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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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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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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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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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이거나 사명감이거나.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센츄리 시티(Century City).

베벌리힐스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 이 도시는 ‘도시속의 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원래 ‘20세기 팍스’의 야외 촬영지였던 곳을 일부 매각해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의 랜드마크라고 하면 1987년에 세워진 35층짜리 팍스 플라자다.

영화 <다이 하드>에 나온 나카토미 플라자가 바로 팍스 플라자를 모티브로 했다.

신도시라고 할 수 있는 센츄리 시티의 복합상영관 ARC(American Royal Cinemas) Theatres.

미국 최대 극장체인 ARC 센츄리 시티에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임원과 마케팅 팀이 모두 모였다.

오늘은 이곳에서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투자·제작·배급하는 <철목련(Steel Magnolias)>의 프리미어(premiere)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프리미어는 영화나 연극을 처음 상영하는 걸 일컫는다.

한국에서는 보통 ‘시사회’라고 칭한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는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 <철목련>과 <패밀리 비즈니스> 두 편을 배급한다.

<철목련>은 류지호가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다.

그런데 프리미어에 나타난 여자주인공 면면들이 너무나 화려했다.

로코 퀸이라고 불리게 될 피오나 로버츠가 애송이로 보일 정도로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다.

사실 류지호는 말론 브란다우 주니어와 더스티 호프먼이 출연한 <패밀리 비즈니스>에 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쉽게도 <패밀리 비즈니스>가 프리미어를 시작할 때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따라서 두 명의 대배우와의 만남은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휘유~ 여기는 뭘 해도 화려하구나.”


VIP와 기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일반 초청 관객들까지 객석을 가득 채웠다.


“프리미어 일정은 어떻게 된다고 했죠?”


류지호를 수행하기 위해 뉴욕에서 날아온 제나 그레이스가 얼른 대답했다.


“오늘 LA에 한 번, 일주일 후 뉴욕에서 한 번. 그렇게 두 번이 예정되어 있어요.”


함께 참석한 신효정이 물었다.


“언론 노출을 삼가기로 한 것 아니었어요?”

“괜히 로비에서 얼쩡거릴 필요는 없겠죠. 가요.”


류지호 일행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관계자들과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175Cm 신장의 훤칠한(?) 미녀가 류지호의 눈에 들어왔다.

오뚝한 콧날, 맑은 갈색 눈동자, 큰 입 때문에 웃을 때마다 시원한 기분을 선사하는, 로맨틱코미디계의 여왕에 등극하기 전 22살의 풋풋한 피오나 로버츠다.

그녀는 시종일관 생글거리며 모리스 메타보이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녀뿐만 아니라, 모리스 메타보이 주변으로 이름값만으로 쟁쟁한 <철목련> 출연 배우들이 자리하고 있다.


“피오나가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들다니요?”

“보스의 눈이 먹잇감을 노리는 수컷의 그것이네요.”

“무슨 소리에요? 영화 제작자로서 여배우를 바라본 것뿐입니다.”


쓸데없는 대화로 흐를 것 같아 류지호가 화제를 돌렸다.


“그녀는 어쩌면 할리우드의 여왕이 될지도 몰라요.”


신효정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녀는 류지호가 이번에는 또 어떤 예측을 내놓을지 기대감이 들었다.


“퀸이란 말입니까?”

“<귀여운 여인>이 꽤 잘 나왔다고 하네요.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퀸이 탄생하게 될지도 모르는 거죠.”


제나 그레이스가 물었다.


“그 영화는 트라이-스텔라 라인업에 없는 것으로 아는데.....”


류지호가 대충 둘러댔다.


“조사부가 활동을 시작했잖아요.”


데본 테럴이 조사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자, 류지호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말하기가 한결 편해졌다.

지금처럼 조사부 핑계를 대면 어느 정도 납득을 하고 넘어가니까.


“피오나와 친해놓으면 좋을 텐데, 아쉽네요.”

“보스, 그녀는 아직 스타가 되지도 않았는데, 남자관계가 지저분하대요.”

“남자관계요?”

“그녀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상대 남자배우와 스캔들을 만든다고 해요. 리엄 닐슨이라는 배우와 사귀다가 헤어지고, 지금은 이 영화에 출연한 마크 맥더멋과 사귀고 있대요.”

“제나는 별 걸 다 알고 있군요?”

“데본이 알려줬어요.”


류지호는 그저 웃어 넘겼다.

