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튜토리얼이 왜 친절하다고 생각하지?
103명.
조금 애매한 숫자였다.
개중에는 나영웅과 같은 차원에서 온 이들이 여럿 보였다. 아직 운명을 모르는 그들은 무슨 ‘특별한 일’에 당첨된 것처럼 상기된 표정이었다.
튜토리얼이라 하면 게임의 시작. 도전자 대다수는 희망차고 친절한 분위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막상 들어온 1층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바닥은 건조하면서 딱딱한 돌바닥. 보이는 거라고는 일렁이는 수많은 횃불과 커다란 문 하나가 전부였다.
횃불은 중앙의 분수를 기점으로 따닥따닥 붙어있었다. 물도 흐르지 않는 분수에선 헛한 공기만 흘러나와 주변의 횃불을 위태롭게 건드렸다.
마치 지하 감옥을 떠올리게 하는 1층은 어쩌면 미궁의 탑을 들어서는 이들의 마음가짐을 다잡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다.
도전자들은 자신만 탑에 불러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조금 긴장한 모습이었다.
성격 좋게 다른 도전자에게 말을 붙이는 녀석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서로를 경계하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넷이나 먼저 뭉쳐있는 앙피 일행은 단연 눈에 띄었다.
“다음 튜토리얼은 뭡니까?”
“ㄴ... 느에..?”
몇몇이 NPC인 줄 알고 말을 걸어올 정도였다. 뭐, 조합이 조합이니만큼 그럴 수 있었다.
그리고 앙피 일행을 따라서 뭉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런 곳에서는 당연히 파티니, 길드니 하며 뭉쳐야 강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야망을 품고 솔로 플레이어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말로는 뻔했다.
탑의 시스템은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 한참을 이들을 방치해두었다가 창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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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도전자 여러분의 특성 개화를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은 이제 탑을 오를 준비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탑에는 여러분을 위협하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위험을 조금이나마 극복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약 5분 후 [첫 번째 퀘스트]를 부여하겠습니다.
그럼 도전자분들은 각자 위치에서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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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기계로 출력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마 ‘귀신의 집’에 있던 김인간처럼 이 검은 점도 누군가 통치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미리 준비된 메시지와 이벤트로만 탑을 유지하기에는 인간의 의외성은 너무나 컸으니까.
한편, 시스템 메시지를 본 도전자들은 아까보다 더 활발히 서로 뭉치기 시작했다.
103명이라는 큰 숫자인 만큼 다들 하나둘은 뭉치는 모양새였다.
“후후후. 이 몸은 솔로 플레이어를 하겠네.”
“그게 뭔데요...?”
“이 몸 혼자 레벨업하는 것이지.”
“그게 되겠냐? 넷이 뭉쳐도 처맞았던 일이 얼마나 많은데, 니 혼자 뭘 하겠다고. 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여기만 깨면 되니까 옆에 있어.”
나영웅은 괜히 뭐 좀 따라 해보려다 카힐에게 잔뜩 혼났다.
그런 모습이 다른 도전자들에게는 여유로 보였다. 당장 미지의 곳으로 끌려왔는데 저렇게 한가하게 떠들고 있다니.
하지만 당장 100층의 끝판 보스가 앙피의 소환수인데, 고작 1층이 뭐가 무섭겠는가.
그런 여유로운 모습에 도전자 몇몇이 다가왔다.
“어이, 너네. 우리랑 팀 하지 않을래? 우리 쪽엔 무려 마법 스킬을 깨달은 사람도 있다고. 다들 기본 스킬만 있으니까 우리랑 다니면 이득일걸?”
근육과 살집이 고루 섞인 남성 하나가 팀을 제의했다. 그의 옆에는 얇은 막대기를 든 여자 하나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아 됐어. 관심 없어.”
카힐은 나름 친절하게 거절했다. 당장 욕부터 나오지 않은 것만으로 충분히 친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카힐이 남성은 아니꼬운 것인지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계속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뭐 특별한 스킬이라도 얻어서 기고만장한 것 같은데. 첫 퀘스트가 뭔지도 모르면 일단 뭉치는 게 낫지 않으려나.”
남성은 그렇게 말하며 옆의 여성을 팔꿈치로 툭툭 쳤다. 그러자 여성은 막대기를 공중에 휘휘 휘두르며 시선을 끌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등을 살짝 꼬집더니 막대기로 손등을 가리켰다.
