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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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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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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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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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타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뉴욕의 파커가문 저택은 항상 평온할 줄만 알았다.

윌리엄 파커의 성품이 그러했으니까.

게다가 대부분의 고용인들이 추수감사절을 가족과 보내기 위해 출근하지 않았다.

따라서 류지호는 추수감사절을 차분하게 보낼 줄 알았다.

헌데 웬걸.

파커 저택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까르르.

호호호.


정원을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였다.

‘큰오빠~’ 하며 당장에 달려올 줄 알았던 레오나는 또래들과 노는 것에 열중하느라 류지호를 보고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류지호는 괜히 섭섭해서 얼른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 내부 역시 처음 보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류지호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짐을 풀고 나서 윌리엄 파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서재로 향했다.

선객이 있었다.

구릿빛 피부의 덩치가 큰 중년 남자 셋이 윌리엄과 술을 마시고 있다.


“다녀왔습니다.”


서재 입구에서 류지호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덩친 큰 남자 셋이 류지호를 요모조모 살폈다.

제임스가 류지호를 손짓으로 불렀다.


“인사해. 여기는 촌구석에서 어제 뉴욕에 온 시골뜨기들.”


류지호는 일단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지호 류입니다.”

“반갑다. 난 파커의 성을 쓰는 그렉이다.”

“우리 막내의 공주님을 구했다는 놈이 너 구나. 난 둘째 노아다.”

“난 셋째 브랫이다. 참고로 난 저 촌뜨기들하고 달리 대도시에 살고 있다.”


190Cm의 큰 신장에 다들 한 덩치 하는 사내들.

제임스의 형들이자, 윌리엄의 아들들이다.

이들은 미국에서도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아이오와주에서 농업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참고로 아이오와주의 파커스 필드 농장에서 생산하는 옥수수, 소고기, 돼지고기는 단일 농장으로 미국 최대를 넘어 세계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 농장의 실질적인 주인이 그렉과 노아 형제다.


“나와 형은 농부다. 저 뺀질뺀질 두 놈은 파커가의 돌연변이들이다. 진정한 파커를 알고 싶다면 뉴욕에서 놀지 말고, 중부로 와라.”


둘째 노아 파커가 말을 마치자마자 류지호에게 맥주를 건넸다.


"고맙습니다."


류지호가 얼떨결에 맥주병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윌리엄의 눈치를 봤다.

노아가 채근했다.


"뭘 망설여? 어린이만 아니면 맥주 정도는 마실 수 있다."


제임스가 웃으며 맥주병을 들어보였다.


"맷과 파티를 다니면서 도수 높은 술도 많이 마셨으면서 뭘 빼고 그래?"


챙.

큰형 그렉 파커가 류지호의 맥주를 가볍게 부딪치고, 입을 열었다.


“8~9월에 와라. 특히 그때가 장관이다. 바다가 부럽지 않아. 하늘에서 내려 보는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이 정말 죽여준다.”

“아, 네.”

"우리 농부들은 말이다..."


걸걸한 목소리의 그렉·노아 형제가 농부의 인생에 대해 한참을 떠들어댔다.

상남자 형제들에게서 겨우 벗어난 류지호는 이번에는 캐서린을 포함한 파커가의 며느리들에게 붙잡혀 그들의 수다를 들어야만 했다.

류지호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겨우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지만, 류지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레오나와 한 무리의 꼬마들이다.


“큰오빠~ 놀자!”

“에효. 그러자, 그래.”

“와~”


류지호는 아이들을 데리고 정원으로 나가 뛰어 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어른들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소리에 평소 차분한 저택 분위기가 밝아졌다.

거기에 남아 있는 고용인들의 자녀들까지 합세해 삽시간에 시끌벅적해 졌다.

파커가의 형제들이 저택 2층 베란다 난간에 나란히 서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렉이 중얼거렸다.


