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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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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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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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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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타다! (5)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댈런 맥컬리가 계약서를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았다.


“사전에 대략적인 계약조건은 충분히 들었네. 지분 빼고 다른 건 내 의사를 많이 반영해 줬더군.”

“지난 번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경영에 간섭할 생각이 없습니다.”

“현명한 선택이야. 지원은 확실히 해줘야 하네.”

“물론입니다.”

“이거 내가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그런데, 왜 오라이언에서 나오려고 하신 겁니까?”

“친구들과 의견대립이 좀 있었네. 그렇다고 그들과 사이가 틀어진 건 아냐.”

“콜롬비아스가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면서요?”

“소닉이 하는 거지. 콜롬비아스가 하는 건 아니라네.”

“그게 그거 아닙니까? 트라이-스텔라는 월가의 투자회사에서 인수했습니다만.”

“자네는 영화감독이지 않은가?”

“아직 감독이라 불릴 정도는 아닙니다.”

“소닉은 비디오를 팔아먹는 사람들이지.”

“......?”

“그들이 진정으로 영화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에서 보람을 느낄 것 같지 않아.”

“비즈니스맨이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시네요.”

“마빈 코트너 영화에 제작비를 대고, 배급도 가져왔다면서? 그 영화에 투자한 건 미친 짓이야. 물론 나는 기꺼이 박수를 쳐줄 테지만.”

“그 이야기는 도대체 누구에게 들으신 겁니까?”

“누구일 것 같나?”


분명 내부자들이 외부에 흘리고 다닐 터.

재무와 운영, 제작 쪽 부서 소행일 확률이 높았다.

오피셜이 뜨기도 전에 이렇듯 정보가 줄줄이 새고 있으니.


“이런 식이라면 우리 프로젝트를 온 할리우드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거네.”

“그렇다고 무작정 해고할 수도 없잖습니까?”

“내게 맡기게. 그런 일 하라고 날 사장으로 데려온 것 아니겠나?”


모리스 메타보이가 류지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의 말투가 친근해졌다.


“고언 형제의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면서?”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그들의 영화는 돈이 안 돼.”

“때로는 돈이 안 되더라도 찍고 싶은 영화가 있기 마련이죠.”

“좋은 자세야. 내가 만드는 영화로 돈을 못 벌수도 있어. 난 오스카를 포함해 영화상에 욕심이 많거든.”

“돈은 제가 벌면 됩니다. 그 돈으로 좋은 영화 많이 만들어주세요.”

“그 말은 내가 오너인 자네에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렴 어떻습니까? 오스카를 수상한 영화도, 돈을 벌어주는 영화도 모두 트라이-스텔라 영화일 텐데요.”


하하하.


모리스 메타보이가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앞으로 자네가 연출할 영화는 내가 세심하게 살펴주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오스카에 관심 없습니다. 당장은....”

“그럼 칸이나 베니스?”

“일단 선댄스부터..... 아닙니다.”


류지호는 포부를 말하려다 말았다.

모리스 메타보이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CEO가 된다고 해도 비즈니스 관계일 뿐.

흉허물을 터놓고 지낼 사이는 아니다.


“혹시 자네 민주당을 지지하나?”

“선댄스가 민주당하고 무슨 상관인지.....?”

“시카고 시장하고 친하다면서?”

“선댄스 영화제는 그 옆 동네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류지호가 은근슬쩍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소용없다.


“테일리 가문하고 친분이 있다던데?”

“CIA라도 움직였습니까? 정말 제 신상을 세세하게도 조사하셨네요.”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지. 시간이 없어 한국에는 사람을 보내지 못했어.”

“제 뒷조사는 그만 두세요.”

“이미 알 건 다 알아봤다네.”


모리스 메타보이가 볼 일을 다 마쳤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라이언! 정리하는 대로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하지.”


모리스 메타보이가 크고 두툼한 손을 내밀었다.

류지호가 그의 손을 붙잡고 힘차게 악수를 나눴다.

이로서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는 유능한 최고경영자를 영입하게 됐다.

