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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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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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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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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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타다!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가 묵고 있는 호텔로 프로듀서 알버트 마샬이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묵직한 가방이 들려있다.

운영이사 로이 톰슨이 그를 안내했다.


“반갑습니다. 지호 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알버트 마샬입니다. 친구들은 알이라고 부릅니다.”

“스파이 영화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내 존재가 외부에 드러나는 게 영화사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이해합니다.”


어린 나이, 게다가 아시아계 청년이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실질적인 오너라는 사실은 할리우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아주 좋은 소재거리다.

주로 부정적인 이야기일 것이 확실했다.

알버트 마샬은 샘 리버먼과도 악수를 나눴다.


“샘도 이곳에 있었군.”

“그렇습니다. 알...”

“안쪽으로 오시죠.”


류지호가 객실 안쪽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일행은 커피를 마시며 잠시 담소를 나눴다.

주요 화제는 알버트 마샬이 제작했던 영화들이다.

특히 알란 파커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에 대해 류지호가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알버트 마샬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의 영화는 지나치게 우울하고 비관적이죠. 소수의 비평가와 영화팬들이 열광하는 영화를 만드는 건 제작자의 배를 곪게 하는 일입니다.”

“예술가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하는 건 잔인한 일인 것 같습니다.”


류지호의 말에 알버트 마샬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알버트 마샬이 가방에서 두툼한 파일을 한 권 꺼냈다.

류지호에게 충분히 자신을 어필했다고 여겨 본격적인 대화를 나눌 심산이다.

알버트 마샬이 백과사전 두께의 파일을 넘겨가며 류지호에게 눈 덮인 산악사진을 계속해서 보여줬다.


“레니 하르올라가 캐롤코에서 스탈론과 허리케인에 휩쓸릴 위기에 처한 마을을 구하는 해군 대원에 관한 영화를 찍을 예정입니다. 그 작업을 마친 후 지금 보고 있는 어드벤처 영화에 참여할 겁니다. 원래 이 영화를 캐롤코와 진행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재정에 의구심을 품고 있지요.”

“마샬씨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영화 콘셉트가 산악인 존 롱에서 기인한 것 맞습니까?”

“그걸 어떻게...?”


알버트 마샬이 놀라거나 말거나 류지호는 제 할 말만 했다.


“상당한 예산이 들어가겠군요?”

“최소 6,500만 달러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스크립트는 현재 작업 중입니까? 아니, 작가와 계약은 했습니까?”

“마이클 프랭크가 초안을 쓸 예정입니다. 스탈론이 각본에 참여하고 싶어 해서... 캐롤코가 제작하는 영화작업이 끝나면 합류할 것입니다.”

“캐롤코와 계약을 마친 상태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주요 아이디어는 스탈론에게서 나왔습니다. 캐롤코에 작가와의 계약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그렇다면 각본 작업은 시작하지도 못했겠군요?”

“그렇습니다.”

“트라이-스텔라가 그 영화를 제작하길 바란다면 레리 하르올라, 스탈론, 마이클 프랭크의 계약서를 가져오십시오.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빠진다면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알버트 마샬이 손으로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류지호는 그가 충분히 고민할 수 있도록 내버려뒀다.

잠시 고민하던 알버트 마샬이 생각을 끝내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들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캐롤코와 트라이-스텔라는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서로 오해가 발생할 일이 없어야 합니다.”


알버트 마샬이 힘주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캐롤코에서 판권을 구입한 <원초적 본능>은 곧 촬영에 들어간답니까?”


류지호는 <원초적 본능>도 손에 넣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그럴 수 없었다.

이미 80년대 초에 여러 영화사들 사이에서 입찰 경쟁까지 벌어질 정도로 누구나 탐내던 시나리오였다.

캐롤코 픽처스가 모든 영화사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6년 전 300만 달러를 지불하고 판권을 구입했다.

당시로서도 과다한 금액이라는 뒷말이 있었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제작에 참여할 수 없었다.

다만 배급계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흥행시 배급 수수료는 챙길 수 있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영화가 그렇다.

1년 준비해서 제작에 들어가는 영화가 있고, <원초적 본능>처럼 5~6년간 수없이 많은 각색 작업을 거치고, 캐스팅에 난항에 부딪쳐 표류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제작되기도 한다.