“이거 질투 날 정도로 부럽지만, 인정할 것은 해야겠네.”


노아가 물었다.


“뭐가?”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저 꼬마 말이야.”

“진심으로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 같지?”

“내가 보기에는 귀찮아하는 것 같은데? 저 봐, 은근슬쩍 저택으로 들어오려고 하잖아.”

“다시 아이들에게 붙잡혔는데?”

“가끔 보면 아버지도 참 답답하게 산다. 만날 뒤통수 맞고도 사람을 믿으니.”


그렉의 씁쓸한 말에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이봐 형제들, 지호는 그럴 아이가 아니야.”

“......”

“진심으로 대해주면 진심으로 대해준다. 파커는 그런 집안이잖아.”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

파커가문의 선조들이 중부에서 얼마나 친절했는지를.

만날 뒤통수 맞고도 파커는 사람을 믿었다.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먹을 것을 주고, 곤란한 처지의 이웃을 위해 끝까지 남아서 도와주고, 챙겨주고, 참으로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가문이었다.

그래서 중부와 캘리포니아 일부 지역에서는 존경과 경의를 받는 가문이다.

첫째와 둘째 아들은 대도시에 위치한 파커스 필드의 기업에서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시골농장으로 내려가 농부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고 있다.

두 형제는 너무도 순박한 파커스 필드의 농부들을 사랑했다.


“난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10년을 노력해 겨우 자랑스럽다는 말을 들었는데, 저 꼬마는 1년 만에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았어. 어떻게 질투가 나지 않을 수 있겠냐?”

“형은 어릴 때 사고를 많이 쳤잖아.”

“막내 빼고 사고 한 번 안 친 놈이 우리 중 누가 있다고 그렇게 자신만만하냐?”

“스케일이 다르지. 형하고 우리들하고는.”

“농장을 태워먹은 걸 아직도 우려먹을 셈이냐?”

“TV에서 생중계까지 했는데, 두고두고 놀려먹어야지.”


첫째 그렉은 십대 시절, 완고한 아버지 윌리엄에게 반항하기 위해 농장에 불을 지른 적이 있다.

너무 엄청난 화재여서 뉴스 채널에서 생중계까지 했다.

그 당시 그렉의 불장난으로 입은 파커가의 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그렉은 평생을 두고 농부들과 호흡하며 살고 있다.


“저 한국인 꼬마 말이야,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어디서 봤지?”

“성호 킴을 닮아서 그런가봐.”

“우리에게서 밀과 옥수수를 사가는 한국의 백설제분인가 하는 회사 바이어 성호 킴을 말하는 거지?”

“동양인은 다 비슷하게 생겨서 구분을 할 수가 없어.”

“저 꼬마가 동양인 치고 키가 크다는 건 인정.”

“동양인이 우리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고 하는 말이지? 방금 그 발언, 인종 차별 같았어.”

“뺀질이 막내 녀석 같으니라고. 우리 동네서는 이건 그냥 유머야. 내 아시아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친단 말이다.”

“제임스, 시비 거는 거야? 오랜만에 형이랑 한 판 할까?”

“형들도 지호와 친해보도록 해봐. 꽤 재미있을 거야.”

“에이 몰라, 언제 한 번 우리 동네로 오라고 해. 진짜 카우보이를 구경시켜 주지.”

“그나저나 우리 꼬맹이들이 정말 재밌게 노네.”

“우리 가서 끼워 달라고 할까?”

“그럴까?”


형제들이 벌떡 일어나 우르르 저택을 빠져나갔다.


“애들아! 아빠 왔다!”

“큰아빠도 왔다!”

“와아아! 아빠다!”

“아하하하하!”


웃음꽃이 더욱 만발했다.

그렇게 한바탕 아이들과 놀아준 어른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식사 내내 화제의 주인공은 단연 류지호였다.

윌리엄의 손자·손녀들이 낮 동안 뉴욕 다운타운에서 지인들을 만나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류지호는 십대 손자·손녀들과 처음에는 서먹서먹했다.

