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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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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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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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5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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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DUMMY

14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요새들어 낯선 곳에서 눈을 뜨는 경험이 부쩍 잦다는 생각이 든다.


“여, 여긴 또 어디야.”


눈앞이 아직도 어질했고, 머릿 속은 안개를 들이부은 듯 혼몽했다.


“스, 스으으읍.”


게다가 아직 복부의 통증도 여전했다. 처음보다는 괜찮았지만 말이다.


“아, 진짜 겁나 아프네.”


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때, 옆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건 강정운이었다.


“일어났나.”


걱정이 어린 얼굴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요즘 들어 이 남자를 걱정만 시키는 것 같구나.


“뭐, 좀 무리했죠. 괜찮아요. 여긴 어디에요.”

“의무실이다. 의무실은 처음 와봤나?”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행히 병원에 또 입원한 것은 아니구나.


강정운은 내 옆의 작은 의자에 쪼그려 앉았다. 그가 진중한 목소리로 나를 타일렀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낮밤 가리지 않고 글만 썼지.”

“그렇······죠?”

“어제 이곳에 복귀했는데 한숨도 안 자고 계속 글을 썼다던데?”


나는 어쩐지 강정운의 눈을 똑바로 보기가 힘들었다.

괜한 변명을 늘어놓게 되었다.


“그, 잠은 잤어요.”

“잤다고?”

“1시간 정도?”

“그건 잠이 아니야.”

“잠이죠.”

“그냥 눈을 붙인 거지.”


강정운의 사나운 눈초리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제 원고는요? 경덕관 선생님은요?”

“가셨다. 그 분이 얼마나 바쁜 분인데 너 하나를 여기서 쭉 기다리시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껏 원고를 써서 가져다줬는데 제대로 무슨 얘기도 못 들었구나.


“제 원고는 읽으셨어요?”


강정운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원고를 읽지도 않다니.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강정운이 대답했다.


“아마 지금 기차 안에서 읽고 계실 게야. 네 원고를 가지고 서울에 가셨으니 말이야.”

“그래요?”


나의 목소리엔 나도 분명히 알아챌 만큼 생기가 돌았다.

강정운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작품에 몰두하는 것도 좋지만 당분간은 소설은 쉬어. 아무리 엉덩이 힘으로 하는 게 소설이라지만 이거 원 엉덩이가 짓무르게 생겼구나.”


농담인지, 힐난인지 알 수 없는 투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나는 그저 웃어보였다.


“하, 하하.”


강정운이 잠시 생각에 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일단 놔둬봤지만 어쩔 수가 없구나.”

“뭐가요?”

“원고지에 직접 손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 요즘에 어딨나. 시도 요즘은 다 컴퓨터로 쓰는데.”


처음 듣는 얘기에 나는 눈만 꿈벅거렸다.

요즘의 문인들이 글을 어떻게 쓰는지 내가 어찌 아는가.


내가 아는 글에 대한 모든 지식은 이전생의 아득한 기억 뿐이다.


잠시 침묵하던 강정운은 나에게 이런 뜻밖의 제안을 건넸다.


“그래서요?”

“매일 2시간 정도 노트북을 활용해서 글을 써보는 건 어떻냐? 하루 집필 시간도 제한이 생겨서 좋고, 속도도 훨씬 괜찮을 텐데.”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지만 솔깃한 이야기였다.

나는 한 치의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조, 좋죠! 당연하죠!”

“게임하면 안 돼.”

“게, 게임은 원래도 잘 안 해요!”

“이상한 거 봐도 안 된다.”

“아, 무슨 이상한 걸 봐요!”


강정운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를 연신 뱉었다.

희미하게 웃던 그가 내 어깨를 또 한 번 두드렸다.


“그러면 하루에 2시간 씩만 문학실에서 노트북을 쓰게 해주마. 특활 시간에 해당하여 사용 허락을 하는 식으로 처리하지. 그런데 말이야.”

“네?”


강정운은 큼큼 목을 가다듬더니 나를 매섭게 쳐다보았다.

그가 내게 말했다.


“그냥 쓰게 해줄 순 없어. 조건이 있다.”

“조건이요?”

“그래, 조건. 그 조건을 지키면 계속 쓰게 해주지.”


강정운은 어쩐지 이 상황이 재미있는 눈치였다.


조건이라고?

조건은 또 뭔놈의 조건일까.


**


북간도에 계신 어머니.

아, 어머니.


이곳은 문학실입니다.

나는 송송태와 함께 다시 이곳에 앉아있습니다.


소설도 다 쓴 마당에 문학실에서 이제 무얼 하고 있냐고요?


“아씨, 진짜 더럽게 어렵네.”


나는 독수리 타자로 한 자, 한 자 노트북 자판을 눌렀다.

