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테리아 따운! 테리아 따운!
조금 전.
테리아는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뛰어오는 카힐을 바라봤다.
어차피 조각을 떨어뜨리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나영웅과 비비도 단단히 묶여 있고 변수는 단 하나도 없었다.
지컬의 대표인 그녀가 실수할 일은 없었다.
단 하나. 그녀의 계산에 들어가지 못하는 녀석만 뺀다면 말이다.
꾸르르륵-
테리아는 대장에서 용이 꿈틀거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 났다. 그리고 그 꿈틀거림은 곧장 온몸을 경직시킬 정도의 통증으로 변했다.
테리아도 먹은 것이다. 앙피의 배탈약이 뿌려진 음식을.
다만, 앙피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효과가 나타났다.
원래라면 기숙사 대전 2라운드에서 효과가 나왔어야 했지만,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시간이 앞당겨졌다.
우선은, 그녀가 생각보다 식탐이 있었다는 것.
달콤하고 달달한 디저트류를 하나씩 전부 맛본 덕에 예상보다 더 많은 약을 섭취했다.
그리고 비비와의 추격전.
흡사 공포물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놀라고 온몸에 힘을 계속 주며 움직인 탓에 장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나영웅의 마무리 한 방.
그가 꽂아 넣은 박치기에 테리아의 대장이 강하게 진동했다.
자극받을 대로 받은 테리아의 대장은 어서 일을 하고 싶었다.
꾸르르르륵-.
“오! 신이시여. 오!!”
테리아는 온몸을 배배 꼬며 차마 손에 들린 구체 조각을 놓지 못했다. 이걸 놓으면 자신의 괄약근까지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우승을 위해 전교생이 지켜보는 곳에서 똥을 싸지를 수도 없는 마당. 10대 소녀의 인생에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
테리아는 가까스로 퍼즐 조각을 상자에 떨어뜨리고 곧장 경기장을 벗어났다. 그녀는 마지막 이미지만큼은 지켜냈다.
「경기 종료.
결과는.
동시에 넣었습니다! 무승부는 불가능하기에 빠르게 판정 기준을 세우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쿠당탕-!
안내방송 끝자락에 희미하게 급하게 뛰어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경기장엔 방송에서 들리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후다닥 뛰어 들어왔다.
머리를 한껏 올려 고정한 남자는 퍼즐이 든 상자를 들고는 안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는 상자 안에서 구체 조각을 하나하나 꺼냈다.
구체는 겉으로 보기엔 똑같지만, 안쪽 색깔이 달랐기에 두 조각을 구분할 수 있었다. 사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테리아와 카힐의 구체를 구분할 수 있었다.
원래 조각대로 정갈하게 나뉜 구체와 그냥 산산조각이 난 구체가 각각 누구 것인지 보였으니까.
그는 두 조각을 나란히 둬보고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이 끝났습니다!
승자는···.”
그는 마이크도 없이 큰 목소리로 이목을 끌었다. 관객들이 충분히 안달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는 비장하게 말을 이어갔다.
“테리아입니다!!!”
“역시!! 테리아, 지컬 기숙사의 명예를 지켰구나!!”
“흐에엥. 대표!”
지컬 기숙사생들이 환호했다. 그러나 정작 경기장엔 테리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만. 왜!! 어쨌든 풀었으면 된 거 아냐!?”
카힐도 찔리는지 먼저 항의했다.
하지만 심판은 퍼즐을 어떻게 풀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단상에서 멀리 떨어진 경기장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엔 미처 카힐이 줍지 못한 구체 조각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힘을 너무 세게 준 탓에 그녀의 시야 밖까지 파편이 튀었던 모양이었다.
“따라서...! 구체 조각을 온전히 다 넣은 테리아의 우승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단체 행사의 우승은 테리아의 것으로 끝이 났다.
비록 카힐이 우승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웠지만, 당장 이어질 기숙사 대전이 있기에 괜찮았다.
