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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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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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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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이거나 사명감이거나.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Tri-Stellar Television(약칭 TST).

1986년 설립된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산하 TV프로덕션이었지만, 1988년 콜롬비아스/엠버시 텔레비전과 합병해서 CPT(Colombias Pictures Television)로 개편되었다.

최근 소닉과 가람이 각각 콜롬비아스와 트라이-스텔라를 나눠 인수하게 되면서 텔레비전 사업도 분할되었다.

소닉은 콜롬비아스 픽처스 텔레비전(CPT)과 앰버시 리어 픽처스 커뮤니케이션(ELP)을, 가람 인베스트먼트는 트라이-스텔라 텔레비전(TST)을 각각 가져갔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최고경영자가 된 모리스 메타보이는 기존 TV부문 사장을 내보내고, 부사장이었던 얀 호퍼를 승진시켰다.

얀 호퍼는 40대 후반에 멋들어진 수염을 기른 백인 남자다.

건장한 체격에 혈색도 좋다.

외모만 놓고 보면 여자가 꽤나 따를만한 미중년이다.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 TV프로그램 배급사 텔레벤처스 합작을 스티븐 커넬과 함께 주도했던 인물로 방송계에서 잔뼈 굵은 베테랑이다.


“TST가 가지고 있던 TV시리즈 판권은 어떻게 정리 됐습니까?”


트라이-스텔라의 TV 부문 점검에 나선 류지호가 얀 호퍼에게 물었다.


“CBS에서 방영했던 <다운타운>, <테이크 파이브> NBC에 방영한 <광고 대전략 TV판> 그리고 팍스TV에서 방영한 <늑대인간>은 TST가 그대로 소유합니다.”

“텔레벤처스 부분도 정리가 됐습니까?”

“위트/토마스 프로덕션의 주식을 모두 확보했고, 더 이상 그들은 우리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위트/토마스 프로덕션이 합작에서 빠지게 되면서 자칫 그들 지분이 콜롬비아스나 LOG 컴퍼니로 넘어갈 뻔했다.

류지호는 다른 메이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자사 주식을 확보하라고 지시를 내린 바 있었다.


“커넬씨는 어떤 사람입니까?”

“다재다능합니다. 직접 TV프로그램을 연출하고, 대본도 씁니다. 텔레벤처스의 한 축을 담당하는 커넬 프로덕션의 오너로서 제작도 합니다. 배우의 꿈을 버리지 못했는지 자신의 드라마에 종종 출연도 합니다.”


얀 호퍼는 커넬이란 사람이 배우로 출연한다고 말할 때 가볍게 웃었다.


“자료를 보니까 TV 분야에서는 굉장한 분이군요.”

“굉장하죠. 지금까지 600편 이상의 TV프로그램에 관여했을 겁니다. 지금도 4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류지호는 잠시 뜸을 들였다.

얀 호퍼는 류지호의 입이 열리기까지 잠자코 있었다.

류지호가 서류를 톡톡 두드리며 입을 뗐다.


“스티븐 커넬이 쓴 <레니게이드>라는 TV시리즈가 있습니다.”

“......?”

“그걸 우리가 제작하면 좋겠습니다. 협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실크 스토킹>이 아니고... 잘못 말한 거 아닙니까?”


<Silk Stalkings>은 커넬 프로덕션이 CBS와 논의 중인 범죄스릴러 TV시리즈다.

참고로 이전 삶에서 8시즌 동안 이어진 장수 범죄스릴러 TV시리즈였다.

류지호는 그 작품도 커넬이 관련되어 있는지 몰랐다.


“<레니게이드>입니다. 스티븐 커넬 프로덕션의 재정이 탄탄해서 쉽지는 않겠지만, <레니게이드>가 다른 시리즈보다 상대적으로 협상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공동제작입니까? 아니면 제작권리만 가져 옵니까?”

“그건 호퍼씨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미스터 류가 마음대로 결정해도 됩니까?”

“내가 투자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듭니까?”

“아닙니다. TST로서는 프로젝트가 많을수록 좋고, 투자는 언제나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류지호가 서류를 한 장 얀 호퍼에게 내밀었다.

