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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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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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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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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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DUMMY

13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나는 다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강정운은 만류하면서도 내게 원고지를 가져다 주었다.


“4일 안에 해볼 거야. 어떻게든.”


병실 창밖에선 보름달이 눈을 밝히고 있었다.


그래, 해보자. 아직 병원을 못 벗어난 처지지만 오히려 괜찮은 상황일 지도 모른다.


소년원에 갇혀있는 것보단 병원에 있는 것이 더 자유롭고 좋은 환경이지 않은가.


하지만 움직일 때마다 배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흐으으읍.”


글을 쓸 때마다, 복부의 상처가 쓰려왔다.


4일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과연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

나는 왜 굳이 4일 안에 이 글을 완성하려고 하는 걸까.


-스걱서걱


볼펜이 원고지를 스치는 소리가 내 귓가를 스쳤다.


어쩌면 강정운이나 송송태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

건강이 회복된 후 다시 집필하는 것이 나에게도, 이 소설에도 더 좋은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당대의 대작가에게 글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날린다고?


안다.

내가 하는 짓이 무모한짓이라는 걸 말이다.


결심이 약해질 때마다 나는 이전 생의 삶을 떠올렸다.

북간도에서의 마지막.

교도관이 나를 말릴 때에도 나는 원고지에 소설을 써나갔다.


목숨이 촌각을 다투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되뇌이면서.


“스으으읍. 허어어.”


하지만 내 몸은 내 마음과는 달랐다. 식은땀이 이마에 흘렀다.

눈앞이 희미해지고, 어지럼증이 격해졌다.


“아씨, 왜 이러는 거야. 진짜.”


나는 링거병을 링거대에 꽂고 잠시 병실 복도로 나왔다.

바람이라도 쐬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지고, 눈앞이 흐려졌다.


“어, 어, 어어어!!”


나는 링거대를 놓치고 순간 주춤 넘어질 뻔했다.

그런데 그때 내 팔을 잡아채는 사람이 있었다.


-터억!


날 붙잡은 건 복도에 앉아있던 한 장년의 남자였다.

그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러세웠다.


“어디가나. 유동주.”


그는 강정운이었다.

제길.

원장이 왜 새벽에 여길 지키고 서있는 거야.


“아직 안 가셨어요?”

“소년범 혼자 입원시켜놓고 교도관도 파견을 안 했을까봐? 냅뒀으면 혼자 복도에서 실신을 했겠구나.”


강정운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아, 아, 아하하. 그런데 왜 원장님이 직접 여기를 지키세요?”

“무진소년원에서 제일 한가한 게 나다. 다른 선생님들은 바빠.”


강정운은 병원의 찬 불빛 아래 파리하게 서있었다.

주름살 자글한 낯빛이 나에게 물었다.


“설마 아직까지 글을 쓰고 있던 게야?”


나는 순사에게 취조라도 당한 사람인양 몸을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본 강정운이 미간을 찡그렸다.


“뭐, 작가란 놈들이 말을 잘 듣는 꼴을 본 적이 없긴 하지.”


강정운이 내 팔을 부축하더니 나를 병원 로비로 이끌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여기 앉아 있어라. 그래, 뭐 너도 병실에만 있으니 오죽 답답하겠어.”


나를 로비 의자에 앉힌 강정운은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왔다.

그가 들고온 음료를 보고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니, 무슨 음료를 이렇게 많이 뽑아오셨어요.”


그는 자판기에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음료를 뽑아왔다.

강정운은 무심한 목소리로 답했다.


“뭐,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거 밖에 없구나.”


강정운은 쑥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내 곁에 앉았다.

그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게 부담스러웠다.


“유동주.”

“네?”

“집이 많이 어렵다지.”


그는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왔다.

집이 ‘어렵다’라.


나는 달바다촌에 있는 내 가족들을 떠올렸다.

비탈진 고개를 넘어가면 10평이 채 되지 않는 집에 5명이 모여사는 우리집이 나온다.


그런 집은 남들이 보기에 ‘어려운’ 집일테지.

나는 강정운에게 답했다.


“뭐, 돈 사정을 말한다면 어렵긴 하죠.”


내 말을 들은 강정운은 생각에 잠긴 눈으로 한참을 아무 말이 없었다.

그가 말했다.


“이제라도 공부를 좀 해보는 것은 어떻냐. 글만 써서는 먹고 사는 게 쉽지 않아.”

“공부요?”


강정운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공부라.

윤동주로 살았던 옛날의 생에선 지나칠 만큼 공부를 했다.