일반인들은 언제나 가십거리에 더 큰 흥미를 보이니까.

그녀가 누구와 사귀든 류지호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67년생이에요. 키는 175. 가슴사이즈는...”

“그런 건 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제나.”


신효정이 한국말로 류지호에게 말했다.


“비서가 참 귀엽군요. 얼핏 보면 두 사람이 연인 같습니다.”

“제나의 혼삿길 막을 일 있습니까?”

“미국에서 그런 표현을 듣게 되다니. 안심해도 되겠네요.”

“뭘 안심해요?”

“류 대표가 사업을 벌이는 곳은 할리우드. 전 세계의 미녀란 미녀는 모두 모여들죠.”

“전 수도승이 아니에요. 오는 여자 마다하지도 않을 거고, 가는 여자 막지도 않을 겁니다. 물론 무절제와 실수는 경계해야겠지만.”

“류 대표가 한국에 가있는 동안 제나를 로라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어요. 로라가 제나를 한명의 어엿한 비서로 만들어 줄 겁니다.”

“좋은 생각이에요. 캐서린에게 부탁해볼게요.”


제나 그레이스가 몹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류지호에게 물었다.


“무슨 대화를 나눈 건지 제가 알면 안 되나요?”

“영화 끝나고 말해 줄게요.”


팟.


극장 실내등이 꺼졌다.


히히힝!


말 울음소리가 들려오다가 하얀색 페가수스가 달려와 화면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떠오르는 Tri-Stellar Pictures 로고.


‘말 울음소리도 바꾸라고 해야지. 페가수스가 꼭 망아지 같잖아...!’


류지호는 피오나 로버츠의 첫 주연 영화가 <귀여운 여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었다.

<철목련>이 화려한 멀티 캐스팅으로 쟁쟁한 중견 여배우들의 비중이 높다고 하더라도, 피오나 로버츠는 선배들에게 전혀 기가 눌리지 않았다.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품어냈다.

<철목련>은 원작자의 실제 고향에서 촬영되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미국의 한 작은 마을의 미용실.

쉘비(피오나 로버츠 역)의 평범하지 않은 사연을 바탕으로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처지 또한 각기 다른 6명의 여성이 미용실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 <킬 빌>의 애꾸눈 암살자로 더 유명한, 젊을 적 크리스틴 해나가 도수 높은 안경을 낀 내성적인 여성으로 미용실에 취직을 한다.

오갈 데 없는 그녀를 받아 준 미용실 토박이 미용사는 레베카 파튼이다.

미용실은 마을의 온갖 뉴스가 모이고 퍼져나가는 진원지였고, 여섯 여성의 생활의 일부이자 소통의 공간이다.


[헛된 가식 1g은 썩은 거름 1kg과 같아....]

[울지 마. 울면 같이 울어버릴 거야. 내 앞에선 아무도 울지 마.]


원작자의 진솔한 마음이 전해지는 대사들이 류지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비록 한국어 자막이 없어 온 정신을 집중해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고 놓치는 대사도 많았지만, 일상적인 대화가 주는 묘한 감흥이 있었다.

은유나 상징, 과장, 생략, 비약으로 머리 싸맬 일이 없는.

해설이 필요 없는 영화다.

그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해지고 흐뭇해지는.

그런 작고 소박한 영화다.

모두 합쳐 오스카 연기상 4개를 수상한 배우들이 포진한 출연진.

할리우드의 원로, 중진, 신세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

그런 배우들의 노련하고 성실한 연기는 기립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감독도 힘을 빼고, 잔잔하게 잘 연출했네.’


<영정사진>을 찍을 때를 돌아봤다.

나름 힘을 빼고 찍기 위해 애썼다.

오랜만에 하는 연출이라 의욕이 넘쳤던 것도 사실이다.

그에 반해 이 영화의 감독 허버트 로스는 베테랑 감독의 면모를 보여줬다.

허버트 로스는 대가는 아니다.

류지호가 공다연에게 소개했던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 번>과 신포고 방송제에서 엔딩 음악으로 틀었던 <풋 루즈>를 연출한 감독이다.


‘영화 짬밥은 허투루 먹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네.’


류지호는 머리를 비웠다.

그리고 영화에 빠져들었다.

아기자기한 이야기.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고, 때론 눈물을 훔치고.

류지호는 모처럼 관객과 호흡하며 영화의 잔잔한 유머와 감동을 즐겼다.


