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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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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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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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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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을 잃은 것은 아닙니까?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미국에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됐다.

길었다면 길었고, 짧았다면 짧은 미국에서의 시간들이었다.

뭔가 거대한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것을 알겠는데.

막상 한국으로 떠나자니 꿈만 같기도 하고.

어쨌든 3개월간의 미국체류를 마친 류지호가 귀국길에 올랐다.

비행기 안에서 한국 신문을 펼쳐들었다.

정치면에서 4당 총재들이 모여 5공 청산 특위를 합의했다는 내용이 눈에 뜨였고, 국제면은 미국의 파나마 침공이 주요 뉴스다.

경제면에선 연일 사상최고치를 갱신하는 일본의 닛케이 지수에 대한 분석과 전망 기사들이 류지호의 시선을 끌었다.

3개월 간 자신의 행적과 관련한 기사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류지호는 뉴욕 사교계에서 나름 유명인사다.

비록 G&P라는 이름값에 가려져 있지만, 월가에 한국의 옛말을 떠올리는 상호의 신탁투자회사도 설립했다.

지금까지 그와 관련된 뉴스가 국내 언론에서는 단 한 줄도 보이지 않았다.

국내 언론사의 정보력 부재 때문인지.

류지호의 행보가 국내 언론에서 다룰 만한 꺼리조차 못 되는 것인지.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류지호는 그들에게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일 테니까.

게다가 신분노출을 최대한 조심한 면도 없지 않아 있고.


후우.


무엇보다 류지호의 머리를 복잡하게 한 것은 삼봉백화점의 광고다.

삼봉백화점 붕괴사고.

온갖 비리와 부실공사로 점철된 탐욕이 만들어낸 인재(人災).

류지호는 정확한 년도와 날짜를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90년대 중반이었다는 것과 여름이 오기 전이었다는 것만 기억했다.


후우.


류지호의 입에서 연신 깊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직은 개장만 했을 뿐이다.

사고와 관련한 어떤 조짐도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관계기관에 민원을 넣고, 언론에 재보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을까?’


관련 공무원들이 다 한통속일 터.


‘그래도 뭐라도 해봐야겠지.....’


뻔히 무고한 사람이 죽고 다치는 걸 알고 있다.

모른 척 한다면, 두고두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터.


‘아직 4~5년의 시간이 있으니까....’


류지호는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자신이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준비가 되길 간절히 바랐다.


❉ ❉ ❉


오랜만에 돌아온 집이다.

그립던 집안의 온기가 류지호의 몸과 마음을 푸근하게 감싸 안았다.

류지호의 가족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는 중이다.

경제사정이 좋아졌음에도 류민상은 여전히 회사를 계속해서 다녔다.

부업을 할 필요가 없는 심영숙은 살림과 어린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는데 집중했다.

류순호는 고등학생이 되며 더욱 입이 무거워졌다.

내년에 국민학교 4학년에 올라가는 류아라는 여전히 어리광이 심했다.

영양상태가 좋아지고 생활환경이 좋아지니 키도 쑥쑥 자라 또래보다 조금 더 성숙했다.

류지호는 막내가 사춘기를 겪을 나이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묘한 감정에 빠졌다.


‘시간 참 빨리 간다.’


거실 중앙에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한 상 푸짐하게 차려졌다.

미국에 머물며 한인식당에서 찌개도 먹고 김치도 먹었다.

어디 집밥에 비할 바가 있을까.

류지호는 기름 좔좔 흐르는 흰 쌀밥 두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식사 내내 3개월간 미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부모님에 들려줬다.

부모님은 가볍게 고개만 끄덕거렸다.


‘왜 안 놀라시지?’


류지호가 돈 벌었다는 이야기나 사업에는 심드렁했다.

국제전화를 할 때에도 안부만 물었지 사업에 관한 문제를 일절 묻는 일이 없었다.

그저 큰아들이 하는 일이 무탈하게 잘되길 바랄 뿐.

사실 류지호가 두루뭉술하게 이야기를 한 면도 없지 않았다.

얼마나 대단한 일을 벌이고 온 것인지 이해를 못했다.

그러니 부모님이 놀랄 일도 걱정할 일도 없는 것이다.


