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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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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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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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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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DUMMY

28화

EP2 – 교토의 별을 헤아리다 보면


나는 강정운이 건넨 문예지를 꼼꼼히 살폈다.

그의 시는 그냥 문예지에 실려있는 게 아니었다.


“와, 이 계절의 시로 뽑힌 거예요? 그러니까 올 계절에 최고로 좋은 시로 원장님 시가 뽑힌 거죠!?”


내가 구칠월문학상을 받았을 때보다 진심으로 기쁜 마음이 들었다.

강정운은 쑥스러운 듯 인중만 긁적거렸다.


“뭐, 나만 뽑히는 건 아니야. 이 계절의 시로 3명 정도 뽑힌 거다. 크, 크흠.”


그의 두 볼이 후끈 달아올랐다. 나는 서둘러 문예지를 넘겨, 강정운의 시를 찾았다.


“강정운, 강정운, 강정운이 어딨냐.”


강정운 원장의 시는 문예지의 첫 부분에 수록되어 있었다.

단순히 시만 실린 것이 아니었다.


강정운의 프로필 사진과 작품, 그리고 간단한 비평이 함께 수록되어 있었다.


그의 프로필 사진을 보자마자 나는 웃고 말았다.


“풉, 푸하하, 누가 이렇게 안 어울리는 넥타이를 해줬어요! 아니, 빵모자는 왜 쓰셨대!? 푸하하하핳”


강정운이 자신의 사진을 손으로 가렸다. 그가 민망한 얼굴로 변명했다.


“아, 아니. 보통 시인들은 다 이러지 않느냐!”

“아니, 세상에 대체 어떤 시인이 이러고 사진을 찍어요!? 풉, 푸하하하핳.”


나는 황당한 얼굴로 강정운을 쳐다보았다.


주황색 나비넥타이.

갈색 빵모자.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


도대체 어떤 세상에서 이게 보통이 된단 말이야.

강정운의 기준이 새삼스럽게 의심되는 사진이었다.


“풉, 푸하하하. 알았어요. 작품 읽을 테니까 책 가져가지 마세요! 풉, 푸하하핳”

“그만 웃어라!”

“풉, 푸하하하핳. 웃긴데 어떡해요!”


강정운은 화끈 붉어진 얼굴로 내 손에 들려진 문예지를 뺏으려고 했다.


“아, 알았어요. 안 웃을게요. 진지하게 읽을게요. 잠시만요.”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강정운의 시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잡지에 실린 것은 나도 익히 보았던 작품이었다.


“역시나 이 시는 좋다니까요. 이 시 잘 될 줄 알았어요.


이 계절의 시로 선정된 것은 일전에 내게 보여줬던 작품 <죄수>였다.


“그때랑 많이 바뀐 건 없고······.”


강정운의 <죄수>는 이미 본 작품이었다. 하여, 시는 빠르게 읽고 넘겨버렸다.


그것보다도 강정운의 시를 어떻게 비평하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강정운의 간단한 약력 뒤에 바로 비평이 이어졌다.



[강정운은 교도관으로서 평생을 보낸 시인으로 그 특별한 이력이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발표된 강 시인의 <죄수>는 소년교도소에서 근무하는 시인의 삶과 교도관으로서 마주하는 현실을 진솔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특히 강정운의 시가 빛나는 부분은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이중성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데 있다. 이를테면, '아이들은 감옥에 갇히고/나는 세상에 갇힌다'라는 구절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시인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시 전체에 흐르는 ‘죄와 인간성’에 대한 탐구가 인상적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웃음 소리는/죄의 몫인가, 사람의 몫인가’ 같은 구절은 교도관으로서 느끼는 딜레마를 깊이 있게 탐구한 명구라 할 수 있다.

<죄수>는 교도소의 현실을 넘어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사유까지 잇닿는 명시이다. 이에, 이 계절의 시로 추천한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단숨에 비평을 읽어버렸다.

무언가 젠 체 하는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나와 의견이 일치해서 좋았다.


“그래요. 그 시 엄청 좋다니까요. 그때도 얘기했잖아요.”


