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으아악
앙피는 우선 카힐이 자신의 소환수임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납치라는 오해를 풀 수 있으니까.
“저 소환술사에요. 그분도 제 소환수고요.”
“거짓말 마라, 넌 슾밥집의 요리사잖니!”
벨자이는 여전히 믿지 않았다. 하긴 그럴 만했다. 매일 식당에서 요리나 하던 애가 갑자기 소환술을 쓰는 마법사라고? 퍽이나 그러겠다.
‘이 사람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네... 그냥 나만이라도 가야 하나...?’
앙피는 손절의 경로를 탐색했다.
“꺄아아아아악! 앙피 뭐라고 좀 해봐!!”
앙피는 카힐과 눈이 마주쳤다. 카힐이 버리고 가면 죽여버릴 것처럼 노려본다.
‘역시 데려가야겠지...?’
“소환술 보여드리면 믿으실까요...?”
사실 소환술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딱히 재료도 필요 없고 힘도 안 들고. 단순히 책임질 소환수가 더 늘어나면 그만큼 잠을 더 설칠 뿐이다.
“뭐랏?”
벨자이가 다행히 관심을 보이는 눈치였다.
앙피는 이참에 밀어붙일 생각으로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적당히 소환수다운 게 나오면 좋을 텐데...’
앙피는 바닥에 손을 짚고 제발 도마뱀 같은 건 안 나오길 빌었다.
그리고 소환술을 사용했다.
이계의 어머니여 그대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대의 창조물을 빌려 이곳에 소환하겠나니, 응답해주소서. 소환술, 이계의 부름!
이라는 멋진 소환 주문이 부끄러운 앙피는 주문을 간략화했다.
“...소환!”
-반짝, 앙피의 주변에서 빛이 나더니 곧장 펑 하고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났다.
“오!”
짙은 흰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소환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맨발과 가는 발목. 여리여리한 몸매에 다 낡은 옷을 걸치고 있다. 푸른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작은... 여자애?
“정말 소환술사였군! 이건 뭘 소환한 거지? 자네는 누군가!”
그제서야 벨자이가 카힐을 놓아주었다. 그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새 소환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벨자이가 소환수와 악수를 하려 손을 잡은 순간, 소환수의 팔이 뚝 하고 떨어졌다.
“으아악!”
“뭐야아앗!!”
“ㄲ...”
“뭐라고?”
“끄어어어어어.”
연기가 완전히 걷히니 보인다.
창백하다 못해 죽은 듯 회색빛의 피부. 몸 여기저기를 봉합한 꿰맨 자국. 새 소환수는 마치 좀비처럼 보였다.
“으어어어...”
“ㅇ..언데드 소환술사였나. 엄청나군. 네크로맨서라고 미리 말해줬어도 좋았을 것을.”
좀비가 별 공격성 없이 앓는 소리만 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녀(?)의 눈은 정말 공허했다. 아니 실제로 동공이 없었고 왼쪽 눈은 어디다 떨어트렸는지 뚫려있었다.
그래도 앙피의 바람대로 소환수다운 게 소환되긴 했다.
“으... 싫어...”
다만 주인인 앙피는 얼굴을 찌푸린 채 좀비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래. 앙피 넌 진짜 소환술사였ㄱ···.”
“징그러....”
“... 어쨌든 조금 전 과잉진압은 사과하마. 그나저나 여길 지나가면 무법지대인 손바닥이다. 나가는 이유는 뭐지?”
앙피는 산 넘어 산이라 생각했다.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나가는데도 이렇게 오래 걸리고 깐깐한 건가..’
“...이유는 딱히 없어요.”
“음! 그렇군! 조심해서 가라!”
벨자이의 호기심이 충족되었다.
그렇게 앙피 일당은 바로 소지 밖으로 배웅받았다.
“손바닥은 정말 위험하니 조심하렴. 그나저나 마을 쪽 숲에 악마가 산다던데 앙피 네가 무사히 지나온 것 보면 헛소문인가 보군.”
“네. 아마.. 악마는 아니고 하급 마수 정도였을 거예요...”
본인의 소환술을 과소평가하는 앙피였다.
“누가 하급···.”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 조심해라 소년! 그리고 기타 생물들!”
***
“야. 너 나 버리고 가려 했지.”
카힐이 으르렁거렸다. 아직도 꺾인 발목이 쑤신다.
마족이라 그런지 재생력 하나는 끝내주어 금방 회복되었지만, 그래도 아팠던 기억은 남아있었다.