“미국영화를 좀 더 쉽게 수입해오려고요.”


류민상이 커피를 호로록 마시고 말을 받았다.


“직원을 시키지. 네가 직접 출장을 다녀야 하는 거냐?”

“사장이랍시고 책상에 앉아서 손가락만 까닥일 순 없잖아요.”

“옳다. 사장이 솔선수범해야 직원도 따르는 법이야.”

“네.”

“거기에 하나 추가하자면... 가능하면 우리 가족의 상식선에서 일을 별이면 좋겠다.”

“상식선이요?”

“그래. 솔직히 주식으로 돈을 번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런 행운이 또 온다는 보장이 없지 않겠냐?”

“행운은 일생에 세 번 온다는데, 네가 그 아까운 걸 하나 써먹은 것 같아 엄마는 좀 그래.”

“하하하. 아직 두 번이나 남았네요.”


류아라가 류지호의 품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했다.


“큰오빠, 이제 미국 안 가?”

“응.”

“비행기 타는 거 안 무서워?”

“놀이기구 타는 거 보다 안 무서워.”

“놀이기구?”

“아라야, 광성월드 갈래?”

“히히, 아이, 좋아라!”

“좋긴 뭐가 그렇게 좋아? 엄마랑 가자면 귀찮다고 안 가는 기집애가.”

“흥. 큰오빠랑 엄마랑 같나 뭐?”

“저렇다니까. 하여간 이 기집애는 제 오빠한테 유난을 떨어요.”

“엄마도 좋아. 잔소리만 안 하면.”


하하하.


류민상과 류지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내일 우리 광성월드 놀러 가요.”


다음날 온가족이 석촌호수에 위치한 광성월드로 놀러갔다.

류지호는 하루 종일 류아라와 함께 온갖 놀이기구를 타고 놀았다.

저녁은 장충동의 서라벌호텔에서 먹었다.

파커 가족과 만나기 위해 호텔에 왔을 때, 가족들은 어딘지 불편하고 어색한 태가 났다.

불과 2년 전이다.

지금에 와서는 메뉴까지 척척 고르며 매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이 하도 의아해서 류지호가 물었다.


“안 불편하세요?”

“이런 데도 몇 번 와보니까 이젠 어색하지 않아.”

“와보셨다고요?”

“친목계 때문에 인천에서 웬만한 고급 딱지 붙은 음식점은 다 다녀봤어. 엄마는 양식은 영 입맛에 안 맞는데, 매번 먹을 때마다 신기하긴 하더라.”

“매달 모임을 가져요?”

“응.”


자식들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심지어 고우찬의 경우 태권도 대회에서 메달도 따는 등 성과를 보여주자 사인방 부모님들은 한결 여유가 생겼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술을 한 잔 하면서 회포를 푸는 것에 그쳤던 모임이다.

점차 재미를 찾기 시작하더니, 교외로 나들이를 나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모님끼리 단풍놀이도 다녀왔다.

그 비용을 사인방이 각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류지호는 친구들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아들, 여기 고기가 엄청 부드러워. 얼른 먹어봐.”


류아라를 살뜰히 챙기는 심영숙을 바라보며, 류지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이전 삶에서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중풍에 걸렸던 어머니.

어머니보다 먼저 생을 마감했던 자신의 불효.

가볍게 고개를 털어 과거의 잔재를 털어버린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 드실 만 해요?”

“또 그런다. 징그러워.”

“맛있게 드세요 엄마.”

“참, 아들한테 엄마 소리 듣기 이렇게 힘들어서야...”


하하하.


류지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호텔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그런 특별한 일이 일상적인 일이 되도록 더욱 분발해야겠다고 류지호는 생각했다.


❉ ❉ ❉


가온웨딩 스튜디오, 사인방과 방송부 친구들, 고등학교 선배들, 아네모네 채 사장과 장 부장 등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았다.

류지호는 그 모든 것들을 거부했다.

연말을 가족과 보내기 위해서.

잠옷을 입은 류아라는 오빠에게 매달려 떨어질 줄 몰랐다.


“큰오빠가 집에 있으니까 좋아.”

“아라야, 안 자?”


류아라가 뽀로통하게 볼을 부풀렸다


“안 졸려.”

"졸린 거 같은데?"

