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아아... 이것은 [탈옥]이라는 거다
“고즈넉한 마을이군.”
홀로 살아남은(?) 나영웅은 팔자 좋게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의 손에는 손가락 모양의 빵도 들려있다.
그는 빵을 쩝쩝 씹어 먹었다. 손가락 중 중지에 특히나 달콤한 꿀이 들어가 있다.
“후후. 하지만 이 정도 단맛으로 한국인은 사로잡지 못하지.”
나영웅이 남은 빵을 한입에 삼켰다.
그렇다고 그가 단순히 빵이나 먹는 게 목적이진 않다.
“후후후. 마을은 파악이 끝났다.”
가파르디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마을. 그 꼭대기가 그렇게 멀진 않다.
아무래도 이 중지는 구부러진 손가락의 모양인 것 같다. 공을 잡듯 움켜쥔 모양의 손가락 말이다.
그 때문에 중지는 중앙의 높은 산을 중심으로 앞뒤로 나뉘어 있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건축양식이 판타지스럽군. 이전 마을보다 마음에 들어.”
나영웅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대로 중지는 대체적으로 파릇파릇한 느낌이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 피해 건물을 지은 덕에 건물 모양도 다 다르게 생겼다.
유일하게 이상한 곳은 바로 저 산 정상에 보이는 건물.
주변의 나무를 밀지 않고서야 저 정도의 큰 건물이 올라갈 수 없다. 그리고 그 건물은 예상대로 독대지가 있는 재판소.
“후후. 그렇군. 이번엔 그런 임무인가. 동료를 구하는 에피소드. 이 몸에게 딱 어울리는군.”
나영웅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재판소를 올려봤다. 저렇게 높은 산이라면 지하에 감옥을 만들기도 딱이다.
의심 없이 앙피는 저 산 안에 지어진 감옥에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영웅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쉽진 않을 것이다. 이곳은 중지니까.
앙피를 꺼내기 위해 조금의 범죄, 혹은 무례한 짓을 했다가는. 나영웅 그도 앙피와 나란히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영웅은 이상할 정도로 자신이 넘쳐 보였다.
“후후후. 나의 마스터를 구할 방도. 이미 계산 끝이다.”
나영웅이 미간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살살 흔들었다. 조금 열받는 포즈다.
‘두 번째 임무를 시작할 시간이다.’
꼬르륵-
“흠. 우선 뭐 좀 더 먹을까.”
나영웅은 재판소를 등지고 다시 마을로 향했다.
***
그사이 감옥에선 난리가 났다.
“나간다! 나 진짜 나간다!”
아치가 감방의 쇠문을 붙잡고 소리 지르고 있다. 그러고는 아무 잠금장치 없는 문을 세차게 열어버렸다.
끼이익. 감방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없이 열린다. 얼마나 죄수들을 믿으면 잠금장치조차 만들지 않은 것일까.
그리고 얼마나 순박하게 자랐으면 감옥을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일까.
“...난 몰라.. 모르는 일이야..”
한편 그 소동에 엮이고 싶지 않은 앙피는 다 해진 이불을 몸에 둘렀다. 이불이라기보다는 모포에 가까운 그것은 본래 주인인 아치가 워낙 험하게 써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나간다. 나간. 나간다. 나가? 나가...”
아치는 이미 열린 문으로 몸을 넣었다 뺐다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녀도 중지에서 태어나 자란 만큼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는 몇 번의 심호흡을 거친 후에 굳게 마음을 먹었다.
“간다! 탈옥!”
아치가 감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감옥엔 조금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감방에 갇혀 있던 모든 죄수들이 그녀의 행동에 입을 틀어막았다.
“ㄴ..난 흉악범이니까.”
아치가 엄청나게 숨을 헐떡거린다.
“세상에.”
“맙소사.”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당신?”
다른 감방에서 영어 지문에 나올법한 어색한 비난이 쏟아졌다.
“앙? 다 조용히 해. 이건 탈옥이라는 거야.”
아치는 자신이 ‘탈옥’을 제대로 발음한 게 맞는지 앙피를 쳐다봤다. 앙피는 이미 감방 귀퉁이에 몸을 구겨 넣은 채 벽만 보고 있다.
그때 소란을 들은 경비병이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뚜벅-. 뚜벅-.
탈옥범이라면 응당 몸을 피해야 정상이지만 초짜 탈옥범(?)인 아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덕분에 경비병과 어색한 눈 맞춤을 할 수 있었다.
“당신 왜 밖으로 나온 거죠?”
경비병은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말했다. 경비병에게도 탈옥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탈옥을 했어. 난 흉악범이니까.”
경비병과 아치 사이에 이상한 대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죄수는 감방 안에 있으셔야 합니다. 다시 들어가 주세요.”
“앗. 알았어.”
와. 경비병이 무력조차 쓰지 않고 탈옥범을 다시 감옥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앙피도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할 말이 없어.’
“....왜 다시 들어와요...?”
“앙? 탈옥했잖아 금방.”
“탈옥은 감옥을 완전히 나가서 자유를 찾는 거예요.”
정상인 포지션이 되어버린 앙피가 또박또박 말했다.
하지만 아치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근데 저렇게 공손히 부탁하는 걸 어떻게 거절해. 다시 들어가 달라잖아.”
