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위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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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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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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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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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파이니트의 설명이 끝나자 콘트라는 입만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상도 못한 이야기는 그의 머리를 고장내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그런 엄청난 일을 고작 다섯 명이서 했다는 걸 믿기 힘든 콘트라였다.


하지만 실장의 말은 딱딱 맞아떨어졌다. 그녀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내전을 빌미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낸 건 움브라 덕분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콘트라는 자괴감에 빠졌다.


이를 눈치챈 파이니트는 박수를 치며 신입의 정신을 되돌려 놓았다.


“어쨌건 내전을 빌미로 친나즈를 굴복시킨 건 콘트라 도크트리나의 능력이야. 다만 거기에 움브라의 지대한 공헌이 있었다는 걸 알아 줬으면 좋겠군.”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전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였군요.”


“뭐, 알았으면 됐어.”


여태껏 인상을 쓰고 있던 남자는 이제서야 웃으며 손을 건넸다.


“대외팀장 탄투메 이우스다. 탄트 팀장이라고 불러.”


“잘 부탁드립니다, 탄트 팀장님.”


“탄트가 납득했다면 됐어. 난 대내팀장 트라디토르 유니우스다. 저기 철없는 아가씨 포에나는 내 팀원이야.”


“철없다니 너무하시네요, 팀장님.”


“저렇게 예의도 없으니 이해해 줘. 그리고 자네는 탄트의 밑, 즉 대외팀에 배정되었어.”


“다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상황 설명과 자기 소개가 끝났으면 이제 일들 시작해. 특히 이우스, 넌 신참 교육 잘하고.”


“예이, 걱정 마십쇼.”


실장의 호령과 함께 사람들은 흩어졌다. 콘트라는 탄투메의 옆에서 팀원으로서 해야 할 업무를 인수인계 받았다. 탄투메의 책상에 펼쳐진 커다란 세계 지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메모장이 붙어 있었다. 콘트라의 눈은 친나즈 쪽에 향했다.


“민권당 거래 내역······”


“음, 이미 끝난 일이긴 하지만 이걸로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겠네.”


탄투메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장들을 하나하나 보여 주었다.


“공작을 하기 위해서는 1 차적으로 이데올로기, 즉 이념을 심어야 해.”


“이데올로기입니까?”


“그래.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지면 사회적인 갈등도 생길 거고 다른 작업도 수월해지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불안 요소를 알아야 해.”


“친나즈의 불안 요소는 황제에게 몰린 과도한 권력이었던 겁니까?”


“맞아. 그리고 황제의 군대와 맞설 군자금과 무기가 없다는 데서 오는 공포감을 없애 줘야 했지.”


“그래서 이렇게 많은 내역서가 있었군요. 이런 어마어마한 지출이 가능하다니······”


“괜찮아. 그 돈은 이미 복구했으니까.”


“2 단계로 아우만에게 돈을 줘서 민권당을 만들고, 3 단계에서 우리의 무기를 사게 만들어 회수한 겁니까?”


“오, 역시 똑똑해.”


탄투메는 콘트라의 등을 두드리며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한 가지 놓친 게 있어.”


“놓친 게 있다고요?”


“무기를 처음부터 비싸게 팔면 반감이 들 거잖아? 그래서 싼값에 넘기고 다른 곳에서 메워야 했어.”


“어떻게 하셨습니까?”


콘트라의 질문에 탄투메는 피식 웃으며 입가에 손가락 두 개를 댔다.


“마약이야.”


어이없는 대답에 콘트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은 움브라의 일원이라고 하지만 어제까지는 외교관이었던 콘트라다. 빈곤한 국가에서 마약의 폐해를 봤던 외교관으로서는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국제법상 절대 유통 및 거래가 금지될 정도니까. 하지만 탄투메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약은 국제법상 금지 대상이지 않습니까?”


“참나,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렇게 치면 타국에 내전을 일으킨 건 합법인가?


“그건······”


“그리고 황제파가 이기건 민권당이 이기건 친나즈는 다시 세력을 키울 수 있는 나라야. 이를 조금이라도 늦추는데 마약이 딱이지 않겠어?”


“들으면 들을수록 말이 안 나오는군요.”


“뭐, 지금은 처음이니 그럴 수 있어. 어쨌건 그래서 이데아에 공장이 많은 거야. 특히 군수나 화학 계열이.”