“아주아주. 중요한 날이야.”

“뭐가 중요한데?”

“내일 우리 놀러가잖아.”

“광명월드도 갔다 왔는데?”

“내일은 머~얼리 가잖아.”


류아라는 매일 9시 반이면 잠을 잔다.

11시까지 버티고 있는 지금.

류지호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서도 눈이 꾸벅꾸벅 감기고 있다.


“지금 안자면 내일 차안에서 잠만 잘걸? 그럼 강원도 구경 못해.”

“그래두....”

“큰오빠 말 듣고 얼른 들어가서 자자.”


엄마 말은 귓등으로 듣는 류아라다.

큰오빠가 그리 말하자 볼을 부풀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류아라가 안방으로 들어가며 아쉬움 가득한 눈망울로 말했다.


“힝~ 큰오빠랑 더 놀고 싶은데....”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지.”

“나 빼놓고 가면 안 돼? 미국 갈 때처럼.”


류지호는 부모님께 미국 대학에 원서를 접수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두 분은 별로 놀라는 눈치가 아니다.

심영숙은 조금 시간이 흐른 후 가길 원했다.


“여보, 품 안에 자식은 크지 못해. 지호도 좀 더 넓은 세상과 많은 사람을 경험할 때가 온 거야.”


품 안에서만 키워선 안 된다고.

사자로 키우려면 초원에 일찍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윌리엄은 그렇게 충고했다.

이른 나이에 충분한 경험과 시련을 극복할 용기를 배운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 않다.

큰아들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천재라고 말하곤 한다.

천재는 그저 남보다 일찍 능력을 개화하는 특혜일 뿐.

단명하기 좋은 자질이기도 하다.

시기하는 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고.

누구보다 똑똑한 큰아들이지만, 부모로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남자는 큰물에서 살아야 한다지. 윌리엄 어르신의 말처럼 큰물고기는 바다에서 살아야 하겠지. 우리 아들이 큰물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이 아빠는 꼭 보고 싶구나.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뭐든 그렇게 해도 된다. 다만 젊은 혈기만 앞세워 무모하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야.”


류지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혹시나 부모님이 반대하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던 참이다.


“근데,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바로 미국 대학에 갈 수 있는 거냐?”

“그래서 미국의 검정고시 같은 걸 보고 왔어요. 토플도 봐 놨고요. 추천장을 써주겠다는 분도 구했고요. 이미 몇 군데 대학에 원서도 접수해 놨어요.”

“혼자서도 알아서 척척이구나.”


가족의 안전과 행복의 최소 조건은 충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류지호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유학을 떠날 수 있다.


다음 날.


류지호 가족이 강원도로 2박 3일간의 여행을 떠났다.

설악산에서 하루를 지내고, 강릉에서 하루를 자고, 정동진에서 해돋이를 보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이 없는 시절이다.

류지호는 지도책을 보며 길을 숙지하느라 애를 먹었다.

정동진은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해안가 시골마을의 간이역일 뿐.

현재 통일호는 무정차 했고, 비둘기호만이 정차했다.

참고로 드라마 <모래시계>는 1995년에 방영이 된다.

그 전까지는 수많은 시골역 중에 하나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류지호의 가족은 정동진역에서 일출을 볼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귀찮아했다.

하는 수 없이 경포대에서 일출을 감상했다.


“......!”


또 한 번의 새해를 맞이했다.

붉게 떠오르는 첫 해를 바라보면서 류지호는 만감이 교차했다.

해는 매일 떴다 진다.

세상 또한 일초 일분 변화한다.

이전 삶에서 해돋이를 구경 하던 때와 지금의 감회가 천지차이다.

청춘의 시기를 다시 맞는 감회.

이미 변할 대로 변해버린 삶.

앞으로 더욱 변화하게 될 자신의 모습까지.

이전 삶보다 더 큰 감정이 휘몰아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류지호가 장엄한 해돋이를 보며 읊조렸다.


“1990년...”


공산권이 무너지며, 명실상부 패권국가가 되는 미국.

세계사적인 혼돈 속에서 컴퓨터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불러오는 시절.

그런 가운데 시도되는 무수한 시도와 혁명적인 기술 변화들.

