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태극분열심법.
‘흐아, 겁나 아프겠다.’
나는 당중일에게서 정보를 캐내기 위해 뇌옥을 찾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기 눈을 파고 자해를 하는 당중일과 마주했다.
‘광혈단이라······ 진원진기를 쓰게 만드는 독이라고? 아니, 굳이 눈 뒤에다가 넣어 둘 필요가 있나?’
나는 당중일의 기억 속에서 된 경위를 파악하고 경악했다.
인면피구를 그렇게 정교하게 만들 실력이라면 피부를 조금 벗겨 밑에 덧대는 걸로도 눈속임으로는 충분했을 터.
‘물론 눈을 까뒤집어 보지는 않겠다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머릿속에서 14인객과 관련된 정보를 찾았다.
당중일은 광혈단의 효과가 오르길 기다리며 나를 노려봤다.
“모임 장소는 그때마다 다르네요. 구파와 오대세가라면 중원 사방에 떨어져 있을 텐데요.”
“······.”
당중일은 입을 꾹 다문 채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머릿속에 그 내용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규모가 큰 작전에 따라 지휘부가 전체 이동한다라······ 그렇다면 다른 놈들도 이 근처에 있겠네.”
“뭣?!”
당중일이 깜짝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저씨들, 추격대를 구성해 객잔을 뒤지라 하세요. 최근 모임은 이문객잔이었습니다만, 아마 거기에 있진 않을 거예요.”
나는 문밖에 대기 중인 제갈세가의 무사들에게 이야기했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만 제갈인에게 보고하기 위해 뛰쳐나갔다.
“네놈 어떻게······.”
광혈단으로 인해 당중일의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핏발이 선 그의 눈이 나를 향했다.
“뭐, 그런 능력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그리고 기억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죠.”
“그런 말도 안 되는······.”
“오대세가 출신은 댁을 제외하고 제갈천, 모용창, 팽순기, 남궁석인가요?”
당중일이 흠칫 놀랐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흑색으로 물들었다.
「이놈인가? 모든 일을 망치게 한 원인이?」
생각을 읽는데 변장이나 첩자가 무슨 소용인가.
당중일은 숨길 생각 없이 살의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능력은 뛰어나지만 경솔하구나. 홀로 무방비하게 내 앞에 서다니.”
당중일의 손이 붉게 물들었다.
수강이었다.
강기가 발현된 그의 손 주변으로 파직 거리며 공간이 일그러졌다.
“댁은 강기를 쓸 실력이 안 되잖아?”
“그것이 광혈단의 묘리다.”
“진원진기를 소모하는 독이잖아. 그딴 거 사파에서도 요즘은 안 쓸 텐데?”
사파라고는 사천 성도의 사파밖에 보지 못한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당중일도 그리 생각하는지 달리 반박하지 않았다.
“흥! 네 목숨이나 걱정하시지!”
그가 자신만만하게 다가왔다.
암기나 독이 주 무기면서도 그는 거침없이 손을 휘둘렀다.
일 장에 내 발 앞의 돌바닥이 푹 꺼졌다.
‘강기가 대단하긴 하네.’
그가 진짜 절정고수였다면 이렇게 여유를 부리며 관찰할 수 없었다.
당중일은 스스로 독암쌍제라 부르지만 무공만큼은 독왕 당중월에 비하면 그 실력 차가 컸다.
“최근에 제갈세가에서 만해경이란 비급을 얻었지.”
“제갈세가가 당문에게?”
당문과 제갈세가는 같은 오대세가 테두리 안에 있지만 둘 다 무공이 주력이 아니다 보니 쉽게 비교되고, 덕분에 티격태격하는 사이였다.
나는 괴황지에 돼지 핏물을 이용해 부적을 만들었다.
암기술로 단련된 부적 하나를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하핫! 미친놈.”
당중일이 부적을 보곤 조소했다.
그러나 부적이 그의 몸에 닿는 순간 그의 몸을 뒤덮은 광혈단의 혈기가 단숨에 누그러들었다.