십대들 사이의 공통된 화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방 친해졌다.

류지호가 자신의 학창시절 에피소드를 몇 가지 들려주자, 그들은 흥미진진하게 경청했다.

류지호와 동갑인 그렉의 딸 에일리 파커가 물었다.


“내가 대니에게 대시 하면 같이 잘 수 있을까?”


그녀는 좋아하는 남학생이 있는데, 서로 호감은 가지고 있지만 아직 섹스를 하지 않아 불안하다고 했다.

둘째 노아의 아들 더스틴 파커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남자는 달려드는 여자 별로 안 좋아해.”


곧 15살이 되는 이 소년의 덩치는 아버지를 닮아 당당했다.


“흥! 쪼끄만 한 게 뭘 안다고.”

“나도 15살이야. 누나가 사귄다는 대니라는 남자도 그럴 거라는데 10달러 걸 수 있어.”


류지호는 사촌간의 대화를 지켜보며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개방적인 미국이라도 십대의 성생활을 듣는 건 충분히 어색한 상황이다.


“누나는 원래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잖아.”

“뭐야! 누가 그래?”

“안 봐도 알지. 누나가 예쁜 편은 아니잖아.”

“내가 어디가 어때서!”


에일리와 더스틴이 둘이 투덕거렸다.


“지호, 내가 듣기로 동양의 남자들은 한 여자만 바라본다며? 지호도 그래?”

“글쎄...?”

“여자 친구 있어?”

“없어.”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구나.”


류지호는 딱히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웃기만 했다.

그렇게 파커 형제의 자녀들과 친분을 쌓는 동안 추수감사절이 밝았다.

류지호는 파커 가족들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리는 추수감사절의 명물 '메이시스 퍼레이드'를 구경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다.

‘메이시스 퍼레이드‘는 지난 1924년부터 매년 추수감사절에 열리는 축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3년간 중단된 것을 제외하면 해마다 열리고 있다.

대형 캐릭터풍선, 밴드, 수많은 관람객까지.

류지호는 파커가족과 함께 퍼레이드를 즐겼다.

추수감사절 연휴를 뉴욕에서 보낸 류지호가 파커 사람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다.

케네디공항에서 탑승한 항공편은 한국행이 아니라 LA행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모리스 메타보이의 영입을 마무리 지어야했다.

류지호는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그를 반드시 트라이-스텔라의 대표이사로 앉히고 싶었다.

G&P 정보라인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필모그래피 이상으로 능력자였다.

업계판도에도 해박하지만, 아카데미 수상작 다수에 관여했다.

밀어붙이는 추진력도 대단하다고 정평이 나있다.

비록 그 같은 성정 때문에 이전 유니벌스와 현재 오라이언에서 갈등을 겪고 있지만.

어쨌든 30대 후반에 이미 유니벌스 스튜디오 부사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영화를 보는 안목도 대단했지만, 그의 주 전문분야가 투자라 할 정도로 다양한 투자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 정치인들과 네트워크도 상당했다.

그런 연유로 백지 위임장까지 들이대면서 그를 초청하려 애쓴 것이다.

게다가 유대계다.

할리우드에 비유대계와 자본이 유입되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미국의 언론·방송·연예계는 유대계 자본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모리스 메타보이는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외풍을 막아줄 영향력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G&P의 투자로 재정부담은 덜었지만 여전히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는 미래전망이 밝지 않았다.

반드시 모리스 메타보이 같은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을 대표이사에 앉혀야 했다.

류지호는 몰랐지만, 그것이 본래의 역사이기도 했다.

만약 모리스 메타보이의 영입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류지호는 먼 길을 돌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 ❉ ❉


LA로 날아온 류지호가 샘 리버먼의 주선으로 계속해서 CEO 영입을 고사하고 있는 모리스 메타보이를 만났다.

