WaW는 젊은 회사다. (2) +4 22.03.02 7,937 202 24쪽
96 WaW는 젊은 회사다. (1) +5 22.03.01 8,059 19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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