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연합행.
“현재 연합은 엽맹문과 수신회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오.”
민머리의 사내, 연합의 암살부장이 입을 열었다.
정보각 사무실에 부장들이 모였다.
그들은 철익의 수족 같은 이들로 무공보다 사무 능력을 인정받아 자리를 받은 이들이었다.
무림맹을 맡은 대맹부장과 새외세력을 상대로 정보를 구하는 새외부장, 내부 감사를 맡은 첩보부장, 그리고 암살부장 등, 정보각의 부장들의 시선은 어둡기 짝이 없었다.
‘총관이 버려졌으니 누구라도 손을 잡아야 해.’
연합의 간부는 언제라도 부하의 칼에 등이 찔릴 수 있었다. 그걸 억누르는 게 힘이었고, 그래서 연합 대부분의 간부들은 고수가 아닌 자가 없었다.
총관이 무공보다 사무능력을 위주로 진급시킨 정보각만이 예외였다.
“련주님은······.”
“우리 목소리가 닿지 않소.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그 전에 련주님의 수신호위들에게 삼켜지겠지.”
련주 곁에는 그를 지키는 호위단이 있었다. 다만 련주가 호위가 필요없을 정도로 무공 실력이 뛰어난지라 그들은 련주의 호위라기 보다는 련주의 심부름꾼이었다.
정보각의 부장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결국 엽맹문이냐 수신회냐인가?”
암살부장이 첩보부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첩보부장은 호리호리한 체구의 전형적인 서생이었다.
총관 사후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두 세력이었다.
철익에 비해 크게 손색이 있지만 두 간부 모두 무공도 뛰어나며 영민하기 짝이 없었다.
“제 삼세력은······.”
첩보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녹림의 총표파자가 그나마 세력이 크다고 볼 수 있지만 너무 파편화 돼 모으기가 힘든 걸로 알고 있소.”
녹림채는 때론 녹림칠십이채라 불릴 정도다. 실제로 일흔두 개의 조직이 연합한 것은 아니나, 그에 준할 정도로 중원 각지에 산적을 두고 있었다.
산적 개개인의 무공 실력은 그리 뛰어나다 볼 수 없었지만, 연합의 소중한 전력이었다.
그래서 녹림의 총표파자는 늘 연합에서 어느 정도 대우를 받고 있었다.
“결국 엽맹이나 수신이냐군.”
어느 줄을 잡는 것이 중요하냐도 있었지만, 어떤 조건으로 줄을 서느냐도 중요했다.
부장들의 안색이 밝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새로운 총관이 자리를 잡으면 이전 총관이었던 구운재의 색을 지우기 위해 부장들을 물갈이 할 공산이 컸다.
사파와 같은 범죄조직에서 자리를 뺀다는 건 죽으란 말과 같았다.
힘이 없어진 간부들은 그동안 간부로 빨았던 꿀만큼 피로 돌려받았다.
“어디 하나 확실치 않으니······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건가?”
암살부장의 눈이 차가워졌다. 민머리의 그는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무공 실력이 뛰어났다.
또한 암살부를 맡은 만큼 다른 정보부에 비해 가진 바 힘도 컸다.
긴장감이 고조될 때 대맹부장이 입을 열었다.
“아니, 정보각을 찢어서는 제 힘을 낼 수 없을 거요. 그러면 결국 우리 모두 죽겠지.”
그가 암살부장에서 다른 부장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뭘 그리 고민하는지 알겠지만······ 결국 우리가 잡아야할 줄은 어차피 하나요.”
대맹부장을 향해 시선이 돌아갔다.
자존심 때문에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정보각 부장들 중 가장 능력이 뛰어난 자는 대맹부였다.
마주한 적이 무림맹이었고, 구운재 총관이 군익과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정보전의 선봉대였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의견을 보이자 다른 부장들이 관심을 보였다.
“백리안. 아니, 련주님의 후계자요.”
“그는 당문의 사람이 아니오?”
“총관이······, 실례, 전 총관은 우리 련주님의 힘에 굴복할거라 예상했소.”
그렇기에 철익은 반드시 당연우를 죽이려 했다.
그 사실은 대맹부장은 물론, 다른 부장들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정파의 후기지수거늘······.”
암살부장이 혹시나 싶은 마음에 중얼거렸지만, 대맹부장이 말을 잘랐다.
“그리고 그는 전 총관을 실각시킨 인물이오. 철익이 직접 나섰음에도.”
사실 실패는 대맹부장도 했다. 그는 대호채를 구슬러 당연우에게 보냈고, 대호채와 만거득은 당연우에게 거하게 당하고 돌아왔다.
또 무림맹을 대상으로 정보를 모으는 대맹부장이었기에 당연우의 힘을 다른 부장들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백리안 그 자는 련주님의 편애를 받는 후계자이며, 머리는 전 총관보다 우수할지 모르는 자요.”
“손을 잡기에는 백리안이 가장 낫단 말이군.”