‘실화라는 걸 알고 봐서 그런가? 가슴이 지릿지릿한 걸.’


원작자에게 당뇨로 인해 아이를 낳다 죽은 여동생이 있었다고 한다.

여동생과 영화 속 실제 촬영지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의 사연을 취재해 희곡으로 완성했던 것이 <철목련>이다.

87년부터 <철목련>은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류지호가 슬그머니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슥슥.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수첩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단어들을 나열했다.

샌프란시스코. 일본인. 성노예. 기림비. 성폭력. 전쟁. 용기. 반성. 부끄러움. 할머니. 인권....


- 순종적이고 가정적이지만 내면에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지고 삶을 꾸려가는 여인들. 그래서 남부의 여인들은 철로 만든 목련꽃 같은 여인들이다.


아마도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홍보마케팅팀의 카피가 류지호를 자극한 것 같다.


짝짝짝!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영화가 끝이 나고, 엔드 크레디트(end credits)가 올라왔다.

누구하나 객석에서 엉덩이를 떼는 관객은 없다.

마지막의 고정형 Tri-Stellar 로고에서 화면이 정지하고, 극장 실내등이 일제히 켜졌다.

그때까지도 류지호는 자리에 앉아 수첩에 무언가를 계속해서 메모했다.

신효정과 제나는 방해하지 않고, 잠자코 자리를 지켰다.


탁.


류지호가 수첩을 덮었다.


“어!”


극장 안에는 류지호와 제나, 신효정 단 셋만 남아있다.


“미안해요. 내가 뭔가 생각이 많아지면 멍 때리는 버릇이 있어서....”


이해한다는 듯 신효정과 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팀들은 파티장으로 이동했나요?”

“네. 보스.”


보통 프리미어가 끝나면 간단하게 극장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거나, 가까운 호텔이나 음식점을 빌려 가벼운 파티를 연다.

편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기자들이 감독, 배우와 인터뷰를 하고, 프로듀서에게서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얻어간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사교의 장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영화를 홍보하는 자리다.


“보스도 파티에 가야 하는데...”


제나 그레이스가 아쉬움에 말끝을 흐렸다.


“앞으로 지겹게 파티에 가게 될 겁니다. 그리고 비즈니스는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게 옳아요.”


류지호가 두 여성과 함께 극장을 빠져 나왔다.


“이른 시간이긴 한데, 오 실장 불러서 함께 저녁 먹도록 하죠?”

“어디로 갈 겁니까?”

“제나, 조용히 식사할 수 있는 곳 추천해 줄 수 있어요?”

“산타모니카 대로 주변에 프랑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 몇 곳 있고. 해물요리를 좋아하신다면 그랜드 애비뉴로 모실게요. 베벌리힐스에서는 유명한 쉐프들의 요리를 맛보실 수 있어요. 운이 좋으면 영화배우들을 구경할 수 있고요. 워싱턴 대로에는 LA 최고의 마티니를 맛 볼 수 있는 식당이 있어요.”


제나 그레이스가 여행가이드처럼 LA의 고급 맛집을 소개했다.


“그냥, 제나가 가고 싶은 곳으로 안내해요.”

“네!”


제나 그레이스는 일행을 유명한 쉐프가 오너인 베벌리힐스의 레스토랑으로 이끌었다.

오동석까지 합류해 근사한 코스요리를 즐겼다.

류지호가 오동석에게 물었다.


“배급할 영화를 골랐어요?”

“마음에 드는 영화는 이미 한국수입업자에게 팔렸습니다.”

“주로 올 해 개봉한 영화들이겠죠?”

“그렇습니다.”

“아쉬워하지 마세요.”

“....네.”

“내년에 트라이-스텔라가 제작하거나 배급하는 영화들 중에서 일단 다섯 편을 골라보세요.”

“다섯 편 만입니까?”

“WaW에 자금이 없잖아요. 똘똘한 놈 위주로 선택하고 집중하자고요.”

“대작위주가 되겠군요?”

“<나 홀로 집에>는 반드시 넣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WaW가 트라이-스텔라와 제휴를 맺었다는 건 충무로에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됩니다. 입단속 철저히 하세요.”

“언제까지....?”

“91년 여름 개봉영화까지는 몸을 사려야 합니다. 잘못하면 영화인들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어요.”

“영화인들에게 배신자로 찍히면 충무로에서 영화하기 곤란해지긴 합니다.”