한 남자의 신상명세다.


“누굽니까?”

“칼 카터. 현재 LOG 픽처스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과 친분을 쌓으시길 바랍니다.”


얀 호퍼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다시 한 번 신상명세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작가다.


“LOG 픽처스를 퇴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자유의 몸이 되면 스카우트 해주세요.”

“작가입니까 아니면 기획자입니까?”

“둘 다입니다. 현재는 LOG 픽처스에서 코미디와 휴먼 드라마를 주로 쓰고 있지만, 몇 개의 시놉시스가 할리우드에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구해 읽어봤습니다. Sci-fi 장르에 접근하는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그쪽 장르를 구상한다면 꽤 기대가 됩니다. 그가 LOG를 뛰쳐나와 프로덕션을 만들기 전에 데려왔으면 좋겠습니다.”


시놉시스를 구해서 읽어본 적 없다.

류지호의 지시를 받은 데본 테럴이 조사해서 알아낸 바와 본래 알고 있던 이전 삶의 기억을 적당히 버무려서 말한 것 뿐.


“내게도 솜씨 좋은 작가가 많습니다.”

“압니다. 그들은 호퍼씨와 계속해서 작업을 하면 됩니다. 칼 카터는 가람 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하는 두 번째 TV 시리즈를 책임지게 될 겁니다.”

“그 TV시리즈가 뭡니까?”

“지금은 알려줄 수 없습니다. 호퍼씨는 그와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다가 그가 LOG 컴퍼니를 뛰쳐나오는 순간 제게 데려오십시오.”


얀 호퍼는 류지호의 지시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모회사인 트라이-스텔라에 1년에 다섯 편을 고를 수 있는 권리를 걸어놓았다는 걸 알겁니다.”

“다섯 편은 너무 많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당장은 TST는 일 년에 한 개 TV시리즈를 감당하기도 벅찬 것이 현실이니까요.”


아직은 영세한 트라이-스텔라 텔레비전(TST)으로서는 <레니게이드>와 칼 카터가 기획하는 드라마까지 두 개만 확보하면 10년은 문제가 없다.


“기획개발비는 걱정 마세요. 전폭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류지호가 단단히 약속했다.

얀 호퍼는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류지호가 기억하는 칼 카터는 그 유명한 TV 시리즈 <X-파일>을 기획·극본·연출·제작한 인물이다.

현재는 LOG 컴퍼니 산하 극영화 제작사 LOG 픽처스에서 영화 스크립트를 쓰고 있다.

코미디 스크립트를 쓰는 것에 진력이 난 칼 카터는 SF 콘셉트의 대본을 궁리 중이다.

지금 당장 그를 스카우트 하지 않는 이유는 중요한 영화 한 편이 개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 카터에게 영감을 준 수많은 작품 가운데 한 편.

바로 <양들의 침묵>이다.

소설보다 영화판에서 더 큰 영감을 받은 것으로 류지호는 기억했다.

때문에 칼 카터가 충분히 자신의 아이디어를 숙성시킨 후에나 스카우트 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류지호는 이전 삶에서 <X-파일>의 광신도처럼 몰입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이 시리즈와 관련된 다양한 일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일단 팍스TV에서 1차 피칭에 실패한 후 심기일전해서 2차 피칭에서 겨우 파일럿 제작 승인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멀더 역의 윌리엄 듀코브니와의 길고 지루한 소송 등등.

류지호가 기억한대로 진행만 된다면, 첫 시즌 미국에서만 1,200만 명이 시청하는 기록을 쓴다.

계획대로 된다면 이 드라마 한 편으로 트라이-스텔라 텔레비전은 미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TV시리즈 프로덕션으로 올라설 수가 있게 된다.


✻ ✻ ✻


TV부문 사업을 확인한 류지호가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데본 테럴에게 지시를 내렸다.


“두 사람의 근황을 알아봐 주세요.”


데본 테럴이 얼른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톰 메이포더의 근황을 알아봐 주시고, 그가 혹시 프로덕션을 설립할 계획이 있는지도 알아봐 주세요.”

“<탑 건>의 톰 메이포더 말입니까?”