생각해보니 키보드 자체를 많이 안 다뤘다.


“도대체 요즘 누가 키보드 같은 걸 쓰냐고. 핸드폰 놔두고.”


나는 불평불만을 터뜨렸다.

핸드폰 하나면 다 되는 시대에 노트북을 써야 한다니.


물론 이곳 소년원에서 노트북을 쓴다는 건 엄청난 특권이지만 말이다.


강정운이 내게 제시한 조건은 심플했다. 더 없이 간단해서 열이 받을 정도였다.


<하루에 시를 적어도 1편 이상은 써라. 그래서 나한테 갖고 와. 그게 조건이다.>


나는 강정운이 제시한 조건을 머릿 속에 다시 떠올렸다.

그러고선 머리를 북북 긁었다.


“하루에 1편은 어렵지 않은데 굳이 노트북으로 써야 하는 거야!?”


나는 짜증을 냈다.

이전 생에도 이번 생에도 노트북으로 작업 따위를 한 적이 없는데.


성질을 부리는 내게 송송태가 다가와서 말했다.


“뭔 성질을 그렇게 있는 대로 부리냐.”

“신경꺼. 너 할 거 해.”

“시끄러워서 뭘 할 수가 있나.”


송송태는 잠시 힐난을 던지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풉. 푸하하핳. 그렇게 잘난체하더니 타법은 독수리 타법이냐? 새가 되어 날아가겠다?”

“다, 닥쳐!”


송송태는 나의 두 검지손가락을 보며 마음껏 비웃었다.

그 애가 털썩 내 옆에 주저앉았다.


“야, 지금 한 시간 붙들고 끽해야 그거 쓴 거야? 그만두고 차라리 딴 걸 좀 하지. 게임이나 켜봐.”

“닥쳐. 이거 소년원 노트북이야. 기록 다 보고 된다.”


송송태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에이, 뭐야. 그러면 그냥 글 쓰는 거 말고는 아무 것도 못해?”

“글 쓰고, 검색하고 두 개만 하라던데.”

“그래? 유동주, 너 뭐 검색이라도 하면서 놀아봐. 안 되는 글 붙잡으면서 시끄럽게 굴지 말고.”


송송태는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다시 자기 의자로 가서 앉았다.

요즘 들어 부쩍 독서에 취미를 붙인 녀석이었다.


[2023 구칠월문학상 수상작품집]


나는 녀석이 읽고 있는 책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구칠월이라.

이전 생에서 조선 팔도를 호령하던 문인이었는데,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구나.


그를 기념하는 문학상이 있단 사실이 새삼 세월을 체감하게 해주었다.


내 시선을 느낀 송송태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을 걸었다.


“뭐야? 할 거 다 했어?”

“아니, 그 책 재밌나 해서.”

“몰라. 더럽게 어려워. 무슨 한국 최고 문학상이라는데 내 수준은 아닌가봐.”


송송태는 가시 돋힌 말과 달리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강정운의 말이 떠올랐다.


‘일본에서 전생의 내가 쓴 시가 널리 읽힌다고 했지?’


나는 네이버에 들어가 이름 석자를 검색했다.


윤동주.


내 것이지만 이제 내 것이 아닌. 낯설면서도 아득히 가까운.


“어, 뭐가 많이 나오기는 하는데.”


인터넷에 나오는 것은 일반적인 이야기들 뿐이었다.

유동주인 나조차 알고 있는 일반적인 윤동주 이야기들.


“흐음. 일본에서 읽힌다는 건 다 거짓말인가.”


그때, 책을 다 읽었는지 송송태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뭐야. 뭐 찾는데 이렇게 부산스럽게 찾아.”

“아, 그냥.”


송송태가 내 화면에 띄워진 ‘윤동주’ 검색 결과를 바라보았다.


“윤동주 시인? 갑자기 윤동주는 왜?”

“아, 그냥 그 원장님이 윤동주 시인이 일본에서 많이 읽힌다고 해서 갑자기 궁금해지더라고.”

“윤동주가 일본에서 읽혀?”


내 말을 들은 송송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불쑥 나를 노트북 앞에서 끌어냈다.


“야, 그러면 이렇게 검색하면 안 돼.”


송송태는 네이버에 ‘윤동주’와 ‘일본’을 같이 검색했다.

그러자 내가 찾았던 결과와는 전혀 딴판인 글들이 쏟아졌다.


“오, 진짜네. 야, 일본 교과서에도 실려있대. 대박.”


나는 송송태가 띄워놓은 기사를 천천히 읽었다.