기숙사 대전이 시작하기 직전 그 방송이 나오기 전까진 말이다.
앙피는 기숙사 대전 참가를 위해 대기실로 이동했다.
대기실은 체력단련실을 임시로 바꾼 탓에 조금 부산스러웠다. 의자 대신 운동용 벤치만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나름 대기실이라고 물과 간단한 음식 정도는 갖다 놨다. 그 음식이 축제에서 가져온 음식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앙피가 대기실 입구에서 쭈뼛대다 구석에 가서 앉았다.
아직 대기실에 와 있는 건 기러기밖에 없었다. 그는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아마 단체 행사에서 우승한 테리아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앙피는 혹여나 그가 말을 걸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잠시 후 나영웅이 도착했다.
“후후후. 반갑군.”
나영웅의 1라운드 상대는 테리아였기에 나머지 둘과 별 부담 없이 인사를 나눴다.
그는 대기실을 잠시 훑어보고는 구석에 놓인 음식을 주섬주섬 주워 먹었다. 앙피의 배탈약이 듬뿍 들은 음식이었다.
나영웅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다가 눈치가 보였는지 기러기에게도 권유했다.
‘오... 나영웅 님 최고...’
앙피는 제발 기러기가 우리앙 급으로 음식을 먹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기러기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니. 축제의 음식은 내 입맛에 맞지 않아.”
“편식이 심하군.”
나영웅은 왜인지 안심하며 남은 음식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기러기의 반응을 보니 축제 음식은 일절 입에 대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에겐 배탈약 작전 외의 다른 방법을 써야 할 듯했다.
앙피가 기러기를 위한 작전 준비로 한참 꼼지락대던 와중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아- 아-. 기숙사 대전 참가자 여러분은 조속히 대기실로 이동 바랍니다. 기숙사 대전 시작까지 약 5분 남았습니다.」
심판이자 해설자, 안내방송까지 같은 사람이 다 하는 모양이었다.
‘... 돈이 없나....?’
하지만 1, 2분이 더 흘러도 테리아는 나타날 기세가 없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테리아 님 아직 안 왔나요?”
결국 심판이자 해설자 안내방송까지 하는 녀석이 대기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심해안은 대기실에 테리아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급하게 다시 방송실로 돌아갔다.
「아-! 지컬 기숙사 참가자인 테리아 님이 대기실로 오지 않아 급하게 재추첨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므로 급한 대로 저희 측에서 현재 관객 중 지컬 기숙사생 한 명을 무작위로 뽑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테리아가 실격될 줄 알았던 앙피는 탄식을 뱉었다.
순조롭게 흘러가던 계획에 갑자기 변수가 생겨버렸다.
지컬 기숙사에 테리아보다 강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심해안이 안내한 해결방안이었다.
‘관객 중 뽑는다.’
다시 말해 배탈약을 먹은 사람이 걸릴 확률이 적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나영웅이 1라운드에서 지컬 기숙사를 이기길 바라야 한다.
앙피는 서둘러 나영웅에게 뛰어가 그의 손을 낚아챘다.
“ㅇ.. 이 음식 먹으면 안 돼요...!”
“후후후. 마스터도 편식이 있는 줄 몰랐군. 하지만 걱정 말게. 이미 내가 다 먹었으니.”
나영웅은 말끔해진 식탁을 자랑스럽게 퉁퉁 두드렸다.
“그걸 다...”
앙피는 절망에 빠져버렸다.
한편 테리아의 경우.
“으아악! 나와!!”
테리아가 온몸을 배배 꼬며 화장실 문을 두드린다.
“ㅁ.. 미안해 대표!”
하지만 앙피의 배탈약이 든 음식을 먹은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 탓에 화장실이 꽉 차서 테리아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테리아는 신의 장난질에 놀아나는 사람처럼 제정신이 아니었다. 폭풍처럼 몰려오는 배탈과 불안하게 찾아오는 평화를 오가며 화장실 여기저기를 두드리며 다녔다.
