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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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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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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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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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DUMMY

19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희망의날은 끝났다.

다음날, 고려일보 1면을 뜨겁게 달군 것은 유동주의 인터뷰였다.



[현직 판사 폭행의 전말 : 그래서 그날엔 무슨 일이 있었나!?]



유동주는 원장실에서 못 마땅한 얼굴로 신문을 노려보았다.

자신과 박서완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1면이 영 못 마땅했다.


“이런 일로 특종이라니 달갑지가 않네요.”


강정운이 유동주가 들고 있던 신문을 뺏어들었다.


“그럼 내놔라. 왜 원장실에 배달된 신문을 동주 네가 읽고 있어.”


강정운은 유의깊게 신문을 노려보았다.


[현직 판사 폭행 사건의 진실: 그래서 그날엔 무슨 일이 있었나?


고려일보 | 202X년 X월 XX일


지난 3개월 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소년원생 유동주(17)가 구칠월문학상을 수상하며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수상보다도 3개월 전 현직 판사를 폭행한 사건의 전말이 어제 밝혀지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유동주의 친구 박서완(18)은 수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피해자였다. 박서완의 아버지 박길춘(49)은 현직 부장 판사로, 집안에서 아들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행사해왔다.


급기야 박서완 군은 지난 봄 아버지에게 당한 폭력으로 전신마비에 이르는 큰 부상을 입었다.


문병 중 그 사실을 알게 된 유동주는 친구의 아버지를 폭행하고, 9호 처분으로 소년원에 가게 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해당 사건의 진실이 박길춘의 사주를 받은 재판부와 일부 언론에 의해 은폐되었다는 것이다.


사건 당시 박길춘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고 유동주를 묻지마 폭행범으로 만들었다.


또한, 여러 시사 프로그램과 매체도 박길춘 판사의 영향력 아래 사건을 보도하지 않거나 왜곡된 보도를 했다.


고려일보는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다각도로 취재를 진행해 마침내 사건의 전말을 공개할 수 있었다.


유동주는 인터뷰에서 "단지 친구를 지키고 싶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숨겨진 진실을 밝히고 싶었습니다."라 말했다.


아울러, 박길춘은 오랫동안 지속한 가정 폭력을 은폐한 의혹에도 시달리는 중이다.


그가 거주하던 지역 파출소에선 담당 경찰관들이 'VIP'라고 박길춘의 자택을 명시하며 일부러 출동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취재가 시작된 후, 서울중앙법원 감사팀은 해당 사건에 대한 감찰 및 재수사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전해왔으며, 박길춘 부장 판사의 직무는 일시 정지되었다 통보했다.]


강정운이 신문을 탁상에 내려놓았다.

뜻을 알 수 없는 미소가 그의 얼굴에 맴돌았다.


“유동주, 경덕관 선생님에게 전해듣기는 했지. 협조를 해달라 해서 인터뷰 장소도 마련은 해주긴 했지만······.”


잠시 망설이던 강정운이 유동주의 어깨를 두드렸다.


“많이 힘들겠구나.”


유동주는 강정운의 무심한 표정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렇다.

유동주는 지금 힘들었다.


친구의 아버지를 세상 만천하에 고발하고, 아픈 벗을 이곳에 불러 인터뷰까지 시켰다.


경덕관과 손은풀의 조언에 따랐긴 했지만, 전적으로 유동주의 선택이었고, 유동주의 결정이었다.


동주가 정운을 보며 답했다.


“제가 감당해야죠. 어쨌거나 저는 지금 흉악 소년범이잖아요. 하하. 하하핳.”


유동주는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그는 생각했다.

그래, 유동주로서 감당할 일들이 있다면 마땅히 이겨낼 것이라고.


잠시 숨을 고르던 동주가 벌떡 일어나 소리 질렀다.


“아씨, 이제 진짜 소설이나 쓰고 싶다!!!”


유동주는 벌떡 일어나 문학실을 향하려 했다.

그러나 정운이 웃으며 동주를 제지했다.


“아니야. 희망의날이 끝났다고 모든 게 끝나는 줄 아느냐.”


동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강정운을 쳐다보았다.


“왜요? 뭐가 또 있어요?”

“가자. 서울로.”

“서울은 왜요? 아니, 나 소년원생인데?”