[일본의 전후문단을 대표하는 거장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는 자신의 수필 ‘한글로의 여행’에 윤동주를 소개했고, 이 작품은 일본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이바라기는 “만일 그가 반년만 더 생존했더라면 전후의 고국에서 즉시 선두의 활동을 시작할 인물이었을 것”이라며 높이 평가한 바 있다.


또한, 교토 도시샤 대학에 건립된 윤동주의 추모비에는 지금도 많은 일본인이 찾아와 윤동주를 추모한다고 한다.]


나는 천천히 글자들을 헤아렸다.

가슴 안에 어쩐지 뭉클한 마음이 뭉쳐들었다.


내가 떠난 후 내가 다닌 대학에 나의 시비가 세워졌구나.

일본 땅에도 나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무어라 이름 짓기 어려운 감정은 마음 속 둑을 무너뜨리고 홍수처럼 쏟아졌다.


내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송송태는 빠르게 다른 사이트로 넘어갔다.


“아, 뭐야. 여긴 일본 사이트인가 본데? 뭐야. 왜 이런 게 나와.”


송송태는 빠르게 다른 사이트로 넘어가려고 했다.

나는 그 녀석의 손을 번개처럼 붙잡았다.


“야, 가만히 있어봐.”


나는 마우스를 잡고 그 사이트에 적힌 게시글과 댓글을 찬찬히 읽어갔다.


그 글은 다름아닌 내가 쓴 시를 일본어로 번역해서 올린 게시물이었다.


게시물의 아래엔 내 시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도 댓글로 적혀 있었다.


- ユン・ドンジュは韓国のバイロンだよ。「星を数える夜」を知ってる? (윤동주는 한국의 바이런이야. 별 헤는 밤을 너희가 아냐?)


- 何を世界中の人々がもう知っているユン・ドンジュを、君だけが知っているかのように振る舞うの?ユン・ドンジュはすでに世界的な詩人だよ。(뭘 세상 사람 다 아는 윤동주를 너만 아는 것처럼 굴어 윤동주는 이미 세계적인 시인이야


- その通り、その通り、ユン・ドンジュはベストセラー作家だよ。(맞음 맞음 윤동주는 이미 베스트 셀러 작가라고)


일본인들의 반응을 이렇게 확인할 수 있단 사실에 기분이 묘했다.


세상이 좋아지긴 했구나.

내 시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의 반응을 이렇게 알 수 있다니.

그것도 이역만리 타국 사람들의 반응을.


그런데 내 옆에서 송송태가 갑자기 호들갑을 떨었다.


“야, 뭐야. 유동주 너 일본어 읽을 수 있어?”


송송태의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화면을 보았다.


아, 일본어구나.

나는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래, 윤동주일 때 나는 일본어를 능숙하고 읽고, 쓸 줄 알았다.


그리고 기억이 돌아온 지금 마치 일본어는 마치 한글처럼 편안하게 읽혔다.


내가 일어를 읽을 수 있단 사실에 나조차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짐짓 태연한 척 송송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뭐 이정도 일어야 간단하지.”


간단하고 말고.

나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던 사람이라고.


그런데 송송태가 호들갑을 멈추지 않고 나를 노트북 앞에 앉혔다.


“와, 이거 X친 새끼. 너 일본어 할 줄 알면 이 사이트 글 다 읽을 수 있어? 여기 뭐야? 문학하는 사이트야?”


나는 사이트를 잠시 훑어보았다.


“나가레보시 리터러시, 일본 최고의 정통 문학 사이트라는데? 뭐, 시도 올라오고, 소설도 올라오고 하는 사이트인가봐.”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송태가 나의 어깨를 두들겼다.


“야, 씨. 그러면 네 소설이랑 시도 올려봐! 일본어로 글도 쓸 줄 아는 거 아니야!?”

“일본어로 시랑 소설을 쓰라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지켜야 할 게 있다.


이전 생의 나는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으로 문학을 하고자 끝까지 한글로만 시를 썼다.


아무리 환생을 하고, 세상이 변했다지만 나보고 일본어로 문학을 쓰라고?

그건 용납할 수 없다.


이전 생의 윤동주로서도.

이번 생의 유동주로서도 말이다.


나는 단호히 답했다.


“안 돼. 한국인이 한글로 글을 써야지.”

“뭔 뻘소리야. 우리나라 사람이 책을 얼마나 읽는다고. 외국말 잘 하면 당연히 해외 진출도 해야지!”


나는 송송태에게 벌컥 성질을 냈다.


“야, 매국노도 아니고 한국인이 왜 남의 말로 글을 써!”

“매국노가 왜 나와! 이거 순 X라이네! 그러면 한글로 써둔 글을네가 직접 번역해서 한 번 올리던가!”


나는 송송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한글로 쓴 시, 소설.

그것을 일어로 번역해서 한 번 올려보라고?


그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작가의말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ㅠ 14화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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