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크아앙 드래곤이 울부짖었다.
용 혹은 드래곤.
인간과는 태생적으로 압도적인 차이를 가진 존재.
그러나 왼섬이고 오른섬이고 드래곤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앙피, 카힐, 비비에게는 그냥 덩치 큰 동물로 보인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이전까지 같이 있던 지저 왕 쪽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이 드래곤은 그런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오랫동안 찾아오는 이도 없었고 어쩌다 올라온 인간들은 하나 같이 약해빠졌었다.
그렇기에 멀쩡한 모습으로 돌연 나타난 앙피 일행이 흥미로웠다.
눈앞 나타난 드래곤은 마치 바람을 머금은 듯 파릇한 초록색 비늘을 갖고 있었다. 그의 몸 주변에도 돌풍이 그를 휘감고 있었다.
“여기까지 당도하다니. 그대들의 실력을 인정하마. 허나 이곳은 이 윈드스톰의 영역이다.”
“우와... 이름 구려...”
앙피의 말은 바람에 휩쓸려 윈스에게 닿지 않았다.
윈드스톰, 통칭 윈스라는 드래곤이 얼굴을 들이밀고 앙피 일행을 살폈다.
“그런데. 그대들은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구나. 한번 실력을 뽐내보거라!”
윈스가 엄청난 속도로 하강하더니 앙피 일행이 있는 대지 주변을 돌며 바람을 일으켰다.
엄청난 속도의 상승기류를 만들어지자 앙피는 몸이 위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뭐야 저 대왕 지렁이는!”
“후후후. 저건 드래곤이라고 하는 걸세!”
유일하게 그의 존재를 아는 나영웅이 이때다 싶어 잡지식을 뽐냈다.
“동양에서는 용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서양에서는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있지. 게임, 소설, 영화 어디서든 등장하는 상상 속의 존재로 정해진 모습은 없다네. 표현하는 이에 따라 모습이 천차만별이 되는 것이 매력일세!”
나영웅이 아까 상인들에게 먹은 음식들 덕분인가, 살이 조금 더 올라 바람에 날아갈 낌새도 없었다.
“그래서 뭐! 왜 저렇게 적대적인데!”
카힐이 날아가는 비비를 끌어안고 소리쳤다.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시간을 살아왔기에 성격이 제각각일세.”
“그게 뭐!”
“그냥 저 녀석이 성격이 더러운 걸세.”
나영웅의 말을 들었는지 윈스가 더욱 바람을 일으켰다. 목숨을 노리는 수준이라기보다는 터무니없이 약해 보이는 놈들을 시험하는 용도였다.
그리고 앙피가 보기 좋게 바람에 휩쓸려 공중에 떠올랐다.
“ㅇ.. 으아아악..”
앙피는 옷을 갈아입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랬으면 치마가 뒤집히고 난리가 났었을 테니까. 그는 초보 모험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난쟁이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근데 지금 옷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높이 떠오른 앙피는 얼떨결에 주변을 날아다니던 윈스의 머리에 매달렸다.
“필멸자여. 내 머리를 노렸구나. 허나 어리석도다.”
윈스가 머리를 털어 쉽게 앙피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는 바람을 이용해 앙피를 공중에 묶었다.
“으이야아아아..”
앙피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그를 향해 윈스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건 틀림없는 브레스다.
일각에선 브레스를 무슨 가스레인지 불처럼 표현하던데, 드래곤 브레스는 그런 게 아니다. 미친 파괴력으로 닿는 모든 것을 앗아가는 파괴력을 자랑한다.
특히나 윈스의 브레스는 바람을 머금고 나가는 덕에 엄청난 속도를 자랑했다.
앙피는 그가 뭘 하려는지 몰라도 위험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공중에 매달린 그가 할 수 있는 건 의미 없는 저항뿐이었다.
“ㅁ.. 멈춰요..! 뭔지 몰라도 뱉지 말아줘요...!”
앙피는 윈스가 무슨 침이라도 뱉으려는 것처럼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올라온 건 우연이었나 보구나, 필멸자여.”
윈스는 입 안 가득 들어찬 브레스를 내뱉었다.
