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후 검신이 되는 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봉미
작품등록일 :
2024.02.15 03:20
최근연재일 :
2024.03.05 10:43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4,018
추천수 :
111
글자수 :
107,562

작성
24.02.27 11:05
조회
133
추천
5
글자
13쪽

13화 서안혈사(2)

DUMMY




처음에는 사소한 징조였을지도 모른다.


정파라는 이름 속에 존재하는 유대감. 그 유대감에 조그만, 정말로 조그만 균열이 어느 사이엔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조그만 틈이 어느 사이엔가 돌이킬 수 없이 커져버린 것이다.


아무리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조그만 균열로 정파의 사이가 멀어지는 일은 지금까지는 드물었다. 아니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정파라는 무리의 속성이기에.


서로간의 실력이 다른 한쪽을 누를 만큼 월등히 차이나지 않고, 서로가 똑같이 명예를 중요시 여긴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필사적으로 상대방을 누르기보단 어느 정도 선에서 서로가 합의하여 각자 이득을 챙기게 될 확률이 높다.


한 번 타성에 젖어버리면 아무리 고상한 이라도 그렇게 썩어가는 것이다. 물론 썩었다고는 해도 겉으로는 알 수 없다. 허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더없이 기괴하고 불쾌한 무리가 바로 정파인 것이다.


명예에 관해선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고, 일처리는 때로는 음습하며, 때로는 용맹 과감하기도 한 것이 정파라는 무리의 현 실체였다.


허나 그렇게 썩은 악취가 난다 한들 그들을 어찌할 수 있는 이들은 드물다. 사파나 흑도라면 모를까. 그러나 그들 또한 정면으로 정파와 부딪치는 것을 피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파의 뒤에 황실이 있는 이상, 그들 역시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황실의 비호 아래 정파가 운영하는 사업체에 몰려드는 막대한 돈. 그 금력에서 나오는 힘과 민심은 사파나 흑도가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만의 법과 규칙을 따르는 흑도는 물론, 무법에 가까운 사파까지 가능하면 정파를 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정파들의 무리가 서로간의 묵계를 무시한 채 싸우려 하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에 놓인 것이다.


바로 이곳, 서안에서.


“허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서안을 주름잡는 대호상단(大虎商團) 안에서 큰 소리가 흘러나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서안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막대한 부를 소유한 대호상단에는 당연히 수많은 무사들이 존재했고, 정파와도 금력을 통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누군가가 소란을 피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대호상단의 정상적이었던, 얼마 전까지의 이야기지만.


“당연한 것 아니오? 대호상단의 큰 어른이 돌아가신 이상, 당연히 장자(長子)가 상속받는 것이 순리요!!!”


“순리는 무슨. 장자라고는 하나 그것도 정실 소생일 때의 이야기요. 측실 소생의 천우 공자가 과연 적통이라고 할 수 있겠소?”


“쯧쯧. 그래서 화산 쪽에서 하고 싶은 말이 뭐요. 둘째도 아닌 셋째, 그것도 여자인 셋째 공녀가 적자라고 말하고 싶은 거요?”


“.......”


백발이 희끗희끗한 중년인의 신랄한 어조에 염소 수염의 중년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정파인으로 청수한 인상의 중년인은 종남파의 호장원(胡長原), 희끗희끗한 머리를 가진 이는 공동파의 적량(赤亮), 염소수염을 하고 있는 이는 화산파의 설청우(薛靑禹)였다.

지금 세 명의 도인들이 마치 세속의 사람인양 대호상단의 승계를 논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호상단의 주인이었던 여광호가 비명횡사했기 때문이다. 한창 때라고도 할 수 있는 그가 사십 중반에 죽었으니 누군가는 대호상단을 물려받아야만 했다.


허나 승계문제에 있어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었으니 바로 대호상단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정파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여씨 가문의 첫째 여천우는 종남파와, 둘째 여초백은 공동파와, 셋째 여휘는 화산파와 혈연관계에 있었다. 이 관계는 여광호가 살아있었을 적에는 대호상단과 정파와의 친밀함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지만, 그가 죽은 지금 막대한 부를 놓고 이 셋 정파가 갈라지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허어, 평소 사리분별이 확실했던 설 형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곤 믿기 힘들구려.”


“그럼 측실 소생에게 물려주는 것이 맞는다는 이야기요?”


서로가 자파의 명예와 이득을 위해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 설청우는 바로 득달같이 몰아붙였다.


“자꾸 측실 소생이라고 하는데, 잊으셨소? 대공자가 바로 우리 종남에서 나온 가지라는 것을. 그를 무시하는 것은 곧 종남을 모욕하는 것과 다름없소이다!”


호장원이 성난 표정으로 외쳤다.

그러나 그것은 속이 뻔한 으름장이었다. 아무리 대공자가 종남과 혈연 관계가 있다고는 하나, 종남의 여러 고수 중 가장 말석에 있다고 해도 좋을 유정방(劉正防)의 어렸을 적 헤어진 누나의 자식이 바로 대공자 여천우였다.