영화판에서 제작자가 유능하다는 말은 작품을 고르는 눈보다 파이낸싱과 네트워킹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모리스 메타보이는 모두를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류지호는 모리스 메타보이를 현관까지 배웅했다.

샘 리버먼이 류지호에게 물었다.


“사람 상대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

“메타보이씨와는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데, 매우 친근한 관계처럼 보였습니다.”

“아, 그거요?”


굳이 50대의 정신연령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윌리엄 파커와 대니얼 그레이엄.

두 거물 노인과 허물없이 지내다보니, 웬만한 사람들 앞에서는 긴장이 안 된다.

문득 류지호는 죠셉의 말이 떠올랐다.


‘네 위치를 자각할 필요가 있어.‘


이래서 기준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와, 어떤 신분의 사람들을 주로 접하느냐에 따라 태도와 행실이 달라진다.


‘고맙습니다.’


류지호는 저 멀리 뉴욕에 있는 두 노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분들 덕분에 누굴 만나도 기죽지 않을 수가 있게 되었으니까.

언제나 당당할 수가 있으니까.


✻ ✻ ✻


모리스 메타보이의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CEO 취임이 정식으로 발표되었다.


휘익!

짝짝짝!


직원들은 신임 CEO를 열렬히 환영했다.

그 모습을 통해 모리스 메타보이의 할리우드에서의 평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펑!펑!펑!

사진기자들이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자,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모리스 메타보이의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CEO 취임은 할리우드의 빅뉴스다.

주인이 바뀐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로의 이적이었기 때문이다.

류지호는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직 신분을 언론에 노출해선 안 되기에.


- LA 타임스의 존 스톨슨입니다. 가람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회사가 G&P의 페이퍼 컴퍼니라는 소문이 있는데, 실체를 확인해 줄 수 있습니까?

“그 부분은 존이 직접 뉴욕으로 가서 G&P에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방금 전에도 밝혔지만, 트라이-스텔라의 모회사인 가람 인베스트먼트는 5년 간 총 1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는 구두약속이 아닌 정식 계약이 체결된 사항입니다. 또한 그간 G&P는 할리우드 영화투자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우리는 향후 그들과 좋은 파트너쉽을 가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예정입니다.”

- 프리미어지의 카렌이에요. 가람 인베스트먼트의 오너가 베일에 가려져 있는데, 언제 공식석상에 나타나는 겁니까?

“멀리 뉴욕에서도 오셨군요. 가람 인베스트먼트의 오너가 낯을 많이 가립니다. 그는 트라이-스텔라가 준비하고 있는 훌륭한 영화에 투자하기 위해 오늘도 어디에선가 돈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가 곧 여러분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흥미로운 등장이 될 거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모리스 메타보이는 여유롭게 기자들의 질문을 받아 넘겼다.

날카로운 질문에는 유머로,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비전에 대한 질문에는 진지한 태도로 답을 내놓았다.

미국의 거의 모든 신문과 할리우드 주요 소식지에서 모리스 메타보이의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CEO 취임이 주요 뉴스로 다루어졌다.

소닉의 콜롬비아스 인수합병이란 빅뉴스에 가려져 있던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에 대한 월가 투자회사 인수 뉴스 또한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호사가들의 추측과 억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이에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는 가람 인베스트먼트의 실체에 대한 것을 뉴욕의 G&P로 떠 넘겼고, 당연하게도 G&P는 공식적인 확인을 해주지 않고 애매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언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파커가에서 지호 류라는 청년에게 트라이-스텔라를 선물했다는데?”

“그 꼬마는 이제 18살이야. 차라리 포르쉐를 선물했다면 믿을 수 있지만, 트라이-스텔라와 연관 짓는 건 너무 나갔어.”

“그렇다면 파커가문의 자식들 중에서 누가 있지?”

“그렉과 노아가 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가?”

“그들은 옥수수와 밀 외에 다른 건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야. 아이오와를 떠날 생각이 없는 남자들이라고.”

“윌리엄이 다시 일선에 나서시는 건 아니겠지?”