“캐스팅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미키 더글라스는 계약서에 사인했는데, 파울 페후벤이 원하는 데미 가인스가 출연을 거절 한 모양입니다.”

“결국 섀런 스톤이 여주인공을 차지하게 되겠군요?”

“모델 출신의 스톤양을 말하는 겁니까?‘

“<토탈 리콜>에서 파울 페후벤 감독과 작업을 했잖습니까?”

“5,000만 달러짜리 영화에 그녀는 무리지 싶은데.....”

“그건 두고 보죠. 또 내게 제안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습니까?”


알버트 마샬은 한참동안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를 류지호에게 열심히 소개했다.

일종의 미니 피칭(투자유치 프레젠테이션)이랄 수 있었다.

<클리프 행어>를 빼고 류지호의 관심을 끄는 기획은 없었다.

알버트 마샬은 영국 생활을 접고 할리우드에 완전히 정착하기로 했다.

LA에 집까지 마련해 두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제작을 이어가려면 안정적인 파트너가 필요했다.

G&P라는 월가의 거물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캐롤코 픽처스보다 끌리는 것은 당연했다.


“아까 이야기한 세 사람의 계약서를 가지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오늘 투자설명은 인상 깊었습니다. 앞으로 트라이-스텔라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길 바랍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알버트 마샬이 호텔을 떠나갔다.

류지호는 이번 만남을 통해 알버트 마샬이 유능하면서 철두철미한 성격임을 알 수 있었다.

분명 대단한 프로듀서다.

다만 그의 주 활동무대가 영국이었다는 점.

이렇다 할 할리우드의 인맥이나 영향력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놓치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중용하자니 할리우드 네트워크가 모자라고.


“그를 부사장으로 앉히면 어떻겠습니까?”


로이 톰슨이 다소 김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대표이사감은 아니라고 판단한 거군요?”

“리버먼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애매합니다. 실무능력을 보았을 때 제작부문을 총괄해주면 좋을 것 같긴 합니다만...”


샘 리버먼이 말끝을 흐렸다.

그로서도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모리스 메타보이씨가 중심을 잡아주고, 리버먼씨가 보좌하고, 마샬씨가 실무를 진두지휘하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로이 톰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일단 메타보이씨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보고 나서 판단합시다.”


류지호가 잠정 결론을 내렸다.


❉ ❉ ❉


뉴욕 맨해튼의 G&P 빌딩.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류지호가 오라이언 픽처스 지분 인수자금과 영화 두 편에 대한 투자자금을 수혈 받기위해 제임스 파커와 면담하고 있다.

류지호가 작성한 투자기획안을 꼼꼼하게 읽어본 제임스 파커가 서류파일을 덮었다.


“순전히 감이라는 거네?”

“영화흥행은 숫자로 예측할 수 없어요. 잘 아시잖아요.”

“오라이언에 대한 네 전략은 나쁘지 않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 될 거라고 예상해요.”

“나도 나름대로 그쪽 사정을 알아봤어. 오라이언의 경영진은 조바심에 여기저기 자금을 끌어오고, 영화는 계속해서 수익을 못 내고 있더라.”

“당분간 악순환이 계속될 것 같아요.”

“기업의 최적부채비율은 그 기업이 얼마나 자산 쪽에서 위험을 안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돼. 그 기업이 안정된 산업에 속해 있거나 고정자산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기업이라면 상대적으로 부채비율을 높게 유지해도 위험관리의 측면에서 큰 문제가 없어. 하지만 부채의 만기구조나 변제우선권 그리고 어떠한 채권자로부터 자금을 조달 했는가 등은 기업의 재무위험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지. 내가 왜 트라이-스텔라의 부채비율을 맞춰줬는지 이제는 이해하지?”

“어렴풋이요.”

“기본적인 재무는 공부해야 돼.”

“그 기본이라는 게 질릴 정도로 양이 많다는 게 문제죠.”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이 명령만 내리면 끝인 줄 알았어?”

“영입 예정인 최고경영자가 잘하겠죠.”

“그런 자세라면 트라이-스텔라를 다시 회수해야겠는걸.”

“줬다 빼앗는 법은 없어요. 이미 제 손에 들어왔어요. 제임스는 제가 차린 식탁에서 좋은 요리만 골라서 드세요. 제가 잘 챙겨드릴 게요.”

“두 영화가 망하면?”