그로 인한 기대감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거품들.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바뀌게 될 할리우드의 영화 트렌드.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심정으로 발버둥을 치며 자생력을 키워가는 충무로 영화인들.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던 충무로의 시스템이 대기업에 의해 재편되는 시기.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영화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때.

불현 듯 떠오르는 90년대를 정리하면 대략 이 정도.

그런 격동의 시절 속에서 류지호는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가야 한다.

어디까지 갈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중간에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그 속에 발을 들여놓았다.

판도 벌어졌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라는 무기도 손에 쥐었다.

명확한 목표의식으로 정신적 무장도 했다.

1990년대 격동 속으로 뛰어들어서 부딪힐 일만 남았다.


“배고파.”


감동을 수습한 가족들이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뜬금없이 심영숙이 류지호에게 여자 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다른 부모님들은 공부에 방해된다면서 여자 친구 사귀지 말라고 하시는데 특이하시네요.”

“사내는 여자를 잘 만나야 하는 거야.”

“벌써요?”

“여태껏 여자 친구 한 번 사귀지 않았다며?”

“누가 그래요?”

“우찬이가.”


심영숙은 큰아들이 어릴 때는 여자 친구는 하나 없이 오직 사내놈들과 어울리는 것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었다.

그것도 중학교 때까지다.

곧 스무 살이 되는 데도 여자 친구가 없다는 것은 문제다.

여자 애들에게 인기가 없는 건 아닌지, 혹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주변에 여학생이 없는 건 아니란다.

그걸 듣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다른 사람들은 전혀 짐작도 못할 것이다.


“네가 평범한 십대를 보내지 않아서 그렇지. 네가 좀 유별나니?”

“연애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없어요. 친구는 있지만.”

“저번에 영화 찍은 애는?”

“다연이요?”

“예쁘던데.”

“친구에요. 방송부 동창이고.”

“주안에 편집 배우러 온다는 아이는?”

“소연이도 친구죠.”


잘난 아들을 둔 부모라면 상대를 골라가며 조건을 볼 수도 있다.

류지호의 부모님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바람둥이처럼 이 여자 저 여자 집적거리면 안 되겠지만, 충분히 연애도 해보고 여러 아가씨들을 만나보고 선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가 며느리 감을 걱정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지나치게 이른 생각이긴 했지만.


“아빠·엄마는 서양 아가씨도 괜찮다.”

“빨리 장가보내고 싶으세요?”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여자 친구 생기면 두 분께 제일 먼저 인사시켜 드릴게요.”


심영숙은 아들의 마음에 드는 참한 외모에 성격만 좋으면 그걸로 족했다.

며느리를 들인다면, 가능한 옆에 두고 딸처럼 키우고 싶은 생각도 있다.


“아이 낳으면 엄마가 잘 키워줄게. 걱정하지 마.”

“여러 여자 만나보라면서요? 그런데 어머니 말씀은 하루 빨리 결혼을 하라는 것처럼 들리는 건 착각일까요?”

“채근하는 거 아니라니까.”


심영숙이 강하게 부정하며 류아라를 데리고 화장실로 가버렸다.

테이블에 세 명의 남자만 남았다.

류민상과 류순호 모두 먼저 말을 꺼내는 성격이 아니다.

류지호가 동생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학교생활은 할만 해?”

“응.”


류순호는 인문계 대신 인천기계공고에 진학했다.

실업계 고등학교라고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된다.

중학교 때 제법 공부를 하던 학생들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실업계 진학을 많이 했다.

물론 류순호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괴롭히는 선배는 없고?”

“없어. 형 동생인 거 알아서 3학년 형들도 안 건드려.”


류지호가 ‘내가 그런 사람이다‘라는 듯 순간 어깨에 힘을 팍 줬다.

헌데 이어지는 말에 다시 힘을 빼야했다.


“형이 우찬이형 친구인 걸 다 알던데?”

“우찬이?”

“우찬이형이 주안 대장이잖아.”

“그런 거야?”

“응. 그런 거야.”


고우찬이 주안의 주먹 대장이고 그의 친한 친구가 자신의 친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괴롭히는 학생이 없다는 의미다.


“기타 실력은 많이 늘었고?”

“형이 보면 놀랄 걸?”