그래.

이렇게 잘난 척하며 비평할 필요가 무엇이 있을까.

좋은 시는 좋다고 하면 그만인 것을.


나는 거침없이 강정운을 칭찬했다.

나의 상찬에 강정운의 입가가 올라갔다.


‘어라, 이렇게까지 헤벌쭉 웃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기분이 들뜬 강정운은 시키지도 않은 tmi를 늘어놓았다.


“현대시산책은 무려 반세기 역사의 시 전문 잡지다. 이 잡지를 거쳐 간 시인만 해도······.”


나는 강정운이 일장 연설을 늘어놓을 것 같아 말을 잘라버렸다.


“아, 그만, 그만. 저 출소해야 해요. 나중에 알려주세요.”

“큼, 크흠. 그렇지. 출소하던 중이었지.”


강정운의 미소는 어느새 달아나고 없었다.

그는 차분한 척 표정을 다스리며 품에서 무언가 뒤적거렸다.


“조금 더 웃으셔도 돼요.”

“내가 언제 웃었다고 그러느냐.”

“허? 웃었잖아요.”

“안 웃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현대시산책>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강정운이 날 놀린 것처럼 똑같이 그를 놀려주었다.


“강정운의 시 <죄수>는 걸작입니다!!”


강정운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급기야 내 입을 막을 기세로 손을 뻗었다.


“뭐, 뭐 하는 게야! 집에 가는 길에 조용히 혼자 읽어!”

“풉, 푸하하. 저만 당할 수는 없죠. 풉, 푸하하하핳!”


나는 다시 한번 책을 펼쳐서 비평을 읽어 보였다.


“특히 강정운의 시가 빛나는 부분은 인간의 이중성을 심도 있게 탐구하기 때문에!!!”


나는 무진 교도소가 떠나가라 비평문을 읽어 재꼈다.

강정운이 얼른 내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해 집에 가는 길에 혼자 읽어!”


나는 강정운의 손에 붙들린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아쉬워. 송송태가 있으면 같이 놀렸을 텐데.


나는 입맛을 다시며 송송태를 떠올렸다.

내 소년원 선배 송송태는 이미 며칠 전 출소한 상태였다.


[바깥에서 꼭 연락하는 거야!? 작가님 됐다고 모른 척하면 죽는다! 진짜 알겠지!?]

[뭔 소리야!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얼른 나가기나 해! 빤스는 챙겼냐!?]

[으으으악!! 빤스 얘기는 또 왜 하는 거야!]


송송태가 으름장을 놓으며 성질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생각에 잠긴 내게 강정운이 별안간 책 하나를 건넸다.


“받아라.”


강정운이 건넨 건 깔끔하게 제본이 된 책 한 권이었다.

심지어 근사한 표지도 있었다.


별과 나무와 새가 그려진 푸른색 표지에 나는 눈을 빛냈다.


“어디선가 본 그림체인데?”


내 말을 들은 강정운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내가 너 보고 시를 1편씩 쓰라고 시키지 않았느냐.”

“그렇죠?”

“그걸 모아둔 거다.”

“그걸 전부 다요? 제가 매일 1편은 못 썼지만 그래도 양이 꽤 될 텐데?”

“그렇지.”

“이걸 어떻게 정리했어요?”

“많긴 많더구나. 50편 정도 되니까 말이다.”


뜻밖의 선물을 나는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

이게 내 책이라니.

내 시가 담긴 책이라니.


“와, 진짜 전부 내 시가 실려있잖아요?”


책을 펼쳐보니 그 안엔 내 시가 빼곡하게 수록되어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혀까지 꼬인 채로 되물었다.


“서, 설마 이거 원장님이 직접 만드신 거예요?”


강정운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 혼자 만든 건 아니야. 그 뒤를 펼쳐봐라.”


“뒤, 뒤요?”


나는 강정운이 시킨 대로 책의 맨 뒷장을 펼쳤다.

그곳엔 책을 누가 만들었는지 적혀있는 판권지가 있었다.