직접 담판을 지어볼 생각이다.


“이렇게 공개된 곳에서 만나도 됩니까?”


류지호로서는 스튜디오 관계자와 유명한 제작자가 베벌리힐스 카페에서 미팅을 갖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자들과 호사가들에게 대놓고 정보를 흘리는 일이니까.


“유감스럽지만, 미스터 류를 아시아계 배우로 알 겁니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아시아계이며 어린 외모가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먼저 와서 기다리길 10여 분.

풍채가 당당한 오십을 갓 넘긴 백인 사내가 류지호 맞은편에 자리했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데다 배까지 나와 있으니, 절로 사장감이라는 생각이 드는 외모다.

사람 좋은 미소를 입가에 달고 있지만, 눈빛이 강렬했다.

류지호는 한눈에 예사의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호 류입니다. 여기 리버먼씨는 안면이 있으시죠?“

"모리스 메타보이요. 상당히 어려 보이는데 몇 살이요?"


얕잡아 보는 태가 역력하다.


"아직 학생입니다. 그 부분이 우리가 비즈니스 대화를 나누는데 지장이 있습니까?“


류지호의 당돌한 말에 메타보이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말을 이었다.


"물론 지장은 없지. 다만 학생 신분으로 다른 사업도 아닌 영화사를 운영할 수 있겠나?"

"그렇기 때문에 메타보이씨 같은 유능한 전문가를 영입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지 말고 트라이-스텔라를 나에게 다시 팔면 어떻겠나? 내 알기로 3,500만 달러에 산 걸로 아는데, 오백만 달러를 더 얹어주면 넘기겠나?“

"오라이언의 지분을 제게 파시는 건 어떻습니까?"


류지호가 만만치 않은 응수를 던졌다.


"얼마면 되겠나?"

"잘못 알고 계십니다. 3,500만 달러는 인수비용의 일부일 뿐입니다. 만성 부채와 곧 만기가 돌아오는 파이낸싱 채권과 투자상환금만 그 몇 배가 됩니다. 정확한 숫자를 밝힐 수 없지만, 인수금액에 곱하기 5 이상은 하셔야 합니다. 그것도 최소로 잡은 겁니다.“

"허허....! 그건 억지소리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네.“

“글쎄요. 그들이 우리 회계장부를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사안이군요.”


'심각한 사안'이라는 말에 모리스 메타보이의 얼굴에 불쾌함이 스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류지호는 계속해서 강경하게 나갔다.


“나는 오라이언에서 준비하는 영화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트라이-스텔라가 오라이언과 꽤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유감스럽게도 파인라인 시네마와 콜롬비아스 쪽으로 협력관계를 다변화하려고 하는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내 마음이 좀 급합니다.”


모리스 메타보이가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가소로운 것이다.

그런데 이어진 류지호의 말에 비웃음은 놀람으로 변했다.


“트라이-스텔라를 인수하고 보니 오라이언도 욕심이 나지 뭡니까. 뉴욕의 후원자도 내가 부리는 욕심이 타당하다고 여기고 있고 말입니다. 어떻게 메타보이씨가 보유하고 있는 오라이언의 지분을 내게 파시겠습니까? 좋은 금액에 인수할 용의가 있습니다.”

"허허. 자네 꽤나 당돌하구만."

“어린! 사람만이 부릴 수 있는 패기! 아니겠습니까?”


류지호는 툭 한마디 던져놓고, 커피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하지만 내심까지 여유롭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모험수를 던졌다.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주기로 작정하고 나왔다.

잠자코 있던 샘 리버먼이 둘 사이를 중재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두 분 모두 너무 극단적이십니다. 천천히 이야기를 나눠보시죠?”


흠.

그런 그를 바라보던 메타보이가 슬쩍 운을 뗐다.


“연봉이니 그런 것보다 내게 트라이-스텔라 지분을 나눠주는 게 어떻겠나? 그렇다면 자네들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네.”


