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천하제일.......
우리 아버지는 멍청하다.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구는 게 그의 일과였다. 도무지 그 쟁쟁한 어머니들이 상전으로 모시고 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암기 투척 연습으로 손가락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노력하는데, 아버지는 방 안, 그것도 침상 위에서 낄낄거리면서 이름 모를 서책만 보고 있었다.
분명 오늘 아침에도, 어제저녁과 오후에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데.
“진짜 아빠는 얼굴뿐이야.”
그런 아버지의 한심한 행태에 나는 부끄러웠다.
또 그럴 때면 나를 나무라는 건 남궁 어머니였다.
“우리 아들, 함부로 아버지를 무시해서는 안 돼요.”
평소 순하디순한 남궁 어머니가 아버지를 욕할 때면 이게 자기 아들에게 보낼 눈빛인가 싶을 정도로 매서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남궁 어머니는 얼굴을 많이 밝히는 것 같았다.
“무시해도 돼. 내 아들 말고 누가 날 무시해.”
아버지는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 나를 두둔했다.
그러면 또 남궁 어머니는 금방 헤실거리며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그렇죠? 헤헤, 가가의 말이 맞아요.”
분명 금실 좋은 두 사람이었지만 자식이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였다.
그때 문을 벌컥 열면서 팽 엄마가 들어왔다.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며 들어온 것이 연무장에서 수련하다가 바로 아버지를 찾아온 것으로 보였다.
무공만큼은 여러 어머니 중 으뜸인 사람이었다.
강호에서는 여류제일 고수라든지, 팽가 제일 고수는 당문에 있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팽 어머니는 대단했다.
다만 왜 아버지랑 혼인했는지는 죽었다 깨어도 알 수 없었다.
“당 가가, 제가 수련 중 궁금한 게 생겨서 말인데요. 어라? 무슨 일로 우리 아들이 아버지 방을 찾았을까?”
그리고 태양혈도 밋밋하고 손에 굳은살 하나 없을 정도로 무공에 무지한 아버지에게 무공을 배우는지 알 수 없었다.
팽 어머니의 질문은 이제 막 무공을 수련한 나는 이해조차 되지 않는 높은 수준의 무리였다.
그런 백수 아버지는 대충 허튼소리로 답하곤 했다.
‘아마 아버지의 기를 세워주기 위함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무공을 수련하는 걸 태어나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마치 아는 것처럼 거짓말을 술술 하는 것이 옆에서 보는 내가 다 부끄러웠다.
아니, 우리 집 게으른 놈팡이가 좀 많이 쪽팔렸다.
“우리 아들이 오늘은 왜 이렇게 심통이 났을까?”
불편한 마음에 아버지 방문을 나서 남 어머니를 찾았다.
워낙 바쁜 남 어머니는 좀처럼 집에 있지 않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라고는 일 년에 삼십 일을 간신히 채울 정도였다.
집에 와도 늘 자기 방에서 수북하게 쌓인 서류 더미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왜 아버지랑 혼인한 거예요? 아니, 어머니들은 왜 혼인한 거죠?”
내 질문에 남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 언니들이 이야기 안 해주디?”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대단했다. 백리안이라 불릴 정도로 천재였다. 그런 아버지 띄워주는 아부는 많이 들었어요. 아! 허안공자라 불릴 정도로 잘 생겼다는 말도.”
허안공자란 별호는 이해가 갔다.
얼굴 하나는 오십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여전히 삼십대 초반으로 보일 정도로 동안이었고, 그 얼굴 때문에 게으름을 피워도 뭔가 신선놀음을 하는 분위기를 만들 정도였다.
“호호! 잘생긴 외모는 사실이지.”
“아무리 봐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략혼인 거 같아요. 큰아버지가 가주니까요.”
“그것도 맞는 말은 맞는 말인데······.”
남 어머니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피했다.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제 생각이 맞았어요! 정말이지. 부끄러워서······.”
내가 울먹이자 남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 달려와 위로했다.
“아니, 우리 아들 왜 울어?”
“엄마들이 안쓰러워요. 저런 놈팡이 아빠에게 묶여 산다는 게. 그리고 또 창피해요.”
남들이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이야기는 하는데, 내 눈에 밟히는 건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구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모두 내가 아버지 아들이기 때문에 위로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예전과 다르게 그래도 공부도 하고 무공도 배우면서 아버지의 한심한 작태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언니들이 말재간이 없어서 제대로 설명을 못 했구나. 그이도 참 자기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우리 아들이 이렇게 심란하지도 않을 텐데······.”
남 어머니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아들, 그만 울고 이야기를 들어 볼래? 현재 이 강호를 지배하고 있는 놈팡이에 대해서.”
“네? 강호 지배?”
내가 울음을 멈추고 남 어머니와 눈을 마주했다.
그녀가 자상한 눈빛으로 허황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이지 눈물이 쏙 들어갈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
어렸을 때부터 히어로를 꿈꿨다.
비록 하늘을 날거나 불을 내뿜는 그런 능력과 다르게 수수하기 짝이 없는 능력이었지만, 나에겐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강호에 떨어졌을 때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무림인들의 깨달음마저 훔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수많은 깨달음을 얻은 끝에 무림에 평화를 이룩했다.
"이제 나도 천하제일의......."
히어로가 됐을까?
- 작가의말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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