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강아지는 멍멍 하이드로는 그르릉
우당탕 마약상과의 전투... 는 하이드로가 앙피의 소환수임이 확실시되며 조기 마감되었다.
반려견이라도 친구로 삼으려던 앙피가 소환했던 게 바로 하이드로였다.
그리고 편견 없던 앙피는 하이드로를 정말 강아지처럼 훈련시켰다. 하필 머리도 복슬거리고 맹한 구석이 있던 탓에 하이드로 본인도 자신이 짐승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사람임을 깨달은 하이드로가 그대로 시발 마을을 뛰쳐나간 것이다.
앙피는 그 뒤로 1년이 지나서야 진짜 강아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처음 봤었다.
팟-
파티장 안의 불이 드디어 켜졌다. 어두운 곳에 계속 있으면 시력이 나빠지니 불은 꼭 켜고 살도록 하자.
어두울 땐 세상 음침한 파티장이었는데, 막상 불을 켜니 그냥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쿠션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정리 안 된 거실. 쿠션도 밝은 곳에서 보니 귀여운 동물 그림이 한가득이다.
“...잘 안 풀리네요...”
앙피가 카힐의 밧줄을 풀려고 끙끙거리다 포기했다.
뭐 어차피 구속구만 있나 밧줄까지 있나 그게 그거니까.
앙피는 얌전해진 하이드로에게 다가갔다.
“그나저나 강아지가 아니였어요...?”
“당연하죠. 주인님! 뭐 때문에 절 찾아오신 거예요?!”
하이드로가 가지런히 앉은 채 앙피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모습이 마치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 같았다. 그가 쓰고 있는 늑대 가죽도 뭔가 귀여워 보일 정도다.
아까까지의 중압감과 야성미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원래 이런 이미지셨나요...”
“넹.”
“그르렁은 왜 안 해요..?”
“그건 멋내기용이라 안 해도 됩니다요.”
앙피는 이 괴리감을 애써 무시해보기로 했다.
그 사이 카힐이 혼자서 밧줄을 풀고 옆으로 왔다. 이럴 거면 진작 풀지, 하는 마음도 애써 무시했다.
“야. 똥개. 오랜만이다?”
카힐이 익숙한 듯 하이드로에게 말을 걸었다.
“더러운 마족 년. 여기까지 쫓아온 거냐. 그르릉.”
하이드로가 카힐을 보자 이빨을 드러냈다.
둘의 인연은 참 기묘했다. 카힐이 처음으로 소지를 벗어나 손바닥에 당도했을 때, 처음 만난 인물이 바로 하이드로였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카힐이 하이드로를 존나 팼다. 이유는 이름을 말하지 않아서. 그리고 아직 힘이 없던 하이드로는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았다.
그리고 그 뒤 둘이 만날 때마다 하이드로는 계속해서 얻어맞았다. 맞고, 맞고, 또 맞고.
카힐이 지금이야 구속구 때문에 약하다지만 이전엔 하이드로를 정말 똥개마냥 굴리던 실력자다.
카힐이 익숙한 듯 하이드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너 저번에 대마법사 어딨는지 안다고 했지?”
“네가 왜 주인님과 있는지는 몰라도, 절대 말 안 할 거다. 갸릉.”
“...그냥 말해요.”
“넹. 잠시만요. 이레스트. 거기 있나?”
하이드로가 허공에 대고 손짓을 하자 검은 복장의 여자가 나타났다.
암살자로 보이는 그 여자는 한눈에 봐도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런 그녀를 부하로 둔 하이드로가 얼마나 높은 위치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지금 파티장에는 그녀 외에도 4명의 부하가 더 은신하고 있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둠의 왕이시여.”
“어둠의 왕...?”
한쪽은 부하, 한쪽은 주인님.
하이드로는 사이에 껴서 양쪽 눈치를 살살 봤다.
“어이 애송이. 감히 하이드로 님을 비웃어? 당장 죽여주마.”
“이레스트. 가만히 있어라. 그분은 나의 주인님이시다.”
실수를 깨달은 이레스트가 어쩔줄 몰라하더니 냅다 머리를 박았다.
“헙! 죄송합니다! 주인주인님 이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ㄱ...괜찮...”
“그보다 대마법사의 행방을 네가 안다고 했지.”
하이드로가 주인님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네. 오른섬으로 갔습니다.”
“그래. 알았다. 물러가라.”
이레스트는 앙피에게 머리를 박은 자세 그대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부하가 사라지자 하이드로는 다시 똥개 모드로 돌아왔다.
“헤헤. 오른섬으로 갔답니다요.”
“아..... 감사해요.”
대마법사의 행방은 오른섬이라고 한다. 무려 오른섬.
이건 단순히 목적지를 알아냈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다.
“오. 어딨는지 알았다!”
아니라고 카힐아.
오른섬은 단순히 왼섬 옆의 섬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그곳은 아예 다른 나라다.
그리고 다른 나라로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왕이 지정한 몇몇 인물만 제외하면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한마디로 대마법사를 찾는 모험이 하드코어가 되었다는 소리다.
그래도 오른섬으로 갈 방법이 딱 하나 남아있다.
“바다를 헤엄쳐서 가자.”
일단 이건 아니다.
“...멍청한 마족 년이. 주인님도 가는 방법을 모르십니까..?”
“네.”
이 답도 없는 파티에 하이드로는 한숨을 뱉었다.