“맞아요. 그리고 민식 황이란 이름의 한국인 무술가의 근황도 알아봐 주시고요.”

“무술 스승을 찾는 거라면 저도 몇 명 추천할 수 있습니다.”

“미스터 황은 배우세요.”


황민식은 <맹룡과강>에서 일본인 가라테 고수로 나온 한국인 배우이자, 합기도 고수다.

70년대 홍콩영화계에서 활동한 여러 한국인 배우 중에서 가장 유명한 무술가다.

당시 이진번, 방사룡, 홍삼모 등에게 합기도 기술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무술감독으로서 배우로서 홍콩무술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지금은 캐나다에서 거주하고 계실 겁니다. 아마 합기도 도장에서 제자를 키우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트라이-스텔라 영화에 출연시키려는 겁니까?”

“호퍼씨가 <레니게이드>를 트라이-스텔라 TV로 가져온다면 페르난도 라마스라는 배우의 무술 트레이닝을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미스터 황은 이진번과 방사룡의 발차기를 가르치신 무술가이시거든요.”

“알겠습니다.”

“급한 건 아니니까, 일단 미스터 황이 사시는 곳만 알아두세요.”

“알겠습니다.”

“아참.... 퇴사한 임원들 독립 프로덕션의 프로듀서로 갔다면서요?”

“신임 CEO가 퇴사하는 임원들의 체면을 세워준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의 일처리다.

업계에서 적을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는 모리스 메타보이의 수완이기도 하고.


“모든 직원과 재계약을 하기로 했다고 들었는데....?”

“새롭게 조항이 추가된 보안서약을 받기로 했습니다.”


류지호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재무와 제작이사는 내 사람으로 앉히고 싶은데...’


류지호는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너무 이른 시간에 할리우드에 들어오다 보니, 자신의 사람이랄 수 있는 인맥을 쌓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나마 인맥이랄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정상에 있는 사람들 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류지호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모리스 메타보이에게 전화를 걸어 알버트 마샬 영입에 대해 논의했다.


❉ ❉ ❉


류지호가 회의실로 들어서자 참석자들의 뜨거운 시선이 쏟아졌다.

일거수일투족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에 얼굴이 다 뜨거워질 지경이다.

류지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의 이름이 써진 명패가 놓인 자리에 가서 앉았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임원들의 사무실이 모여 있는 구역의 회의실.

이번에 합류한 재무이사 래리 킴과 부사장 알버트 먀살까지 참석했다.

류지호는 여유를 찾기 위해, 물을 한 잔 따라 마셨다.

그러자 제나 그레이스가 메모지며 필기도구를 가지런히 놓아줬다.

샘 리버먼이 회의에 참석한 임원들을 한 번 슥 둘러보고 입을 뗐다.


"지금부터 90년부터 92년까지 트라이-스텔라의 라인업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가람 인베스트먼트의 미스터 류가 매년 다섯 편의 라인업 선택이 있음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따라서 미스터 류가 선택한 영화부터 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샘 리버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운영이사 로이 톰슨이 손을 들었다.


"우선 묻겠습니다. 가람 인베스트먼트에서 2,000만 달러가 투자된다고 하는데, 그 금액이 정확한 수치며, 사실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시고, 매년 그 정도가 투자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류지호에게 쏟아졌다.

류지호가 잠시 헛기침으로 가라앉은 목을 푼 후 입을 열었다.


"답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5년 간 총 1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입니다. 이는 트라이-스텔라가 제작하는 영화에 대한 투자금이 아니며 회사운영 자금과 배급비용에 사용될 겁니다. 더 이상 회사운영에 허덕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제 의지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영화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대부분 영화제작비에 투자될 겁니다. 물론 만성 부채도 함께 차츰 해결해 나갈 생각입니다.“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가람 인베스트먼트에서는 지속적인 투자계획이 있습니까?“


소위 ‘먹튀’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윈윈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G&P의 부자펀드 일부가 우리의 영화에 투자될 겁니다. 트라이-스텔라는 안정적인 영화투자처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성실히 답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부사장 알버트 마샬이 입을 열었다.


