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슈 기숙사생이 절벽을 오르는 이유
기숙사마다 분위기나 인테리어는 다를지라도 그 구성은 똑같다.
1층과 2층은 로비 및 휴게 장소.
슈 기숙사의 경우 이곳을 거의 안 쓴다. 쉬는 시간이 아까울뿐더러 굳이 들렀다 가기 귀찮다나 뭐라나. 한 번에 위층으로 날아가는 게 편하다고 한다. 무슨 소린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3층부터 5층은 편의시설 및 수업용 임시 교실이 잔뜩 있다.
그리고 그 위층은 전부 기숙사다.
이 중 파시가 수업 중인 곳은 3층이라고 한다.
앙피는 어서 종이 뭉치를 전해주기위해 열심히 움직였다. 하지만 1층 전역을 돌아다니고는 이상함을 느꼈다.
“없어...”
이런 높은 건물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는 앙피가 알 리가 없고. 그가 말하는 것은 계단이다.
위층으로 오르려면 당연히 계단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1층을 꼼꼼히 돌아다녀도 계단이 보이지 않았고 그 외에 위로 오를만한 장치도 아무것도 없었다.
슈 기숙사는 단순히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애초에 위층과 연결된 곳조차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학생들이 토론하던 라운지를 빼곤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앙피는 다시 라운지로 돌아갔다.
라운지는 천장이 뻥 뚫려 꼭대기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다. 모든 층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다.
동시에 이곳이 유일하게 위층과 연결된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 역시도 계단은 없었다. 하다못해 밧줄 하나 걸려있지 않아 아무리 봐도 위층으로 오를 방법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팔을 흔들면 다리가 빨라진다니까?”
“아니. 다리가 빠르면 팔이 빠르게 흔들리는 거야.”
학생들은 그새 다른 주제로 떠들고 있었다.
평소의 앙피라면 그 틈에 끼어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도 자신을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조금 편했다.
“저기... 혹시 위층엔 어떻게 가요..?”
앙피는 조심스럽게 학생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학생들은 앙피의 재등장에 멈칫하더니 한 명이 대표로 대답하러 나왔다. 안경을 바짝 눌러 쓴 학생이 삐걱대며 일어섰다.
그는 대답대신 직접 앙피를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메이커 학생들의 아첨을 든 경험이 많은 학생이었지만 그보다 더 높은 왕국의 사람이라니 긴장한 기색이었다.
“여기입니다!”
어색한 미소를 띈 학생이 뻣뻣하게 벽을 가리켰다.
위층으로 올라갈 방법을 물었더니 벽을 가리켰다. 엿맥이는 건가?
숨겨진 계단이라도 있나 싶었지만 그건 정말 단순한 벽이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자국이 보이긴 하지만 그게 퍽 특별한 모습은 아니었다.
앙피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맹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학생이 추가 설명을 했다.
“어... 그러니까 여기서 이렇게. 이렇게 올라가시면 됩니다.”
학생은 특별한 설명도 없이 벽을 발로 차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특별한 장치나 신발을 신은 것도 아닌데 벽에서 미끄러지지도 않고 위로 올라간다.
절벽을 오르는 염소도 조그만 틈은 밟는다. 그런데 이 학생은 그냥 평평한 벽을 올라간다. 발로 퍽퍽 차며 오르는 모습은 조금 우습지만 말이다.
‘... 뭐지...?’
앙피가 여전히 이해를 못하자 학생은 2층에서 뛰어내려 다시 설명했다.
“벽에서 미끌어지기 전에 벽을 차서 위로 오르면 됩니다. 이걸 반복하면 꼭대기 층까지도 갈 수 있습니다. 저는 벽의 마찰력 덕분에 오르지만 2학년분들은 벽이 없어도 올라가십니다.”
그러니까 그의 말에 따르면 2학년은 공중을 날아다닌단다.
비행 마법따위가 아니라 무식한 방법으로 말이다. 한 발이 떨어지기 전에 다른 발을 올리고, 또 그 발이 떨어지기 전에 다른 발을 올리고.
호수를 뛰어서 건넌다는 소리가 농담이 아니었다.