“특별 외출. <문학나무> 출판사에 가서 계약하고, 수상작을 책으로 출간해야지.”


유동주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강정운을 쳐다보았다.




19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무진에서 서울까지 가는 길은 총 다섯 시간이 걸렸다.


무진에서도 가장 외곽에 위치한 무진 소년원이었기에 여정은 더욱 길고, 험난했다.


강정운은 어쩐지 들뜬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유동주가 못 마땅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휴, 휴게소 좀 들러요! 벌써 3시간이나 달렸다고요!”

“하긴 이제 밥 먹을 시간이구나.”


잠시 네비를 쳐다보던 강정운이 운전대를 꺾었다.

이제 겨우 충청도였다. 갈 길은 2시간이나 더 남아있었다.


유동주는 들뜬 표정으로 휴게소를 향해 달려갔다.

영락없는 10대의 그것이었다.


“원장님, 통감자 안 드세요?”

“너 다 먹어라.”


동주가 먹는 모습만 보아도 어쩐지 배가 부른 강정운이었다.

정운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동주가 계속 그를 채근했다.


“에이, 감자가 여섯 개인데? 진짜 저 다 먹어요? 화장실도 안 가요?”

“우리 놀러가는 거 아니야. 빨리 먹어. 간식 먹고선 식사도 해야지.”

“감자 여섯 개에, 만주에, 소떡소떡까지 먹었는데, 식사를 또 하자고요?”


동주는 기함을 했다.

정운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동주를 쳐다보았다.


“당연하지!”

“원장님은 진짜 화장실 안 가도 괜찮아요!?”

“너 밥부터 먹여야지!”


사실 정운은 지금 초긴장 상태였다.

근 몇 십 년 간 무진에서만 세월을 보낸 정운이었다.


긴장감에 정운은 화장실에 갈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간만에 올라가는 서울이었다.

게다가 모든 문학인의 꿈인 강변출판단지가 목적지라니.


정운은 마음이 두근거릴 수 밖에 없었다.



**



어느덧 긴 드라이브가 끝나고 강변 옆으로 한 도시가 모습을 드러내보였다.


“출판단지는 처음이냐? 앞으로 많이 올 곳이니 구경은 차차 해라.”


유동주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차창 밖을 기웃거렸다.

키 낮은 건물들은 알프스 어느 마을을 삽으로 떠서 옮긴 듯했다.


“이야, 진짜 대단하네요. 그러니까 이 모든 건물이 출판사에요?”

“그렇지. 여기 입주한 출판사는 모두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업체들이야.”


강정운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랑했다.

마치 출판단지가 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잠시 숨을 고른 정운이 제 뿌듯함의 이유를 동주에게 밝혔다.


“그러니까 유동주 너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출판사와 미팅을 하러 가는 거다.”


유동주는 강정운의 표정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자신을 자랑스레 여기는 중늙은 남자의 표정을.


유동주는 새삼스레 강정운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이 사람도 이제 나한테 참 고마운 사람이지.’


동주는 어쩐지 그의 얼굴에서 전생의 스승들을 떠올렸다.

북간도, 경성, 교토와 수많은 배움의 나날을.


유동주는 운전석에 앉은 강정운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의 입에서 문득 진심이 담긴 인사가 흘러나왔다.


“감사합니다. 전부 다 원장님 덕분이에요. 진심으로요.”


중늙은 남자의 두 볼이 희미하게 달아올랐다.

그 남자의 입에서 마음에도 없는 쓴소리가 나왔다.


“에이, 뭘! 다 네가 잘 해서 그렇지! 나는 널 호송하러 온 호송인이야!”


유동주는 답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5층짜리 단출한 빌딩이 나타났다.

거대한 플라타너스를 휘하에 둔 주황색 벽돌 건물이었다.


“여기가 문학나무에요?”


건물 앞엔 <문학나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서 있었다.

강정운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그, 그렇지. 자, 잠깐만 차에서 좀 기다리고 있을래?”


그렇게 말하는 강정운의 표정은 황토색 흙빛이었다.


“화장실, 화장실을 좀 다녀오마. 내 정신도 참······. 화, 화장실을 들렀어야 했는데······.”


강정운은 아랫배를 부여잡고 문학나무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혼자 조수석에 앉은 유동주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거참, 정신없는 양반이라니까.”