아니, 내뱉으려 한 순간 갑자기 꿀떡 삼켜버렸다.
완전히 예열된 브레스를 그대로 삼키니 엄청나게 매운 음식을 먹은 것처럼 속이 쓰라렸다.
윈스는 자신도 왜 갑자기 브레스를 삼켜버렸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그만 빼고 모두가 눈치챘을 것이다.
“와. 앙피 진짜로?”
“ㅇ... 역시 마스터! 제 마스터답습니다!
드래곤 오너라니!!”
나영웅이 잔뜩 흥분한 채 소리쳤다.
그의 말대로 윈스에겐 앙피의 소환수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역린 부분에 정확히 앙피의 표식이 있었다.
윈스가 자신의 소환수임을 눈치챈 앙피가 얼른 그를 불러내 올라탔다.
“휴... 토하는 앙피가 될 뻔했어...”
앙피가 토하는 바위랑 똑같은 포즈를 하고 숨을 돌렸다.
윈스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 앙피를 무사히 땅으로 내려주었다.
“이게 뭔가. 내 몸이 왜 멋대로 움직이는가.”
“아...! 기억났다...”
앙피는 그를 언제 소환했었는지 기억났다.
이유는 자세하게 기억 안 나는데, 아마 무언가를 잡으려고 적당한 포식자를 소환했었다.
그런데 소환된 조그만 뱀 같은 녀석이 소환되자마자 커다란 새한테 잡혀가 버렸다.
그때 소환했던 포식자가 바로 이 윈스였다. 포식자의 정점을 소환해버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새끼 때의 모습으로 소환되어 새한테 먹혔던 것이었다.
그렇게 새한테 납치되어 한참을 날아가다가 드래곤의 우월한 능력으로 새의 위장을 찢고 탈출했다.
그러나 하필 떨어진 곳이 바로 이 [미궁의 탑]이라는 검은 점이었다.
윈스는 그 이후로 이 미궁의 탑에서 살며 이곳에 오기 전까지의 기억은 흐릿하게 잊어버렸던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윈스는 호탕하게 웃었다.
“이 역린의 표식인 줄만 알았던 것이 자네의 표식이었다고? 게다가 이 내가 하찮은 인간의 소환수였다니.”
‘... 가끔 공유되던 소환수가 얘였구나.. 하루종일 하늘에서 떨어지던데... 애초에 날아다니던 애였어...’
“ㅇ... 아녕...”
앙피는 윈스를 지저 왕과 똑같이 생각했는지 굳이 존댓말을 하지는 않았다. 정말 커다란 짐승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야 임마! 너 소환수 몇 기야. 너 때문에 날아갈 뻔했잖아!”
카힐이 대지에 내려와 앉은 윈스의 뒤꿈치를 쾅쾅 찼다. 뭐, 저렇게 기수를 따지자면 카힐이 제일 먼저 소환된 소환수니까 1기였긴 했다.
한편 나영웅은 윈스를 덜덜 떨며 만져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 황홀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실제로 드래곤을 만났다는 사실에 감동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윈드스톰? 여긴 어디냐. 검은 점인 건 맞는 거지?”
지금 보니 앙피가 이름을 지어주기도 전에 납치되었던 탓에 이름도 스스로 지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름이 저 모양 저 꼴이지.
“이곳은 미궁의 탑이라네.”
“음. 이번엔 그런 컨셉의 점이구나.”
“그리고 여긴 꼭대기인 100층이라네.”
“후후후. 그렇다면 우린 이미 클리어를 했다는 소리군!”
이쪽 장르에도 빠삭한 나영웅이 이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했다.
미궁의 탑.
각 층마다 보스가 있고 보스를 잡으면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구조일 터이다. 그렇다는 건 꼭대기 층의 보스는 윈스라는 소리였다. 윈스 그가 이 미궁의 탑의 최종 보스였다.
“그렇다네. 내가 인정한 자는 이 미궁의 탑에서 나갈 수 있다네.”
본래 검은 점은 검은 구슬을 깨야만 검은 점을 소멸하며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미궁의 탑은 하도 몸집을 불린 탓에 굳이 검은 구슬을 깨지 않아도 나가는 법이 생겼다.