[인쇄 : 문학나무

발행일 : 2024년 X월 XX일

지은이 : 유동주

표지 디자인 : 박서완

엮은이 : 강정운

편집 : 문혁수, 강정운, 송송태]


가슴 속 어딘가에서 둑이 무너진 듯 거센 물살이 일었다.

나는 어느새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강정운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몇십 년 넘는 세월 동안 소년원의 아이들을 보았단다.”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연신 몸을 떨고만 있었다.

강정운이 그런 나를 위해 무어라 위로를 계속했다.


“이곳 무진 소년원에서 동주 너만큼 많은 걸 얻어간 사람은 드물 거야.”


그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마지막 한마디를 했다.


“고맙다. 원장으로서 진심으로 고마워.”


나는 천천히 심호흡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겨우 강정운을 향해 한 마디를 뱉었다.


“저야말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강정운.

처음에는 이 사람을 이용하려고 했다. 내가 글 쓰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내 입맛에 맞게 다루려고 했지.


하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특별한 관계로 변하고 말았다.


스승과 제자.

그게 아니라면, 정말 같은 학교를 졸업한 대선배님 같았다.


“진짜 정말로 감사드려요.”

“뭘 이런 걸 가지고. 책이나 더 살펴봐.”


강정운의 말에 나는 책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언제 이런 깜짝 이벤트를 다 준비한 걸까. 시간도 오래 걸렸을 텐데.


“원장님, 이 책은 대체 누가 기획한 거예요?”

“누구라고 할 거 없이 우리 모두가 준비한 거야. 아이디어는 나와 송송태가 가장 먼저 냈지.”


강정운이 내 손에 들려있는 책을 내려다보며 웃음을 지었다.


“간신히 네 출소일에 맞출 수 있었구나. 혁수가 도와줘서 다행히 출소일에 딱 제작이 완료됐어.”

“역시 프로의 솜씨는 다르네요.”

“프로? 하, 하하. 그래, 프로 편집자의 손길이 들어간 거야. 네 친구도 프로 못지않게 표지 디자인을 멋있게 해줬고 말이야.”


나는 다시 한번 책을 쳐다보았다.

푸른 표지 위에는 흰 새와 나무, 별이 그려져 있었다.

표지 그림 한 편에는 제목을 적을 빈 공간이 남아 있었다.


강정운이 그 빈 여백을 가리키며 말했다.


“박서완이 말하기를 그 여백에 네가 직접 제목을 적으면 된다더구나. 참 꼼꼼한 친구를 뒀어.”


말을 마친 강정운이 품속에서 만년필 하나를 꺼내서 주었다.

그가 내게 다시 말했다.


“첫 시집 제목은 무어라 지을 거냐?”

“첫 시집 제목이요?”


나는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이전 생에서부터 내 첫 번째 시집의 제목은 미리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로 할게요.”


푸른색 표지 위에 만년필이 서걱거렸다.

강정운이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그는 흐뭇한 눈으로 내 첫 시집의 제목을 바라보았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나는 그 시집을 몇 번이고 매만졌다.

생각해 보니, 이 책은 내 손으로 직접 들어본 첫 번째 내 시집이었다.


“이게 제 첫 시집이네요. 정말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요.”


강정운은 쑥스러운 듯 나를 타박했다.


“어설프게 제본된 책이 뭐가 그리 좋다고! 빨리 제대로된 시집을 내서 가져오거라! 크, 크흠!”


나는 헛기침을 하는 강정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강정운을 향해 선언했다.


“나중엔 꼭 문예지에 같이 실려요. 원장님 이름 옆에 제 이름을 이렇게 실는 거예요.”


내 말은 들은 강정운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날이 빨리 온다면 정말 좋겠구나.”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 진짜 그런 건 크게 말해요! 풉, 푸하하하!”


그리고 나와 강정운이 무진 교도소에서 작별의 인사를 나누던 그때.

일본에서는 나를 둘러싼 또 다른 계획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그것도 내 출소일에 맞춰서 말이다.


이때까지는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작가의말

이번 회차에 등장하는 시 <죄수>는 10화에 수록되었던 시입니다 ! 28화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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