샘 리버먼이 반색하며 물었다.


“몇 퍼센트를 원하시는지...?”

“17%”


이것이다.

모리스 메타보이가 영입을 계속해서 고사하며 버텼던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기업 입장에서 전문경영인에게 지분을 나눠주는 건 동기부여와 책임감을 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경영상 의결권을 내세워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모리스 메타보이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를 욕심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절대 안 될 말이다.


“그 정도 지분을 나눠줄 것이라면 차라리 나와 후원자가 오라이언을 인수합병하고 말겁니다. 아쉽지만 메타보이씨와는 인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인 탓에 두 눈을 치켜뜨고 모리스 메타보이가 되물었다.


“인연이 아닌 것 같다?”

“영입제안은 철회하도록 하죠.”

“......?”

“이대로 자리를 파할 수 없으니, 후배에게 좋은 이야기나 들려주십시오. 가르침을 청합니다. 그리고 여기 계산은 내가 하겠습니다.”

“허어...!”


모리스 메타보이는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샘 리버번이 나섰다.


“혹시 뉴욕 사교계에서 도는 파커가문의 럭키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여기 있는 어린 친구가 그란 말인가?”


샘 리버먼 대신 류지호가 그 물음에 대답했다.


“나는 ‘기적의 사나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만, 다들 럭키보이라 부릅니다. 반드시 트라이-스텔라를 보란 듯이 성공시켜 닉네임을 바꿀 생각입니다.”

“난 자네가 오성이나 경일의 자식이라도 되는 줄 알았네.”

“경일도 아십니까?”

“자동차 만드는 회사 아닌가?”


지금 이 시기에 미국에 경일자동차가 많이 수출되고 있는 줄 몰랐다.


“내년에 누적 판매량 100만 대를 달성할 것이라는 신문기사를 본 것 같네.”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가 봅니다?”

“아니, 경일이라는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차를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으로 그들에게 투자를 받아낼 수 없을까 고민해본 적이 있지.”


PPL(Product PLacement)을 염두에 두고 고민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접촉은 해보셨습니까?”

“아니. 그들의 차가 아직 미국인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어. 그래서 그만뒀어.”

“지금이야 그렇습니다만, 곧 할리우드도 한국의 자동차를 영화에 쓰게 될 겁니다.”

“한국이 일본보다 자동차를 잘 만듭니까?”


샘 리버먼까지 대화에 끼어들어 자동차 이야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분위기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이야기가 계속 겉돌자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모리스 메타보이가 물었다.


“G&P의 조력을 받은 월가의 투자회사가 영화사를 인수했다고 해도 현재 트라이-스텔라는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들었네. 뭔가 믿을 만한 구석이라도 있나?”

“나보다 트라이-스텔라의 상황을 더 잘 아시는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일까요?”

“할리우드는 생각보다 좁다네.”

“2년 정도 인내해야 합니다. 그 이후부터는 안정적으로 영화사가 운영될 거라 자신합니다.”

“하나만 더 묻겠네. 그런 자신감의 근원은 G&P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건가?”

“G&P는 내 회사가 아닙니다. 물론 매우 밀접한 투자파트너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자꾸 빙빙 에둘러 말하지 말고 속 시원히 말해보게.“


류지호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곧 언론에서 발표하겠지만, 궁금해 하시니 조금 알려드리겠습니다. 가람 인베스트먼트는 5년간에 걸쳐 총 1억 달러를 트라이-스텔라에 투자합니다. 그리고 흥행 가능성이 높은 몇몇 영화에 G&P 부자펀드 일부가 투자될 겁니다."