“안 망해요. 부정 타니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류지호는 제임스 파커로부터 투자집행을 앞당겨주기로 약속을 받아냈다.


“비서가 필요하지 않아?”


캐서린 파커가 넌지시 권유했다.

류지호 역시 바라던 바다.

캐서린 파커의 권유를 받아들여, 지원자 몇 명을 만났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를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LA로 돌아가기 하루 전 날.

마지막 비서 지원자의 면접을 봤다.

류지호의 양옆으로 제임스·캐서린 부부가 자리하고, 신효정도 뒤쪽에 자리했다.

면접 대상자는 밝은 갈색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 올리고, 깔끔한 군청색 여성 정장을 입고 있다.

제나 그레이스라는 이름의 백인 여성이다.


‘팔다리가 길쭉길쭉 한 게 비율이 좋네. 가슴이 좀 빈약...’


영화오디션인 줄 착각하고 온 건 아닌지 생각될 정도다.

화장을 했다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피부도 깨끗한 것 같고 이목구미가 서양인답게 또렷해서 할리우드 여배우 뺨치게 예뻤다.


"그레이스양의 구체적인 전공분야가 뭡니까?"

“회계입니다. 부전공으로 법무행정을 공부했습니다. 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실례지만 나이를 물어봐도 될까요?”

“28살입니다.”


류지호가 깜짝 놀랐다.

제나 그레이스가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나이가 문제가 되는지요?”


류지호가 제임스 파커를 돌아봤다.


“28살에 박사학위를 딸 수 있어요?”


제임스 대신 제나 그레이스가 당차게 말했다.


"제 나이에 박사 학위는 기본입니다. 저는 두 분야를 공부하느라 조금 늦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결혼은 했습니까?"

"미혼입니다."


제임스·캐서린 부부가 류지호에게 묘한 시선을 던졌다.

류지호는 얼굴이 따끔거려 양옆을 돌아봤다.


“왜요?”


캐서린 파커가 류지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레이스양 같이 마르고 밝은 갈색 머리카락의 스타일을 좋아하나봐?”


제임스 파커가 엄한 얼굴로 충고했다.


“너는 비서를 채용하려고 하는 거다.”


부부의 엉뚱한 오해에 류지호가 발끈했다.


“무슨 생각하시는 겁니까, 두 분? 제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야 하고, 출장을 많이 다니게 될 것 같아 그레이스양이 가정이 있는지 자녀가 있는지를 알고 싶은 겁니다.”


캐서린 파커가 어딘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그런 거였어?”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지만, 류지호는 모른척했다.

류지호가 지원서를 들춰보다가 다시 제나 그레이스에게 물었다.


“불어와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군요?”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면 배우겠습니다.”

“혹시 G&P 혹은 영화오디션으로 잘 못 알고 인터뷰에 응한 건 아니겠죠?‘

“가람 인베스트먼트먼트라는 신생 투자회사에서 비서를 채용한다는 걸 분명히 알고 지원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레이스양을 채용하겠습니다.“


그녀의 미모 때문에 충동적으로 결정한 건 아니다.

전공분야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류지호가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당장 미국에서 벌인 사업들과 관련해서 세금 신고 부분에 대해 의논할 상대도 필요했고.


“현재 가람 인베스트먼트먼트는 G&P 사무실을 빌려 쓰고 있습니다. 내가 LA에 가 있는 관계로 따로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책상은 마음에 드는 걸 골라 쓰면 됩니다. 나를 제외하고 그레이스양이 가람 인베스트먼트먼트의 두 번째 직원이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제나 그레이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직원이 없어요?”

“가람 인베스트먼트먼트의 업무를 G&P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이 대리하고 있습니다. LA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 때문에 사무실을 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차 인력을 구성할 예정입니다.”

“LA사업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순 없나요?”

“그건 계약서에 사인한 후, 정식으로 출근하게 되면 알려주겠습니다.”

“제 업무는 단순 비서업무인 건가요?”

“비서가 주요 업무입니다만. 회계와 법무행정을 전공했다니 그 분야에 대한 조언자 역할을 기대합니다. 직급은 Junior Manager(대리급)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합시다. 보수는 일차적으로 G&P 수준으로 맞춰주겠습니다. 협상의 여지는 있습니다. 내가 알기로 G&P 연봉이 월가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알고 있으니 그레이스양도 충분히 만족하리라 생각합니다.”