들끓던 진원진기도 맹렬하게 타오르던 수강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
당중일이 맥없이 땅바닥 위에 쓰러졌다.
진원진기를 태우는 광혈단의 부작용이었다.
그가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며 노려봤다.
“신기해! 마법 같아!”
제갈균에게 만해경을 인수받긴 했지만, 그가 가진 깨달음은 부적술 외에 그리 높지 않았다.
그에게서 훔친 부적술은 상대의 기력을 쇠하게 하는 것과 불을 내는 것, 번개를 쏟아 내는 것 등이었다.
“이게 광혈단만 무효화하는 건지, 아니면 내공을 봉하는 건지는 실험을 해 봐야겠는걸?”
나는 키득거리며 쓰러진 당중일을 내려다봤다.
목내이(木乃伊; 미라)처럼 말라붙은 모습이 진원진기를 대부분 소진한 모양이다.
“자, 부적술은 차치하고······ 큰 숙부, 댁에게서 작은형을 받아 내야겠어.”
당연해가 돌아와야 당중수 역시 다시 철암당으로 돌아올 것이다.
철암당에서 이것저것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철암당주라는 무거운 감투를 쓸 마음은 없었다.
“만해경 외에도 제갈 노사에게서 얻은 게 또 있거든.”
심리 방벽을 진처럼 구성하는 걸 경험했다.
‘그렇다면 반대로도 되지 않을까?’
이를 바탕으로 당중일의 머릿속을 낱낱이 헤집었다.
그 안에서 14인객에 대한 정보는 물론 동생 당중월을 향한 열등감, 당문에 대한 원한까지 고스란히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의 평화와 안식을 위해 네놈들은 사라져 줘야겠고.”
생기를 잃은 당중일의 자아를 거침없이 분해했다.
***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제갈인을 비롯한 각 오대세가의 대표자들이 당연우의 보고를 듣고 뇌옥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실성한 당중일이 그들을 반겼다.
백발이 된 채 침을 질질 흘리는 그 모습은 연기라 볼 수 없었다.
“안구가 적출되고 혈도가 엉망진창이 됐네요. 무엇보다 가장 큰 위험은 진원진기를 너무 많이 소모했습니다.”
당연강이 당중일의 진찰하고 상태를 파악했다.
제갈인이 신음을 흘렸다.
당연우가 보고한 14인객의 내부 정보는 알찼다. 당중일에게서 더는 뽑아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의 보고서는 완벽했다.
“하지만 아쉽군. 녀석을 이용할 방법이 더 있을 텐데······.”
제갈인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를 곁에서 듣던 남궁적이 고개를 저었다.
“제갈 가주님, 그가 어디까지 협력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섣불리 이용했다가는 도리어 화를 입을 수 있습니다.”
“하긴 그것도 그렇지. 치밀하게 움직이던 놈들이니······.”
그들의 수법이 당연우에게 낱낱이 드러나면서 오대세가의 대표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조직원들부터 시작해 상계, 정보조직, 타격대 등 14인객이 키운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보고에 따르면 조직의 대표 격인 이가 바뀌었다던데? 그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무당 출신인 청명해 말씀이십니까?”
본래 14인객은 낙오자 집단이었다.
구파나 오대세가에서 반감을 품고 떨어져 나온 이들이 무림맹에는 갈 수 없었고 음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최근 삼사 십 년 만에 구파와 오대세가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결사 안에서는 청도사라 불리는 인물이더군요.”
모두 당연우의 보고서에서 나온 내용이었다.
‘어떻게 고문을 했길래 이런 상태가 됐지? 약물인가?’
제갈인은 당연우에 대한 인상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악한 당문의 기대주라 생각했는데 이리 사람을 폐인으로 만든 심성에 의문이 갔다.
‘아니, 당연강······ 당중월의 지시였으려나?’
호위무사의 보고를 통해 이 안에 들어간 사람은 당연우뿐이었다.
