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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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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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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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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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DUMMY

12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꿈속에서 나는 헤메였다.

경덕관이 알려준 전생의 나에 대해서 자문했다.


만 29세에 눈을 감은 이전 생의 나. 도대체 나의 글은 어떻게 세상에 나온 것일까.


유동주로 살아온 세월은 윤동주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다.


내 머리 어디에도 윤동주 삶에 대해 제대로된 공부가 없었다.


나는 경덕관이 알려준 정보를 따라 죽은 이후의 내 글의 궤적을 쫓았다.


그리고 그 어지러운 발걸음이 꿈속에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죽은 후 광복을 일군 조국, 내 원고를 들고 월남한 누이, 나를 늘 기억하고 되뇌였던 나의 동생.


내 가족의 얼골들이 꿈속에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 쓸쓸한 소설이 꿈속에 아득히 번져갔다.




12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 상의 어머니께.


윤 상이 사망한 뒤로 세월은 무상히 흘렀습니다. 그가 죽고서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 일본은 패망했습니다.


그리고 윤 상이 쓰던 시와 소설을 저는 다행히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문학도가 아니기 때문에 윤 상이 매달린 문학의 의미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합니다.


죽기 직전까지 해야 할 일이 있는 걸까요. 목숨이 촌각을 다툴 때에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겨야 할 업무가 무엇인가요.


그러나 그의 쓸쓸한 노력은 저의 마음 어딘가를 자욱이 두드렸습니다.


오늘도 윤 상이 저에게 속삭였던 밀담이 귓전에 들리는 듯 합니다.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만족을 하려나.”


십 촉 불빛.

낮고 창백한 조명 아래에서 그의 고요한 말소리가 흘러들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때로, 어떤 만남은 한 사람의 일평생을 뒤흔들고 맙니다.


그러니까 윤 상의 어머님.


당신의 아들은 제 평생을 뒤흔들고 말았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저는 윤 상의 원고를 들고 이곳 조선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해방 이후 일본인이 건너오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는 이 땅에요.


일제의 교도관이었던 제가 이 조선에 밀항했단 사실을 들킨다면 곧 죽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죽음 곁에서 마지막 업무를 치루던 윤상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듯도 합니다.


평생을 건 사명감이라고 한다면 너무 거창할까요.」




12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나는 병실에서 눈을 떴다.

아랫배에서 여전히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내, 내 소설!”


꿈속에서까지 내가 쓴 소설의 일부가 흘러나왔다.


그렇다.

내 소설은 이제 광복 이후로 넘어가 있다.


광복 전과 후로 소설의 부를 구분한 것이다.


해방 전의 주인공이 이전생의 ‘나’ 윤동주였다면, 해방 이후의 주인공은 ‘교도관’이었다.


나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광복 이후에도 살아나 있었을지 알지 모른다.


그러니 나는 지어낸 이야기로나마 그의 삶을 따라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유동주로서 주변을 돌아보고 얻은 깨달음이기도 했다.


주인공 하나만 조명하던 것에서 벗어나 주변의 인물까지 두루 조망하는 일.


그것은 이전 생에 죽기 직전까지 내가 썼던 작업과는 확실히 다른 흐름의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생각도 다 부질없게 되었다.

모든 작업은 내 머릿 속에 들어갔고.


“흐, 흐으으으읍!”


내 아랫배엔 여전히 통증이 끊임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라곤 내 원고지가 산산이 찢겨 복도에 나뒹구는 모습 뿐이었다.


나는 또 한 번 비명을 질렀다.

아랫배가 아픈 것인지 가슴 안쪽이 콱 답답한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으, 으 내 원고!!!”


내가 비명을 지르던 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달려왔다.


“유동주 괜찮냐!”


문을 벌컥 열어젖힌 건 송송태였다. 그 애 옆에는 간호사가 서있었다.


“진통제 투여할 테니까 잠깐만 참아봐!”


간호사가 링겔에 무언가를 투여했고, 조금씩 통증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가슴을 콱 가로막은 답답함이 사라지진 않았다.

나는 송송태를 향해 물었다.


“내, 내 원고는?”


그 애는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나는 그 애에게 소리 질렀다.


“그렇다고 사람을 찔러!? 내 원고가 찢겼다고 사람을 찌르냐!? 나보고는 샤프도 함부로 던지지 말라더니!?”


송송태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야, 나 아니야.”

“뭐가 아닌데.”

“내가 조원 그 녀석 찌른 거 아니라고. 그 젓가락은 조원 그 새끼 거야.”