“...아뇨.”
“시발. 나쁜 새끼.”
“... 카힐 님도 사람들 그렇게 괴롭혔었···.”
“어쩌라고!”
둘은 유치한 대화를 이어나가며 반지에서 점점 멀어졌다.
손바닥은 높은 산맥과 험난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뜬금없이 사막이나 초원으로 이루어진 원형 모양의 영역이 있는데 이를 예측할 수 없는 암흑과 같다 하여 ‘검은 점’이라 부른다.
다행히 소지 주변엔 이 검은 점이 없었다. 그보다 복잡한 손바닥 숲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무튼 그 녀석 이름이 하이드로인데. 약지로 가서 무슨 사업을 한다고 했어.”
카힐이 묶인 두 손으로 얼굴을 긁어댔다.
“약지면 멀지는 않네요.”
소지의 바로 옆이 약지이니 방향만 잘 잡는다면 금방 도착할 것이다.
“으어어어.”
“근데 너 소지 밖으로 나온 건 처음이냐?”
“네.. 카힐 님도 숲에만 계신 거 아니었나요..?”
“하, 나는 여기저기 다녔거든? 너처럼 구속돼서 사는 건 싫어하는 성격이라.”
누구보다 구속되어 있는 카힐이 말했다.
그나저나 구속구를 악세사리 마냥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 걸 보면 카힐이 무심한 건지 아니면 의외로 마음에 든 건지 모르겠다.
“끄어어어.”
“그보다 넌 대체 얼마나 소환수들을 풀어놨길래···.”
“우어어어.”
“우어어딜가도. 야! 나 말하잖아!”
“...”
역시 안 되겠어, 말해야지. 앙피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그래도 좀비와 함께 여행하는 건 무리다. 더이상 쫓아오지 말라고 강하게 말해야 한다.
"... 무서워요. ㄱ..가주세요."
하지만 막상 좀비를 보니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다. 농담이 아니라 좀비 눈알 하나가 파여있는 건지 없는 건지 진짜 볼 수 없다.
"와 또또 지 소환수 버리고 가려 하네."
"죄송해요.. 그래도 저건 좀."
"으어..."
'저거'가 상처를 받았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느려터진 몸으로 열심히 쫓아왔는데.
카힐이 웬일로 정상적인가 싶더니 속으로 또 무슨 꿍꿍이를 세운 모양이다.
“얘 데려가자. 하나라도 더 있는 편이 좋지 않아?”
그녀가 앙피를 순순히 따라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카힐의 목표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앙피한테 복수한다.’
하지만 주인인 그를 죽이면 소환수인 본인마저 사라져 버린다. 죽이기는커녕 지켜줘야 할 판이다.
그런데 마침 앙피가 자신의 능력을 없애 자유를 주겠다는 게 아닌가?
그러니 카힐은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능력 없애기만 해봐. 그냥 딱 대~’
딱 봐도 멍청해 보이는 좀비를 꼬드겨서 앙피를 죽일 계획에 동참시킬 생각이다.
“귀요미. 상처받지 말라고. 내가 널 꼭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할게. 그렇지 앙피?”
카힐이 능글맞게 앙피에게 속삭였다.
“... 입김 뜨거워요.... 아무튼 좀비 님? 그럼 얼굴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으어..?”
좀비의 심기를 건든 걸까. 그녀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무언가 집어 든 손이 반짝하고 빛났다.
“칼?”
“끄어어어어!!”
좀비가 뒷주머니에서 꺼낸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갈라진 성대로 공기가 제멋대로 휘감겨나오는 듯한 비명이다.
그리고는 충격을 받았는지 거울을 툭 하고 떨어뜨렸다.
“야야. 쟤 왜 저래.”
카힐이 앙피에게 속삭였다.
“...저야 모르죠.”
“어쨌든 너 때문에 저러니까 뭐라고 좀 해봐. 으. 조금 징그럽긴 하네.”
“카힐 님이 데려가자 했잖아요... 책임감을...”
그렇게 앙피와 카힐이 투닥대는 사이 좀비가 한 번 더 울부짖었다.
“으어어어!”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를 꽉 잡고는 그대로 뽑아버렸다. 그다음 있는 힘껏 저 멀리 던져버렸다.
앙피의 소원대로 머리가 사라진 좀비가 따봉을 날렸다.
“...징그러운 얼굴이 없긴 ㅎ···.”
“야! 이러면 말을 못 하잖아. 야, 좀비. 얼굴 다시 가져와. 그냥 가면 같은 거라도 씌우면 되지.”