"보스의 뜻에 따르겠어요."

“좋습니다. 오늘은 일단 돌아가시고, 내일 정식으로 계약하는 걸로 합시다.”


제나 그레이스가 합격의 기쁨 때문인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보스.”


제나 그레이스를 보내고, 한 건 더 잡혀 있었던 면접을 취소했다.

당장은 비서 한 명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제 뉴욕에서 일정은 모두 마무리 한 거야?”

“한 가지 더 남았어요.”


집무실까지 졸졸 따라온 캐서린 파커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데?”

"어제 시카고 파커스 필드 보안팀 라이언과 전화 통화를 했어요. 저보고 오늘 한 사람을 만나보라 하더라고요.

"뭐하는 사람인데?"

"CIA 출신이라고 하는데.... 보안관련 업무가 필요한 직장을 찾고 있대요. 라이언은 그를 영입하라고 강조하더라고요. 아주 뛰어난 사람이라고 칭찬하면서요.“

“정보조직이라도 만들게?”

“조사업무를 전담할 팀을 구성하려고요.”

“스파이 놀이라도 하려는 거야?”

“할리우드에 돌아다니는 좋은 스크립트도 리서치해야 하고, 판권 확보를 위해 원작자를 수소문하기도 해야 할 것 같고, 흙속에 묻혀 있는 보석 같은 재능의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도 조사해야 하고.... 조사팀이 할 것이 많죠.”

“할리우드 영화사는 가만히 있어도 전 미국에서 스크립트가 들어오는 게 아니었어?”

“남들보다 먼저 움직여야 적은 돈을 주고 괜찮은 아이템을 선점하죠.”

“네가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만, 적은 인력 가지고 과연 성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나 건지겠죠.”


캐서린 파커와 헤어진 류지호가 빌딩 로비로 내려왔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오십 초반의 남자가 인포메이션 부스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기고, 허리를 곧게 편 모습이 꽤나 절도가 있어 보였다.


“데본 테럴씨 입니까?”

“그렇습니다.”

“가람 인베스트먼트먼트의 지호 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무실로 올라가시죠.”


류지호가 데본을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CIA에서 근무하셨다는 것은 라이언에게 들어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전 직장만큼 연봉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데본 테럴은 속을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류지호가 계속해서 염려스러운 것을 물었다.


“전 직장에서 직급이 어느 정도였는지 모르지만, 가람에서는 Director(부장)입니다.”

“직급은 상관없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우선 라이언의 강력한 권유가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안전한 업무만 볼 것 같아서 입니다.”

“조사팀을 꾸리려고 합니다. 주로 영화와 관련된 조사업무입니다. 테럴씨는 제가 알려주는 단편적인 것들을 토대로 조사업무를 직접 현장에서 진행해야 합니다.”

“주로 어떤 겁니까?”

“영화 감독일수도 있고, 작가일수도 있고, 배우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영화 스크립트일 수도 있겠군요.”

“그런 것들은 각각의 영화 조합에 문의하면 되지 않습니까?”

“학생일수도 있고, 연예계에 나오지 않은 인물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독립영화인이나 아마추어는 조합 정회원이 아닌 경우가 많으니까요.”

“탐정이 하는 일인데... 보안책임자를 구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물론 전문가 입장에서 가람 인베스트먼트먼트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보안체계를 점검해 주길 기대합니다.”

“더러운 일을 할 수도 있습니까? 가령 경쟁자에게 수작을 부린다던가, 손에 피를 묻힌다던가?”

“가람은 월가의 투자신탁회사이면서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대주주입니다. 범죄조직이 아닙니다. 전 직장의 인맥을 통해 충분히 알아보고 오늘 만나러 온 것 아니었습니까?”


데본 테럴이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가칭 조사부는 가람 인베스트먼트먼트 비서실에 소속되어 회사의 보안체계 구축, 투자의 타당성 검토 또 정보 수집 및 분석까지 하게 됩니다. 직급과 월급은 G&P의 디렉터에 준합니다. 회사의 수익이 커지면 당연히 연봉 역시 그에 맞게 갱신되겠죠. 어떻습니까. 가람 인베스트먼트먼트에 오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한 가지 더 추가하면 어떻습니까?”