"내년 라인업에 포함될 영화 두 편을 확보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단순히 배급만 하는 건지 투자까지 함께 진행된 영화인지 알고 싶습니다.“

“Tig 프로덕션의 <늑대와 춤을>에 제작비 4백만 달러가 투자될 예정입니다. 또한 휴즈 엔터테인먼트에서 다음 달에 촬영을 시작하는 <나 홀로 집에>에 제작비를 투자하고, 배급을 트라이-스텔라에서 하게 될 겁니다. 북미 배급은 우리가, 해외배급은 역시 콜롬비아스-트라이스텔라라는 이름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내년에 배급 스케줄은 이미 확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능하리라 보십니까?”

“볼티모어 픽처스에서 제작한 영화는 콜롬비아스가 단독 배급하는 것으로 넘겼고, <마이키 이야기Ⅱ>의 개봉을 미루기로 합의를 보았지 않습니까?”


법무이사 댈런 맥컬리가 치고 나왔다.


“그렇다면 모순이 생깁니다.”

“뭐가 말입니까?”

“미스터 류는 일 년에 12편으로 제작·배급에 제한을 두었습니다. 91년 한 해 우리가 확보한 영화가 그 숫자를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스로의 규칙을 어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91년에 개봉할 영화 세 편을 중단시킨 걸 아실 겁니다. 그 자리를 메타보이 CEO와 마샬 부사장의 영화들로 채울 겁니다.”


제작총책임자를 겸임하는 알버트 마샬이 질문했다.


“중단시킨 영화는 이대로 우리 손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스크립트에 대한 확신이 없음에도 월터 윌리스가 캐스팅 되었다는 이유로 제작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의 몸값은 지나치게 과대포장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직 그 정도 개런티를 받을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류지호는 <허드슨 호크>의 투자·제작을 중단시키고, 공동제작 프로덕션으로 프로젝트를 돌려보냈다.


“나중에 그가 대스타가 되면 몸값이 더 오를 겁니다. 그때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때는 그때입니다. 월터 윌리스가 대스타가 되면 그에 걸맞은 티켓파워를 가지겠지요. 우리가 모르모트가 될 이유는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메타보이씨?”

"하하하. 네, 맞습니다."


류지호의 뜬금없는 확인성 질문에 모리스 메타보이의 웃음보가 터졌다.

패기 넘치는 어린 오너가 한 점 동요 없이 임원들과 질의응답 하는 광경이 무척 재미가 있었다.

홍보마케팅 이사 샌디 페이슨이 질문했다.


“TV와 케이블 채널, 홈 비디오 사업부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극장 수익보다 부가시장 규모가 훨씬 거대한 걸 알고 계십니까?”


그녀는 임원들 가운데 가장 어린 30대 후반의 여성이다.

다소 직설적인 어투를 구사했다.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콤팩트디스크, 즉 CD를 아실 겁니다. 작년 CD 매출이 레코드판을 추월했습니다. 파인소프트에서 윈도우라는 소프트웨어를 출시하자, 개인 PC의 매출도 무서운 속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 CD가 음반뿐 아니라 비디오를 대체한 영화 저장매체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번성할 것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전망하고 있습니다. 또한 CD를 뛰어넘는 DVD라는 것도 소닉 등 글로벌 전자업체들이 개발 중에 있습니다. 기존의 VCR보다 음질은 물론 화질까지 엄청나게 좋고, 수명도 반영구적일 거라고 합니다.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임원들 가운데 기술 분야에 정통한 운영지원 이사 버나드 휴즈에게 시선이 쏟아졌다.

그는 40대 초반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촬영장비와 컴퓨터 등에 일가견이 있었다.


“CD로는 영화 한 편을 다 담을 수 없을 텐데요?”

“담을 수는 있습니다. 그 대신 화질과 음질을 상당부분 희생해야 합니다. 그 때문에 소닉과 판토소닉 같은 일본의 전자기업이 DVD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답니다. 왜 소닉이 48억 달러를 들여 콜롬비아스를 판토소닉이 그 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인수금액의 MCA를 노리겠습니까?”


참고로 앞으로 5년 후, 가전업체와 할리우드 빅6가 DVD 규격을 놓고 분쟁이 발생한다.