그렇다면 당연우가 직접 손을 썼되 방향은 당연강이나 당중월이 정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사파도 아니고 십 대가 할 일은 아니지.’
제갈인도 당중일을 진맥하고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안구가 적출되고 얼굴이 찢어진 건 고문의 흔적이었다.
“당문은 나이가 어려도 정말······.”
대표자 중 누군가 중얼거렸다.
당문의 독심은 다른 오대세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무림인들이 백안시하는 독과 암기로 일가를 이룬 곳이었다.
은원을 칼 같이 잘라 내 반드시 갚는 독종들이었다.
“그만하게. 덕분에 우리는 그들을 칠 충분한 정보를 모았어.”
제갈인이 괜히 당연강의 귀를 더럽히지 않도록 다른 대표자들에게 주의를 환기했다.
그리고 시선을 다시 당중일로 돌렸다.
“이 자를 어떻게 할 건가?”
“목만 베어 가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좋아하시겠군요.”
숙부에 해당하는 인물이건만 당연강은 당중일을 힐끗 보더니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갈인이 쓰게 웃었다.
‘역시 당문이군.’
***
부적술로 효용을 보았으니 본격적으로 만해경을 해석할 차례였다.
제갈균은 구두로 만해경의 구절을 단 한 번 읊었을 뿐이다.
‘언제고 제갈세가에 돌려주길 바라네.’
그럼에도 제갈균은 거듭 강조했다.
제갈세가의 비전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이니 그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치매 때문인 건가?”
제갈균이 중간에 정신이 나가지 않았더라면 세가에서 신용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치매 증상을 보이며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으니, 그런 인물이 강조한 만해경이 세가의 다른 사람들에게 중히 여겨질 리 만무했다.
물건으로는 귀중히 보존하되 누구도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야 만해경의 내용이 어렵기도 하고······.”
애초에 만해경은 제갈균만한 학사가 정신이 붕괴할 정도로 파고들었지만 부적술도 그 일부분만 간신히 익힐 정도로 난해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침상 위에 올라 가부좌를 틀었다.
‘내가 직접 해석할 순 없으니까, 전문가한테 한번 부탁해 볼까?’
심법을 익히며 마음을 다루는 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전생에서는 써본 적이 없는 방식이었다.
일단 마음속에 널찍한 방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훔친 깨달음들의 주인들을 그려 냈다.
처음에는 제갈균이 모습을 드러냈고, 이어 황실 학사 전여문, 당중화, 제갈휘 등이 형태를 이뤘다.
‘동양사학······ 전생에서 주역은 누가 가르쳐줬더라?’
전생의 인연도 끄집어냈다.
만해경이 천문, 과학, 종교 등 분야를 가리지 않다 보니 관련 학과 교수들부터 시작해, 산업 현장에서 취재했던 인물들을 차례대로 구현했다.
‘나는······ 그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을 품었구나.’
심상 속 방 안이 비좁을 정도로 사람들이 빼곡했다.
이들 모두 한 분야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린 이들이었다.
“그럼 부탁합니다. 여러분······.”
호흡을 짧게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순간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밤송이가 머릿속을 굴러가는 것 같기도 했고, 시뻘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후비는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이 얼마나 늘어났든 결국 연산 처리를 하는 건 내 머리였다.
‘도반삼양귀원공으로 일단 상단전을 보하자.’
하단전의 기운을 끌어올려 중단전에서 정제해 다시 상단전으로 보냈다.
코피가 터졌다.
상단전이 터질 듯이 부풀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단번에······ 해석은 불가능하더라도!’
암제는 만해경에서 무엇을 본 걸까?
그는 제갈세가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태극분열심법을 완성했다.
나는 역으로 암제가 남긴 태극분열심법을 만해경에 대입했다.
‘태극을 완전히 나눌 수 있는 건 뭘까?’
만해경에 그것이 담겨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 질문을 집단 깨달음에 던졌다.
과열된 뇌가 녹아 눈코입에서 흘러나오는 기분이었다.