“........”
앙피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허허허. 생각이 짧구나, 아치 양.”
“뭐? 할배는 탈옥해본 적도 없잖아. 난 있다고!”
“경비가 있는데 어찌 나가냐? 저 녀석이 잠든 밤에 나가야지.”
“헉. 그렇구나! 할배 탈옥에 소질 좀 있는데?”
“껄껄. 내가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게 아니야.”
아치가 제트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맨날 치고받고 하는 둘이지만 1년 동안 붙어있었기에 죽이 척척 맞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끼어들지 않는 게 낫겠다. 앙피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러자 아치가 이불에 난 구멍으로 손을 쑤욱 넣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이불을 확 걷었다.
“야! 너도 같이 나가자.”
그래. 몇 분 전만 해도 영원히 여기 갇힐 바엔 나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잠금장치 없는 문과 탈옥범을 경계하지 않는 경비병을 보고는 마음이 바뀌었다.
“ㅅ...싫어요...”
앙피는 아치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했다.
언제든 나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충분히 쉬고 나가도 된다. 게다가 이 둘과 같이 나갈 바엔 혼자 몰래 나가는 편이 더 안전할 것 같다.
‘...이 사람들이랑 나가면, 여차하면 미끼로 써도 되긴 하는데···.’
그래도 앙피는 나중에 혼자 나가고 싶다.
“그러면 저녁을 먹고 나가면 되려나?”
“그렇지. 밤에 졸리지 않으면 나가자고.”
저 탈옥을 무슨 산책마냥 생각하는 둘을 보니 확실히 혼자 나가는 게 날 것 같다.
일단은 잠을. 그래, 안 그래도 검은 점에서의 소동 때문에 꽤나 피곤하다. 앙피는 깔깔 떠드는 둘을 피해 다른 모퉁이로 꾸물꾸물 기어갔다.
“야. 너 자꾸 도망간다? 이렇게 공손히 부탁하는데 거절한다고? 진짜 무섭다 너.”
저 무섭다는 진심이다. 공손한 부탁은 응당 들어주는 게 예의니까.
“...전 싫어요...”
“가자고! 어?”
“...흐엥. 협박은 죄에 없어요...?”
“그게 뭔데! 됐고 같이 가자고. 너처럼 숙련된 전문가가 필요해.”
정말 웃긴 마을이다. ‘화장 금지’라는 법은 있어도 ‘협박 금지’는 없다니. 하긴 덧셈을 모르는데 기하와 벡터를 하진 않을 테니까.
앙피는 끈질기게 달라붙는 아치 때문에 숨이 막혔다. 단순히 그녀의 왈가닥한 성격도 한몫했지만, 그녀가 ‘그녀’라는 것도 문제였다.
앙피는 또래에 가까운 여자일수록 더 어색함을 느낀다. 앙피가 살던 마을에 또래 여자가 없었던 이유가 크다.
그래서 차라리 앙피는 차선책을 택했다.
“저기... 할아버지... 도와주세요..”
그래도 어르신들은 대체로 앙피를 귀여워해 줬다. 쭈뼛대는 게 소심하긴 해도 애는 착하다고.
그 사실을 입증하듯 제트가 슬슬 걸어왔다.
“허허허. 내가 왜.”
물론 제트는 그렇게 푸근한 노인은 아니었다. 아직도 빠른 음악이 좋고 자극적인 음식이 좋은 노인이다.
좋게 말하면 젊게 사는 것이지.
제트가 도와주지 않자 아치는 예상했다는 듯 쐐기를 박았다.
“됐고. 너도 같이 나갈 줄 알아라.”
“...뭐라고 좀 해주세요....”
“내가 왜ㄱ···. 야 이 녀석아! 애가 싫다잖아!”
그때 제트가 갑자기 호통을 쳤다. 그러고는 자신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제트의 모습에 아치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할배 갑자기?
야, 너 뭐 한 거냐 금방?”
“으악... 오지 마세요!”
앙피가 다가오는 아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제트가 달려와 아치를 막아섰다.
“아이고야!”
그때 앙피는 제트의 팔꿈치가 웅웅 빛나는 걸 발견했다.
“뭔 일이여. 아이고 삭신이야.”
“.......이거..”
제트의 팔꿈치에 앙피의 표식이 있다.
즉, 다시 말해 제트 그는···.
“제 소환수세요...?”
“뭬야?”
앙피가 제트와 어색한 눈 맞춤을 했다.
“너.. 너 혹시 이름이 앙피니?”
“.....네.”
그들은 그제서야 통성명을 했다.
그리고 제트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는 다름 아닌 앙피의 소환수다. 이런 곳까지 자신의 소환수가 있다니. 앙피가 방목한 소환수들이 얼마나 끈질기게 살아남았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그리고 그때 소란을 들은 경비병이 다가왔다.
“또 당신들입니까?”
“ㅈ..죄송해요...”
“이런 식이면 재판을 다시 받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ㅎ...한번만 봐주세요.”
“네. 그러죠···. 잠시만. 제가 금방 뭐라고 했죠?”
이번엔 경비병의 상태가 이상하다.
‘...잠시만.’
앙피가 경비병의 눈가를 살피고는 짧은 탄식을 뱉었다.
“...당신도 제 소환수에요....?”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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