그런 조정 단계를 거치면 96년 즈음에는 상품화가 가능해 진다.


“물론 홈비디오 시장을 무시해선 안 됩니다. 그런데. 홈비디오 시장 역시 기존의 메이저 스튜디오가 꽉 잡고 있습니다. 10년 내에 소닉, 판토소닉, 로얄 필립스 일렉트로닉스(RPE) 등에서 개발하고 있는 새로운 저장매체가 나오는데.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홈비디오 시장에 막대한 자금을 들여 투자하는 것이 현명합니까. 아니면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에 투자를 해야 합니까?”

“너무 낙관적인 전망 아닙니까?”


류지호는 임원들이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 말의 요점은 이런 겁니다. 이미 수명이 다 해가고 있고, 경쟁이 치열한 사업에 자금을 무작정 투자할 것이 아니라 향후 전망이 밝은 분야를 찾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빅 식스는 이미 관련 산업에 대한 플랜을 마련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소닉이 움직였습니다. 경쟁관계에 있는 판타소닉 역시 물밑에서 MCA와 접촉하고 있다는 믿을 만한 소식통의 전언이 있습니다. 글로벌 전자기업들이 왜 콘텐츠 기업을 사들이겠습니까? 전자기업들은 더 뛰어난 성능의 퍼스널 컴퓨터를 속속 출시하고 있습니다. 늦어도 내년 경에는 월드와이드웹에 일반 대중도 접근이 가능해 집니다. 버나드 휴즈씨는 기술 발전이 얼마나 빨리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겁니다.”


임원들은 무슨 반박과 질문을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류지호를 바라보기만 했다.


“할리우드 역사대로, 지금까지 메이저 스튜디오가 발전한 방식으로, 그것과 똑같이 따라 하면 절대 그들의 위치만큼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운영 이사 로이 톰슨이 도발적으로 말했다.


“메이저 스튜디오는 무수히 많은 인수합병과 기업공개로 볼륨을 키웠습니다. 기술 발전도 좋고 그에 대응하는 전략도 좋습니다. 우리가 빅 식스 근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MSM/UA 정도는 인수해야 합니다.”

“미안합니다. 가람 인베스트먼트는 50억 달러 선에서 시장에 나온 MSM/UA를 인수할 정도는 아닙니다. 좀 더 분발해 보도록 하죠.”


흠흠.


로이 톰슨이 무안한지 헛기침을 하며 슬그머니 딴청을 피웠다.


“일단 내실을 다집시다. 지금까지는 지난 80년 초반까지의 성공에 취해 무리한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좋은 기획, 좋은 스크립트, 재능 있는 감독, 티켓파워를 갖춘 슈퍼스타, 스튜디오의 합리적인 예산 집행, 그리고 월가에서 하고 있는 복잡하고 체계적인 포트폴리오의 적용.”


모리스 메타보이가 설핏 웃으며 말했다.


“교과서적입니다만.”

“맞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바로 그 교과서적으로 트라이-스텔라를 운영했는지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은 가장 안전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부가시장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트라이-스텔라의 브랜드 이미지는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콜롬비아스 스튜디오의 비디오 부문에서 B급 영화나 만드는 영화사가 바로 트라이-스텔라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린 여력이 없었습니다. 가장 안전한 기획으로 대박은 못 내더라도 최소한 부가시장에서는 돈을 벌 수 있는 전략을 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해합니다.”


류지호가 동의하고, 임원들을 쭉 둘러봤다.


“여러분 중에 뉴욕사교계에서 내가 어떻게 불리는지 아시는 분. 손 한 번 들어보십시오.”

“파커가의 럭키 보이지.”

“그 닉네임을 정말 싫어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행운을 나눠줄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닉네임으로 불리는 것에 불만을 가지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에게 기적을 보여주겠습니다. 그 시작이 <늑대와 춤을>과 <나 홀로 집에>가 될 것입니다. 또 <어 퓨 굿맨>이 될 것입니다. 알버트 마샬 부사장이 행운을 한가득 안고 우리에게 왔습니다. <클리프행어>가 그것입니다. 우리의 최고경영자는 <심판의 날>과 <양들의 침묵>이란 트라이-스텔라의 비전을 가지고 왔습니다. 나머지는 여러분이 채워보십시오. 모험적이어도 좋고, 안정적이어도 좋습니다. 지금부터 포트폴리오를 짜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류지호가 입을 다물었다.