첩보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리안은 무림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지만, 문인들 사이에도 과거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보였던 걸로 유명했다.
문인 출신인 첩보부장에게는 오히려 사냥꾼 출신인 엽맹문이나, 짐승이랑 같이 놀고 먹는 수신회 놈들보다는 훨씬 마음이 동했다.
“살기 위해서는 당가 애송이의 발가락이라도 빨아라?”
반면 암살부장은 노골적으로 비꼬았다.
대맹부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소. 살기 위해서는 뭐든 못 빨까?”
암살부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그래, 죽기 싫으면 개새끼 똥꼬라도 빨아야지.”
대맹부장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암살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대맹부장이 그렇게 단호하게 말할 정도면 능력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고, 나이를 생각하면 장래성도 충분하겠지.”
보신이라고는 하지만 적일지도 모르는 이와 손을 잡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사파 출신의 그들에게 조직의 충성보다 개인의 이득이 더 중요했던 탓이다.
그리고 그건 비단 정보각의 무사들만의 일은 아니었다.
***
“연락은 어려울 것이야. 그러니 뒤를 부탁한다.”
나는 남사성에게 사천에서 관리하고 있던 수하들을 당부했다.
사파연합에 들어간 뒤 연락이 쉬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신마의 후계자라는 입장상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을 것이다.
“맡겨만 주세요. 알려주신대로 잘 관리할 게요.”
그녀의 능력이야 이미 잘 알고 있었고, 신마가 준 유예기간 동안 인수인계도 철저하게 했다.
그런데 영 믿음이 안 갔다.
“사고 치지 말고. 원수도 죽었잖아?”
철익은 신마의 손에 죽었다.
그래서 졸지에 원수를 잃은 그녀가 방황이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인수인계하는 동안 그녀의 심리상태는 안정됐다.
오히려 철익이라는 손에 닿지 않는 상대로 원한을 갚고자 마음 고생이 심했던 것 같았다.
그녀의 조부인 노상인까지 당문에 모시자 남사성은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걱정마세요. 공자님께서 맡겨주신 힘, 제가 잘 관리해둘 게요.”
남사성이 부끄러운 듯 웃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애들도 잘 챙겨주고. 사고칠까 걱정이다.”
“언니들 모두 이해하는 입장이에요. 특히 남궁 언니는······ 맹목적이랄까요? 아니면 신앙심이랄까요? 그래요.”
구음절맥을 치료해준 뒤로 남궁린의 마음은 거의 신앙에 가까웠다.
죽을 날만 세던 삶이 한 순간에 바뀌었으니 그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너무 과하다 보니 부담됐다.
‘그녀의 마음을 읽지 않게 된 것도 그 때문이긴 하지.’
읽지 않아도 그 마음이 훤히 보인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러면 믿고 사련으로 떠날게.”
남사성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고 나는 문을 나섰다.
이미 아버지나 형, 집안 어르신에게 인사했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어르신은 사지로 가는 모양새다 보니 분통을 터트렸다.
사정을 아는 당중월도 영 찜찜해 했고, 당연강은 불안해 보였다.
오히려 작은 형 당연해가 어느 정도 내 본색을 보았던 터라 크게 걱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음, 정보를 모아온다고는 했지만, 사파연합이라······ 꿀꺽해 볼까?”
사파연합은 전생 전을 떠올리면 마피아나 갱의 연합체 정도로 볼 수 있었다.
그들 머리에 올라 조율한다면 무림은 평화롭게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신마의 깨달음에 구미가 가기도 하고.”
무림맹주 권성과 천하제일을 다투는 그의 심득은 어떤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직접 마음을 열어 가르침을 내려준다고 하니 그 일각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이득이란 생각이 들었다.
구운재가 경고했던 신마의 심리장악 기술은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숱한 사람의 기억을 읽고 흡수하면서 정신력은 이미 단련할 수 없을 정도로 단련됐다.
이리저리 절망하고 휘둘리던 시기는 이미 사춘기 때 끝낸 문제였다.
***
절강성 풍중시는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해도 가구수가 두 자리수의 산골 마을이었다.
풍중시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사파연합의 본부가 들어서면서였다.
수많은 연합 소속의 문파들이 파견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거리가 발전했고, 또 물류라 오가면서 크게 발전했다.
또 연합에서 운영하는 도박장은 풍중시의 명물이라 불릴 정도로 도시를 크게 하는데 한 몫했다.
무엇보다 연합 본부가 위치한 만큼 치안은 무림맹이 자리한 낙양보다 도리어 뛰어났다.
풍중시를 찾는 손님이 대부분 사련과 관련된 것도 있었지만, 일단 사련의 칼에는 법이나 절도가 없었다.
난다긴다 하는 마인들도 사련의 간부들에게는 우수울 정도로 애송이였다.
“중원의 라스베이거스인가? 정말이지 대단해.”
그렇기에 홀로 사련 본부를 찾은 당연우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중얼거렸다.
완전히 관광여행을 온 것 같은 태도였다.
