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후 검신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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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4.02.15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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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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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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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서안혈사(1)

DUMMY

“모두 죽여라.”


얼굴의 반쪽이 시커멓게 죽은 노인이 광분해 외치고 있었다. 강호의 은원으로 혈육을 다 잃은 노인에게 남은 것은 그저 원한뿐이었다.


설사 강호의 은원으로 인해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그 원한의 불길은 결코 쇠하는 일이 없었다.


곽문철.


그 이름은 정파인들이라면 치를 떠는 이름이었다. 명백히 자신의 윗줄의 고수들을 원한만으로 쳐 죽였음이니,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일단 피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곽문철이 무공을 잃었음에도 달라지는 일이 없었다.


젊었을 때 중독되었기에 점점 무공과 이성이 사라져가는 그였지만 그를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적어도 정파 내에선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더욱 무서웠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세상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곽문철이 지금.


유위진 앞에서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아무리 전생의 그와 지금의 그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똑같은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면 유위진의 머릿속에서는 전생의 곽문철이 떠올랐다.


‘정말 무서웠는데 말이지.’


독 때문인지, 무리했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온전치 못한 머리를 지닌 데다, 무공도 다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생의 곽문철은 주변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유위진은 그런 곽문철이 자기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보자 묘한 감흥에 휩싸였다.


자신이 확실히 새로운 생을 살고 있다는 실감이, 또한 자신이 그 촉즉혈혈(觸即穴血)에게 감사를 받고 있다는 기묘한 상황.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시겠소?”


“소형제가 아니었으면 나는 물론 큰 형 또한 죽었을 목숨이네. 자네가 달라고 하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판에 그 정도의 요구라면 따르지 못할 이유가 없지.”


독기를 밀어내고 운신이 가능해진 곽문철이 대답했다.


유위진이 요구한 것.


그것은 자신의 수행길에 같이 다니며 계속해서 비무를 하자는 것이었다. 유위진 자신이 이긴 것은 어디까지나 용연에 다분히 의지한 것. 다음에도 이길 수 있다는 보증도 없고, 용연이 없다면 확실하게 이긴다는 자신 또한 없었다.


물론 유위진이 수행만을 위해 제안한 것은 아니었다.


마교의 한과 첩혈삼객의 한.


두 개의 한이 만나 동화되어버린 결과, 강호에는 말 그대로 피의 강이 흘렀다. 자신이 비록 정파의 무인은 아니라고는 하나, 그렇게 참혹한 일들이 다시 벌어지는 것은 사양이었다.


“하지만 이쪽에서도 조건이 있다네.”


“무엇이오?”


“아무래도 우리가 정파와 맺은 은원은 가벼운 것도 아니고, 지금도 쫓기고 있는 몸일세. 게다가 독기를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큰 형도 보살펴야 하는 상황일세. 해서-”


“아아. 안휘, 호남 쪽을 안 가면 되겠소? 어차피 해남도까지는 갈일도 없고 해서 말이오.”


“그래준다면 고맙네. 헌데 정말로 그것뿐인가?”


“왜 싫은 거요?”


“그럴 리가. 구명의 은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것이지. 무공광인 우리 형제들에게 비무는 오히려 반길 일이고.”


“그럼 된 것이지 않소? 출발합시다.”


그렇게 다섯 명이 명월협의 절벽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헌데 어디로 갈 참인가?”


“흐음.”


곽자명의 물음에 유위진이 걸음을 멈추고 고심하기 시작했다. 잠시 고민하던 유위진이 되물었다.


“어디가 좋겠소?”


“생각해둔 곳이 있는 것이 아니었나?”


“딱히 정해둔 곳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소.”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강호에 대해서 떠오르는 것이 그다지 많지가 않군.’


강호의 소문은 매일 생겨나고 매일 사라지는 것. 수 천 수만에 달하는 전생의 소문을 모두 기억한다는 것은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 이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나마 기억났던 것은 강호를 들썩였던 첩혈삼객의 이야기 정도였는데 말이지.’


삼류 무사로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긴 했지만 하루하루 살아남기 바빴던 그에게 인상 깊었던 사건이나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기억나는 거라곤 마교의 행보뿐이니 원.’


유위진은 지금 생각해도 딱히 마교와 엮이고 싶지는 않았다. 손속이 잔인한 것은 물론이고, 무슨 일만 벌어지면 반드시 피를 보고 마는 그 습성 탓에 강호에 몸은 둔 이라 할지라도 두려움에 떠는 것이 마교였다.


‘가능하면 근거지라는 신강에서 계속 있었으면 좋겠군.’