그리고 그때, 그 방송이 화장실에도 흘러나왔다.
「아- 아-. 기숙사 대전 참가자 여러분은 조속히 대기실로 이동 바랍니다. 기숙사 대전 시작까지 약 5분 남았습니다.」
“하윽! 신이시여! 어째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지컬 기숙사엔 3대 미스테리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테리아가 믿는 신이 도대체 무엇인가?’였다.
테리아는 입학 당시 거대한 무언가를 만났다. 그리고 그 뒤 그 거대한 녀석을 다시 만나길 빌며 독실한 신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미스테리한 녀석이 테리아의 화장실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했다.
테리아의 몸이 지진 난 것처럼 떨리고 있다. 그리고 그때 두 번째 방송이 들렸다.
「아-! 지컬 기숙사 참가자인 테리아 님이 대기실로 오지 않아 급하게 재추첨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므로 급한 대로 저희 측에서 현재 관객 중 지컬 기숙사생 한 명을 무작위로 뽑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 돼!! 그러면 안 됩니다.... 빨리 아무나 제가 만든 뽑기 통 갖다주면 된다고요···. 으악! 갓 뎀!”
테리아가 바닥을 기어 다니며 절규했다.
사실 지컬 기숙사의 뽑기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그건 바로 테리아가 천재의 이름을 통에 넣지 않았다는 것.
그녀는 천재가 지컬 기숙사의 오점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런 녀석이 기숙사 대표로 참가하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휴. 시원~하다.”
그리고 그때 화장실 하나의 문이 열렸다.
“아! 뭐 알아서 하세요!”
테리아가 사슬을 꺼내 화장실에서 나오는 녀석을 순식간에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빠르게 화장실 한 칸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제 기숙사 대전에 누가 나가든 말든 그녀는 중요치 않았다.
스타디움엔 커다란 구체가 나타나 경기장의 모습을 보여줬다. 구체로 관객석 여기저기를 비추며 작동이 되는지 점검하고는 곧바로 추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인가.
잠시 후 구체에 가득 들어찬 얼굴의 주인공은 천재였다.
“밍. 저기 나 나와!”
항상 기숙사 대전에 참가하고 싶다더니 드디어 이루어졌다. 심지어 지금까지는 테리아의 계략으로 참가를 못 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는 원래부터 이렇게 참가할 운명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 아-. 지컬 기숙사 참가자는 천재. 1학년의 천재로 결정되었습니다. 해당 선수는 대기실로 이동할 필요 없이 곧장 경기장으로 내려와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천재는 드디어 2학년으로 진급할 기회를 얻어 한껏 부풀었다. 다시 말해 드디어 아카데미에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천재가 잔뜩 신이 나서 우다다 경기장으로 내려와 단상에 올라갔다. 그리고는 관객석을 향해 브이를 날리며 자신이 꼭 우승하겠다는 다짐을 보였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대기실의 참가자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나영웅은 늘 그렇듯 상대를 무시하지 않고 되레 기대를 품었다.
“후후후. 바보를 연기하던 녀석이 알고 보니 천재. 흔한 내용이라네.”
그 클리셰는 이미 깨진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나영웅이었다. 뭘 기대하는지는 알겠지만, 천재는 안타깝게도 언제나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
반면 기러기는 의외로 아무 관심도 없었다.
8년 만에 기숙사 대전에 참가한 학생, 기숙사생 중 가장 덜떨어진 녀석의 활약 등 기사로 쓰기에 좋은 요소가 많다고 생각했지만, 기러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천재가 진짜 우승이라도 하지 않는 한 기사의 임팩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앙피의 반응은 뻔했다.
앙피는 숨을 죽이고 추첨 결과를 기다리다 천재의 얼굴이 뜬 순간 입을 틀어막았다. 삐져나온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으니까.
“아싸... 개이득...”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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