“그분은 조용히 여생을 보내겠다고 이미 선언 하셨어. 다시 일선에 나서는 일은 없을 거래.”

“그럼, 도대체 가람 인베스트먼트의 주인이 누구야?”


G&P를 수시로 들락날락거리는 류지호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류지호는 여전히 행운의 꼬마였고, 파커 가문의 장학생으로 여겨질 뿐이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오너에 대한 각종 소문도 보름이 지나자 시들해졌다.

언제나 미국은 뉴스가 넘쳐났다.

호사가들은 새로운 소재거리를 찾아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모리스 메타보이 신임 CEO가 출근을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에서 첫 번째 소식이 들려왔다.

재무이사와 제작이사가 돌연 퇴직을 한 것.

그들과 함께 부서 직원 5명도 회사를 떠났다.

모리스 메타보이가 장담한 대로 내부정보를 외부에 흘리고 다니던 이들을 쳐낸 것이다.


❉ ✻ ❉


서울 신사동 가온웨딩 스튜디오.

래리 킴이 LA에 체류 중인 류지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절 믿습니까?”

- 솔직히 말해 모르겠어요.

“신뢰하지도 않으면서 류 대표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뭡니까?”

- 없어요. 단지 래리 아저씨는 대니얼 할아버지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


후우.

래리 킴이 한숨을 내쉬었다.


- 가온웨딩보다 할리우드가 더 폼 나잖아요? 기회만 되면 미국으로 옮기려고 하셨잖아요.

“그런 재주로 어떻게 모리스 메타보이 같은 거물을 설득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 진심은 통하는 법이죠.


래리 킴은 말문이 막혔다.

어째 류지호가 점점 더 능글맞아지는 것 같았다.


- 같은 한민족, 동포끼리 서로 돕고 사는 걸로 어떻게 안 되겠어요?

“될 것 같습니까?”

- 돈으로 신뢰를 만드는 게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네요. 일단 LA에서 가족과 지낼 수 있는 집과 승용차, 연봉은 G&P Senior Director(이사급) 수준으로 맞춰 줄게요. 완전히 이직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G&P에서 트라이-스텔라로 파견 나오는 걸로 해서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고.

“제가 할 일은 뭡니까?”

- 재무업무 볼 수 있어요?

“업무는 볼 수 있지만 전문가는 아닙니다. 차라리 매튜에게... 아닙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류지호의 단호한 음성이 들려왔다.


- 맷은 약물중독 재활치료를 받고 있어서 안 됩니다.


래리 킴 고문은 대니얼 그레이엄 회장의 명령에 따라 한국에 와 있다.

회장이 미국으로 불러들이지 않으면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할 판이다.

그걸 벗어나는 방법은 G&P를 떠나는 것밖에 없다.

월가에서도 손에 꼽히는 직장이 G&P다.

제 발로 뛰쳐나오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래리 킴이 G&P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경력을 인정받아 그레이엄 가문 계열 기업의 최고경영자로 영전하고 싶은 야망이 있기 때문이다.


- 나중에 가온웨딩 스튜디오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라가게 해줄 생각이긴 했어요. 헌데 지금 이곳 사정이 더 급하게 되었네요. 래리도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게 좋잖아요.


그깟 구멍가게 수준의 가온웨딩은 래리 킴의 안중에도 없다.

다만 저 멀리 있는 대니얼 그레이엄 회장보다 가까이 있는 류지호가 자신의 목줄을 움켜쥐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어쩌면 자신은 회장에게 잊힌 사람일지도 몰랐다.

차라리 자신을 인정해주는 류지호에게 몸을 의탁하는 것이 어떨까.

콜롬비아스 같은 메이저 스튜디오였다면 더 좋았을 것을.

하지만 류지호는 아직 십대다.

하루가 다르게 Big Shot(거물)으로 성장해가는 류지호다.

초창기부터 함께 하다보면 자신도 언젠가 더 높은 자리에 있지 말라는 법도 없다.

망설이는 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받아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잘 생각하셨어요. 심 이사님에게 인수인계 잘하시고요.

