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을 잡았더니 세상이 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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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작품등록일 :
2023.12.0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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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5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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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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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 훈련소

DUMMY

성벽 도시 마를렌.

한때 변방 왕국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했다.

그래서인지, 마물의 침공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외부 침입에는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성벽도 제법 견고하고, 수성을 위한 화포와 마도 병기도 충분히 준비된 상태다.


‘병력이 좀 부족해 보이는 것만 빼면 말이지.’


성채 진지를 둘러보던 중, 연병장과 사격장이 있는 훈련소가 눈에 들어왔다.

기초적인 체력을 기르고 마물과 싸우는 법을 배우기 위한 장소.

성벽에 오르기 위해서는 누구나 저기를 거쳐야만 한다.


‘물론, 나는 예외이지만.’


7인의 영웅 중 한 명인 내게 다시 밑바닥부터 구르라고 하진 않았다.

다만, 군율이 지엄한 최전방 부대이다보니 나름의 절차는 있다.


“우선은 이곳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어 주십시오. 조만간 연락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길 안내를 해준 부관이 양해를 구해왔다.

그가 배정해준 숙소는 일반 병영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외부인을 수용하기 위해 마련된 시설 같은데, 잠시 신세를 지기에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흐음.”


부관이 급한 볼일을 보러 사라지자, 라일라와 함께 우선 배낭부터 풀었다.

여기서 당분간 지내야 하니 일상생활에 필요한 보급품은 지급받은 상태다.


“부족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 내가 요청해서 받아올 테니까.”

“가, 감사합니다.”


라일라는 서둘러 물건을 정리한 후 내 눈치를 봤다.

군용 이층침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확신이 안 드는 모양이다.


“아래층은 네가 쓰도록 해. 나는 괜찮으니까.”

“그래도 돼요?”

“나는 마법사야. 위에 올라가서 잔다고 한들 하나도 안 불편해.”


이층침대는 기초 골격이 철제로 되어 있어서 나름 튼튼했다.

안심도 시킬 겸, 라일라를 아래쪽 침대에 걸터앉게 했다.


“저, 저기요.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요.”


여유 시간이 생기자 라일라는 질문을 해왔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것이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게 뭔데?”

“시로네 님께서는 위대한 7인의 영웅 중 한 명이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감히 묻기 어려운 내용이었는지, 라일라는 잠시 망설였다.


“어째서 어린 모습이냐고?”

“네? 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준 적이 없었다.

의식을 되찾자마자 마물의 침공으로 난리가 벌어졌으니까.

어느 정도는 의문점을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입을 열었다.


“예상치 못하게 누군가의 저주를 받았어. 그래서 동료들하고도 헤어지게 되었지.”

“큰일이군요. 이러고 계셔도 괜찮은 건가요?”

“뭐, 당장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니까. 지금 상태로는 여기서 벌어지는 일도 수습하기 힘들어.”


흩어진 동료들과는 언젠간 만나게 되어 있다.

그때까지는 재성장의 기회를 가지며 나를 곤란하게 만든 세력의 배후를 추적할 생각이었다.

어째서 세계를 왜곡시켰는지,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지 알아내야만 한다.


“시로네 님께서는 어려운 시련을 이겨내고 계시군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라일라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고아원에서 지내던 시절에 7인의 영웅과 관련한 동화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선망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기에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영웅이 되고 싶니, 라일라?”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저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면.

라일라는 입모양만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분명히 그렇게 될 거야. 너에게는 재능이 있으니까.”

“저, 정말요?”

“대신에 열심히 노력해야 할 거야. 이 세상은 영웅이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가혹하니까.”

모두가 바라던 평화가 찾아오는 결말에서도 정작 영웅들은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좌절과 슬픔을 지켜봐 오며 나는 현실의 잔혹함을 깨달았다.

이 소녀도 그러한 진실에 다가가게 되는 날이 올까.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의 이면에 대해 말하기엔 그녀는 아직 어리다.


“여,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까 저를 계속 데리고 다녀 주세요!”


라일라가 간절한 표정으로 부탁해왔다.

내 고유 능력은 신성 마법하고는 거리도 먼데 말이다.

하지만 나와 함께 다니면 분명 그녀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힘의 원천에 기대냐는 차이가 있을 뿐, 각종 마법의 본질은 유사한 면이 있으니까.


‘원소 마법을 잘 다루는 에리나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항상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해댔던 하늘색 머리칼의 하프 엘프.

그녀와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순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한쪽 벽면의 나팔로부터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아아, 훈련 교관이 말한다. 오늘 소집된 신병들은 복장을 갖추고 지금 당장 연병장으로 집합하라. 다시 한번 말한다. 오늘 소집된···


입영자들의 신고식이 슬슬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얼마 후, 부관이 돌아와서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개중에 쓸만한 녀석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마법사로서의 소질을 지닌 자가 있는지 확인해달란 의미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라일라와 함께 문밖을 나섰다.