종남에서도 큰 인망도 세력도 없는 일개 고수인 유정방, 그리고 그 유정방이 생이별한 누나와 혈연관계에 있는 것이 대공자였다. 종남 스스로가 여천우를 종남의 가지라고 여길 리는 없었다. 허나 서안은 물론이고 호북성에 지부까지 있는 대호상단이 걸린 일인 이상 무엇이든 걸고 넘어져야 하는 것이 종남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실제 사정이 어쨌든 간에 문파의 이름이 걸린 이상, 그것을 가벼이 여길 수 도 없는 것이 두 중년인이었다.


‘빌어먹을. 어지간히 탐이 나나보군.’


‘.....가지는 무슨.’


두 중년인은 전혀 동의하지 않았으나, 상대방이 문파의 이름까지 걸고 나온 이상 흉중에 있는 말을 그대로 내뱉을 순 없었다.


“후......좋소이다. 속 시원히 털어놓고 말을 나눕시다. 우리 화산은 물론 공동까지 이렇게 제자들까지 동원해서 모인 이상, 서로가 어느 정도의 면을 세워줘야 하지 않겠소?”


“하.”


설청우의 말에 호장원이 냉소했다.


“그 말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누굴 장님으로 아는 것이오!”


“......무슨 소리요.”

낮은 목소리로 설청우가 물었다. 얼핏 보면 냉정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화가 나면 목소리가 낮아지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화산에서 호북성에서 철을 구입하고 있다는 동향(動向)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데,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했소?”


철의 거래는 나라의 허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물론 정파가 뒷배가 된다면 그 정도는 대호상단이라는 사업체로 가능하지만 그에 대한 세금은 결국 대호상단의 이름으로 부과되는 바, 이득은 화산파만이 몰래 갖되 세금은 화산, 공동, 종남이 다 같이 부담하게 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


설청우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호장원을 쳐다보았다.


“왜 아무 말도 못하시오.”


“.....그것이.....”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지적당한 탓에 설청우는 말을 잇지 못하고 뻐끔거렸다.


그렇게 서로간의 대립이 침묵 속에 계속되던 와중에, 큰 음향이 세 중년인의 귓전을 울렸다.


“적이다!!!!!”


‘적이라고?’


세 중년인의 대경실색하며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유위진은 객잔에서 창 너머에 있는 세 문파의 무인들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지난 생애에서 서안 근처의 세 정파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교에게 내주었던 것이 떠오른 탓이다.


세 문파가 허무하게 밀린 탓에 서안 일대의 마교는 그야말로 폭정이나 다름없는 짓들을 벌였고, 그 지옥같은 곳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던 것이 전생의 유위진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을 보고 있자니 매우 불쾌한 유위진이었다.


‘문파의 이름 위에 권위만을 구축하는 무뢰배놈들 같으니.’


그것이 정파를 보는 유위진의 시선이었다. 본인 스스로 의협이라거나 하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지만 많은 정파인들의 행사를 보고 있자면 구역질이 나왔다.


그리고 서안혈사가 펼쳐지기 직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리 시간을 되돌아온다고 한들,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은 유위진은 마음 속으로 하나의 결심을 했다.


“두 분,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곽씨 형제에게 말을 내려놓았던 유위진이 다시 말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



“그거, 재미있군.”


곽자명이 유쾌한 듯이 말했다.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다. 나름 고심하며 말까지 올렸던 유위진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갑자기 저 자세로 나오는 걸 보니 이상하군. 하던 대로 하게.”


“어쩌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야 뭐. 운이 나쁘면 그럴 수도 있겠지. 허나 자네가 그러는 건 우리들에 대한 모독이라네.”


“그게....무슨.”


“우리는 무인일세. 무인이 스스로 행한 일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묻는단 말인가.”


“........”


“게다가 우리는 정파인들이 싫다네. 우리가 왜 명월협에 숨어있었겠는가? 정파인들은 결국 한통속일세. 내심 자신들의 문파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기는 하나, 결국 같은 무림맹이라는 입장과 위신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들이지. 형산의 고수가 죽은 순간부터 무림맹은 끊임없이 우리들을 추적했다네. 지금 이렇게 정파 놈들을 골탕 먹일 수 있다면 더 없이 즐거운 일이지.”


유위진은 곽씨 형제가 선뜻 결정을 내리자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럼 준비는 어떻게....”


“다행히 인피면구 정도야 우리 수중에 있네. 그걸로 변장을 하면 문제가 없을 테고.....나머지는 복장 정도겠군.”


“복장은.....아무래도 운괄이 저 녀석을 시켜서 구해봐야 하겠군요.”


“그럼 그렇게 하지. 서두르세.”


그렇게 시작되었다. 서안 일대를 들썩일 한 바탕의 연극이.