자신이 아무리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었다고 한들, 마교는 사양하고 싶었다. 가능하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마교였지만 한 번 생각했기 때문일까? 불현 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매일, 매일같이 사선을 넘나들던 시절에도 꾸준히 들여왔던 소문이.


마중일마(魔中一魔) 시산혈해(屍山血海)

마의 중심에 단 하나의 마두가 존재하니, 시체의 산과 피로 된 바다를 만든다.


천하이주(天下二柱) 구인세(求人世)

하늘아래 두 개의 기둥이 있어, 인세를 구한다.


마교천하에서 끊임없이 저항했던 두 개의 기둥. 소림과 곤륜이 떠올랐다. 소림은 안휘와 가까워 무리라고 해도, 곤륜이라면 가볼만했다.


“곤륜은 어떻겠소?”


“곤륜이라...굳이 그 오지까지 갈 필요가 있겠나?”


“개인적인 수양에 힘쓰는 문파에 가서 개안을 해보고 싶었던 참이오. 강호에서도 알아주는 곳이 아니오?”


“곤륜파가?”


“......소형제가 뭔가 잘못 들은 것 같군.”


곽문철, 곽자명 두 형제가 이어서 말했다.


‘아.’


유위진은 그제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곤륜이 크게 이름을 떨친 것은 정마대전 후 끊임없이 싸우는 곤륜파의 문하들 때문이었지, 지금 이 시기에는 그저 정파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게다가 오지에 있어서 중원과는 왕래가 적었기에 그들에 대해서 알려진 것도 드문 것이 지금이었다.


“곤륜파에 신주십육성중 한명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도 정파인들의 연합체 쪽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곤륜파를 기리고자 비어있는 자리를 하나 준 것이 아닐까 하는 게 강호의 중론이라네.”


“.....그렇소?”


‘......댁이랑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 그 곤륜이요....이 아저씨야...’


“무당은 어떨까요?”


잠자고 있던 마운괄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


세 쌍의 시선이 한 데 꽂혔다. 마운괄은 자신이 못할 말이라도 한 것인지 움츠러든 채 유위진의 눈치를 살폈다.


“낄 데 끼자. 운괄아.”


유위진이 가벼운 말에 마운괄이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곽씨 형제는 둘 사이의 대화로 둘이 대충 어떠한 역학관계인지 알 수 있었다.


“둘은 사형제 지간인가?”


“그냥 같은 항렬의 제자요.”


“그렇군.”


두 형제의 눈길이 마운괄에게 향했다. 동정의 눈초리였다. 문파에 소속되어보지 않은 그들이라도 동문의 제자에게 거의 짐꾼으로 부려지고 있는 모습과 조금 전의 대화로 그들의 관계가 어딘가 어긋나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뭐 그렇다고 그들에게 그것을 어찌할 마음이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솔직히 당분간은 남궁가 놈들이나 형산파 놈들은 피하고 싶어서 말일세.”


“공동파 다음에 곤륜파까지 가보는 것은 어떻소?”


“공동에 곤륜이라....”


“곤륜인가 공동산 정도면 독기에 좋은 약초를 찾기 쉽지 않겠소?”


유위진은 두 형제가 물기 좋은 미끼를 던졌다.


“가세.”


곽씨 형제의 대답은 바로 나왔다. 부모를 잃고 셋이서 의지해왔던 형제들이라 그런지 형제간의 우애가 아주 깊은 탓이었다.


‘이 양반들 쉽구만. 쉬워. 이런 물러터진 양반이 어떻게 촉즉혈혈(觸即穴血)이라는 살벌한 별호까지 얻어서 그 난리를 쳤는지 몰라.’


첩혈삼객 중 막내로 원한이 하늘에 닿아 건드는 즉시 오공에서 피를 뿌린다는 살벌한 살귀를 자신이 부린다는 생각에 유위진은 신이 난 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



유위진을 포함한 다섯 명의 일행은 북쪽으로 향했다. 한 달도 되지 않아 공동산 근처의 서안까지 당도해 객잔에 머물고 있었다.


“헌데 그 뒤에 있는 그 분...”


유위진은 계속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첩혈삼객의 첫 째의 상세가 궁금해 물었다.


“아무래도....독기에 오래 접하셔서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네. 그래도 자네가 발견한 천문초 덕에 많이 좋아졌다네. 숨결도 어느 정도 고르게 되었고 기의 흐름이 좋아졌다네.”


“그렇소? 그거 참 다행이오.”


‘댁이 반쯤 노망들어 얘기하던 걸 주워들었던 것을 그대로 써먹을 뿐이지만...’


“헌데 서안이 분위기가 뭔가 이상한 것 같군.”