‘단순히 속도가 빠르다고 그게 가능해..?’
이런 사람들이 왜 소환술사를 신기해하는지 모르겠다는 앙피였다.
하지만 그들도 용사를 지망할 뿐 평범한 사람이다. 앙피는 일단 벽에 손을 짚어봤다.
‘그러니까.. 발을 올리고, 그 발이 떨어지기 전에 다른 발을...’
앙피는 벽에 찰싹 달라붙어 다리로 벽을 밀었다.
마치 과일의 껍질을 벗겨낸다는 느낌으로 벽을 발로 민다. 그리고 두 손은 벽에 밀착시켜 떨어지는 속도를 최대한 줄인다.
앙피는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샘솟아 두 다리를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쓱- 쓱- 쓱-
앙피가 온 몸을 벽에 비비는 소리가 난다. 왜 이 벽만 특히 페인트가 벗겨져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을 학생이 흥미롭게 바라봤다.
“이 벽을 한 번에 오른 인물은 몇 없는데 말이죠.”
정말 속도에 재능이 뛰어난 자가 아니고서야 이 보법을 단숨에 터득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앙피는 태어나서 가장 빠른 속도로 두 다리를 움직였다. 2층의 바닥이 곧 가까워진 느낌이 들며 허벅지가 터질 것만 같다.
학생도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도와드리죠.”
“ㅎ..흐억... 네...?”
앙피는 여전히 1층 바닥에서 퍼덕거리고 있었다. 학생의 올라간 입꼬리는 미소가 아니라 비웃음이었나 보다.
그럼 그렇지, 안타깝지만 앙피에게 속도와 관련된 재능은 전혀 없었다.
그는 1분동안 벽에 찰싹 달라붙어 파닥거렸을 뿐이다. 마치 밥 달라고 다리에 들러붙어 아우성치는 강아지처럼.
결국 앙피는 학생의 등에 업혀 3층에 갈 수 있었다.
“꾸어!”
“가능.”
“쿠에에엙.”
“불가능.”
교실에선 비비와 파시가 공명하고 있었다. 제법 심도 있는 대화였지만 알아들을 순 없었다. 그럼에도 둘은 마음이 잘 맞는지 계속해서 말을 주고받았다.
톡- 톡-
앙피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힘으로 교실 문을 똑똑 두드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교실엔 비비와 파시, 둘밖에 없었다.
비비는 앙피를 발견하고는 우다다 달려와 안겼다. 덕분에 앙피가 넘어지며 들고 있던 종이 뭉치가 공중으로 흩날렸다.
“ㅇ..으악! 저리 가요!”
“?”
파시는 예상에 없던 앙피의 등장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게... 이걸.”
앙피는 급하게 바닥의 종이를 하나씩 주웠다.
그러자 파시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
파시의 모습이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는 흩어진 종이를 순식간에 전부 주웠다. 눈 깜짝할 새에 종이를 가지런히 수거하는 실력이 괜히 속도 기숙사의 대표가 아니었다.
얼마나 빠른지 그 여파로 앙피의 앞머리가 흔들렸다. 참고로 아직도 그의 쥐파먹은 앞머리는 다 자라지 않았다.
파시는 주운 종이를 슬쩍 들춰봤다.
“어...”
앙피는 종이 뭉치에 대해 설명해주어야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이 파시는 “불가능.”이란 말과 함께 종이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는 고생했다는 듯 앙피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파시가 봐도 기러기의 기사는 영양가가 전혀 없는 모양이다. 이럴거면 진짜로 호수에 버리고 왔어도 됐었을 뻔했다.
“어...”
“...”
둘 사이엔 별 단어가 오가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서로 통하는 듯했다. 앙피도 말수가 적은 그에게서 편안함을 느꼈다.
덕분에 앙피가 편안하게 질문할 생각까지 했다.
“뭐 하고 있었어요..?”
그의 질문에 비비는 눈을 반짝이며 그 앞에 자세를 잡았다.
비비는 엉덩이를 쭉 빼고는 다리에 힘을 빡 줬다.
그리고는 제자리에서 두 다리를 번갈아가며 뛰기 시작했다.