* * *


아무것도 없는 공터.

신병부대의 깃발만 덩그러니 꽂힌 불모지 위에 사람들이 서있었다.

연령대와 출신성분이 제각각이라, 언뜻 보면 마을 주민을 불러모은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들은 정식으로 입대수속을 마친 터여서 신분만큼은 모두 군인이었다.


“잘 들어라. 오늘 부로 너희들은 민간인이 아니다. 이제부턴 군부대의 엄격한 규율과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교단에 오른 훈련 교관이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대충 내용은 앞으로 고된 일정이 이어진다는 것.

마지막 날까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는 재입영을 하거나 무일푼으로 쫓겨난다는 것이었다.


‘인력 수급이 부족한 걸 고려하면 대부분은 통과시켜 줄 것 같은데.’


문제는 훈련소에서의 성적에 따라 향후 맡게 될 보직과 대우가 엇갈린다는 사실이다.

최상위권의 경우 예비 부관이 되기 위한 과정을 선택할 수도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부관은 징집된 일반병사에 비해 처우가 훨씬 낫다.


‘나도 일단은 훈련소 쪽을 담당하는 부관으로 선출된 것 같군.’


이들이 내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일선 장교에 대한 임명 권한은 왕과 귀족들이 지니고 있어서다.

물론, 그렇게 거추장한 직위는 줘도 마다하겠다만.

임기가 정해진 부관 정도는 이곳에서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려면 자처할 만하다.


“···이 정도 말했으면 일자무식도 대충은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혹시 질문 있나?”


기나긴 설명을 마친 훈련 교관이 신병들을 둘러봤다.

잠시 기다리자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저기, 병과는 언제쯤에 결정되나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녀였다.

적색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

어느 출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제법 앙칼진 구석이 있었다.


“식별번호 A1337. 다음부터는 말하기 전에 관등성명을 먼저 대라.”


훈련 교관은 소녀가 실수한 부분을 바로잡았다.

그러자 소녀는 지체하지 않고 다시 한번 입을 연다.


“훈련병 A1337! 다시 한번 질문 드리겠습니다! 소속 병과는 언제쯤···”

“질문은 이미 들었다. 귀찮게 반복해서 말하지 말도록.”


훈련 교관의 말에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자가 나왔다.

그것을 본 나는 표정을 굳혔다.


‘저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신병을 처음으로 소집하고 진행하는 정신교육 시간이었다.

그렇게 엄숙한 자리에서 교관의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아마도 군율의 지엄함을 내비치기 위한 본보기가 되겠지.

예상대로 훈련 교관은 이마에 핏줄을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방금 코웃음친 훈련병! 앞으로 나와!”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이후 쭈뼛거리며 한 사내가 걸어나왔고, 훈련 교관은 거침없이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커헉!”

“내가 지금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으로 보이나, 식별번호 F3891!”


군화발에 얻어 맞은 사내가 신음을 내며 주저앉았다.

무기력한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훈련 교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약한 모습 보이지 말고 일어서라. 디금 너 하나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고 있는 것 안 보이나?”


늦장 부리면 다시 한 번 걷어차겠다는 기세였다.

몹쓸 짓을 당할 수도 있는 위기 상황.

사내는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섰다.

입가에 침을 흘리는 것이, 어지간히도 아팠던 모양이다.


“교육 방해하지 말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라. 정확히 셋을 세겠다. 하나.”

“네, 넵!”


사내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는지, 창백한 안색으로 자신의 위치를 찾는다.

무언의 주위 도움으로 겨우 제시간에 되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교훈거리가 되었네.’

‘그러게 왜 분위기 파악 못하고 웃어?’

‘잘은 몰라도, 쟤는 앞으로 고문관 확정이다.’

‘같은 분대 안 되길 바라야지. 평가항목에 전우애 같은 것도 있는데.’


사내에게 쏟아지는 눈길은 하나 같이 차가웠다.

오늘 처음 보긴 했지만, 나도 녀석에게 좋은 점수는 주기 어렵다.


‘너무 덜렁대는 성격은 마법사에게 안 맞아.’


위급한 상황에서도 술식 영창을 실수하지 않으려면, 적색 머리칼의 소녀 정도는 되어야 했다.

물론, 그녀에게 소질이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만.


“불청객 때문에 조금 답변이 늦었군, 식별번호 A1337. 소속 병과는 일반적으로 훈련소를 수료한 이후에 결정된다. 하지만 너는 특별한 경우라서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구나.”


