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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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최근연재일 :
20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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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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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귀산장(3)

DUMMY

먹지 마라.


흑의협의 충고에 위지현이 안광을 번뜩였다. 언제라도 뽑을 수 있게, 검병에 손을 가져가는 혈랑.


가능성은 두 가지, 어느 쪽도 달갑지는 않았다.


‘하독······인가?’


무림 행도 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독수(毒手)였다. 독은 날붙이보다 은밀하고 확실하게 인체를 망가뜨린다.


그 위험성 때문에 사천당문이나 오독문 등의 강성한 독문이 아닌 이상 하독은 대부분 무도한 행동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강호무림의 은원은 그 이상으로 넓고 깊게 얽혀있고 깊디깊은 원한은 이목조차 신경 쓰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불구대천의 원수와 맞닥뜨렸다손 치면 번화한 저자의 주루에서조차도 독을 흩뿌리는 것이 무림인이었다.


이런 외딴 산장에서는 더더욱 거리낄 게 없으리라.


‘하지만 용독에 뒤따르는 변색이나 특이한 향취 따위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절정고수로 자리매김한 지 몇 년.


온갖 기사(奇事)에 휘말린 경험과 날카로운 감각에 미루어 판단해 보건대 독 같지는 않았다.


위지현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어떠한 풍문. 두 번째 가능성, 그것은 하독보다 더욱 불쾌하기 짝이 없는 부류에 속했다.


‘들어본 적이 있다. 어느 깊은 산중의 객잔에서는, 사람 고기로 만두를 빚어 판다고······. 손님이 찾아오면 짐은 약탈하고 살은 모조리 발라낸다던가.’


이 고소한 냄새가 설마 사람의 육향이라는 말인가.


혈랑이 대로하여 전신의 진기를 일깨웠다.


‘이 금수만도 못한 놈들이······!’


혈랑이 막 출수하려는 찰나 안유가 입을 열었다.


“지금 먹었다간 후회하게 될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게 빠졌지 않습니까?”

“······뭐?”

“술 말입니다, 술.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만두에 술이 빠져서야 쓰겠습니까.”


하.


주인장이 탄식하듯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한숨은 이내 왁자지껄한 웃음이 되어 산장을 떠들썩하게 울렸다.


“하핫! 하하하하! 그렇지!”


함께 숨죽이고 있던 손님들도 호탕하게 웃으며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하하하! 내 얼마나 걱정했는지, 허 참! 하마터면 괜한 소리를 거들 뻔했구만!”

“흐흐, 나도 마찬가질세. 술이 빠지면 섭섭하지! 암, 그렇고말고!”

“어린 나이에 풍류를 이리도 빨리 깨쳤으니 과연 재목이라 할 만하오.”


주인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은 호선을 그린 채 안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핫! 어떤 술을 드릴깝쇼?”

“주인장께서 권하시는 술이 가장 잘 어울리겠지요.”

“탁월한 안목이십니다. 하면 냉일주(冷日酒)를 꺼내오겠습니다.”

“냉일주? 처음 듣는 이름이군요.”

“만두와 마찬가지로 저만의 비전(祕傳)으로 빚어낸 술이랍니다. 제 이름이 냉일이니 제가 만든 술은 자연히 냉일주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안유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치에 들어맞는군요! 그럼 만두는 냉일만두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하하, 영민하십니다그려.”

“그럼 냉일만두에 어울리는 냉일주로 주십시오. 아 참, 잔은 저희 형님 것만 주십시오.”


냉일이 술병과 잔을 내오며 위지현에게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다.


“형제께서 함께 여행을 다니시나 봅니다. 동생분이 이렇듯 영준하니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

“과찬이십니다. 허어, 이런 만두는 처음 먹어봅니다. 묘하기 짝이 없는 맛입니다. 이거 혹시······ 인육 만두 아닙니까?”


일순 산장에, 또다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위지현은 이번에는 정말로 출수하리라 결심했지만 시도는 다시금 무위로 돌아갔다.


하하하하하하!


냉일과 손님들이 이젠 배를 부여잡고 뒤로 넘어갔다.


“하하, 백 년 전의 대기근 때도 아니고 어찌 사람을 잡아먹겠소?”

“우리가, 하핫, 마인으로 보이는 거요? 흐흐흐!”

“확실히 사람 잡아먹는 만두긴 하오, 하하하! 너무 맛있어서 계속 집어 먹다 보면, 내가 만두를 먹는 건지 만두가 나를 먹는 건지 헷갈릴 정도니까!”

“······.”


위지현은 검병에서 손을 떼어낸 뒤 그대로 술잔을 쥐었다.


그러자 안유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냉일주를 잔에 따랐다.


쪼르르.


“형님. 시원할 때 드시지요.”