“저희 같은 일반인이 오른섬으로 가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다섯 손가락의 동의를 받는 겁니다. 모든 손가락의 동의를 받은 후 왕의 허락이 떨어지면, 오른섬으로 갈 수 있게 됩니다.”
한마디로 왼섬의 주요 인물이 모두 동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앗... 귀찮아... 혹시 밀반입 같은 건 안 해요...?”
앙피는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차라리 하이드로의 불법 루트를 타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법 결계가 있어서 못합니다. 오른섬으로 가는 건 제가 말한 방법뿐이에요. 다행히 약지 인장은 제가 갖고 있읍쇼.”
하이드로가 부하 하나를 시켜 약지의 인장을 가져왔다. 지문 모양으로 파인 도장에 교묘한 음영이 들어가 있다.
하이드로는 손바닥 모양이 그려진 종이에 인장을 찍어주었다. 지장처럼 찍힌 지문에 ‘시티롱’이란 글자가 오묘하게 형태를 보였다.
이제 손바닥에 비어있는 곳은 네 군데.
엄지, 검지, 중지. 그리고 고향인 소지.
“하.... 엄청 많네... 소지도 다시 갔다 와야겠다...”
앙피는 그냥 능력을 떠안고 살까 싶었지만 숙면을 포기할 순 없었다.
앞으로 살날이 몇 년인데 조금 고생하더라도 여생은 꿀잠 자며 살아야지 않겠는가.
그래도 또 소지를 갔다 오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아, 그거 혹시 이거냐?”
그때 카힐이 소지의 인장을 꺼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녀의 옷엔 주머니가 없다. 자꾸 어디서 꺼내는 거지.
“...? 이걸 왜 카힐 님이 갖고 있어요?”
“그때 그 돼지 팰 때 떨어진 건데. 비싸 보여서 일단 챙겨놨지.”
돼지라면 골푼을 말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지금 골푼에게 소지의 인장이 없다는 뜻이다. 그 녀석 취임식은 물 건너 갔겠네.
어쨌든 카힐의 주도면밀한 손버릇 덕분에 소지를 다시 갈 수고를 덜었다.
남은 3개는 중지, 검지, 엄지 순서대로 가면 된다.
그렇게 5개의 인장을 받고 왕국으로 가면 오른섬으로 보내줄 거다. 왕국은 마침 가장 남쪽인 손바닥에 있으니 경로도 좋다.
슬슬 길이 뚜렷해지는 느낌이다.
“좋아! 당장 중지로 출발이다! 비비! 너도 그만 놀고 이리 와.”
카힐이 누군가의 팔을 냠냠 깨물고 있는 비비를 끌어냈다.
“저도 같이 갈까요. 주인님?”
“아뇨.”
하이드로가 기대를 하기도 전에 앙피가 단칼에 거절했다. 이 이상 파티원이 늘어나는 건 싫으니까.
하이드로는 버려진 강아지 표정을 하며 아쉬운 기색을 팍팍 냈다.
“그럼 제 부하들을 항상 곁에 붙여두겠습니다. 이레스트! 네가 책임지고 주인님 곁을 지켜라.”
“네. 그 종이도 주시죠 주인주인님.”
이레스트가 인장이 찍힌 종이를 가져갔다. 직접 들고 다니면 훼손될 게 분명하니 다행이다.
“...아...”
물론 앙피는 그것보다 주변에 자신을 지켜보는 인물이 늘어났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하지만 하이드로의 성의를 봐서라도 입을 다물어 주는 편이 좋다.
“....한 명만 붙여주세요.”
그래. 앙피치고 노력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넹. 이 약물들은 제가 책임지고 다시 거두겠습니다!”
“네..? 아뇨. 그건 뭐... 알아서 하세요...”
앙피는 약지가 약물에 찌들든 말든 관심 없었다.
어차피 약지의 인장도 얻었고 다시 올 일도 없고. 자신이 굳이 신경 써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알 바 아니다.
그렇게 약지에 혁명과 혼돈을 가져다준 앙피 일행은 하이드로의 도움으로 무사히 약지를 빠져나갔다.
약지의 반지에 있던 얀을 다시 지나칠 땐 조금 힘들었지만 말이다. 얀이 이레스트의 기척을 눈치챈 탓에 반지 주변의 숲이 다 날아가는 전투가 일어났지만 이 이야기는 넘어가겠다.
그보다 더 심각한 일에 부딪혔으니까.
“...흐엉. 또 뭐야 이건...”
무사히 중지로 향할 줄 알았던 앙피 일행은 검은 점에 들어와 버렸다.
주변 기후, 지형을 전부 무시하고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손바닥의 이상 공간.
잠시 ‘귀신이 무섭냐, 사람이 무섭냐.’로 토론하는 사이 검은 점으로 빨려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이 검은 점은 분위기가 압권이었다.
“뭐야... 여기 뭐냐고...”
으스스한 달무리. 앙상한 나뭇가지. 그리고 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낡은 별장 하나.
“뭐가 무섭냐 병시나. 넌 사람이 더 무섭다며.”
검은 점에서 나가는 방법은 단 하나. 어딘가에 있는 검은 구슬을 부수면 된다.
까악- 까악-
그때 별장에서 까마귀 떼가 날아갔다.
“꺄아아아악!”
갑작스러운 앙피 일행의 공포 체험이 시작된다.
- 작가의말
선호작과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