“전쟁을 위한 보급품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맞긴 해. 하지만 단순히 우리의 전쟁뿐만은 아니라는 거야. 자국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타국에 큰일을 터뜨려야 하니까.”


그동안 콘트라는 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임무를 맡았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탄투메의 이야기를 들으며 본인도 체스말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은 그였다.


“물자 교역과 관련된 일을 했는데도 몰랐던 사실입니다.”


“무조건 그래야지. 이게 밖에 알려진다면 우리 입장이 매우 곤란해져.”


탄투메의 말대로다. 국제 정세에 정의란 건 없다. 실리가 우선이다. 하지만 이미지 역시 중요하다. 자신은 정의의 편이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전쟁을 원하는 나라는 합당한 명분을 만드는 작업을 수년에 걸쳐 진행했다. 아무런 건더기 없이 군을 일으켰다가 적국에 합류한 연합군에게 멸망 당한 사례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런 현실에서 타국에 불안을 조성하고 내전까지 유발했다는 걸 다른 나라들이 알게 된다면 바로 전쟁이 벌어져도 무방했다. 자신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 비밀에 접근했는지 깨달은 콘트라는 두려우면서도 흥분되었다.


보다 많은 인정을 받고, 조국을 강성하게 만들길 원했던 콘트라다. 외교관으로서는 그 한계가 명확했다. 하지만 눈앞의 무시무시한 광산은 위험하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광맥이 흐르고 있다. 이곳, 움브라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한하다는 생각에 콘트라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그렇게 내전을 일으켰고, 최종 단계에서 친나즈를 침공해 굴욕적인 각서를 받아냈다. 이렇게 임무 완료인 거지.”


“엄청나군요.”


“이제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이니까 긴장하지 마.”


“알겠습니다.”


설명을 마친 탄투메는 손을 들어 북쪽을 가리켰다. 한창 떠오르고 있는 신생 국가 아메리고였다.


“다음 목표야. 지금 아메리고의 성장을 막지 못한다면 열강의 반열에서 경쟁 중인 이데아의 자리가 위협 받겠지.”


“외교부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노동력을 확보하고, 다른 나라들이 버린 넓은 영토를 활용해 단기간에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고.”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지. 이대로 놔두면 지금보다 더 발전할 거야.”


“그래서 아메리고를 목표로 삼은 거군요.”


고개를 끄덕인 탄투메는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는 책상에 놓인 것과 같은 지도가 들어 있었다.


“이제부터 네 거야. 이제 자기 자리로 가서 아메리고를 혼란에 빠뜨릴 방법을 찾아와.”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기한은 없어. 애초에 그렇게 쉽게 방법을 떠올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불안 요소를 찾고, 거기에 알맞은 이데올로기를 퍼뜨린다. 이후 정보국과 협조해 분란을 조장한다. 최종적으로 그 결과에 맞춰서 사령부와 외교부를 움직여 임무를 완수한다. 말로는 쉽지, 하나의 단계만 해도 몇 달은 걸려.”


“그럼 퇴근은 언제 합니까?”


“퇴근?”


콘트라의 물음에 탄투메는 씨익 웃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무표정으로 있던 파이니트의 입이 열렸다.


“성과를 내면 퇴근. 그전까지는 무리다.”


“실장님 말씀 들었지? 배고프면 옆에 딸린 탕비실을 이용하고, 졸리면 휴게실의 푹신한 침대에서 자면 돼.”


그제서야 이런 시간에도 모든 자리에 주인이 앉아 있는 이유를 깨달은 콘트라였다. 가혹하다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의 근무 환경에 콘트라는 난처해졌다. 분명 조국을 위해 중요한 일이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국제 정세를 생각하면 당연하기도 하다.


하지만 콘트라는 주말에 나들이를 가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그 약속을 어긴다면 아무리 아마레가 천사라 할지라도 참지 못할 게 분명했다. 고민 끝에 콘트라는 책상에 앉았다. 한시라도 빨리 좋은 답을 찾는다. 그러고도 안 된다면 파이니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외출을 허가 받는다. 그게 최선이라는 걸 깨달은 콘트라였다.




그로부터 며칠이나 지났지만 답을 찾지 못한 콘트라였다. 그는 부스스한 머리를 감싸쥔 채 지도를 노려보고 있었다. 책상에는 수많은 서적과 빈잔이 놓여 있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의 자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콘트라는 한계에 이른 눈을 비비며 잠시 눈을 감았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와중에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사실이 떠오른 콘트라였다. 당황해하며 다급히 눈을 뜬 순간이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파이니트가 아내에게 연락이 왔으니 청사에 가서 통화하라고 말했다.