안유가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차게 식힌 냉일주의 향기는 만두 이상으로 비범했지만, 혈랑은 좀처럼 술맛이 나지 않았다.


“······.”

“형님, 만두가 정말 맛있군요. 입맛에는 좀 맞으십니까?”


위지현은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


산장 한편에는 작은 방 열댓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식사가 끝난 뒤, 냉일은 두 사람을 그중 가장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이 방입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객잔 방보다는 협소해도 이만하면 두 사람이 눈을 붙이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탁.


냉일이 방문을 닫고 나가기 무섭게 위지현이 안유를 쏘아붙였다.


“형님은 무슨 놈의 형님······.”


안유는 대답하는 대신 손가락으로 자신의 귓가를 두어 번 두드렸다. 위지현은 무언가를 눈치채고는 안유에게 곧장 전음을 보냈다.


-······기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데? 무슨 일이냐.

-만약을 위해서입니다. 수상한 구석이 있어서 말입니다.

-수상하다니? 물론 이 산장의 존재 자체가 의아하긴 해도······ 만두와 술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확실히 그런 것 같더군요. 잘 드시는 모습, 보기 좋았습니다.

-······.


안유는 행장을 내려놓고 방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 구석의 이르러 위지현을 불렀다.


-혈랑. 이쪽입니다.

-뭔가 있나?

-없습니다. 전혀.


위지현을 솟구치는 노화를 억누르기 위해 상당한 심력을 소모했다.


-어쩌라는 거냐.

-이상합니다. 뭔가 있을 법도 한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차라리 인육 만두라도 만들고 있었다면, 그럭저럭 이해했을지도 모르지요.

-······인육 만두는 무슨, 실없는 소리를 하는군.


혈랑은 딴청을 피우면서도 안유의 태도에 주목했다. 추측이지만, 그는 어떤 위화감을 포착한 모양이었다.


그 위화감의 정체를 위지현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나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건만······ 이 산장에, 정말로 뭔가가 있는 건가?’


흑의협의 성정 상 당연히 그 뭔가를 노리고 찾아왔겠거니 싶으면서도 아직은 그 실마리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뒤이어 들려온 대답은 의문을 한층 더 가중했다.


-이미 확인하셨겠지만 여긴 평범한 산장입니다. 겉보기는 물론 내부 구조조차도 말이지요. 제 눈에도 그렇게만 보였습니다.

-······.

-하지만 그래선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 만큼은,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불귀산장.

누구도 돌아오지 못하는 산장.


노소년장(老少年莊)은 평범한 산장이 아니다.


회귀 전의 지식과 금생의 정보가 그리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었다.


‘기관이나, 암실, 혹은 비밀통로······ 지금까진 그런 흔적의 편린조차 보이지 않았어. 다른 방인가? 특정 방을 통해서만 진입할 수 있는 건가? 그도 아니라면······ 굴인가? 주변 어딘가에서 또 다른 어딘가로 이어지는, 그래. 마치 토굴······!’


토굴.


혹시나 위쪽이 아닐까 싶어 천장을 살펴보던 안유가 홀연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널빤지를 촘촘히 대어놓은 바닥.


안유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안유는 손으로 바닥의 먼지를 대충 훑은 다음 귀를 갖다 댔다. 그러고는 위지현에게 전음을 보냈다.


-보이지 않는다면 들을 수밖에요. 혈랑. 바닥을 한 번 두드려주시겠습니까? 아훼오장(牙毀五臟)의 초식으로 말입니다.

-듣는다? 아훼오장으로······?


위지현은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도 조심스레 검을 뽑아 들었다.


아훼오장(牙毀五臟)은 천랑검법의 36개 초식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초식이었다.


아훼오장은 그 이름처럼 뼈와 살이 아니라 내장을 취하는 수법이다. 그러나 직접, 베어내는 방식은 아니었다.


아훼오장은 이를테면 권법의 기예 중 내가중수(內家重手)의 묘와 비슷했다.


때리지 않고 때린다.

통하지 않고 통한다.


단전에서부터 시작된 진기는 정해진 경로를 거쳐 우완(右腕)으로 이어지고, 이윽고 검첨에서 쏘아진다.


진기는 겉을 훼손하지 않고 속만을 상하게 하니, 적중하는 순간 상대방은 내장이 짓이겨질 수밖에 없었다.


위지현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어느 지점에 생각이 이르렀다.


-지면을 타격해 듣는다. 그렇군, 지청술(地聽術)!

-정답입니다.


휘릭!


위지현은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의 이빨은 어느새 주둥이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새하얀 얘기, 창졸간의 출수. 그러나 요란하지는 않았다. 혈랑은 적막 속에서, 적막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천장에 아슬하게 닿을 무렵이 되어서 그의 신형이 급격히 방향을 선회했다.


탁!