류지호가 얼음물을 한 모금 마시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는 경영에 참여할 생각이 없습니다. 영화사는 전문가들이 운영을 하는 것이 맞겠죠. 다만 매년 다섯 편에 한 해서 내 의지가 반영된 영화를 제작하게 될 겁니다. 내실을 다져야 하는 2년 동안 12편을 배급할 계획입니다. 이후 차츰 편수를 늘여갈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빈틈 하나 없이 똑 부러지는 류지호의 말에 모리스 메타보이의 고개가 절로 끄덕였다.


“다섯 편만 오너인 자네가 관여하고, 나머지는 최고경영자가 결정하게 되는 건가? 모든 권한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그 다섯 편의 제작투자는 가람 인베스트먼트 자체적으로 하거나 G&P에서 투자를 받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G&P와의 협상창구는 자네가 유일하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나?“

“그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사실 G&P는 할리우드 영화투자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류지호 본인과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투자한다는 의미다.


“대니얼 회장과는 관계가 어떤지 물어보면 대답해 주겠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류지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속내를 류지호가 얼른 수습에 나섰다.


“지금의 모습은 잊어주십시오. 할아버지가 알면 삐집니다.”


메타보이와 리버먼 두 사람이 황당하단 표정으로 류지호를 바라봤다.

천하의 대니얼 그레이엄에게 저런 무례한 표현을 쓰는 이를 본적이 없다.

미국인들에게 대니얼 그레이엄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의 기업가 이미지가 깊숙이 박혀 있었기에.


“말실수 했습니다. 그분으로부터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좋은 분입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다만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쳤다.

도리어 모리스 메타보이가 걱정했다.


“자네... 그 분을 그렇게 입에 올려도 괜찮나?”

“회장님 귀에 들어가면 혼나기야 하겠지만, 설마 이런 일에 일일이 신경 쓰시겠어요? 두 분은 오늘 제가 한 말을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류지호는 뭐가 문제냐는 듯 말했다.

캐서린 파커가 G&P를 팔아먹으라고 명함까지 만들어주었다.

자신과 두 가문이 친밀한 관계라는 사실은 동부에서 잘 알려져 있다.

가까운 사이도 아닌 이들 앞에서 대니얼 그레이엄을 흉보는 꼴이 되었지만, 류지호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한국의 오성이나 경일그룹 자손은 비교가 안 되는 거물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소년이라니.

모리스 메타보이가 허탈한 어조로 말했다.


“허. 자네... 거물이었구만.”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어 다른 짐승을 놀라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꼴입니다. 두 가문의 권세를 빌어 이렇게 위세를 부리고 있네요.”


호가호위(狐假虎威)를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하는 류지호의 입가에 쓴 웃음이 절로 맺혔다.


“배경도 실력이네.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구먼. 허허.”

“대니얼 회장님이 마피아 보스도 아닌데, 뭘 겁을 먹고 그러십니까?”


허허허.


모리스 메타보이가 복잡한 심정이 담긴 웃음을 흘리든 말든.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저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보게.”

“메타보이씨 필모그래피에 보니까 <레모>라는 영화가 있던데, 그 영화 판권을 지금도 오라이언이 가지고 있습니까?”


1985년 개봉한 영화 <Remo Williams : The Adventure Begins>는 ‘더 디스트로이어’라는 스파이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뉴욕의 경찰관이 모종의 이유로 특수한 단체에 들어가, 치운이라는 한국인 무술고수에게 신안주라는 신비한 무술을 배워, 미국을 위협하는 적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다.

차세대 <007 시리즈>로 기획되었지만, 흥행에 참패하면서 조용히 사라진 영화다.


“오라이언이 가지고 있네. 내가 그 영화를 총지휘해서 알고 있지.”


할리우드가 좁다는 말이 맞았다.

관심을 두고 있는 프로젝트를 총지휘했던 인물이 하필 모리스 메타보이였을 줄이야.


“그 판권을 사겠다고 하면 팔겠습니까?”

“망한 프로젝트의 판권을?”

“그 시리즈를 다시 되살리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자네가 한국인이어서 그런가?”