덕분에 안내역으로 나온 지전섭이 진땀을 뺐다.
‘아니, 본련에서는 당문 공략이니 뭐니 했던 거 같은데 이런 여유라고?’
당연우가 사련에 연락을 한 시기는 사련의 간부들이 어떻게 무림맹을 억제하고 당문에서 당연우를 끄집어 낼지 고민하고 병력을 모으던 중이었다.
전쟁이냐 아니냐 긴장감이 고조되던 차에 허망하게도 당연우가 직접 의사를 전달했다.
덕분에 사련의 간부들은 부랴부랴 작전을 뒤엎고 당연우를 모셔올 사절을 준비했다.
그래도 신마의 후계자인데 혼자 털래털래 오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공자님께서는 긴장도 되지 않으십니까? 이곳은 온갖 범죄자들이 모인 낙원. 연합 본부 앞마당입니다.”
“긴장은 무슨······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지.”
지전섭이 슬쩍 당연우를 겁주었지만 그는 도리어 비웃었다.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사천성에서 절강성까지 오는데 이런 태도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용의 간이라도 삶아 먹은 건가? 어린 놈이 뭐 이리 겁이 없어?’
사련의 간부들은 당연우를 안내할 자를 허투루 뽑지 않았다. 사십대 초반의 지전섭은 현장에서 구르고 구른 고수였다.
지전섭은 연합 본부 소속인만큼 연합에 반하는 문파를 조지는 게 전문이었다.
자신의 절반도 살지 않은 당연우가 너무도 여유로운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련주님의 명성에 기대고 나대는 걸까?’
문제는 그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연합의 다른 간부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고 입을 닦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신마의 분노는 연합 전체를 움직이게 했다.
사파연합의 추적 끝에 잡혀사돈에 팔촌, 소속문파가 모조리 잡혀 지옥 같은 고문을 당할 수 있었다.
“역시 무림맹보다 화려해. 인간들이 싸구려다 보니까 이런 걸로 보상받고 싶은 건가? 뿌리없는 새끼들.”
당연우의 말 하나하나가 지전섭의 심기를 건드렸다.
당장에 목을 베고 싶었지만 그 뒤를 감당이 자신이 없었다.
본부 소속인 그는 신마의 무서움을 분타나 소속 문파원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우는 소리가 나왔다.
“공자님, 그런 말씀은······.”
“틀린 말은 아니잖아? 뭐, 대신 보는 맛은 있다만.”
당연우의 말처럼 풍중시에는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금으로 집을 짓는 인간이 있지 않나, 마땅한 주제 없이 값비싼 명작으로만 정원을 만드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것들이 모이니 나름 풍중시만의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도박이라······ 나는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데 본부에 가기 전에 패를 조금 굴려봐도 될까?”
당연우의 말에 지전섭이 기겁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신마였다.
패놀음이 한두 시진만에 끝나는 도박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빨리 끝내자고 신마의 후계자의 지갑을 홀라당 털 수는 없었다.
“다음에 안내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됐으니 어서 련주님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당연우라는 인간, 절강성까지 오는 동안 숙소는 무조건 최고급이 아니면 허리가 아프다고 징징댔고, 음식도 까다롭기 그지 없었다.
엿먹이겠다는 속셈이 너무 보여 안내하는 지전섭이 열불이 날 정도였다.
“그래? 그건 그렇지. 나이 많은 어르신을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아무리 상대가 사파잡놈이라고 해도 예의는 지키는게 또 명문가 출신이 보일 자세지.”
지전섭은 당연우가 말이 그토록 얄미울 수가 없었다.
“당 공자, 아무리 손님이라도 하셔도 예의를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그가 이를 빠득 갈며 당연우를 위협했다.
물론 협박이 당연우에게 통할 리 없었다.
그가 콧방귀를 꼈다.
“아이고 무서워라. 이거 무서워서 본부에 들어갈 수 있겠나. 돌아가야겠다. 역시 집 밖은 위험해.”
지전섭이 놀라 당연우의 바짓가랑을 붙잡았다.
“아이고, 공자님! 이렇게 가시면 어떡합니까?!”
그가 우는 소리를 냈다. 당연우가 이대로 돌아가면 신마의 분노보다 그를 추천한 연합 간부들의 분노를 먼저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그랬다간 연합에서 병력을 모아 청성파와 아미파를 압박, 그리고 저희 집을 불살라 버릴 테니까. 병력은 대충 모집 인원은 삼천 정도로 예상되고, 보급은 수로채가 할 테고. 간부들은 정원 출석할 테니 당문에게는 빠듯하겠어.”
당연우가 마치 연합 간부들의 작전을 다 안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네?!”
지전섭이 깜짝 놀란 눈으로 당연우를 바라봤다. 신마가 경고한 이상 연합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나, 당연우는 작전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모조리 맞췄다.
‘이게 백리안이란 자의 신안인가?’
당연우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이를 마주하자 지전섭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안내한 것이지?’
독심술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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