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최랑 연합, 아카데미를 습격하다
‘나영웅 님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한국은 이런 걸 먹는 곳인가..?’
앙피가 생각하는 한국의 이미지가 더욱 괴랄해졌다. 자신은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곳이라는 확신만이 커져갔다.
한편 일외동은 매점별로 대표 음식을 사와 천천히 음미했다.
그가 너무 느리게 먹자 앙피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앙피가 먼저 일어나자 눈치가 보인 일외동은 급하게 음식을 욱여넣었다. 하지만 앙피는 그 잠시도 기다려주지 않고 저 앞으로 가버렸다.
‘천천히 먹는 걸 즐기시는 거 같으니까.. 빠져 줘야지..’
앙피는 파란 호수를 바라봤다.
호수는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였다. 수질관리가 정말 잘되어 깨끗했다. 다만 조금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호수 중앙은 이질적으로 탁했다.
마치 호수의 모든 이물질이 호수 중앙에 가라앉은 듯 그 부분은 심하게 탁했다.
일외동을 기다리며 호수에 조약돌을 툭툭 던졌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이 호수는 바닷물일까...?’
바다를 막아 그 안에 지어진 아카데미. 사방에 넘쳐나는 게 바닷물이기에 호수를 만든다면 바닷물로 만드는 편이 쉬웠을 것이다.
그 진상을 알기 위해선 한 가지 쉬운 일을 하면 됐다.
앙피는 호수에 손가락을 푹 담갔다. 그리고는 호수에 담갔던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 아까도 누군가 호수에서 이러고 있던 것 같은데.
‘음.. 아무 맛도 안 나는데.. 너무 조금 찍었나..?’
앙피는 이 정도로는 민물이라 판단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손가락을 입에 넣은 탓에 짠맛이 조금 나는 것 같았다.
앙피는 허리를 숙여 호수의 수면을 노려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가져다 댔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키스하듯이 눈을 살포시 감고 호수의 물맛에 집중하려 했다.
그리고 그때. 원조 호수 먹방러가 나타났다.
“너너너. 바보야? 호수를 먹어! 이상해!”
뒤에서 나타난 천재가 앙피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동네 바보 같은 놈한테 바보 취급받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앙피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듯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물고기를 감상하고 있었던 듯 두리번거리며 연기를 했다.
“거기. 고기 없어.”
“... 그쪽은 수업 안 들어요...? 무소속도 아닌데 이 시간에 왜···.”
앙피는 말끝을 흐리며 빙 둘러 불편하다는 티를 팍팍 냈다.
천재는 그런 그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마치 입이 막 터진 어린아이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무관심은 앙피도 만만치 않았다. 천재가 뭐라고 하던 앙피는 눈을 흘기거나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며 전혀 듣지 않았다.
그러나 천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들었다. 그러다 앙피의 귀에 꽂히는 말이 하나 있었다.
“다 죽어! 곧. 진실을 아는 자들이 온다고! 다. 다그닥.”
“.. 그쪽은 안 죽어요?”
“난 괜찮아. 난 천재니까. 그러니까. 난 피해.”
앙피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이젠 정말 천재를 떼어놓고 싶었다. 그가 멍청하고 덜 떨어져서 그렇기보다는 [말을 끊임 없이 거는 사람]이라는 점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앙피가 그를 떨어뜨려 놓을 적당한 사유를 찾아 일외동을 쳐다봤을 때였다.
급하게 식사를 마무리하던 일외동의 머리 위로 무언가 쿵 하고 떨어졌다.
멀리서 그게 무엇인지 보이진 않았지만, 일외동은 그대로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쓰러졌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앙피는 곧바로 도망치려 몸을 틀었다. 일외동의 안위를 걱정하며 달려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왔다! 왔다! 이야아악!”
천재도 이상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도망치려던 앙피는 곧장 수상한 녀석들에게 잡혔다.
“어멋. 한 명 잡았다.”
“크큭. 한 놈도 놓아주지 말라고.”
말투부터 이상한 놈들은 어쩐지 그림체가 다르다는 표현이 제격이었다. 어쩐지 조금 몽글몽글한 녀석들과 삐죽빼죽한 녀석들이 뒤섞인 놈들이었다.