“말해보세요.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수용할 용의가 있습니다.”

“경호업무도 포함하겠습니다.”

“.....경호요?”

“회사를 향한 모든 위협요소로부터 보호하고, 요인을 경호하는 것도 보안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류지호는 보안팀이 가람 인베스트먼트먼트보다 덩치가 커질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왔다.

데본 테럴이 예의 무감정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가람 인베스트먼트먼트가 G&P가 빌딩에서 떠나는 날이 올 겁니다. 영화 촬영장 경호도 외주업체 대신 자체적으로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조사업무는 적당한 요령만 알고 돈만 충분하면 식은 죽 먹기입니다. 회사에 보안팀을 만들면 비용도 절약하고, 보안 전반에 걸쳐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해 집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의견입니다만. 가람 인베스트먼트먼트가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서 자금이 부족합니다. 부끄럽지만 팀을 꾸릴 정도가 아직 안 됩니다.”

“차차 만들어 가면 됩니다. 보안과 경호는 충성심에 기반을 둡니다. 함부로 사람을 들이면 안 됩니다.”


류지호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아, 네...!”

"그럼. 맡겨진 임무를 최선을 다해 수행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내일 출근하셔서 비서업무를 볼 그레이스양과 함께 계약서를 작성하죠.“

“혹시 급하게 수행해야할 조사업무가 있습니까?”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한 번 말해 보십시오. 출근하기 전에 점검해봐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레니 게이드.”

“잠시만....”


데본 테럴이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고, 만년필을 손에 쥐었다.


“TV시리즈입니다. 제목은 <레니 게이드>. 주인공 이름인 것 같습니다. 배우는 로렌조 라마스가 계약을 했거나 물망에 올라 있을 겁니다. 아내를 죽였다고 누명을 쓴 전직 경찰이 도망자 생활을 합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 있을 겁니다. 현상금 사냥꾼으로 활동하면서 자기 결백을 증명하려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

“지금 제작되고 있는지. 아니라면 어디서 개발 중인지 알아오면 됩니다.”

“막연하군요.”

“조사부가 앞으로 하게 될 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로 무언가를 알아 와야 하는 거죠.”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데본 테럴이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던 류지호는 그대로 손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다.


“<레니 게이드>를 트라이-스텔라 TV 프로덕션에서 제작할 수만 있다면 5시즌은 먹고 들어가는 건데...”


참고로 <레니 게이드>는 1992년~1997년까지 5시즌, 총 110 회에 걸쳐 방송된 미국 TV 시리즈다.

전 세계 100 개국 이상에서 방영되었고, 한국에서도 꽤 인기를 끌었다.

판권을 확보한다고 다가 아니겠지만, TV프로그램 첫 작업으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암튼 조사팀장으로 영입한 데본 테럴이 성격이 좀 무뚝뚝해 보이긴 해도,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할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따르릉!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려댔다.

받아보니 시카고 파커스 필드 본사의 보안요원 라이언 톰슨이다.


- 내가 보낸 사람은 만났습니까?

"조금 전에 미팅을 끝내고 돌아갔어요."

- 어떻게 됐습니까?

"내일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했어요.“

- 잘 하셨습니다. 데본 덕분에 미스터 류의 회사는 더욱 발전할 겁니다.

“그분은 조사업무를 담당할 뿐입니다만?”

- 지내보면 압니다. 장담합니다.

“근데 성격이 조금.... 원래 그렇습니까?”

- 차가운 게 아닙니다. 무뚝뚝한 겁니다. 그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은 함께 한 전우들 밖에 없습니다. 데본은 훌륭한 해군장교였고, 미해군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의 전략가일 겁니다.

“투자회사와 영화사에 무슨 전략가씩이나...”

- 그가 하는 조언을 흘려듣지 마세요. 돈을 벌게 해주지는 못해도 돈을 잃지 않게 만들어 줄 겁니다. 그럼... 미스터 류와 시카고에서 재회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아니. 그... 여보세요?”


라이언 톰슨은 제 할 말을 마치자,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


다음 날.

제나 그레이스와 데본 테럴이 정식으로 고용 계약을 체결했다.

투자전문가 한 명 없는 가람 인베스트먼트먼트에 정식 직원이 합류했다.

그것과 더불어 책임져야 할 사람이 늘어갈수록 류지호의 어깨 또한 무거워졌다.