“가온웨딩 스튜디오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 이번에 신효정 변호사의 파트너들 보니까 다들 유능하더라고요. 기업 재무에 밝은 김정호 변호사가 심 이사님을 서포트하기로 말을 맞췄어요.

“알겠습니다. 한국을 정리하고 곧바로 LA로 넘어가겠습니다.”


딸깍.


래리 킴이 기대와 불안감이 뒤섞인 얼굴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길로 심재우를 찾아간 래리 킴이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보던 업무 전반을 인계하기 시작했다.


❉ ❉ ❉


모리스 메타보이가 가지고 있던 오라이언 픽처스의 17%의 지분이 모두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로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모리스 메타보이는 5%의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지분을 챙겼다.

새롭게 주주가 추가됨으로 해서 뉴욕에서 제임스 파커가 LA로 날아왔다.

가람 인베스트먼트는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를 인수할 때 전임 경영진과 콜롬비아스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및 기타 개인 소유 지분 모두를 확보했다.

사실상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지분을 소유한 외부세력은 G&P가 유일했다.


“가람은 지분율을 몇 퍼센트까지 끌어올릴 생각이지?”


제임스의 물음에 류지호가 대답했다.


“최종적으로 65%요.”

“경영권 방어차원이라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알아요. 그래도 메타보이씨와 함께 70% 지분은 보유하고 싶네요.”

"G&P의 지분을 모두 넘길까?“


제임스 파커는 별로 아쉬울 것이 없다는 투다.

기업가치가 3억 달러가 겨우 될까 말까한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가람 인베스트먼트에 모든 지분을 넘기고 그 자금으로 LOG 컴퍼니나 워너브로스의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했다.


“당장은 가람도 여력이 없어요. 증자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따로 말씀드릴 게요.”

“나머지 30% 지분으로는 뭘 하려고?”

“제휴 영화사와 지분교환을 하거나 트라이-스텔라에 공헌한 임원들에게 약간의 스톡옵션을 줄까 해요.”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모리스 메타보이가 끼어들었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는데 그것만한 것도 없지.”

“메타보이씨.”

“Moe라고 편하게 부르게.”

“라이트닝스톰의 지분을 확보하고 싶어요.”

“캐머런의 라이트닝스톰(Lightning Storm entertainment)?”

“예.”

“트라이-스텔라의 제휴사가 아닌데?”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트라이-스텔라로 완전히 가져오고 싶어요. 그리고 제이미 캐머론이 준비 중인 영화에 관심이 많아요.”

“물론 캐머론이 전도유망한 감독이라는데 나 역시 동의해. 그렇다고 그의 영화사 지분까지 확보하는데 자금을 사용하는 것에는 동의해줄 수 없네.”

“조지프 루카스처럼 혁명적인 수준의 영화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그는 CGI를 동원한 첨단영화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아요. <어비스>와 <터미네이터>는 그를 한층 성장시켜줄 겁니다.”

“나로서는.... 글쎄라고 말하겠네.”


모리스 메타보이가 미심쩍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조셉 콜롬버스 감독도 관리 잘 해주시고요.”

“존 휴즈가 아니고 조셉 콜럼버스인가?”

“휴즈씨에겐 미안하지만, 그와는 <나 홀로 집에> 각본까지일 것 같아요.”

“나보다 더 할리우드 사정에 밝아. 휴즈 엔터 같은 작은 프로덕션의 사정까지 꿰뚫고 있다니.”


모리스 메타보이가 제임스 파커를 쳐다봤다.

마치 당신들이 조종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다.


“혹시 조셉 콜롬버스가 프로덕션을 설립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지원해 주세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도 확보하고요. 라이트닝스톰도 그래주시면 고맙고요.”


제임스 파커가 껄껄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기업사냥꾼이 되기로 작정했어?”

“트라이-스텔라가 언제까지 일 년에 12편만 배급하는 것에 머물러있겠어요? 10년 후에는 전 세계에 30편을 배급해야죠. 흥행산업은 어떤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알 수 없다면서요? 다양한 제휴 프로덕션과 계약하고 그 회사들에게 관여할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니겠어요?”