“치유!”
그러자 붉게 올라왔던 손등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 뭐 어쩌라는 거지....’
앙피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 좋은 생각이 났는지 비비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자, 봤지? 초반에 이런 힐러 구하기 쉽지 않을걸. 아, 근데 미안하지만 지금은 팀 해달라 해도 해줄 생각 없단다.”
남성이 여성에게 팔을 걸치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남성은 아마 거절을 당한 게 부끄러워서 이러는 모양이었다. 그의 말대로 미궁의 탑 초반에 힐링 스킬이 귀한 것은 사실이었다. 대다수 초반에는 자신이 강해지는 쪽을 추구하기에 남을 돕는 서포트형 쪽은 잘 발현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를 골라도 한참을 잘못 골랐다. 힐링 스킬? 여기 그게 우스운 인원이 절반인데.
비비가 씨익 웃고는 남성 앞에 섰다.
“뭐. 잔뜩 여유 부리고 있길래 말해봤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완전 떨거지들 모임이잖아? 애기야, 오빠한테 할 말 있니?”
남성이 무릎을 굽히고는 귀엽다는 듯이 비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비비도 자신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똑-
머리를 떼 버렸다.
“으아아악! 뭐야!!”
“크케켘.”
남성이 호들갑스럽게 놀라며 도망가자 비비는 즐겁다는 듯이 그를 비웃었다.
그럼 그렇지. 머리가 분리되어도 안 죽는 비비랑 다니는 애들 앞에서 긁힌 상처를 치료해봤자 조금도 신기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몇 명 더 팀을 제의하러 왔지만, 전부 거절당했다.
게다가 아직 초반이라 그런가, 레벨로만 따지면 앙피보다 낮은 도전자가 수두룩했다.
그렇게 또 변변찮은 놈들이 다가올 즈음 약속한 5분이 지나며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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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2 - 의지 증명>
[살아남을 의지]
제한 시간 동안 몰려오는 몬스터에게서 횃불을 지켜내어라. 단, 제한 시간이 남았을 시 살아있는 몬스터가 존재하면 안 된다.
난이도 : 최하
제한 시간 : 15분
상세조건
- 제한 시간 종료 시 남은 몬스터 숫자만큼 횃불 제거
- 몬스터 수 : 100마리
- 몬스터를 1마리 이상 잡았다면, 탈락 후보에서 제외
보상 : 생존
실패 시 : 탈락 후보 중 꺼진 횃불 수만큼 삭제(단, 탈락 후보가 부족할 시 남은 숫자는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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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창이 뜸과 동시에 한쪽 벽에 자리 잡고 있던 문 쪽에서 쾅 하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분명 문이 열리는 소리였는데 어째서 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곧장 다시 쾅 하는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 꾸물거리는 몬스터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ㅈ... 잠시만요... 아직 다 안 읽어서..”
앙피는 태평하게 퀘스트 창을 읽어내려갔다. 평소에 책도 잘 안 읽었는데 무슨 화려한 홀로그램에 쓰인 글씨를 보려니 영 읽히지 않았다.
“야야. 읽지 마. 그냥 쟤네 다 잡으래 15분 동안.”
카힐이 알아서 요약해주었다. 그리고는 몬스터를 때려잡으러 달려 나갔다.
다들 횃불 옆에 뭉쳐서 수비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카힐만 혼자 뛰어나갔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앙피는 마음이 놓였다.
“...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겠는데요...”
“후후후. 하지만 이 퀘스트의 요점은 그게 아니라네.”
“...?”
앙피는 무언가 놓쳤나 싶어 다시 퀘스트 창을 켰다. 근데 막상 켜니 눈이 부시고 읽기도 귀찮아서 그냥 나영웅에게 되물었다.
“... 뭔데요 그럼...?”
“저 몬스터를 확인해보게.”
나영웅이 손가락으로 사각형을 만들고 저 멀리 떨어진 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를 바라봤다. 그는 앙피가 보기 쉽게 시스템 창을 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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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식된 슬라임> - 튜토리얼용 몬스터
종족 : 슬라임
레벨 : Lv. 1
특성 : 힘(Lv. 1), 속도(Lv. 20), 내구성(Lv. 1)···.
<버프>
-
<디버프>
- 부식(Lv. max)
- 회복 차단(Lv. max)
- 공격성 제거(Lv. 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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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후. 어떤가. 좀 알겠는가?”