잠시 차 안에서 땡볕을 견디던 동주가 차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출판단지는 강변을 바라보고 있었고, 출판사와 출판사 사이에 수많은 나무가 있었다.


출판사만 있는 도시여서 그런지 건물에선가 희미한 종이 냄새가 번지는 듯도 했다.


“출판사만 있는 동네가 전생의 경성보다도 근사하구나.”


유동주는 이전 생의 경성을 떠올렸다.

전쟁을 맞이한 경성은 곤궁하였다. 책은커녕, 쌀밥과 반찬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지금은 다르다.

세상은 변한 것이다.


지나온 길에 슬쩍 옆으로 쳐다본 서울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대도시였다.


유동주의 지식으로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눈으로 보니 새삼스래 더 놀라웠다.


게다가 이젠 책만 취급하고, 다루는 동네가 번 듯이 하나의 도시로 세워져있다.


‘나라가 정말 많이 변했어.’


유동주는 회한에 잠긴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때, 동주의 주변으로 다가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뭐야. 너 뭔데 우리 회사 근처에 얼쩡거려?”


유동주는 자신을 향해 반말하는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이제 겨우 30대 중반 정도 됐을까.


이전 생의 자신을 생각하면 고작 열 살 정도 더 많은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반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동주는 차분히 대답했다.

어쨌거나 지금 자신은 10대니까 말이다.


“저요? 미팅하러 왔는데요?”


그런데 동주의 대답에 상대가 코웃음을 쳤다.


“허, 미팅을 왔다고? 인마, 무슨 네가 미팅을 와. 너 혹시 여기 주차장에서 담배 피웠어? 여기 좀 와봐. 요즘 꽁초가 많이 보인다 했다.”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급기야 한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동주를 불러세웠다.


“와보라니까!”


동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그냥 몸이 찌뿌둥해서 차에서 잠시 나왔을 뿐이다.


“너 인상 찌푸려? 남의 회사에 멋대로 들어와 놓고 뭘 잘했다고! 야, 여기 사유지야!”


남자의 고함이 동주를 또 한 번 덮친 그 순간, 누군가 두 사람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전 팀장, 왜 그래?”

“아, 편집장님. 별거 아닙니다. 왜 요즘 주차장에서 누가 몰래 담배 피우고 꽁초 버리잖아요. 그 범인 잡은 것 같습니다.”

“담배꽁초?”

“아, 네!”


편집장이라 불린 사람이 유동주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유동주와 그 옆에 선 차량을 번갈아 향했다.


“전 팀장, 아무래도 사람 잘못 본 것 같은데······.”


편집장은 유동주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가볍게 허리를 숙이며 악수를 청했다.


“유동주 작가님이시죠?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정운 원장님이 주차장에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유동주 작가.

그 이름 석 자에 전 팀장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유, 유동주요? 아, 그 오늘 미팅하러 오신다는 작가님?”


편집장이 전 팀장을 무시한 채 유동주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죄송합니다. 회사에 작가님 오시는 사실은 공유했는데, 얼굴을 잘 몰라서 실수한 듯합니다. 회사를 대표해 사과드리겠습니다.”


문혁수 편집장이 유동주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가 싸늘한 눈빛으로 전 팀장을 흘겨보며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들이 책벌레라 세상사 어찌 돌아가는지 영 관심이 없습니다.”


유동주는 문혁수를 향해 손사레를 쳤다.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오해하실 수도 있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혁수는 유동주를 정중한 손짓과 함께 회사 안으로 이끌었다.

주차장에 남겨진 전 팀장에게 한 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전 팀장은 나중에 시간 편할 때 내 방으로 잠깐 와.”


유동주와 문혁수가 출판사 안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에 혼자 남겨진 전팀장이 창백한 얼굴로 머리만 긁적거렸다.


“아씨, 저 꼬맹이가 무슨 작가라고? 그러면 구칠월 수상자가 진짜 저 애라고!? 아니, 작가가 진짜 10대였어!?”


전 팀장은 속이 심란했다.


“세상사 돌아가는 거에 워낙 관심이 없다는 거 그거 나 말하는 거잖아? 아씨, 진짜.”


아무리 머리를 박박 긁어도 이미 떠난 버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작가의말

19화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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