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무직을 건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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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바니
작품등록일 :
2023.10.1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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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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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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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헤어진 마음(2)

DUMMY

청장은 임시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가 뭐 해드린 것이 있다고···.”

“저에게 주신 정보 덕분에 제가 많은 업적을 이루게 되었죠.”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죠.”


임시현은 앞에 놓인 홍차를 한잔 마셨다. 임시현과 청장은 미국에서부터 인연을 이어갔었다. 미국 경찰과 공조를 통해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통되는 마약사범들을 검거하는 업무에 청장은 큰 공을 세운 바가 있었다. 특히 현장에서 미국 경찰이 아닌 한국 경찰이 성과를 걷을 수 있었기에 현지 언론에서도 크게 이슈가 됐었고 한국 경찰의 유능함과 미국 경찰의 무능함을 비교하면서 비난하는 프로그램까지 운영될 정도였다. 그런 청장의 조력자가 임시현이었던 것이었다.


청장은 눈을 힐끔거리면서 임시현의 복장을 살피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평상복이지만 신발과 청바지 끝에 묻은 흙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저를 왜 그렇게 쳐다보시나요?”

“하하하,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눈치 하나에 목숨이 오가는 현장에 있다 보니···.”


임시현의 말에 청장이 머쓱해 했다. 그리고 부드럽게 임시현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어제 부산항에 있으셨습니까?”

“네, 있었습니다.”

“그럼 남미 밀입항과 연관되어 있습니까?”


임시현이 마시던 홍차를 내려놓았다.


“그들에게서 뽑아낼 정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빠른 시일 내로 외국으로 퇴출시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남미의 어느 한 정부에서 그들을 인계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민을 요청한 것으로 하여 우리나라 국외로만 추방해 주세요.”


임시현의 말에 청장은 굳은 표정으로 말하였다.


“말은 쉽습니다만, 정부와 정부, 그리고 그 나라 경찰들과도 관계가 있는지라···.”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 부산항으로 들어온 남미 사람들은 그 정부로 돌아가면 모두 죽습니다.”

“······.”


청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임시현의 말에 청장은 고민에 빠졌다. 임시현이 하는 말이기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경찰청장이 되기까지 임시현의 도움을 받은 것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경찰로서 경험하면서 임시현이 몸담았던 세계는 고위급 경찰이라 할지라도 상상할 수 없는 환경일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방법을 고민해 보지요. 하지만 그들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이렇게 신경 써 주시는 겁니까?”

“개인의 욕심 때문에 이유도 모르고 죽는 사람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들도 가족이 있을 것이니까요.”


임시현의 얘기에 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통념상 사람의 안전을 추구하는 이론적인 얘기가 아니라 절실하게 사람의 목숨을 걱정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청장은 임시현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과거의 일에 대한 속죄입니까?”

“그렇다고 보시죠.”


청장의 질문에 임시현은 간단히 답변하였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청장님께 또 하나의 부탁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제 선에서 가능한 것은 무엇이든 도와드리겠습니다. 제 선에서 말이죠.”


청장이 자기 손을 들어 가로 방향으로 선을 그어 보였다. 어렵지 않은 부탁이어야 들어주겠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고 나서 임시현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남미 사람들 말고 그들과 대치했었던 한국인 한 명과 외국인 두 명이 있었을 것입니다.”

“네, 처음에는 모두 외국인인 것으로 보고 받았다가 한 명이 한국인 신분이더군요. 그런데···.”

“그런데라니요?”


청장이 머뭇거리다가 얘기를 꺼내었다.


“한국인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과거 밀입국을 했었더군요. 물론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고 이민 신청을 하였기에 당시에는 이민자를 받아주는 분위기여서 허가가 되었지만 그래도 언제 문제를 일으킬지 몰라 예의 주시하고 있던 자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런 자가 이번 일과 연관되어 있으니 많은 생각이 드시겠군요.”


청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얘기를 하였다.


“네, 사실 그대로 말씀드리자면 남미 사람들을 밀입국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고 내부에서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요?”

“그런데 한국 내에서의 행적을 아무리 조사해도 평범한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임시현은 그랜트가 한국인이 되었지만, 한국 경찰에서는 주시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그랜트가 큰 사고 없이 건실하게 생활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자칫 큰 오해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평범한 한국 사람이기에 제가 드리는 부탁이 가능할 것입니다.”

“무슨 부탁인지 모르겠지만 제 선에서 가능한 것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마다요.”


임시현은 걱정하고 있는 청장에게 미소를 보였다.


***


그랜트와 로빈, 이반이 회의실 같은 곳에 앉아 있었다. 로빈은 주변을 보면서 얘기했다.


“뭐지? 취조실은 아니고, 딱 봐도 회의실인데···.”


회의실이라고 하더라도 일반 회의실로 보이지 않았다. 태극기와 경찰청기까지는 이해가 되더라도 여러 카메라가 삼발이에 고정된 것이 보였다.


‘마치 기자회견장 분위가 같네.’


분위기가 이상할 뿐 누구 하나 나타나는 사람은 없었다.


로빈은 주변을 바라보는 척하면서 결국 이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반은 인상을 찌푸리는 것도 없이 경찰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순진한 양이 되어 있었다. 자신이 과거에 봐왔던 R8의 모습이 아니었다.


“헤이, 이반, 너 이번만큼은 조금 이상해.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었던 거야?”


로빈이 조용히 있는 이반에게 질문을 하였다. 사실 이반이 임무 때문에 부산으로 간 것을 알았지만, 로빈이 임시현에게 정보를 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반이 직접 부산역으로 임시현을 맞이할 줄은 몰랐다. 아무리 임시현이 여자라고 하더라도 이 세계에서 R3였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R8인 이반이어도 적이 될 수 있는 임시현을 마주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었다.