“전하영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상무님과 오 실장만 알고 있는 것으로 하세요.”


저녁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시내 중심가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LA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며 칵테일을 즐겼다.


“......”


류지호는 통유리 너머의 LA시내 야경에 시선을 두고 상념에 잠겼다.

WaW 픽처스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보따리 장사꾼과 대기업만큼의 간극이 있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는 자회사까지 포함해 직원 수가 300여 명이다.

반면에 WaW 픽처스는 류지호를 포함해서 7명뿐이다.

만약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WaW에 도움을 주기 시작하고 지분까지 보유하게 된다면.

WaW의 독립성을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

마치 눈사태가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순간에 휩쓸려버릴 것이다.

한국에서 벌이고 있는 영화사업은 그것대로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자본이 개입되는 순간.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고 한국영화도 아닌 족보 없는 영화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류지호가 한 번 경험했던 충무로는 영세한 영화사들이 여러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발전했다.

그는 선배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떤 마법을 부렸는지 곁에서 똑똑히 지켜봤었다.


“나더러 투자를 받아서 영화사를 상장하래. 그렇게 되면 주식으로 돈을 벌고, 이 사무실도 더 쾌적하게 변할 테고, 직원도 많아질 거야. 근데 마법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영화사는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아. 소심하게 자신의 소중한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오는 감독 지망생도, 배역을 얻기 위해 박카스를 싸들고 오는 무명배우도, 막걸리 한 잔 하자고 수시로 찾아오는 스태프도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야. 영화사의 문턱은 날마다 높아질 거고, 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내 부사수들은 선민의식을 갖게 되겠지. 난 지금의 이 사소한 것들을 사랑해. 그런 마법이 충무로에서 사라지면 안 돼. 이 영화사가 지금 상태로 계속 되는 게 마법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난 믿어.”


영화사 대표였던 전하영이 동료 감독에게 푸념하듯 했던 말이다.

그 같은 낭만적인 생각 때문에 충무로를 대기업 자본에 통째로 넘겨줬을지도 모른다.

10년 주기로 천지가 개벽하듯 변하는 한국영화계.

누구와 일을 하게 되는가 보다 얼마를 주냐고 먼저 묻는 풍토.

한 분야에서 꾸준히 경험과 실력을 쌓은 전문가보다 너도나도 감독만 있는 영화판.

자본에 아부해야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비정한 세계.

류지호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 뼈저리게 경험한 한국영화계다.

한편 한국 영화계가 황금만능주의와 상업주의에 정복당했어도, ‘딴따라‘들은 누가 뭐라 해도 충무로다움을 잃지 않았다.

‘딴따라’들은 배고프고 힘들더라도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영화에 바친 낭만적인 사람들이었고, 끊임없이 기득권을 비판하고 조롱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너무나 극소수여서 운동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지만.


‘내 영화판 포지션이 참 애매하구나. 쌈마이도 아니고 니마이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한국의 영화사 WaW 픽처스가 트라이-스텔라 픽커스에 잡아먹히면 안 된다는 점이다.

WaW 픽처스는 그것대로 한국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한국 지부가 되는 건 류지호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한국영화산업에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변해야 하고, 때론 냉정해져야 하겠지만. 좋은 건 남겨서 계승·발전했으면 좋겠는데...’


❉ ❉ ❉


WaW 픽처스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와 업무제휴협약을 체결했다.

이 사실은 당분간 외부에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WaW 자체가 준비가 되지 않은 면도 있고, 류지호의 신분노출도 막아보자는 의도다.

사실 알려진다고 해도 미국에서는 곧바로 묻힐 뉴스이긴 했지만.

업무제휴협약을 체결하는 날 오전에 월가와 할리우드에 빅뉴스가 터졌다.


- G&P 부자펀드 할리우드 영화 <심판의 날> 투자.

- 그 동안 할리우드 영화 투자에 미온적이던 G&P...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걸까.

- G&P 프라이빗 투자신탁회사 가람을 통해 할리우드 투자 시작!


<심판의 날>은 제이미 캐머론이 연출할 예정인 <터미네이터 시리즈> 두 번째 영화의 워킹타이틀(가제)이다.

극장 개봉 시에는 부제로 쓰이게 된다.

이 뉴스로 인해 하루 종일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려댔다.

뿐만 아니라 뉴욕의 G&P 역시 사방에서 전화가 쏟아졌다.

G&P의 대응은 단순했다.