훈련 교관이 준비해온 서류를 눈으로 훑었다.

신병들의 인적사항이 기재되어 있는 내부문서로 보인다.

출신은 어디인지, 무엇을 하다 왔고 범죄기록은 있는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대부분의 내용이 적혀 있겠지.

관련된 내용을 줄줄 읊어댈 수 있었으나 훈련 교관은 최대한 말을 아꼈다.

아무래도 소녀의 정보는 조금 민감한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아직 입영 초기라 자세히 이야기는 안 하겠다만, 너라면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

“네, 충분한 답변이 되었습니다.”


소녀는 알겠다며 수긍하는 반응을 보였다.

미묘해진 분위기에 신병들의 눈초리가 잠시 그녀에게로 향했으나.


“질문은 더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그럼 본격적인 기초 훈련을 시작하도록 하지!”


곧 훈련 교관의 엄중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이어서 강행되는 무자비한 체력 단련에 신병들은 하나 같이 헥헥댔다.


“어느 병과에 소속되든 육체적 강인함은 미덕이다! 후위를 지키는 마법사라고 해도 전장을 뛰어다니기 위한 최소한의 지구력은 요구된다!”


쉴 새 없는 질책과 훈계로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나는 구석의 벤치에 앉아서 라일라와 함께 훈련 과정을 구경했다.


“저희, 이러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요?”

“괜찮아. 내게 주어진 역할은 관찰이니까.”


훈련 교관도 이쪽에는 일절 간섭을 해오지 않았다.

군기를 세우느라 바쁜지, 나중에 일과가 끝날 즈음에서야 다가와서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


“소개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시로네 님. 저는 신병들의 훈련을 맡고 있는 한네스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네스.”

“편하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아무튼,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실력이 매우 뛰어난 마법사라고 하시더군요.”


전장에서 마법사 한 명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직접 겪어봤는지 한네스의 태도는 극진했다.

이곳에서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몇 가지를 묻더니 공손히 고개를 숙인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훈련 교관으로서 오늘은 할 일이 많아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부디 쓸만한 인재를 최대한 발굴해주십시오.”


말을 마친 하인츠가 뒤돌아서 연병장으로 복귀했다.

체력 단련을 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신병들은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상태.

하인츠는 이들을 눈앞에 집합시킨 후 소리쳤다.


“오늘은 이 정도로 봐주겠다만, 내일부터는 강도가 조금씩 높아질 것이다! 잊지 마라! 강한 육체에 강한 정신!”


첫날 오후의 훈련 일과가 끝난 것이었다.

나는 일어나서 병영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자.”

“어, 어디로요?”

“밥 먹으러 가야지.”


군부대의 장점 중 하나는 먹고 자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단 것이다.

최전선을 맡은 성벽 수비대이기도 하니, 이런 쪽의 보급은 최우선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배를 채울 정도의 수준은 될까요?”


라일라가 밝아진 표정으로 졸졸 쫓아왔다.

그녀는 고아원에서 매일 오트밀로 끓인 묽은 죽만 먹었다고 한다.

빵 조각이라도 먹고 싶다는 말에 피식한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덧붙였다.


“기대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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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성벽 밖으로 24.01.05 16 1 11쪽
29 유리우스 제르가딘 24.01.04 21 1 12쪽
28 정예 인원을 뽑았다 24.01.03 20 1 12쪽
27 협상을 해보자 24.01.02 22 1 12쪽
26 알현실에 불려갔다 23.12.30 26 1 12쪽
25 부하를 팔아먹었다 23.12.29 22 1 12쪽
24 재각인 23.12.28 25 2 12쪽
23 할 일은 해야 한다 23.12.27 23 1 12쪽
22 귀찮은 일은 싫다 23.12.26 23 2 13쪽
21 리제 에스터리츠 23.12.25 25 2 12쪽
20 지하 고문실의 독대 23.12.23 28 2 12쪽
19 사라진 왕녀 23.12.22 26 2 12쪽
18 오래된 기억 23.12.21 36 3 12쪽
17 악인은 심판 받는다 23.12.20 34 3 12쪽
16 구원받지 못한 자 23.12.19 30 3 11쪽
15 악마숭배자 23.12.18 32 3 12쪽
14 밤은 깊어간다 23.12.16 30 3 11쪽
13 고대 마물 23.12.15 27 3 12쪽
12 비밀 통로 23.12.14 31 3 12쪽
11 도둑 길드 23.12.13 30 3 11쪽
10 초승달 밤의 도둑고양이 23.12.12 43 3 14쪽
9 진위 조사대 23.12.11 42 3 12쪽
8 유도 질문 23.12.09 43 4 12쪽
7 야간 습격 23.12.08 4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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