새하얘진 머릿속을 다급히 정리하며 전화를 걸자 우뢰와 같은 목소리가 콘트라의 고막을 때렸다.


“당신 이제부터는 집에서 출퇴근할 거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며칠째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뭐예요? 설마 다른 집에 살림을 차린 건 아니겠죠!”


“진정해, 아마레. 지금도 일하는 중이야.”


“그런데 왜 집에 오지 않는 거예요?”


콘트라는 난처했다. 지금의 상황을 설명한다면 아내의 성격상 이해는 할 것이다. 하지만 움브라의 실상을 말해선 안된다는 건 누가 봐도 당연했다. 고민 끝에 콘트라는 거짓말로 아마레를 다독이기로 했다.


“새로 배정받은 부서에서 워크숍 중이야. 들어 보니까 앞으로 출장이 잦을 거 같아. 아, 참고로 상사는 남자니까 걱정 말고.”


“출장이 조금 걸리지만 다행이네요. 연락이라도 주지 그랬어요.”


“미안해, 아마레.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어.”


“알았어요. 그럼 언제 집에 와요? 나들이는··· 아니에요.”


“······ 내일은 갈 거야. 그러니까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해 놔.”


“정말이죠?”


“물론이야.”


“사랑해요, 콘트라.”


“나도.”


통화를 마친 후 콘트라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했다. 겨우 달래긴 했지만 만약 내일 귀가가지 못한다면 뒷일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필리우스를 데리고 친정에 간다고 해도 일언반구조차 못할 상황이었다. 얼굴을 꼬집으며 정신을 차린 콘트라는 어떻게든 답을 찾기 위해 사무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올 리가 없다. 자리에 앉아 끙끙거리는 콘트라에게 포에나는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했다. 콘트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답한 후 전에 읽었던 아메리고의 역사서를 쥐었다.


만들어진 지 막 세 자리 수가 된 신생 국가답게 아메리고는 오랫동안 부나 권력을 독점하는 계층이 없었다. 따라서 친나즈와 같은 방식을 쓰기에는 힘들었다. 처음 국가의 토대를 만든 아메리인과 최근 넘어온 이민자 간에 갈등이 있다는 게 그나마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 역시 큰 분란을 조장하기는 애매했다. 현 대통령인 싱 와튼의 존재 때문이었다.


짧은 역사지만 역대 최고의 대통령이라 불리고, 타국에서도 인정받는 싱 와튼은 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정치인이었다. 이데아로 치면 앙겔루스 디아볼리와 닮은 꼴이었다. 차이점을 찾자면 앙겔루스는 뛰어난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이끄는 반면, 싱은 균형 잡힌 정책과 포용력으로 사람들을 품었다.


인종이나 민족 간의 분란을 일으킨다고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면 싱이 나서서 해결할 게 분명했다. 긁기 좋은 부스럼이 더 필요했다. 이를 위해 콘트라는 손에 들린 책을 다시 한번 속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여러 번 읽은 내용이라 확 와닿는 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뭔가 성과를 내야 했다. 책을 내려놓자 콘트라의 머릿속에 신혼 여행의 추억이 떠올랐다. 급작스러운 인사이동으로 여행지의 공항에서 아마레를 먼저 보내야 했다. 그때 콘트라는 아내가 화내며 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었다.


이후 여자의 한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던 콘트라로선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자의 한이란 말을 떠올린 순간, 무언가가 콘트라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손바닥으로 책상을 친 콘트라는 깜짝 놀란 동료들을 신경쓰지 않고서 자신의 팀장한테 걸어갔다. 탄투메 역시 피곤했는지 졸고 있었다. 어깨를 흔들어 깨우자 붉게 물든 상사의 눈이 콘트라에게로 향했다.


“무슨 일이야?”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 벌써?”


“일단 한번 들어봐 주세요.”


미심쩍어 하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인 탄투메는 책상 아래에서 보조 의자를 꺼냈다. 거기에 앉은 콘트라는 지도를 짚으며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아메리고는 아메리인과 이민자, 그리고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인종이나 민족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걸 노리자고? 너무 안일해. 싱 와튼이 있는 이상 금방 해결이 될 거야.”


“맞습니다. 하지만 싱 와튼이라고 해도 막기 힘든 불안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게 뭔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상사를 보며 콘트라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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