그것이 바로 100층을 클리어하는 것.
원래 5층으로 시작되었던 검은 점이라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힘을 키운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윈스가 허공을 발톱으로 쿡쿡 찍었다. 무슨 행위인지 몰라도 앙피 일행을 클리어 처리하려는 것 같았다.
이대로 나가면 바로 엄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름길이 된 것 같으니 길을 잘못 든 앙피에게 감사해야겠다.
그렇게 엄지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고 있는데 윈스가 뭔가 이상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이보게, 필멸자여. 혹시 튜토리얼을 진행하지 않은 겐가?”
“ㄱ.. 그게 뭔데요...?”
“....? 이곳까지는 어떻게 올라온 것이냐?”
“그냥 눈 떠보니 여기였어.”
“쿠어어!”
“그... 스킬이나 레벨. 그런 것도 없느냐...?”
“후후후. 그렇군. 이 검은 점은 그런 세상이란 소리인가?”
이미 모든 걸 눈치챈 나영웅과 달리 나머지 셋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덕분에 윈스는 평생 해볼 일 없던 ‘미궁의 탑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곳은 주기적으로 인간들이 소환되는 곳이다. 그들은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튜토리얼을 통해 각성을 하게 된다.
그렇게 스킬과 레벨을 올리며 100층의 윈스에게 인정을 받으면 무사히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앙피가 윈스의 주인이었기에 1층이 아닌 100층으로 바로 들어온 것이었다. 덕분에 각성을 하지 않아 도전자로 등록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럼 어떡하냐? 설마 우리 거꾸로 내려가야돼?”
100층부터 1층까지 거꾸로 탐방?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하지만 다행히 윈스가 추방 능력으로 1층으로 보내준다고 했다.
“그럼. 튜토리얼을 끝내고 말을 걸도록 하게나. 앙피, 자네가 내 주인이니 아마 말을 걸 방법이 분명 있을 걸세.”
“ㅇ... 알았어..”
“그럼 이만.”
윈스가 스킬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를 시전했다.
설령 윈스보다 강한 상대라 할지라도 그가 판단할 때 탑에서 나가기 적합하지 않은 자를 강제적으로 1층으로 되돌려보내는 스킬이었다.
그렇게 앙피 일행을 1층으로 보낸 윈스는 홀로 남아 씁쓸한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이 디버프가 왜 사라지지 않는가 했더니. 이 내가 인간의 종복이었다는 것인가...”
윈스가 멍하니 자신의 정보 창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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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스톰> - 100층 보스
종족 : 드래곤
레벨 : Lv. 99(max)
특성 : 힘(Lv. 200), 속도(Lv.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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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버프>
- 시야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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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공유. 원래라면 시야 공유를 받는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하지만 미궁의 탑에서는 시스템이라는 특성 때문에 그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지속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이유도 앙피가 살아있는 한 무한지속이기 때문일 것이다.
윈스는 종족적 특징 때문인가, 자신이 소환수라는 사실이 영 탐탁지 않았다.
주인인 ‘앙피’에게 불만이 생기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소환수의 입장이라는 게 싫었던 것이었다. 100층에서 여러 사람을 판단하며 신처럼 살아왔는데, 실상은 고작 인간의 소환수.
앙피가 소환술을 지우려 한다는 사실을 말했다면, 그의 마음이 조금은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
1층으로 추방당한 앙피 일행은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루트로 돌아왔다. 평범하게 탑에 소환된 사람들의 루트 말이다.
앙피 일행은 각자 아무것도 없는 미지의 공간에서 진작 받아야 했을 안내 메시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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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미궁의 탑]에 선택되셨습니다.
당신은 이제 탑을 오르는 도전자로서 꼭대기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꼭대기 층을 무사히 등반한다면, 당신은 이 탑에서 나갈 기회를 얻습니다.
이 탑에서 당신은 어떤 직업이든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신의 성향과 노력에 따라 스킬을 습득해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마세요.
<이 탑을 오르는 것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당신만의 방법을 찾아내어 이 탑의 꼭대기를 정복하세요.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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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효! 이걸 내 눈으로 직접 보다니!”
나영웅이 신나게 시스템 창을 읽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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