“분위기?”


곽자명의 말에 유위진은 창 너머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좀 이상하긴 한데.....뭐지...”


유위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각 문파들의 제자들이 너무 많네. 서안에서 그나마 자주 보이는 게 화산파인데.....어째 다른 문파들의 제자들이 꽤나 보이는군.”


“.....확실히.”


유위진은 슬쩍 봐도 무복이 세 종류나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건 종남이고. 서안에 화산과 종남이 모인다고? 잠깐. 그러고 보니...’


유위진은 기억을 더듬었다. 허나 무언가 떠오를 듯 말 듯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 이 시기에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유위진이 인상을 찌푸리고 고민하는 사이 곽자명이 입을 열었다.


“좋지 않군. 정파들의 제자들끼리 이렇게 모이는 일은 드문 일인데 말이야. 대문파의 제자들끼리 이렇게 모인다면 대부분은 끝이 좋지 않지. 혈사(血事)가 벌어지기 직전의 징조라고 해야 되나...”


“아!”


유위진이 감탄성을 터트리자 곽씨 형제와 마운괄이 눈길이 저절로 향했다. 하지만 유위진은 그에 대해 신경쓰지도 않고 생각에 몰두했다.


‘서안혈사. 서안혈사였어. 젠장! 이제야 떠오르다니.’


“왜 그러나?”


곽자명이 물어도 유위진은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하필이면 이 때 서안으로 오다니.’


어지간하면 서로의 명예를 신경 써서 회담을 통해 조율하는 정파들이 갑작스럽게 부딪친 사건. 그것이 유위진이 기억하는 전생의 서안혈사였다.


서안을 제 집 마냥 드나드는 화산파나 종남파는 물론이고 어지간하면 서안까지 내려오지 않는 공동까지 한데 어울려 일어난 사건이기에 그 여파는 어지간한 것이 아니었고, 이 일은 정마대전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정수불범하수(井水不犯河水)


우물물은 강물을 침범하지 않는다 라는 말처럼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유별난 정파끼리의 충돌. 그렇기에 그 후폭풍은 더욱 컸다.


같은 지역의 종남 화산 공동이 정파라는 기치아래 모이지 않고 각각 마교와 싸우니 당해낼 재간이 없을 수밖에.


‘빌어먹을. 끼어들고 싶지는 않은데.’


고민이었다. 가능하면 못 본 척 넘기고 싶지만, 이후의 일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서안혈사가 일어난다면 십중팔구 전생처럼 마교도 다시일어날 터.


마중일마(魔中一魔) 시산혈해(屍山血海)

마의 중심에 단 하나의 마두가 존재하니, 시체의 산과 피로 된 바다를 만든다.


전생에서 귀가 닳도록 들었던 구절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떠올랐다.


마중일마. 마중의 마. 마교의 교주. 천마.


그도 함께 말이다.


작가의말

재미있게 보셨다면 추천 선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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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후 검신이 되는 법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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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제목 변경 공지 [검명환생]-[전생 후 검신이 되는 법] 24.02.21 74 0 -
21 20화 내기 비무 (1) 24.03.05 66 3 11쪽
20 19화 정파와의 거래 24.03.03 87 4 12쪽
19 18화 운명의 그림자(2) +2 24.03.03 94 4 12쪽
18 17화 운명의 그림자(1) 24.03.02 97 4 11쪽
17 16화 서안혈사(5) 24.03.01 91 5 11쪽
16 15화 서안혈사(4) 24.02.29 113 6 12쪽
15 14화 서안혈사(3) 24.02.28 123 5 12쪽
14 13화 서안혈사(2) 24.02.27 133 5 13쪽
» 12화 서안혈사(1) 24.02.26 148 4 11쪽
12 11화 혈투의 결말 24.02.25 150 5 11쪽
11 10화 교토삼굴 24.02.24 161 5 11쪽
10 9화 첩혈삼객 +2 24.02.24 179 5 11쪽
9 8화 검심초현(劍心初現) 24.02.22 192 5 11쪽
8 7화 검의 울림 24.02.20 201 5 11쪽
7 6화 검보(劍譜) 24.02.19 216 5 11쪽
6 5화 겨루어 이기다 24.02.18 231 5 12쪽
5 4화 타통 +2 24.02.18 263 6 12쪽
4 3화 보검문의 그림 24.02.16 300 7 12쪽
3 2화 실전 24.02.15 317 7 13쪽
2 1화 되돌아왔지만 되돌아오지 않았다. 24.02.15 383 8 12쪽
1 서(序)-누구나 별이 될 순 없다 +2 24.02.15 461 8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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