“그런 면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총알을 피하고, 물 위를 걷는 걸 미국인들은 납득하지 못했어.”

“신비주의 콘셉트라면 진짜 신비로웠어야지요. 나였다면 제작비의 일부를 할애해서라도 한국이나 일본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했을 겁니다.”

“누구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가본적도 없이 원작을 그대로 따라서 스크립트를 썼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원작 또한 엉터리 고증이 많았다고 하더군.”

“그러니까요. 그대로 묻혀버리기에는 아까운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캐롤코에 맡길 생각인가?”


캐롤코의 두 설립자가 영화를 시작한 곳은 홍콩이다.

<람보>로 흥행에 성공하기 전 초창기에는 닌자영화나 국적불명의 마샬아츠 영화를 많이 제작하기도 했다.

모리스 메타보이 입장에서는 당연하게 떠올릴 수 있는 흐름이다.


“영화 판권과 소설시리즈에 대한 권리를 얻고 나서 고민하려고 합니다.”

“내가 오라이언의 공동 설립자라는 걸 잊었나?”

“곧 그곳과 결별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던데요?”


메타보이가 어림도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럴 리가!”


류지호가 모리스 메타보이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할리우드는 생각보다 좁더라고요.”

“하하하! 못 당하겠군. 자네 진짜 십대가 맞나?”

“그런 말 자주 듣습니다.”


메타보이가 웃음기를 싹 지우고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네. 영입제안은 확실히 철회한 것인가?”


류지호도 덩달아 진지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이전의 경영진이 모두 물러나서 트라이-스텔라가 젊어졌습니다. 임원들이 중심을 잡아줄 노련한 연륜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더군요.”

“외부로부터의 귀찮은 간섭과 견제를 막아 달라는 건 아니고?”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대우는 할리우드 최고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트라이-스텔라는 빅 식스가 아니니까요. 만약 메타보이씨가 합류해서 빅 세븐이 되어 최고의 계약을 챙겨 가시겠다면 나로서는 그 계약서에 기꺼이 사인할 겁니다.”


류지호는 마지막 제안이라고 생각하고 진솔하게 말했다.

커피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던 모리스 메타보이가 도로 내려놨다.

모두 마셔버려 잔이 비어있었다.


“자네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네. 대신 전제조건이 하나 있네.“

“말씀해 보세요.”

“교환은 어떻겠나?”

“무슨 교환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내가 가지고 있는 오라이언의 지분과 트라이-스텔라 지분과 맞바꾸자는 거지.”

“지분은 몇 퍼센트 가지고 있으십니까?”

“17%.”


류지호가 더는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싫습니다.”

“싫어?”

“없던 일로 하죠.”


모리스 메타보이는 류지호의 단호한 태도에 쓴 웃음을 머금었다.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아쉽지만... 우리가 함께 일할 인연은 아니었나 봅니다.”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던 모리스 메타보이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협상을 그렇게 막무가내로 하는 법이 어디 있나?”

“이야기는 모두 끝난 줄 알았습니다만.”


류지호는 태연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인물은 분명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에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전 세계 영화인들의 꿈의 무대인 할리우드에 그만한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정 마음에 드는 인물을 구하지 못하면 G&P와 의논해보면 된다.

때문에 아쉬울 것이 없는 류지호다.


“생각할 시간을 좀 주게.”

“얼마나요?”

“일주일.”

“한국에도 벌여놓은 사업이 있습니다. 뉴욕의 투자회사도 관리해야 하고요.”

“자네 참 뻔뻔하구만.”

“그 말도 가끔 듣습니다.”


모리스 메타보이가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에 관한 신상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보시는 건 좋지만, 오늘 대니얼 할아버지 흉을 봤다는 건 어디 가서 말하지 말아주시길 정중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류지호는 모리스 메타보이와 헤어지는 순간까지 농담을 잊지 않았다.


작가의말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습니다. 행복하고 알찬 하루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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