주먹만 한 크기의 눈뭉치가 굴러가기 시작하자, 거침이 없었다.


❉ ❉ ❉


가람 인베스트먼트먼트에 새롭게 합류한 제나 그레이스, 데본 테럴과 함께 LA로 온 류지호는 모리스 메타보이와 다시 만남을 가졌다.

그것도 카페나 레스토랑이 아닌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대표이사 집무실에서.

모리스 메타보이가 류지호에게 뜬금없는 말로 운을 띄웠다.


“UCLA로 오게.”


류지호가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UCLA이요?”


모리스 메타보이는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합류의사를 돌려서 말했다.


“뉴욕보다 LA에 자네가 있어야 필요할 때 원활하게 소통을 할 수 있지 않겠나?”


류지호가 샘 리버먼과 댈런 맥컬리를 차례로 쳐다봤다.

두 사람이 미소를 띤 채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내가 추천장을 써주지. 나도 UCLA 출신이야. 내가 모교에서 힘 좀 쓰는 편이네.”

“추천서를 써주신다면야 고맙긴 하지만... 제가 알기로 UC 계열은 따로 추천서를 받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UC버클리와 UCLA는 간혹 입학처에서 추천서를 요구하기도 한다네.”


몰랐던 사실이다.


“솔직히 자네의 경우는 트라이-스텔라 오너라는 것만 밝혀져도 무조건 합격이긴 해.”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자네라면 다른 학교에 인재를 빼앗기고 싶겠나?”

“영화사를 소유하고 있다고 인재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업계에 유력한 동문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은 학교로서는 매우 유익한 일이라네.”


세상 어디나 학연은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다.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6학기 정도는 열심히 수업을 들어야 하겠지만, 그 후에 트라이-스텔라에서 인턴으로 일하면 전공수업의 경우 학점을 인정해 줄 걸세.”

“그런 것도 있습니까?”

“오라이언도 그렇지만, 트라이-스텔라도 영화과 학생들이 인턴 지원을 많이 해. 그렇지 않나 샘?”

“그렇습니다. 여름방학은 동부의 영화과 학생들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학은 겨울방학이 짧고, 여름방학이 길다.

거의 4개월에 가까운 기간 동안, 단편영화를 찍거나 영화사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하며 경력을 쌓으며 전공수업 학점까지 해결하는 학생이 많았다.

할리우드에서는 영화 스태프 조합에 가입되어 있으면 무조건 임금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학생인 경우 무급 인턴을 인정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 수업의 연장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계약서 가지고 오게.”


작가의말

알차고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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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9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2.03.16 10:55
    No. 1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루시오엘
    작성일
    22.03.16 11:05
    No. 2

    해외는 판이 엄첨 커지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霧梟
    작성일
    22.03.16 11:13
    No. 3

    우클라 갔었던가 가물가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요리선생
    작성일
    22.03.16 11:22
    No. 4

    폴버호벤 감독은 '원초적 본능'의 히로인으로 '나인하프위크'의 '킴베이싱어'를 찍었지만 너무 야하다고 거절되고, 그 뒤 10여명의 후보자에게도 거절 당하고, 거의 마지막 순번쯤 '샤론스톤'이 역할을 맡았다고 합니다. 덕분에 그녀는 당대의 *스심볼로 등극했는데 영화같은 이야기지요. 1992년 당시, 다리꼬는 장면 정말 쇼킹했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이야기숲
    작성일
    22.03.16 13:40
    No. 5

    드디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9 그믐달아래
    작성일
    22.03.16 17:51
    No. 6

    이제 시작이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무한땅꼬마
    작성일
    22.03.22 15:39
    No. 7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kaimax
    작성일
    22.03.31 00:17
    No. 8

    전작을 보고 이번에 작품도 보고 있지만... 수정된 부분이 그렇게 눈에 들어오진 않는데.. 다른부분이 있는건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집시
    작성일
    22.05.10 23:26
    No. 9

    재미있게 보고는 있습니다만 미래 정보 사용을 너무 아무런 제약없이 하는 느낌입니다. 미래 정보라는 것을 모르면서 저런 조사를 하라면 의아해하지 않을까요? 거의 모든 영화 정보를 그렇게 사람들에게 뿌리고 다니는데 다들 궁금해하지 않네요

    찬성: 3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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