“크엙. 으어.”
힘들어보이는 목소리와 달리 그녀의 다리는 엄청나게 느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에서 비비를 보고 있자면 측은할 정도였다. 결국 비비의 두 다리가 그녀의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툭하고 떨어져 나갔다.
비비는 울적한 표정으로 떨어져 나간 다리를 머리에 올렸다. 앙피는 그 모습을 토끼 같다고 생각했다.
두 다리가 떨어진 비비를 보며 파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불가능.”
파시가 그녀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려 했는지 직접 보여줬다.
파시가 두 다리를 번갈아 가며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다리는 점점 빨라지더니 순식간에 파시의 몸이 공중에 떠올렸다.
이전의 학생이 말했던 그 방법이었다.
파시는 마치 호수위 백조처럼 두 다리를 엄청나게 움직이면서 상체는 평온했다.
느려터진 좀비의 몸을 가진 비비가 저 경지에 오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뭐, 사실 진짜 용사가 되겠다고 온 것이 아니니까 그럴 필요는 없다. 그렇다해도 평범한 인간이 저 정도 경지에 도달했다는 건 경이롭다.
하지만 경이로운 건 경이로운 거고 앙피는 그보다 매점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 그러고보니 왜 매점을 가야했지..?’
이유도 가물가물해진 앙피였다. 한편, 일외동은 다 찌그러진 상자 집에서 사라진 지갑을 찾는 중이었다.
“가능.”
파시는 매장의 위치를 손으로 알려줬다. 그의 손끝이 위를 향한다. 그렇다는 건 매점은 위층에 있다는 소리다.
“아.”
공중 보법따위 불가능한 앙피에겐 다른 층수로 가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다행히 파시가 순식간에 매점 앞으로 앙피를 옮겨주었다. 얼마나 빠른지 앙피는 목이 뻐근했다.
“컵라면 어딨어!”
“비켜비켜!”
“거스름돈은 됐으니까 빨리 계산이요!”
기껏 도착한 슈 기숙사의 매점은 정말이지 난잡함 그 자체였다.
마음 급한 기숙사생들이 쉴새없이 왔다갔다 하느라 정신이 사나웠다. 진열대의 물건들도 그들이 일으킨 바람에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온갖 물건이 굴러다니는 바닥을 기숙사생들은 용케도 요리조리 피하며 물건을 구매했다. 그들도 그들 나름만의 규칙이 있는 모양이다.
뭐랄까, 질서와 혼돈이 섞인 모순적인 공간이었다.
앙피는 선뜻 그 사이로 뛰어들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리고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 언네임드!
과연 저 사람들을 피해 물건을 하나도 밟지 않고 매점 아저씨에게 말을 걸 수 있을까요! 무소속인 그가 과연 속도 능력치가 우수할지! 언네임드, 가자!”
바쁜 일이 있다며 사라졌던 기러기였다.
그는 앙피의 당황한 눈동자를 클로즈업 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앙피의 미세한 떨림까지 찍을 생각인지 거의 얼굴에 카메라를 갖다 붙였다.
예상컨데 내일 기러기의 기사에 [무소속 언네임드. 슈 기숙사에게 된통...] 같은 제목이 실릴 것이다.
그는 흥미진진하게 앙피의 상황을 중계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다른 학생들도 기러기의 중계에 이끌려 착석했다.
덕분에 매점을 들락날락하던 학생들도 덩달아 열정에 불타올랐다.
“어디 한번 지나가보시지!”
“어중간한 속도로는 어림도 없다고!”
학생들이 굳건한 표정으로 앙피를 바라본다. 절대 앙피를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 묻어난다.
‘...... 이 사람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갑자기 주목하는 이가 많아지자 앙피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앙피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는 눈치가 없고 사회성이 떨어지며 멍청하고 얼빵하지만, 심성은 곱다! 나름!
일외동에게 받은 부탁이 있으니 여기서 물러날 순 없다.
앙피는 굳게 결심한 표정으로 매점 안을 노려봤다.
“히야아아..!”
앙피가 힘차게(?) 사람들 틈으로 돌진한다!
- 작가의말
선호작과 추천, 댓글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