***



객잔 근처의 거리에서는 종남과 화산의 무인들의 신경전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로간의 경쟁의식은 대대로 내려왔기에 더욱 그러했다.


어느 정도 물러나 있는 공동파가 마치 삼자로 보일 정도로 그들의 신경전은 치열했다.


“이봐. 어디서 썩은 내 나지 않나?”


종남파의 무인이 동료에게 말을 걸었다.


“킁.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 것 같기도 하군. 어디서 나는 것인지 원.”


같은 종남파의 무인이 장난스런 얼굴로 맞장구쳤다.


“당연히 소나무가 잔뜩 있는 바위산에서 사는 이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 아니겠나. 에잉. 가끔 소나무가 썩은 듯이 지닌 내를 풍기는데, 아무래도 그걸 모르는 듯 싶네. 지린내를 풍기면서 그놈의 매화는 왜 달고 다니는 건지 원.”


“하하하하하하. 누가 보면 매화향이 지린내인줄 알겠구만.”


대놓고 화산의 지리적인 특성과 무복에 새겨진 상징을 비웃고 있었다.

그것을 들은 화산의 무인들이 분노한 기색으로 검에 손을 가져갔다.


채앵!


“호? 누가 검을 뽑았나 본데?”


처음 장난을 걸었던 종남파의 무인이 말했다. 날카로운 음향이 그의 귓가에 들려온 것이다. 하지만 그 소리는 검을 뽑았다기보다는 검과 검이 부딪친 듯한 소리였다.


방금 전의 소리는 화산의 무인들이 허리를 숙이며 발검 자세를 취하며 누군가의 무기와 부딪친 탓에 발생한 것이다.



자신의 검에 무언가가 닿은 것을 느낀 화산의 무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앞에는 검은색 무복을 입고 삿갓을 쓴 세 명의 무사가 있었다.


“뭐야. 쯧! 여기는 통행금지다. 돌아들 가라.”


마치 젖먹이를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 행동에는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정파의 의식이 그대로 들어나고 있었다. 그들의 사고방식에서는 결코 자신들보다 높은 이들이 없었다. 모든 것은 당연히 자신들의 위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네놈. 죽고 싶은 거냐?”


“뭐? 하......”


필생의 대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종남과 부딪치려는 찰나에 끼어든 불청객. 종남의 젊은 무인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어디서 이런 별 그지 같은...”


“무인의 생명과도 같은 무기에 네놈의 무기를 부딪쳤다. 즉, 네놈의 목이 떨어져도 할 말이 없다는 거겠지?”


“죽고 싶어 색을 쓰는구나.”


종남파의 무인이 말을 끝내자마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솨아아아악!


“이....게....어..?”


종남파 무인의 어깨부터 허리춤까지 실선이 그어졌다.


푸화하하하하학!


그어졌던 선이 갈라지며 피가 쏟아졌다.


“교는 모욕을 참지 않는다.”


변장한 유위진이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그것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거의 없었다.


유위진이 발출한 검심초현이 종남파와 화산파 무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탓이었다. 그 초식은 그들에게 있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섬뜩한 일검이었다.




작가의말

재미있게 보셨다면 선작 추천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생 후 검신이 되는 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지 공지 24.03.07 32 0 -
공지 제목 변경 공지 [검명환생]-[전생 후 검신이 되는 법] 24.02.21 75 0 -
21 20화 내기 비무 (1) 24.03.05 67 3 11쪽
20 19화 정파와의 거래 24.03.03 88 4 12쪽
19 18화 운명의 그림자(2) +2 24.03.03 95 4 12쪽
18 17화 운명의 그림자(1) 24.03.02 97 4 11쪽
17 16화 서안혈사(5) 24.03.01 92 5 11쪽
16 15화 서안혈사(4) 24.02.29 113 6 12쪽
15 14화 서안혈사(3) 24.02.28 123 5 12쪽
» 13화 서안혈사(2) 24.02.27 134 5 13쪽
13 12화 서안혈사(1) 24.02.26 148 4 11쪽
12 11화 혈투의 결말 24.02.25 150 5 11쪽
11 10화 교토삼굴 24.02.24 162 5 11쪽
10 9화 첩혈삼객 +2 24.02.24 179 5 11쪽
9 8화 검심초현(劍心初現) 24.02.22 192 5 11쪽
8 7화 검의 울림 24.02.20 201 5 11쪽
7 6화 검보(劍譜) 24.02.19 216 5 11쪽
6 5화 겨루어 이기다 24.02.18 231 5 12쪽
5 4화 타통 +2 24.02.18 263 6 12쪽
4 3화 보검문의 그림 24.02.16 301 7 12쪽
3 2화 실전 24.02.15 318 7 13쪽
2 1화 되돌아왔지만 되돌아오지 않았다. 24.02.15 383 8 12쪽
1 서(序)-누구나 별이 될 순 없다 +2 24.02.15 462 8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