모리스 메타보이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빅 식스의 일원이 되고 싶은 모양이군.”

“빅 원이 되고 싶죠. 그렇게 만들어 주시면 고맙고요.”

“힘써보겠네.”

“<양들의 침묵>은 조나단 데미가 연출하기로 했다죠?”

“나와 두 작품을 함께 하기로 계약이 되어있다네.”


모리스 메타보이는 오라이언 픽처스에서 자신이 기획하고 제작하기로 예정된 프로젝트를 모두 가지고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로 넘어왔다.

그 중에 한 편이 바로 <양들의 침묵>이다.


“앤드류 바나의 캐롤코 지분을 매입할 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터미네이터>와 <클리프 행어>로 만족하게. 침몰하는 배에 올라타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만약에... 캐롤코가 파산하게 된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던 판권은 어떻게 되는 거죠?”

“입찰에 붙여지겠지. 이미 만들어진 영화와 보유하고 있는 스크립트의 권리 모두.”

“알겠어요. 캐롤코에 대한 건 이제 더 이상 거론하지 말도록 해요.”

“고언 형제도 계약을 해야지?”

“아참. 그들을 잊고 있었네요. 고마워요. 그리고 제임스 에이브러햄하고는 이야기 해봤어요?”

“요상한 코미디를 만드는 돌아이 같은 그 에이브러햄?”


하하하.


류지호가 배를 잡고 웃었다.

제임스 에이브러햄은 일명 ZAZ사단이라고 불리는 무리에 속해있는 코미디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이다.

ZAZ 사단의 가장 크게 알려진 영화는 <총알 탄 사나이>가 있다.

영화를 감독한 ZAZ 사단의 고든 주커는 현재 <사랑과 영혼>의 포스트 프로덕션 중이었고, 각본을 쓴 제임스 에이브러햄은 <록시>의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하하....


류지호가 눈물이 맺힌 눈가를 손가락으로 쓸어 닦아냈다.

캐롤코 픽처스 지분 인수 포기로 섭섭해진 감정이 단숨에 날아가 버린 기분이다.


“그들에 대한 평가에 백만 배쯤 동의해요. 그들은 진정한 괴짜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꼭 그들의 영화를 제작해야겠나?”

“저는 금고를 채울게요. Moe는 오스카경을 모셔오세요.”


아카데미상 트로피는 필름 감는 릴의 받침대 위에 가슴 높이까지 오는 장검을 두 손으로 짚고 서 있는 중세 기사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기사의 애칭이 바로 오스카다.

여담으로 아카데미 트로피를 오스카라고 부르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오스카상이란 명칭을 쓰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39년부터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WaW 픽처스와도 제휴계약을 해주시고요.”

“소유와 경영은 철저히 분리한다면서?”

“좋은 게 좋은 거죠. 뭘 쫀쫀하게 구세요. 한국영화 전체 시장 규모가 트라이-스텔라가 일 년간 굴리는 자금보다 적어요. 욕심 부리지 마세요.”

“WaW라는 자네 회사가 트라이-스텔라 영화를 독점적으로 배급하게 되는 건가?”

“모두를 배급할 순 없어요. 당장은 5편이 한계에요.”

“알겠네. 지분도 정리가 되었고, 라인업은 다시 한 번 정리해보는 걸로 하지.”


대주주 세 명이 특별한 이견 없이 대략적인 사안에 대해 합의를 봤다.

제임스 파커는 최대한 류지호의 편의를 봐주려고 했다.

모리스 메타보이로서도 특별히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 아니어서 대체로 수긍했다.

대주주 미팅을 마친 제임스 파커는 곧바로 뉴욕으로 떠나야 했다.

LA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제임스 파커가 류지호에게 물었다.


“정말 트라이-스텔라 경영에는 참여 하지 않을 셈이야?”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겨야죠.”