어떠한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

곧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을 것이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MSM/UA와 유니벌스 스튜디오가 다시 한 번 G&P에 인수제안을 넣었다.


“우리는 할리우드에 직접 투자할 의향이 없습니다. 우리의 투자는 가람 인베스트먼트에 한정 된 것이며, 영화투자는 그들의 전략에 의해 진행될 것입니다.”


제임스 파커는 모든 인수관련 제안에 대해 거절의사를 전달했다.

자연스럽게 모든 전화는 가람 인베스트먼트로 향했다.

하루 종일 받지 않는 공허한 전화벨만 울려댈 뿐.

그곳에는 근무하는 인원이 단 한 명도 없다.

그나마 새롭게 합류한 직원 두 명은 LA에서 류지호를 수행중이고.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제휴계약까지 마무리한 오동석과 신효정이 한국으로 돌아갔다.

류지호는 이틀을 더 LA에 머물 예정이다.


“죠셉, 할리우드 사인이 잘 보이는 곳에 데려다 주겠어?”


‘HOLLYWOOD’ 글자의 초대형 간판.

한 글자가 높이 14m, 폭 9m의 LA의 랜드마크다.

맑은 날에는 40km 떨어진 시내에서도 보인다.

죠셉은 할리우드 사인이 잘 보이는 힐사이드 주택가 도로에 차를 세웠다.

류지호와 죠셉이 나란히 차에 기대고 서서 저 멀리 할리우드 사인을 바라봤다.


“참. 저 간판이 뭐라고.....!”


죠셉이 옅게 투덜거렸다.

할리우드 사인을 보며 야망을 불태우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것은 아니다.


“......”


류지호에게 있어서 이번 삶의 목표는 명확했다.

경제적인 여유로움으로 가족과 화목하게 사는 것.

실패했던 영화감독으로서의 한을 푸는 것.


‘그걸로 충분한가?’


여배우들이 성과에 비해 적은 출연료를 받았던 것을 알게 된 피오나 로버츠는 스타가 되고 나서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게 된다.

할리우드 여배우로서는 최초로 2,000만 달러 이상의 출연료를 받게 된다.

그 이후 여배우들이 남자 배우 못지않은 높은 출연료를 요구하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최고의 자리에 있던 피오나 로버츠의 활약 덕분이다.

큰 힘을 가지면 그에 걸맞은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또한 진정한 목표를 세워야 했다.


‘야망이라고 해도 좋고, 선비질이라고 해도 좋아. 내가 큰 힘을 가지게 된다면 영화판을 바꾸는 노력도 해봐야겠지. 자본과 낭만이 함께하는, 이기적인 일류가 자신의 실속만 챙기는 그런 판이 아니라. 낭만적인 삼류들도 일류가 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존재하는 영화판!’


류지호는 새로 얻게 된 삶이 자신의 한풀이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레이엄처럼 세상에서 우뚝 서지만, 파커처럼 낭만적이고 넉넉한.

류지호는 영화계 정상에서 넉넉한 품으로 영화계 종사자들을 보듬고, 영화관객들에게 양질의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제작자이자 감독이 되리라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작가의말

건강하고 무탈한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PS. grisciel님, 창고님, 다솜광수님 후원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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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타다! (3) +6 22.03.15 7,540 186 21쪽
108 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타다! (2) +7 22.03.14 7,591 193 27쪽
107 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타다! (1) +6 22.03.12 7,890 183 26쪽
106 Tri-Stella Pictures. (5) +6 22.03.11 7,639 195 22쪽
105 Tri-Stella Pictures. (4) +4 22.03.10 7,841 191 28쪽
104 Tri-Stella Pictures. (3) +6 22.03.09 7,765 190 20쪽
103 Tri-Stella Pictures. (2) +5 22.03.08 7,830 185 22쪽
102 Tri-Stella Pictures. (1) +8 22.03.07 8,062 196 22쪽
101 흐르는 강물처럼. (2) +10 22.03.05 8,001 200 27쪽
100 흐르는 강물처럼. (1) +13 22.03.05 7,855 185 23쪽
99 시카고 국제영화제. (2) +23 22.03.04 8,090 212 26쪽
98 시카고 국제영화제. (1) +8 22.03.03 8,091 181 23쪽
97 WaW는 젊은 회사다. (2) +4 22.03.02 7,937 202 24쪽
96 WaW는 젊은 회사다. (1) +5 22.03.01 8,059 19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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