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새글

백G
작품등록일 :
2023.07.10 20:20
최근연재일 :
2024.09.23 21:57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487
추천수 :
6
글자수 :
266,333

작성
23.07.17 21:00
조회
14
추천
1
글자
12쪽

2화

DUMMY

귓가를 끊임없이 두드리는 아들의 울음소리에 콘트라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과음을 한 탓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콘트라에게는 어제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딱히 문제는 없는 듯했다. 다만 수상의 제안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 게 아닌가 걱정이 되는 콘트라였다.


“움브라······ 분명히 이데아와 수상 각하의 공적을 홍보하는 곳이었지.”


콘트라는 혼자 중얼거리며 자신이 일하게 된 곳에 대해 생각했다. 움브라는 수상의 직속 기관 중에서 가장 작지만 영향력은 막대했다. 콘트라가 타국에서 영사로 일하던 시절, 치적을 홍보해 달라는 움브라의 공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를 대사에게 보고하니 기존에 하던 걸 멈추고 해당 업무를 우선시하라는 지시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린 콘트라였다. 그만큼 이데아에서 중요한 기관이었다.


이번 교섭으로 조국에 큰 이익을 안겨 주는 공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부담되는 자리였다. 하지만 콘트라로선 존경하는 우상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훌륭히 소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침대에서 엉덩이를 뗐다.




“어휴, 술냄새.”


“미안. 어제 너무 많이 마셨나 봐.”


“저 아저씨한테 지독한 냄새가 나네요. 그쵸, 필리우스?”


웃고는 있지만 아마레는 콘트라의 말을 무시한 채 아들과 대화를 나눴다. 아직 옹알이밖에 못하는 필리우스가 대답할 리가 없다. 일종의 시위라는 걸 눈치챈 콘트라는 아마레를 뒤에서 안았다. 몸을 뒤척이며 싫은 척을 하던 아내는 이내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콘트라, 당신은 오랫동안 타지에서 지냈으면서 간만에 만난 나에게는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네요.”


“그건 아냐. 내 사랑은 오직 너뿐인 걸.”


“술에 취해서 밤늦게 들어오고. 사랑을 나누자고 해도 그냥 자 버리고. 그러면서 사랑한다고요?”


결혼을 하고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마레는 여전히 귀여운 여자였다. 두 사람은 콘트라가 외교부 본청에서 일할 때 만났었다. 당시 아마레는 시청의 말단 직원이었다. 처음에는 실수를 연발하는 그녀가 싫어서 차갑게 대했던 콘트라였다.


하지만 업무에 지친 그에게 다가와 위로를 해 주는 아마레에게 콘트라는 반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시청과의 협업이 끝나던 날, 콘트라는 아마레에게 청혼했다. 직위도 낮고 부족한 자신에게 왜 반했냐는 아마레의 물음에 콘트라는 이렇게 답했다. 사랑에 이유가 필요하냐고.


그렇게 지금 이 자리까지 온 부부였다. 아내의 볼에 입술을 맞춘 콘트라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번에 수상 직속 기관에서 일하게 되었어. 이제부터는 집에서 출퇴근할 거야, 아마레.”


“정말요?”


“정말이야. 그리고 이번 주말에 공원에 나들이나 갈까?”


“그래 놓고 또 일이 생겼다고 할 거잖아요.”


“아니야. 약속할게.”


그제서야 화가 풀린 아마레는 배시시 웃었다.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입맞춤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두 사람이었다. 간신히 재웠던 필리우스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아들을 다독이는 아내를 뒤로하고서 콘트라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콘트라 도크트리나?”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대답을 들은 여자는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짓이겼다. 비흡연자인 콘트라로선 불쾌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어린 아기가 사는 집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상대의 무례함을 지적하려던 콘트라는 여자의 말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파이니트 노비시메. 움브라의 실장이다. 새벽에 네가 새로 합류한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왔어.”


“반갑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새벽인데···”


“우리에게 시간은 중요치 않아. 할 이야기도 많으니 바로 따라오도록.”


황당한 상황에 화를 내야 할지 고민하는 콘트라였다. 하지만 이내 중요한 부처인 만큼 업무가 많을 것이라며 납득을 했다. 콘트라 도크트리나는 그런 남자였다. 잠시 준비할 시간을 달라는 콘트라에게 파이니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방에 돌아온 콘트라는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아마레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누가 봐도 서운함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바쁜데 주말에 나들이 가자고 한 건가요?”


“나도 이럴 줄은 몰랐어. 하지만 약속한 건 꼭 지킬게.”