“조, 조원 몸에 꽂혀 있었잖아?”

“나한테 젓가락들고 달려들길래 막다가 그렇게 된 거야. 본인이 본인 찔렀어.”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송송태를 쳐다보았다.


“그, 그렇다고 내 원고지를 찢은 것 때문에 네가 싸울 필요는 없는데.”

“그것 때문에 싸운 건 아닌데. 그 새끼가 또 내 빤스 입고 있어서 그게 시작이었어.”


나는 황당한 얼굴로 송송태를 노려보았다.


“그러면 내 원고지는 왜 찢긴 거야?”

“빤스 때문에 말다툼하는데 갑자기 조원 그 새끼가 네 사물함 열던데? 참고로 네 것만 찢은 건 아니다. 내 것도 찢었어.”

“원고지는 왜 찢었는데?”

“우리만 특혜 받는 게 꼴같잖대. 뭐, 제대로된 이유가 있겠냐?”


나는 망연자실했다.

결국 빤스 때문에 둘이 싸우다가 내 원고지가 찢김 당했다는 거 아닌가.


고래 싸움에 새우등.

아니, 빤스 싸움에 원고지가 찢어진 샘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 몇 일이야.”

“9일.”

“9일? 9일이라고!? 왜 9일인데!?”

“네가 수술받고 지금 일어났으니까?”

“넌 왜 여기 있는데?”

“마침 원장님이랑 같이 면회왔으니까?”


녀석의 태연한 표정에 나는 열불이 났다.


그리고 송송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실의 문이 또 한 번 열렸다.

강정운이 나를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동주! 이, 이제 일어났나!?”

“제 원고 진짜 그냥 다 찢어진 거예요?”

“지금 원고가 중요한 게 아니야. 수술 받고 며칠 만에 일어난 건지 알아!?”


나는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고작 나의 몸상태 따위가 아니었다.


“마감이 4일 남았어요.”

“뭐, 뭐라고?”

“병원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지금부터라도 새로 원고 써야겠어요.”


송송태와 강정운이 나를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송송태가 말했다.


“장난하냐? 포기해. 어차피 마감 4일 남았다며. 너 못 써. 그 원고 네가 한 달 넘게 붙잡고 있던 거야.”


강정운이 송송태를 옆에서 거들었다.


“그래. 작가는 자기 건강 관리하는 것도 중요해. 4일 안에 쓰는 건 무리야. 그것도 이제 막 일어난 상태인데.”


나는 단호하게 다시 고개를 저었다.


“원고지랑 펜 좀 갖다주세요. 제발! 빨리요!”


**


유동주가 병원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그때.


경덕관은 무진에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무진항에서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도착하는 작고 고요한 섬.


그 섬에서도 가장 외곽에 속하는 변두리의 집 한 채로 경덕관은 고된 걸음을 옮겼다.


“도대체 이 깡촌에서 뭘 하자는 게야!?”


성미 사나운 노인의 목청이 조용한 섬마을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주황색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서 경덕관과 하관이 엇비슷하게 닮은 사내가 걸어나왔다.


“아버지가 이곳엔 웬일이십니까?”


경덕관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 사내를 타박했다.


“너는 20년만에 본 애비한테 할 말이 그것 뿐이냐!?”

“그러는 아버지께서는 20년 만에 본 아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시는군요. 여전하십니다.”


사내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직 차가운 섬의 4월 공기마저도 사내의 음성보단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내가 고개를 수그리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평생 아들 취급도 안 하시던 분이 무슨 바람이 불어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소율이 태어났다고 전화드렸을 때 아버지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나 나십니까?”


경덕관은 별말없이 제 아들의 얼굴을 쳐다만 봤다.

사내가 입술을 꽉 깨물며 답했다.


“‘누구시죠?’라고 딱 네 마디 하셨습니다. 그러고 연락 끊으셨잖습니까.”

“내, 내가 그랬냐?”


사내는 싸늘하게 경덕관을 노려보았다.

그는 착잡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렇게 아들이 원망을 할 때는 미안하다고 하는 겁니다. 정말로 그 일이 기억이 안 나더라도요.”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내는 말을 하지 않았다.

차가운 봄바람이 두 사내의 가운데를 가로지를 뿐이었다.


한참이나 부는 광풍 속에서 먼저 입을 뗀 것은 덕관이었다.


“미안······하다. 그때는 이 애비도 너무 젋었어. 혈기가 왕성했다. 그땐, 그렇게 떠난 네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제서야 덕관의 아들은 볼 수 있었다.