“말 좀 해라···.”


로빈은 이반이 입을 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중얼거렸다. 하지만 의외로 이반이 입을 열었다.


“사실···. 임시현 보고 날 죽여달라고 하려 했다.”


이반의 짧은 말에 로빈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굳었다기보다는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미친놈아. 시현은 은퇴했잖아. 그런데 죽여달라고 했다고?”


이반은 다시 생각에 잠기더니 얘기를 꺼내었다.


“과거의 임시현을 생각했을 때의 기준인 거였다. 날 죽은 것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려 했었다.”


이반의 말에 로빈이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죽은 것으로 해서 신분을 지우고 자신의 피앙세 근처에 있으려 했다?”


로빈의 말에 이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빈은 이반을 보면서 한숨은 쉬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많은 여성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기는 했지만, 인생을 바꿀 정도로 고민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반과 로빈의 대화를 듣고서 발끈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그랜트 쪽이었다.


“죽으려 했다고? 아니 죽은 신분을 만들려 했다고?”


덩치가 큰 외눈박이 그랜트가 화난 모습을 하면서 다가오니 여러 전투에 경험이 있었던 로빈과 이반도 움찔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먼저 가져본 사람으로서 경고하지. 나도 내 아내와 애를 위해서 죽은 사람으로 신분을 만들어 숨으려고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그랜트의 얘기에 로빈과 이반이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이반, 넌 아직 네 애의 눈, 그리고 오물거리는 애의 입을 본 적이 없지?”


그랜트의 말에 이반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로빈도 자신에게 하는 말은 아니지만, 본인도 무의식적으로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네가 죽은 사람으로 등록되어 있으면 일은 어떻게 할 건데?”

“그건···.”

“뭐, 막노동이라도 할 건가? 아니면 과거에 했던 것도 있으니 해결사 노릇을 하면서 사람을 죽이고 돈을 벌 것인가?”


그랜트의 말에 이반은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애를 당당히 키울 권리를 얻어야지, 지금은 피하기만 하는 궁리만 생각하고 있잖아. 죽은 사람으로 살겠다고? 그렇다면 애 아빠는 눈앞에 있지만 죽은 사람인 거야? 애를 위해 먹이를 물어다 줄 수도 없는 바보인 거야? 그리고 애의 성씨는 어떻게 할 것이며, 학교에라도 다니게 되면 아빠가 없는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애 입장은 생각해 봤고?”


그랜트가 머리에 핏줄을 새우면서 열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얘기에 이반은 굳어 있었다. 덩달아 이반의 눈치를 보면서 로빈도 굳어 있었다. 로빈과 이반이 전투력은 높다고 하더라도 애를 낳고 키우는 연륜에는 그랜트와 비교하자면 본인들은 초보자와도 같은 존재였다. 이러한 분위기가 되니 로빈은 임시현을 더 빨고 보고 싶어졌다.


‘시현은 아마 저 덩치 큰 곰을 잘 다룰 것 같은데···.’


하지만 그랜트의 말에 이반의 표정이 더 밝아졌다. 뭐가 해답을 찾은 듯한 표정이었다. 물론 로빈은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오히려 지금은 아저씨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남미 사람들 때문에 아저씨도 이상한 쪽으로 엮일 수 있는 상황이라고요.”


로빈이 비아냥거리려고 한 얘기였지만 그 말에 충격을 받고 그랜트가 눈물을 보였다. 로빈은 그러한 그랜트의 모습을 보고 오히려 할 말이 막혀 버렸다.


로빈은 이러한 자리를 피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자신들을 이 기자회견장과도 같은 회의실에 앉혀놓은 경찰의 의도를 모르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있는 회의실에 한두 명씩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 목에 표찰을 걸고 있어서 경찰청의 내부인으로 생각하였지만 몇몇은 카메라를 들고 있어서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로빈이 기다림에 짜증이 한계에 다다를 무렵 심문실에서 보았던 심문관을 포함하여 경찰 고위급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리고 그랜트를 단상으로 불러내었다. 그랜트는 영문도 모른 채 단상으로 불려 나갔다.


“여러분, 이번 부산항 불법 이민자 사건을 바로 앞에 서 있는 부산시민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청 홍보담당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기자들 앞에서 설명하고 있었다. 기자 중 한 명이 질문하였다.


“부산시민이라뇨? 눈앞에 계신 분도 남미에서 온 불법 이민자로 보이는데, 아닌가요?”


“아닙니다. 이분은 한국에 정착한 지 오래되었으며, 한국에서 자녀까지 생산한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 이분께 우리 부산경찰청에서 용감한 시민상을 수여하고자 합니다.”


이 말에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경찰청 청장이 그랜트의 앞으로 나왔고 이미 ‘용감한 시민상’이라는 패널이 두 사람 사이에 들이밀어졌다. 경찰청 청장은 자연스럽게 패널을 들고 웃었고 그랜트는 상황 파악이 안 되었지만, 분위기에 맞춰서 사진에 참여했다.


“자자, 우리 용감한 부산시민의 친구분이신 두 분도 함께하시죠.”


경찰청 홍보담당자의 얘기에 기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로빈과 이반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로빈이 앞으로 나가면서 혼자 고민하였다.


‘여기서 언론에 나와 이반의 얼굴 사진이 나가도 되는 건가?’


44화 끝.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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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화. 다가오는 위협(2) 23.11.30 25 2 12쪽
35 35화. 다가오는 위협(1) 23.11.22 3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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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 고백 23.11.18 3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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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화. 아프가니스탄 작전(3) 23.11.15 31 2 12쪽
27 27화. 아프가니스탄 작전(2) 23.11.14 29 2 13쪽
26 26화. 아프가니스탄 작전(1) 23.11.13 3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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