“우리에게 벌써 6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91년 라인업부터 시작해 봅시다.”


샘 리버먼이 임원들에게 본격적인 회의를 알렸다.

그리고 임원들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3년간의 투자·제작·배급 라인업에 대한 난상토론을 전개했다.

기상천외한 영화들이 난무하고 그중에는 영양가 전혀 없는 영화도 있었지만, 류지호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별의별 영화제목이 다 나오는 구나.’


류지호가 임원들이 언급하는 영화들을 듣고 있자니, 알고 있는 영화보다 모르는 영화가 더 많은 것 같았다.

류지호가 슬쩍 모리스 메타보이 사장을 돌아봤다.

간간이 다이어리에 뭔가를 메모하며 난상토론을 경청만 하고 있다.

최고경영자는 들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무턱대고 제지하다보면 정말 비상한 아이디어가 있는데, 제지를 당할 것 아니냐는 두려움으로 묻힐 수도 있다.

그래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도 묵묵히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이다.

누구도 제지하거나 면박주지 않고 경청하는 분위기가 되자, 의견을 개진하는 임원은 신이 나서 이야기를 토해냈다.

그러다가 반대 생각을 가진 임원이 반박을 하면서 기묘한 아이디어가 또 튀어 나오기도 했다.

류지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회의 분위기다.

토론과 논쟁을 벌이지만, 절대 어떤 선을 넘지 않았다.

상대의 의견이 타당하다면 상대에 대해 거리낌 없이 승복하고 칭찬했다.


‘이런 회의문화를 WaW 픽처스에도 정착시키고 싶다....’


5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90~92년까지의 영화 라인업이 결정되었다.

주요 영화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90년 - 총 12편

캐롤코 제작 영화 5편과 리젠시 인터내셔널 픽처스(Regency International Pictures) 영화 1편, 인하우스 영화 6편이다.

주요 작품은 6월 개봉하는 <토탈 리콜>, <에어 아메리카> 겨울에 개봉하는 <늑대와 춤을>, <나 홀로 집에>다.

91년 - 총 12편

캐롤코 제작 영화 4편, E.T 엔터테인먼트 1편, 외부 작품으로 배급만 진행하는 영화 2편, 인하우스 5편이다.

주요 작품은 <양들의 침묵>, <마이키 이야기Ⅱ>, <벅시>, <바톤 핑크> - 투자/제작/배급.

<못 말리는 비행사>, <터미네이터2>, <아담스 패밀리>. <후크> - 투자/공동제작/배급 이다.

92년 - 총 13편

캐롤코 제작 3편, 폴리그램 필름스 1편, 인하우스 9편이다.

주요 작품은 <시티 오브 조이>, <어 퓨 굿맨>,<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클리프행어> - 투자/제작/배급. <원초적 본능>, <유니버셜 솔져>, <야망의 함정> - 투자/배급이다.


류지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영화들은 본전치기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모든 영화가 대박을 쳤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

이미 제작에 들어가 있는 영화들도 있고, 배급계약이 체결된 영화도 있다.

그런 영화들은 되돌리거나 취소할 수 없었다.

대규모로 극장 스크린을 잡아야 하는 몇 개의 영화는 1년 전부터 스케줄을 잡아놔야 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확정을 지어놔야 했다.

류지호 혼자 라인업을 짰다면 머리가 터져버렸을지도 몰랐다.

영화 한편에 투자·제작·배급하는 것만 해도 고려하고 따져야 할 사항이 무수히 많다.

부가시장까지 전략을 짜려면 하루 이틀로는 턱도 없다.

류지호는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확인한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차라리 영화 12편을 연출하는 게 훨씬 쉬워.”


호텔로 돌아온 류지호의 첫 마디였다.


작가의말

행복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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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흐르는 강물처럼. (1) +13 22.03.05 7,855 18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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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시카고 국제영화제. (1) +8 22.03.03 8,091 18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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