류순호는 형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우리 밴드가 학교에서 유명해. 학교 축제 때 공연도 했어.”

“장하다 내 동생.”

“나중에 나도 시민회관에서 공연할 거야. 그러면 나도 형처럼 당당해 질 수 있을 거야.”

“그럼. 누구 동생인데.”


류민상은 아들들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밴드 이름이 뭔데?”

“스쿨 오브 락(School of Rock). 줄여서 소크(S.o.k)."

"밴드 이름이 왜 착해? 니들 헤비메탈 한다며?"

"착해?"

"판테라. 메탈리카, 메가데스, 데프 레파드, 블랙 사바스...“

“헤비메탈한다고 데스 들어가고, 블랙 들어가고 메탈 들어가는 싫어서.”

“그러냐?”

“촌스러워.”

“형이 볼 때는 소크가 더 촌스러운데?”

“그건 형이 락 음악을 몰라서 그래.”

“그런 거냐?”

“응. 그런 거야.”


류지호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아냈다.

동생을 비웃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하여튼 형은 밴드음악을 하든 국악을 하든 찬성이야.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응.”

“기타는 내가 전에 사준 거 그대로 써?”

“아니, 아빠가 사줬어.”


류지호가 아버지를 돌아봤다.


“낡아 보이는 것 같아 사줬다. 비싼 걸 못 사줘서...”

“형... 사고 싶은 기타가 있는데...”


류순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가 말끝을 흐렸다.


“혼자서 전철타고 서울 올 수 있어?”

“내가 어린애인줄 알아?”

“언제 날 잡아서 사무실로 전화해. 같이 낙원상가 가보자.”

“진짜?!”

“대신 공부도 소홀히 하지 말고. 딱 반에서 중간만 해. 그건 할 수 있지?”

“10등 안에 들면 하나 더 사줄 수 있어?”

“드럼도 사줄게. 5등 안에 들면 연습실도 마련해 주고.”


그렇게 하려면 류순호는 밴드활동을 접고,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제 스무 살 되는데 후회 안 해?”

“뭘?”

“형한테는 십대가 없었잖아?”

“십대가 없는데, 이십대가 어떻게 있어?”

“그 말이 아니고. 돈 버느라 공부하느라 영화 찍느라... 그렇게 지나갔잖아.”

“괜찮아. 형은 십대를 두 번 해봐서.”

“두 번?”

“그런 게 있어.”


류지호가 얼버무리며 동생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아씨, 락커 머리는 함부로 만지는 거 아냐!”

“락커고 자시고, 넌 내 동생이거든!”


형제는 외모만큼 성격도 참 달랐다.

이전 삶에서 각자 걸어간 길도 사뭇 달랐다.

방황하지 않고 성장한 사람은 없다.

류순호는 힘든 방황의 길을 겪었었다.

영화를 하는 류지호보다 더 힘겨운 길을 갔다.

이전 삶에서 음악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류순호다.

한참을 방황하다 뒤늦게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워 카센터를 차렸고, 참한 아가씨를 만나 가정도 꾸렸었다.

동생이 많이 방황할 때, 형이 되어서 힘이 되어주지 못한 것이 류지호로서는 새삼 아프게 다가왔다.


작가의말

행복하고 즐거운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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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Tri-Stella Pictures. (5) +6 22.03.11 7,639 195 22쪽
105 Tri-Stella Pictures. (4) +4 22.03.10 7,841 191 28쪽
104 Tri-Stella Pictures. (3) +6 22.03.09 7,766 190 20쪽
103 Tri-Stella Pictures. (2) +5 22.03.08 7,830 185 22쪽
102 Tri-Stella Pictures. (1) +8 22.03.07 8,062 196 22쪽
101 흐르는 강물처럼. (2) +10 22.03.05 8,001 200 27쪽
100 흐르는 강물처럼. (1) +13 22.03.05 7,855 185 23쪽
99 시카고 국제영화제. (2) +23 22.03.04 8,090 212 26쪽
98 시카고 국제영화제. (1) +8 22.03.03 8,091 181 23쪽
97 WaW는 젊은 회사다. (2) +4 22.03.02 7,937 202 24쪽
96 WaW는 젊은 회사다. (1) +5 22.03.01 8,059 19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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