“음.... 많이 약하네요..”
앙피는 무슨 몬스터가 이렇게 약하나 싶었다. 레벨도 1에 속도 빼고는 능력치도 낮고 디버프도 잔뜩 있다.
이런 녀석이라면 앙피도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튜토리얼의 핵심이었다.
앙피는 나영웅의 말을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ㄱ.. 그럼 빨리..!”
“그렇다네. 어서 가지!”
앙피 일행은 그대로 몬스터가 쏟아지는 문을 향해 뛰어갔다.
나머지 도전자들은 전부 횃불을 지키느라 움직이지 않았다. 앙피 일행이 갑작스럽게 뛰어간다 해도 위기감을 느끼긴커녕 뭣 모르는 불나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뭣 모르는 건 그들이었다.
[살아남을 의지 증명]
대체 무엇으로부터?
도전자들은 횃불 지키기라는 말에 당연히 몬스터를 경계했다. 하지만 그들이 경계해야 할 건 그쪽이 아니었다.
“이얏..!”
앙피가 달려 나오는 <부식된 슬라임> 하나를 발로 밟았다.
그러자 슬라임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대로 부서져 사라졌다. 이건 몬스터를 잡았다고 하기에도 미안한 수준이었다.
이런 몬스터가 떼로 달려든다 해도 무서울 게 없었다. 이런 몬스터 따위가 횃불을 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 이 튜토리얼의 포인트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 튜토리얼 퀘스트의 실패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탈락 후보 중 꺼진 횃불 수만큼 삭제]
말이 삭제지 분명 검은 탑에 흡수시킨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탈락 후보에 대한 힌트는 상세조건에 쓰여 있었다.
[상세조건 2 - 몬스터의 수는 100마리다]
[상세조건 3 - 몬스터를 1마리 이상 잡았다면, 탈락 후보에서 제외]
한마디로 횃불이 단 하나라도 남아 있다는 가정하에.
몬스터를 하나라도 잡는다면 절대 죽을 일이 없다는 소리였다.
왜 몬스터의 수가 도전자의 수와 맞지 않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부분은 넘어가보면 이 퀘스트의 목표가 보였다.
‘확실한 생존’을 원한다면 몬스터를 잡아라. 몬스터를 잡지 않은 이는 탈락 후보로 들어가 죽음의 룰렛에 참가하게 될 테니까.
“ㄱ.. 근데 그냥 100마리를 다 잡으면 되잖아요... 어차피 다 약한데...”
“혹시 횃불의 수를 세 보았는가?”
“ㅇ... 아뇨...?”
나영웅이 비장한 얼굴로 지나가는 슬라임 하나를 잡았다.
인원수도 약 100여 명. 퀘스트에서 명시한 몬스터도 100마리.
그렇기에 당연히 횃불도 100개라 생각했다. 하지만.
“횃불. 단 50개 밖에 없었네. 나머지는 저기.”
나영웅이 가리킨 곳은 문의 안이었다.
문 너머에는 이쪽과 똑같은 방이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 똑같은 문이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그 방 안에는 뒤의 분수와 똑같은 분수가 있었고 그 주변엔 이미 꺼져버린 횃불 50개가 있었다.
처음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2번’ 났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 누구도 먼저 문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1차 방어선이었던 방이 바로 함락되며 횃불의 절반이 날아간 것이다.
도전자들이 지키는 나머지 50개의 횃불이 있는 이곳이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 그럼... 지금 몬스터를 안 잡으면....’
앙피는 깨달아버렸다.
이제는 ‘몬스터’에게 살아남는 것이 아닌 ‘다른 도전자’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이미 죽음의 룰렛의 절반이 ‘죽음’으로 채워졌다.
이 룰렛에 참가하고 싶지 않다면 1마리의 몬스터라도 죽여야 한다.
그리고 그사이 카힐에 의해서 남은 몬스터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제 남은 몬스터는 78마리.
<현재 몬스터 처치 정보>
카힐 - 18마리
앙피 - 1마리
나영웅 - 1마리
비비 - 2마리
나머지 도전자 99명 - 0마리
- 작가의말
선호작과 댓글, 추천 감사합니다.
+)
연참대전이 끝났네요.
같이 즐겨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잘 마무리했습니다.
주절주절 연참대전 후기 쓰고 싶지만 TMI같으니 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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