게다가 규모도 한두 명이 아닌 떼거리로 몰려왔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눈에 닿는 모든 곳에 녀석들이 보였다.
그때 일외동이 머리에 피를 질질 흘리며 다가왔다. 머리를 감싼 손이 아직 깨끗한 것으로 보아 그렇게 치명상은 아니었던 듯하다.
“너희가 어떻게 여기에..!”
일외동은 그들을 알고 있는 듯했다.
“뭐야. 씹똥이. 여기 있었구나?”
삐죽빼죽한 녀석 하나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반면 일외동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 둘이 비슷하게 생겼네..?’
앙피가 일외동과 삐죽빼죽 녀석을 번갈아 쳐다봤다.
갑자기 나타난 수많은 사람. 그 정체는 그들의 옷차림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교복. 그들이 입은 건 교복이었다. 다만 이 아카데미의 것이 아니었다. 그 말인즉슨 이미 사라진 아카데미의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우선 팔랑팔랑한 치마나 레이스가 잔뜩 달린 녀석들은 [사랑 아카데미]의 학생들이다. 교육의 질은 떨어지며 하나 같이 연애를 목적으로 들어온 탓에 결국 사라졌다.
하지만 아카데미가 사라져도 그들은 여전히 연애에 굶주렸다. 그들은 마치 비극적 주인공이 된 것처럼 짝을 잃은 슬픔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용사 아카데미에 돌린 것이다.
그렇다면 삐죽빼죽한 녀석들은 뭘까.
그들 역시 [최강 아카데미]라는 곳의 학생들이었다. 싸움을 즐기며 힘을 키우는 것이 주인 아카데미였다.
얼핏 보면 이곳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들에겐 선과 악의 개념이 없었다. 뚜렷한 목표 없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데 취한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일외동 그가 바로 이 최강 아카데미 출신이었다. 거의 서열 꼴찌를 기던 그는 최강 아카데미가 사라지기 직전 그곳을 빠져나와 이곳으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어떻게 들어온 거지!? 학생증이 없으면 들어올 수 없을 텐데!”
일외동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내용으로 그들에게 맞섰다.
“크큭. 네 녀석들은 그게 문제다. 우물 안 개구리라고. 굳이 정문으로 들어올 필요가 있나?”
삐죽빼죽 녀석이 하늘을 가리켰다. 누구보다 앞장선 이 녀석은 최강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었다.
이렇게 많은 수가 순식간에 침입하는 방법. 그건 바로 하늘이었다.
검지를 둘러싼 거대한 벽. 그들은 그 벽의 위로 올라가 용사 아카데미의 위쪽까지 걸어 온 것이다. 그리고 한꺼번에 뛰어내려 이곳에 침입했다.
바닷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던 벽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사랑&최강 아카데미. 합쳐서 최랑 연합은 순식간에 용사 아카데미의 전역을 뒤덮었다. 막상 용사 아카데미생들은 수업에 열중한 탓에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것 봐라. 너희가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야. 너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고.”
최랑 연합은 자신들의 아카데미가 사라진 이유가 다 용사 아카데미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곳을 차지할 생각이다.
기존의 학생들을 전부 몰아내고 자신들이 유일한 아카데미를 세울 예정이란 것이다.
그리고 그 방대한 계획을 주절주절 떠드는 삐죽빼죽한 녀석을 앙피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 그럼 이름은 뭐로 하실 거예요..?”
붙잡힌 주제에 궁금한 것도 많은 앙피였다.
“당연히 최강 아카데미의 재림이지.”
“뭐얏? 최랑 연합 아카데미로 하는 게 아니었어?”
순간 최랑 연합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최강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은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어이. 이름은 아무래도 좋아. 저 얼빵한 놈이 우릴 이간질할 생각인 듯한데 순순히 넘어가주지 말자고.”
“느에..?”
아무 의도도 없던 앙피는 당황했다. 하지만 덕분에 일외동은 용기를 얻었다.
“그래. 어쩌면 난 이 사태를 막기 위해 무소속이 된 것일지도 몰라!”
“크크큭. 따까리 출신 주제에 뭘 하겠다는 거지. 이딴 쓰레기 같은 아카데미에서 1등을 하니 기고만장해졌군.”