“그럼 제가 가져올게요.”
앙피는 오랜만에 혼자만의 휴식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좀비 얼굴을 맨손으로 드는 것쯤이야,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이 좀비가 뿌드득 하며 얼굴을 복구했다. 역시 언데드 좀비다.
“오. 회복력이 나보다 좋은 거 같은데? 난 머리 뽑으면 죽거든. 캬하하.”
카힐이 아저씨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 피곤해. 혼자 있고 싶다.’
“근데... 입이 있어도 어차피 못 알아듣잖아요.”
“으어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누군가가 또 상처받았다.
“와, 마족 타이틀 뺏기겠네. 여자애나 울리고.”
“우어어어...”
“...”
앙피는 눈치를 보다 용기 내 좀비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근데 얼굴이 재생성된 덕인가 아까보다는 나름 멀쩡했다. 덜렁거리는 피부 조각도 없고 눈알도 양쪽 다 달려 있고.
피부가 핏기없이 창백하고 재봉선 같은 것만 없었으면 평범한 10대로 보인다.
그녀는 눈치를 살살 보며 앙피를 올려다봤다.
‘그래 이 정도면...’
앙피가 아무 말 없이 긍정의 한숨을 쉬니 좀비의 안색이 밝아졌다. 뭐, 빛깔이 밝아지진 못하지만.
“좋아, 그럼 얘를 뭐라고 부를까.”
“... 좀비님?”
“너 그렇게 종족으로 부르는 거 되게 오글거리는 거 아냐. 내가 갑자기 ‘어이, 인간. 다음 목적지는 어디지?’ 이런다고 생각해봐.”
앙피는 나름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카힐은 그런 말투를 쓰게 생겼으니까.
그래도 앙피 자신이 그런 말투를 쓰고 싶진 않으니 어서 머리를 굴렸다.
“그럼 어떻게 부를까요...?”
“끄어어어?”
“끄어어어 라고 불러 달래요..”
“그러겠냐고 시발. 주인인 네가 제대로 정해.”
카힐이 어이없다는 실소를 터뜨렸다.
앙피는 기대에 가득 찬 표정의 좀비를 살폈다.
뭐라고 지어야 할까. 누군가의 이름을 지어준 적이 없는데. 최대한 열심히 지어줘야 해.
우선 좀비니까 ‘좀’을 넣을까. 평소 많이 하는 말인 ‘끄어어어’도 넣으면...
“좀끄어?”
좀끄어 양이 될 운명인 좀비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야, 좀비가 저렇게 다급할 수도 있구나.
“제발 진지하게 좀 해.”
나름 진지했는데. 그러면 좀 더 이름다운 이름을···.
기왕이면 좀비 본인도 발음하기 좋은 이름이면 좋겠지?
“그럼 비비는 어때요.”
“브엙 부엙?”
아, 발음 못 하네. 그래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브엙부엙, 아니 비비가 기쁜 듯 앙피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좀비 같다. 좀비는 맞긴 하지만.
“으악!”
몬스터에게 공격받는 느낌을 받은 앙피가 혐오스럽단 표정을 지으며 도망갔다.
저 멀리 도망가버린 앙피, 그리고 남겨진 비비와 카힐.
“우어어어어...”
“야야. 괜찮아. 쟤가 원래 소심해서 저래.”
카힐이 울먹거리는 비비의 기분을 살폈다. 카힐이 아무리 같은 10대라 해도 가녀린 소녀의 마음은 어려웠다.
같은 10대 소녀라도 겉모습만 보면 10살은 차이 나 보이니까.
그리고 비비 때문인지 카힐의 날카로운 성격이 억제당하는 듯하다.
“하.. 일단 같이 쫓아갈까? 천천히 다가가면 괜찮을 거야.”
“으어.”
카힐이 비비를 데리고 앙피가 사라진 쪽으로 갔다.
다행히 약지로 가는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곳에서 앙피를 찾을 수 있었다.
“야! 너 혼자 가면 어떡하냐!”
“흐흐.. 아가씨가 이 아이 주인인가? 노예 간수는 잘해야지.”
하지만 앙피는 그사이 무슨 사고를 친 건지 웬 산적 같은 무리에게 붙잡혀 있었다. 그리고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앙피의 목에 도끼날을 겨누고 있다.
“노예 녀석은 우리한테 넘겨. 지금 그냥 간다면 보내주지.”
“흥. 그래, 알았어.”
“?”
- 작가의말
선호작과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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