“믿어 볼게요.”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콘트라는 옷을 갈아입었다.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훌륭한 평가를 받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콘트라는 집을 나섰다.


콘트라가 조수석에 앉자 파이니트는 시동을 걸었지만 도중에 모터가 꺼졌다. 그러자 운전대를 내려치며 화내는 파이니트였다. 상관의 폭력적인 행동을 보자 콘트라는 머리가 아파 왔다. 연륜이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얼굴과 달리 언행이 아주 거친 여자였다. 실수라도 한다면 자신이 저 운전대의 대체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콘트라는 속으로 한숨쉬었다.


다행히 두 번째 시도에 시동이 걸렸다. 그제야 입을 여는 파이니트였다.


“움브라의 역할이 뭔지 알아?”


“이데아와 수상 각하에 대한 홍보입니다.”


“명목상으로는 그렇지.”


“명목상이라니······”


의미심장한 상관의 말에 콘트라가 질문을 하는 와중이었다. 건너편에서 굉음을 내며 빠르게 달려오는 트럭을 피하기 위해 파이니트는 운전대를 다급히 돌렸다. 흔들리는 차내에서 몸을 지키기 위해 콘트라는 허겁지겁 손잡이를 잡았다. 거의 한 바퀴를 돈 후에야 차가 멈추자 파이니트는 창문을 열고 욕설을 날렸다.


“경찰놈들은 뭐하나 몰라. 저런 새끼들 안 잡아가고.”


방금 전까지는 많이 참았다는 걸 깨달은 콘트라의 입가에는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런 부하의 속을 모른 채 파이니트는 액셀을 밟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움브라의 진짜 역할은 본국의 민심 유지 및 타국의 불화 유발이다.”


“그건 정보국에서 하는 일 아닙니까?”


“그래도 외교관 출신이라 어느 정도 돌아가는 건 아는 모양이네. 하지만 그건 반만 맞는 이야기야.”


“반만 맞다니요?”


“움브라에서 세운 계획을 바탕으로 정보국 녀석들이 움직이는 거야. 쉽게 말하면 우리가 스케치를 주면 거기서 채색을 한달까.”


“화가 같은 표현이군요.”


“원래는 미대를 가려고 했거든. 근데 떨어졌어.”


콘트라는 의외라고 생각하면서 파이니트의 설명을 경청했다.


“그래서 우리는 브레인이 필요해. 마침 이번에 괜찮은 성과를 낸 너를 각하께서 선택하신 거다. 영광으로 알도록.”


“명심하겠습니다.”


“도착했으니 자세한 건 안에서 말하도록 하지.”


그녀의 말에 콘트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이 탄 차는 정부 청사의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이른 시간답게 대부분 비어 있었다.


문을 잠그지도 않고 걸어가는 상관을 쫓아가며 콘트라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파이니트가 향한 곳은 청사의 입구가 아닌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폭했던 모습이 떠올라 질문하기 꺼려졌다. 그렇기에 콘트라는 생각을 멈추고 부서장을 따라 걸었다.


이윽고 지하 창고에 들어서자 파이니트는 선반을 당겼다. 그러자 벽이 문처럼 열리며 숨겨진 공간이 드러났다. 넓지는 않은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좁지도 않고 깔끔했다. 꽤나 고급스러운 사무용 가구들이 정갈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세 사람이 콘트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신입인가?”


“부하가 생겨서 좋겠네, 탄트.”


“넌 원래도 있었잖아, 트라디.”


“이제 저도 선배네요.”


“같은 팀원급이니까 갑질하지 마, 포에나.”


“쳇.”


계속되는 놀라운 상황에 벙찐 콘트라는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런 신입의 등을 떠밀어 들여보내곤 문을 닫는 파이니트였다.


“새로운 팀원 콘트라 도크트리나다. 친나즈와의 종전 협상에서 큰 공을 세운 뛰어난 외교관이라 수상 각하께서 이쪽으로 보내 주셨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움브라에 배속된 콘트라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콘트라는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하지만 한 명을 제외하고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중 탄트라고 불린 남자는 아예 벌레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눈치를 살피는 콘트라였다. 한참이나 신입을 째려보던 탄트의 입이 열렸다.


“그게 다 자기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겠지, 이 멍청이는.”


“괜히 트집 잡지 마라, 이우스.”


“하지만 이번만큼은 탄트 말이 맞지 않습니까, 실장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다. 비난보다는 실상을 말해 주는 게 우선이겠지.”


“실장님 말이 맞아요. 전 포에나 쿠아이스티오예요. 포에나라고 불러 주세요.”