최강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 기대된다는 듯 두 팔을 쫙 펼치며 싸울 준비를 했다.
그리고 덕분에 그에게 잡혀있던 앙피는 저 멀리 던져졌다.
붕-.
앙피는 무슨 짐짝 던져지듯 공중에 붕 떴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호수에 떨어졌다. 퐁당. 하찮은 물소리를 내며 앙피는 그대로 호수의 중앙으로 빠졌다.
“푸으엙! 뭐야..!”
앙피는 간신히 파닥거리며 헤엄을 쳤다. 발밑은 너무나도 탁해 얼마나 깊은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그리고 앙피의 물장구 때문인지 바닥의 탁한 물이 점점 올라오는 듯했다. 그 탓에 분명 계속 수면에서 헤엄쳤지만 어째서인지 가라앉는 불안함이 올라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위험한 건 없었다. 자세는 엉망이었지만 헤엄치는 것이 힘들진 않았고 조금씩 익숙해져 곧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머리 위가 어두워졌다.
“꾸에에엙!”
천재도 휘말렸는지 날아와 그대로 앙피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열심히 나갈 계획을 세우던 앙피는 그대로 천재와 함께 기절해 가라앉았다.
그렇게 두 소년은 탁한 호수의 중앙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었다.
***
한편, 다른 앙피 일행은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불과 몇 시간 전 그들은 각자 수업에 참여했다.
쉼터와 본관 사이의 건물. 그곳은 모든 학생이 모여 이론 학습을 받는다.
물론 기숙사별로 수업 내용은 다르기에 앙피 일행이 서로 만날 일은 없었다.
교실의 가장 뒤에 앉은 카힐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흐아아암. 존나 재미없어.”
아침도 거르며 늘어지게 잠도 자고 온 카힐이 지루한지 수업을 전혀 듣지 않았다.
그녀의 기숙사는 슈 기숙사. 지식을 배우는 것이 주였기에 대부분의 수업이 책상에 앉아 공부만 했다.
좀처럼 몸을 움직일 일이 없으니 카힐은 좀이 쑤셨다.
전날에도 무슨 이상한 동물에 대한 설명만 3시간을 들은 탓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아, 몰라. 어차피 다른 애가 도장 받겠지.’
앙피 일행은 하나같이 똑같은 생각을 했다.
“하, 그자는 또 어딜 간 겁니까.”
카힐 옆에서 인상을 쓰고 있는 여자는 테리아였다. 수녀와 마족이 같이 앉은 모습은 조금 어색했다.
“뭔데. 누구 찾아?”
카힐은 딴짓거리를 찾았다는 눈빛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있습니다. 저희 기숙사의, 아니 저희 아카데미의 유일한 오점.”
“아. 그 어제 본 그 꼬맹이?”
그들이 말하는 자는 천재였다. 천재는 슈 기숙사 소속이었고 카힐도 어제 그를 봤었다. 그리고 슈 기숙사생 모두가 그를 험담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자는 수업도 받지 않고 매일 밖을 돌아다닙니다. 게다가 그분의 정체를 알아내려 시도까지 했기에 저주를 받아 저렇게 아둔해진 겁니다.”
테리아가 손톱을 으득으득 물어뜯었다.
“그보다 이 수업 언제 끝나냐.”
“앞으로 5시간 남았습니다. 그분의 뜻을 담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요. 벌써 1교시가 끝났다는 것이 마음이 아픕니다.”
“하.”
‘그냥 나도 그 천재라는 놈 따라서 빠질걸.’
카힐은 지루한 표정으로 책상에 머리를 쾅쾅 박았다.
그 소리가 시끄러운지 앞쪽에서 간간이 뒤를 돌아봤지만, 카힐의 생김새에 뭐라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카힐은 치렁거리는 치마나 조금씩 뜯기로 했다. 그녀의 스타일에 맞춰 아주 짧은 치마로 뜯어낼 생각이었다.
이르하라의 꼼꼼한 박음질 덕에 잘 뜯기진 않았지만 조금씩 실밥이 뜯기긴 했다.
그리고 그때 카힐의 지루함을 풀어줄 수업이 시작되었다.
다음 수업의 내용은 다름 아닌 ‘마족’에 대한 강의였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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