세월이 내려앉은 노인의 얼굴을 말이다.


흰 백색이 내려앉은 머리카락, 주름이 자글하게 들이찬 낯빛, 무엇보다 평생 ‘사과’라는 걸 모르고 살던 제 아비의 순순한 모습까지.


덕관의 아들 철진은 잠시 침묵했다.

용서할 수 없지만, 그저 미워할 수도 없는 마음 사이에서.


경철진은 마침내 말했다.


“들어오세요. 날씨가 찹니다.”


덕관은 철진의 뒤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은 방을 가진 집이었다.


조각상이 길게 양쪽으로 늘어선 복도는 중세의 왕궁을 연상케했다.

경덕관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역시 철진이 네가 예술적 재능이 있어. 내가 너 젊을 적부터 말하지 않았느냐.”


그 말에 경철진의 속이 화르륵 다시 불타고 말았다.


“아버지. 제가 원했던 건 예술이 아니라 회사일이었어요!”

“뭐, 뭘 화를 내고 그러냐.”

“아버지는 늘 그러셨죠. 왜 화를 내냐고. 저의 진정한 재능을 알라고요.”


철진은 덕관을 다시 노려보았다.


“제가 원했던 건 예술가로서의 삶이 아니었어요.”

“겨, 결국 소설가는 아니지만 이렇게 조각가로서 살고 있지 않느냐. 네가 가진 재능은 지, 진짜야.”


철진은 덕관을 보며 재차 화를 냈다.


“제 재능이 아니라 제 꿈을 알아주시라고요. 아버지가 대체 뭔데 제 재능을 평가해요. 아버지가 저의 교수님은 아니잖아요.”


경덕관은 입을 다물었다.

세상 모두에게 존경받는 그였지만 아들만큼은 제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저 아들의 문학적 재능을 마음껏 꽃피우게 하고 싶었다.

회사니, 경영이니 골치 아픈 것은 다 자신이 맡고, 자신의 아들 철진은 예술가로서 살기를.


하지만 덕관은 정작 철진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경덕관이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었다.


덕관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만 푹 수그렸다.

잘 해보려고 이곳까지 찾아왔는데 어쩐지 엉망이 되는 느낌이었다.


“미안하다. 여기까지 온 것도, 그때 네게 그렇게 한 것도, 이 아비가 다 미안하다.”


그 말만 남기고 돌아서는 경덕관을 누군가 막아섰다.

경덕관, 경철진과 하관이 무척 닮은 한 여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이제 막 이십대 후반 정도 됐을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덕관은 바로 알아보고 말았다.


“네, 네가 지연이냐?”


그녀는 희미한 웃음과 함께 덕관을 바라보았다.


“네. 제가 경지연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할아버지.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나, 나를 보고 싶었다고?”

“네. 아빠가 할아버지 얘기를 얼마나 많이 하는데요. 제가 할아버지를 너무 닮았다고 타박하세요.”


경덕관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실실 미소를 띠우고 말았다.


평생 늦둥이 아들 하나만 낳아 키운 그였다. 70이 되어서 손녀를 만날 줄이야.


그리고 그 손녀가 자신을 보고 싶었고, 닮았다고 하다니.

경덕관은 말했다.


“아니, 얼굴은 나를 닮은 데가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뭘 닮았다는 게냐. 할애비는 이렇게 예쁘지가 않은데! 하하핳. 허허허헣!”


철진이 덕관과 지연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연이가 쓴 글도 한 편 못 보셨습니까?”


그 말에 덕관의 눈에 총기가 돌았다. 세상의 모든 햇볕이 순간 그곳에 모였다.


“당연히 봤지. 나를 위원장으로 여기까지 초빙한 당돌한 젊은 문인이 누군가 궁금해서 말이야.”


덕관은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지연에게 물었다.


“그 문학제 준비는 잘 되어가고?”


철진은 지연 대신 덕관을 향해 말했다.


“지각한 후원위원장님 말고는 다 잘 돌아가지요. 구칠월문학상 심사도 곧 시작할 겁니다.”


철진의 말을 들은 덕관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후원위원장이 올 필요나 있나. 그래, 아무튼 잘 돌아가야지. 안 그래도 기대되는 놈이 여기 문학상에 투고할 거라고.”


경지연이 경덕관의 말에 관심을 표하며 물었다.


“기대되는 작가가 있으세요?”



작가의말

12화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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