“다섯 편의 권리가 최소한의 안전장치고?”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내가 보기에 썩 괜찮은 인사를 CEO에 임명한 것 같아.”


류지호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으로 언제 돌아갈 계획이지?”

“WaW 픽처스와 제휴 계약을 체결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귀국하려고요.”

“미국의 사업은 어떻게 하고.”

“가람 인베스트먼트는 당장 투자파트 실무자도 없고, 트라이-스텔라는 메타보이 CEO가 당분간 회사 내실을 다져야 하겠죠. 저는 대학 입학을 준비해야 하고요.”

“믿을 만한 사람을 재무와 운영 파트에 심어둬야 해.”

“일단 한국에서 래리 킴을 불렀어요.”

“대니얼의 사람 아니었어?”

“그 동안 정이 들기도 했고. 같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데 생판 모르는 미국인들보단 나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샘과 스탠, 댈런, 로이 같은 임원들에게 스톡옵션을 나눠주면서 환심을 사보려구요.”

“우리 가족 말고 따로 네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 혹시 보안을 책임진다는 CIA 출신 직원?”

“없어요.”


제임스 파커는 속으로 매우 놀라고 있었다.

이제 열여덟 살 밖에 안 된 류지호가 직원이 수백 명인 기업의 대주주로서 매우 능숙하게 처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너와는 다이렉트로 연결이 되도록 해놨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상의할 것이 있으면 연락을 하도록 해.”

“매번 감사드려요.”


전용기를 타고 LA를 떠나는 제임스 파커를 배웅한 류지호는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조엘, 나와의 약속을 지켜요.”

- 무슨 약속?

“나와 영화를 찍겠다는 약속이요.”

- ......?

“어디 머물고 있죠? LA? 뉴욕?”

- 버뱅크 시티.

“잘 됐네요. 내일 바빠요?”

- 별로.

“내일 컬버시티의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로 오세요.”

- 영화사에서 인턴이라도 해? 아니지 아직 대학생도 아니지?

“와보면 알아요.”


다음날 고언형제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로 찾아왔다.


“뭐라고?”


고언 형제가 매우 놀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류지호를 즐겁게 만들었다.


“어디 가서 떠벌리지는 말아줘요.”

“왜?”

“아시아 출신 청년이 할리우드 중견 스튜디오의 오너라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어요.”

“소닉의 콜롬비아스 인수 뉴스보다 더 큰 파장이 있겠군.”

“어차피 두 사람은 나와 약속을 지키는 것이지만, 작업은 트라이-스텔라와 하게 되잖아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되었으면 하네요.”


동생 에단이 류지호에게 스크립트 한권을 건넸다.

슬쩍 들춰본 류지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혔다.


“<밀러스 크로싱>을 찍는데, 터튜와 굿맨이 언더웨어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거야. 형은 거대하지만 오래된 호텔이 떠올랐다고 하더라고. 우리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호텔에 처박혀서 이걸 완성시켰어.”

“좋아요. 이 스크립트는 다이렉트로 기획부서로 갈 겁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요.”

“친구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 말을 남기고, 고언 형제는 트라이-스텔라를 떠났다.

<바톤 핑크>.

내년도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라인업에 영화 한 편이 더 추가되었다.

류지호가 오늘 받아 든 이 스크립트가 슈팅스크립트(촬영본)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면 알아서 영화를 만들어 올 것이다.


쿨쿨.


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호텔로 돌아온 류지호는 밤새 꿈을 꿨다.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말이 힘차게 달려와 류지호의 앞에 멈춘다.

얌전하게 등을 보이기까지 한다.

류지호가 안장도 없는 백마의 등에 올라탄다.


펄럭.


백마의 옆구리에서 거대한 날개가 활짝 펼쳐진다.


달그닥. 탁탁.


앞발로 땅을 몇 번 구르던 백마, 페가수스가 힘차게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 깃털들이 흩날리며 페가수스가 드높은 창공을 비행한다.

커다랗게 원을 그리더니, 더 멀리 날아오른다.

마치 태양을 향해 날아갈 것처럼.

류지호는 밤새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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