깨달음의 무수한 질문에 만해경은 마치 절대적인 신처럼 해답을 내렸다.
그리고 그 각 분야의 무수한 깨달음은 각기 다른 답을 얻었고, 그것이 머릿속에서 어우러졌다.
“쿨럭!”
눈에서, 코에서, 그리고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머리에 폭탄이 터진 듯 크게 뒤흔들렸다.
막대한 정보량에 정신이 아득해져 가운데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암제가 비급으로 남기지 못한, 언어화하지 못한 가림판을.
“하! 요컨대 나 자신이 악마가 되어야 한단 말이네. 난 또 원심분리기 같은 요령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침대 위에 쓰러진 나는 깨달음을 수습했다.
한 마디로 줄이면 나를 둘로 나눠 끊임없이 음기와 양기를 나누는 것이다.
완벽하고 끈질기고 빠르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이야?”
나는 숨을 돌리고 다시 가부좌를 취했다.
이제 이 집단 깨달음을 통해 얻은 완전한 태극분열심법을 내 것으로 만들 차례였다.
“뭐, 이미 마음도 나눴겠다. 이제 음양도 나눠 볼까?”
태극분열심법의 구결을 외며 진기를 이끌었다.
도반삼양귀원공, 오독행공, 취화독공 등 지금까지 배워 온 심법이 붕괴하고 태극분열심법에 녹아들었다.
묘한 부유감과 함께 청아한 기운이 정수리 위로 내려앉았다.
간질거리던 피부가 얇게 벗겨지며 새살이 돋아나고, 삐걱대며 온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학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위로 반투명한 꽃이 피어났다.
***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이른 새벽, 낙양 거리를 노인 홀로 걷고 있었다.
무림맹으로 이어지는 대로 위로 헐벗은 노인이 제 몸보다 큰 기둥을 짊어지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노인의 눈은 죄다 파였고 코는 베어져 있었으며, 피부 위로는 거미줄처럼 상흔이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무림맹 정문에 이르러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
이빨 하나 보이지 않는 시커먼 공동이 무림맹 정문을 지키는 경비 무사들 눈동자 위에 비쳤다.
“노, 노사······.”
언뜻 봐도 심각한 상태였다.
어디서 왔는지 노인의 맨발에는 발가락 하나 없었다.
위기 상황이라 여긴 경비 무사가 호각을 불었다.
삐이이―익!
울음소리와 함께 경비 조장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가 노인을 알아봤다.
“이, 이분은 전대 전형문주님이시다! 의원을 불러!”
노인은 이십여 년 전 화려하게 금분세수를 하고 강호를 떠는 자였다.
당시 강호 초출인 경비 조장은 우연히 그 잔칫상을 찾은 기억이 있었다.
화려한 비단옷은 어디로 갔으며 풍채 좋던 체구는 고목처럼 말라 있었다.
“지금 당장!”
노인이 짊어진 기둥에는 구파와 오대세가를 상징하는 14개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한 일(一) 자가 덧대 있었다. 마치 중원 무림에서 파내겠다는 것처럼.
무림맹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전 전형문주의 고문 살해 사건은 정파 무림인들의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14인객은 무림맹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대문파와 세가 출신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벌인 악행으로 인해 좋지 않은 무림맹 안에서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끄응! 그런데 이놈들을 어떻게 찾나?’
무림맹에 몇 번이나 그들의 뒤를 캐려고 했지만, 좀처럼 14인객의 꼬리를 잡을 수 없었다.
“군사,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소?”
이럴 때 제갈지는 어려운 상황에서 늘 좋은 답을 내놓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도 명안을 준비했다.
“최근 오대세가 회합에서 14인객의 덜미를 잡았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맹주도 오대세가가 매년 회합을 가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제갈지가 건넨 보고서를 쭉 훑어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허! 그들을 추적하다니······ 과연 제갈세가인가!”
맹주의 질문에 제갈지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희 집안이 아닙니다. 당문······ 당연우라는 청년이었습니다.”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