천장을 딛고, 이번엔 역으로 떨어지는 혈랑. 그의 몸에서 사납고 거친 진기가 일어나 검극으로 모여들었다.


츠츠츠츠!


검날에 새파란 진기가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베기 위함이 아니라 쏘아내기 위한 검기상인의 발현.


스윽!


떨어지던 기세가 무색하게도 착지는 안정적이며 고요했다. 위지현은 나부끼는 솜털처럼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쿡.


그의 이빨은 바닥의 널빤지에 정확히 수직이 되는 방향으로 박혀 있었다.


검에, 검수의 무게가 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반 치(寸)만을 관통했을 따름. 선연한 검기도 언젠가부터 모습을 감췄다.


쿠구구구구!


그 여력(餘力)과.

그리고 완연히 쏘아진 진기가 널빤지를 넘어 아래로, 아래로 쇄도했다.


안유는 그에 맞춰 전신의 감각을 한껏 끌어올렸다.


‘듣는 거다. 끝까지······!’


쿠구구구!


진기는 땅속으로 틈입하는 빗물과도 같았다. 조금씩 더뎌지고 스러지면서도 계속해서 스며들었다.


진기의 흐름이 이어진다는 건, 마냥 비어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널빤지 아래로는 토사와 암반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 아직이야.’


안유는 귀가 짓눌리는 고통도 잊은 채 지청술에 몰두했다.


체외의 기준으로는 찰나, 체내의 기준으로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을 즈음.


진기의 격류가 이변을 일으켰다.


파스스스스!


‘······이건!’


안유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곧장 내려가던 진기가 흩어졌다.’


기세를 잃어 저절로 흩어진 것이 아니었다. 정반대였다.


진기는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니, 그 말인즉슨 이 아래로, 뻥 뚫린 공간이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찾았습니다. 역시 아래였군요.

-아래?


안유가 실실거리는 얼굴로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살짝 몸을 옆으로 틀어, 이번에는 반대쪽 귀를 바닥에 대고 있었다.


위지현은 무슨 말이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안유는 위지현을 흘겨보고는 다시 지청술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이제······ 기다려보죠. 때가 되면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굴을 파놓은 자들은, 기어코 굴로 파고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


쿠릉!

후두두두둑!


옅은 진동과 함께 위쪽에서 흙더미와 자갈이 흘러내렸다.


사내는 어둠 속에서, 어둠의 상단부를 응시했다.


‘······산사태인가.’


여기까지 닿을 정도라면 천재(天災).

그저 우연에 불과하겠거니, 막연히 짐작하는 선에서 그쳤다.


누군가가 그의 세계를 두드릴 일은 결코 없었다.


그 때문에 사내는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주러 올 것이라, 혹은 구해줄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믿은 탓에 배신당했고, 배신당한 탓에 이곳에 유폐되었다.


독고(獨孤)를 저버린 대가는 가혹하게도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노기가 일자 몸이 움직였다.

아주 미세하고도 부자유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절그럭.

절그럭.


몸을 조금 움찔거렸을 뿐인데도 육중한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두꺼운 사슬이 그의 사지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건 상반신의 일부를 비롯해 재갈이 채워진 머리통뿐.


자진(自盡)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예속은 족히 몇 년 동안이나 이어지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이 또한 추측이었다.


이렇듯 어둡고 깊숙한 곳에서는 시간을 좀처럼 가늠할 수 없었다.


몇 년은 진즉에 지났고, 설마 몇십 년이나 훌쩍 지나버린 게 아닐까.


절망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절망과 두려움은 불꽃으로 화해 사내의 마음을 무두질했다.


격렬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


‘반드시 빠져나갈 것이다. 언젠가는, 내 힘만으로 반드시······.’


사내는 마음을 다잡으며 도로 눈을 감았다. 구결을 외자 한줄기 진기가 단전에서 솟아올랐다.


잠은공(潛隱功).


재빠르면서도 은밀한 잠은공의 공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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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서각비사(1) +1 23.12.27 697 10 13쪽
22 일망타진(5) +1 23.12.26 691 12 16쪽
21 일망타진(4) 23.12.25 679 10 13쪽
20 일망타진(3) 23.12.22 709 13 13쪽
19 일망타진(2) 23.12.21 695 12 13쪽
18 일망타진(1) 23.12.20 712 13 13쪽
17 대호채의 기연(5) 23.12.19 727 19 14쪽
16 대호채의 기연(4) 23.12.18 684 14 13쪽
15 대호채의 기연(3) 23.12.15 694 15 13쪽
14 대호채의 기연(2) +1 23.12.14 754 14 13쪽
13 대호채의 기연(1) 23.12.13 776 14 12쪽
12 백학무관(5) 23.12.12 717 15 13쪽
11 백학무관(4) 23.12.11 732 10 13쪽
10 백학무관(3) 23.12.08 755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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