그나마 웃으며 반겨 주는 여자가 고마운 콘트라였다. 하지만 감사를 표하기도 전에 포에나는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친나즈의 내전은 우리 움브라의 계획 덕분이에요. 그러니 두 팀장님이 기분 나빠하시는 거고요.”


“움브라의 계획 덕분이라니 무슨 소리입니까?”


콘트라의 질문에 포에나는 싱긋 웃었다.


“내전이 일어난 이유를 아시나요?”


“물론입니다. 소수의 특권층, 특히 황족에게 몰린 권력에 불만을 가진 민권당 총재 아우만이 들고 일어난 거지 않습니까?”


“맞아요. 그런데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일개 백성인 아우만이 어떻게 민권당을 만들었을까요?”


“그건 아우만이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콘트라의 대답을 들은 포에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두 남자는 콧방귀를 뀌었다. 저들의 반응을 납득하지 못하는 콘트라였다. 그가 알고 있기로는 성공한 상인인 아우만이 계급 차별에 불만을 느꼈고,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동지들을 모아 민권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세력이 커지자 불안해진 친나즈의 황제가 해산령을 내렸지만 오히려 반발을 샀고 반란이 일어났다.


자신이 아는 정보를 말하며 반박하던 콘트라는 파이니트의 제지에 입을 닫았다. 그러자 포에나의 뒤에 앉아 있는 남자가 설명을 시작했다.


“아우만은 일개 백정 출신이야. 그런 인간에게 돈이 있을 리가 없지.”


“백정이라니······ 외교부에서는 그가 성공한 상인이라고 했습니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 그러니까 우리 계획 덕분에 협상이 성공한 거라고.”


“자세히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콘트라의 요청에 포에나가 나섰다.


“바쁘신 팀장님들 대신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아우만은 백정 출신이지만 말솜씨가 좋았어요. 친나즈에 불화의 씨앗을 뿌리려는 우리의 목적에 딱 알맞는 대상이었죠.”


“그의 뛰어난 언변에 대해서는 들어 봤습니다.”


“친나즈는 오랜 기간 황제와 그의 심복들이 모든 걸 좌지우지했죠. 그래서 백성들은 불만이 있어도 감히 들고일어나지 못했어요. 군통수권 역시 황제에게 있었으니까요.”


“맞습니다. 그게 일반 평민의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황제의 권력이 유지된 이유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근데 만약 평민들에게 충분한 자금과 무기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 반란이 일어나겠죠.”


“우리는 그걸 노린 거다.”


대화에 끼어든 건 실장 파이니트의 목소리였다. 콘트라가 그녀를 쳐다보자 파이니트의 입에선 충격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먼저 모든 사람은 동등하며 황제가 아닌 백성에게 주권이 있다는 사상을 친나즈에 퍼뜨렸다. 그리고 이를 설파할 수 있는 자, 아우만을 정보국에서 포섭해 민권당을 만들었지. 목표로 했던 수준만큼 세력이 커지자 우리는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고, 민권당은 반란을 일으켰다. 이게 친나즈에 내전이 벌어진 이유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6 56화 NEW 6시간 전 0 0 11쪽
55 55화 24.09.03 5 0 11쪽
54 54화 24.08.27 6 0 10쪽
53 53화 24.08.19 3 0 10쪽
52 52화 24.08.12 7 0 13쪽
51 51화 24.07.29 7 0 10쪽
50 50화 24.06.24 4 0 10쪽
49 49화 24.06.19 6 0 10쪽
48 48화 24.06.18 4 0 10쪽
47 47화 24.06.17 5 0 11쪽
46 46화 24.06.04 9 0 10쪽
45 45화 24.05.27 6 0 11쪽
44 44화 24.05.20 9 0 9쪽
43 43화 24.05.13 9 0 9쪽
42 42화 24.05.06 7 0 10쪽
41 41화 24.05.01 7 0 9쪽
40 40화 24.04.22 9 0 10쪽
39 39화 24.04.15 9 0 10쪽
38 38화 24.04.08 8 0 10쪽
37 37화 24.04.02 7 0 10쪽
36 36화 24.03.25 7 0 10쪽
35 35화 24.03.18 7 0 10쪽
34 34화 24.03.12 7 0 10쪽
33 33화 24.03.04 7 0 10쪽
32 32화 24.02.26 9 0 9쪽
31 31화 24.02.12 7 0 10쪽
30 30화 24.02.05 8 0 11쪽
29 29화 24.01.29 8 0 9쪽
28 28화 24.01.22 8 0 10쪽
27 27화 24.01.15 10 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