그러나 이번 생에선 그 전생을 억울해 하는 것 마냥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학교 공부를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머릿 속에 혼재된 기억이 복잡했다. 전생엔 일어, 영어, 한국어를 했고 어느 정도 교과공부도 했었지.


하지만 너무나 아득히 예전의 기억이었다.

그런데 강정운이 생각에 잠긴 내게 말을 이었다.


“공부를 해서 문학 외 본업도 가지는 거다. 우리나라에선 책을 읽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일본에서야 아직도 시, 소설이 잘 팔린다고는 하지만.”


나는 강정운의 얘기에 불쑥 호기심이 동했다. 문학이 안 팔리는 건 현생의 기억으로 대충은 알고 있었다.


책 잘 안 읽는 거야 공부 못 하는 나도 알 만큼 상식이니까.


한데, 일본에선 시, 소설이 아직도 잘 팔린다고?


“원장님, 일본에선 문학이 아직 많이 읽혀요?”

“우리보다야 훨씬.”

“그래요?”

“응. 우리 작가들 책도 일본에 많이 건너가곤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쓰는 작품의 주인공 윤동주 시인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로 읽힌다고 하더구나.”


나는 뜻밖의 얘기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제 시가, 아니, 그러니까 윤동주 시인이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라고요?”

“응. 몇 해 전 뉴스에서 그렇게 보았다.”


강정운은 음료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괜한 얘기를 했구나. 문학이 뭐 돈이 되어서 하겠니.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 원래 나처럼 늙은 아저씨들은 걱정이 많은 법이다.”


강정운이 나를 병실로 가라고 일으켜세웠다.

하지만 나는 강정운이 흘리듯 남긴 말 한 마디에 꽂혀있을 뿐이었다.


‘일본에서 내 시가 많이 읽힌다니. 지금 내가 쓴 시도 과연 많이 읽힐까?’


일본에서 글을 발표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러 생각과 고민 속에서 나는 병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일단 지금에 집중하기로 했다.


남은 시간은 4일.

내가 해내야 하는 건 지금 당장의 소설이었다.





13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마침내 유동주와 경덕관이 약속한 시일이 찾아왔다.


이곳은 무진소년원의 원장실.

경덕관은 진중한 표정으로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내가 섬에서 어제 나왔어. 자네 연락도 지금 봤네. 진즉 확인했다면 그 아이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일렀을텐데.”


노인의 표정엔 답지 않은 근심이 어려있었다.

덕관의 맞은편에 앉은 정운이 답했다.


“어차피 그 애는 선생님이 그렇게 일렀어도 말을 안 들었을 겁니다.”


강정운의 위로에도 경덕관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자책하는 고갯짓이었다.


“아니야. 이 늙은이가 욕심을 부렸지. 아직 한참 어린애인데 얼른 세상에 꺼내주고 싶었어.”


강정운이 경덕관의 상심한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가 조심스럽게 덕관에게 물었다.


“어차피 이번에 준비하시는 구칠월문학상은 기성 작가도 다 참여 가능한 문학상 아닙니까?”

“그렇지. 지망생, 기성 작가 구분없이 참가할 수 있지.”

“게다가 큰바다문화재단이 주관하고 KH그룹에서 후원한다면서요? 상금이 1억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경덕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정운은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제 스승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 아이가 뛰어난 문재라지만 그런 큰 대회에서 바로 상을 탈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들은 경덕관은 강정운을 힐끗 바라보더니 실없이 웃었다.


“허헣!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나도 그냥 감투만 쓴 거야. 대회 꼴이 어찌 돌아가는지, 심사위원이 누군지도 모르지. 그 애가 상을 탈지, 안 탈지는 더더군다나 모르고!”


경덕관의 너스레에 강정운이 실소를 머금었다.


“아니, 그러면 도대체 왜 오늘까지 쓰라고 시키셨습니까?”


경덕관이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났다. 그는 원장실에서 복도쪽으로 난 창문을 바라보았다.


“강정운 원장. 저기 창문에 창살이 걸려있지 않은가.”

“그렇지요. 아무래도 이곳은 소년원이니까요.”


경덕관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이곳은 소년원이지. 그래서 그 아이한테 기한을 줘본 거야.”

“그래서라니요?”


강정운은 의아한 표정으로 경덕관을 바라보았다.

덕관이 한심하다는 투로 답했다.


“자네는 소년원에서 교화가 되는 청소년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여기 나간 애들 중 몇이나 제 꿈을 이루며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는가?”


강정운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글쎄요. 교육이 목적이지만 쉽지 않지요.”

“그래. 근묵자흑이란 말이 있지. 결국 환경은 그 사람의 본질마저 변하게 해. 그래서 그 아이에게 한 번 도전을 해보라고 한 거야.”

“도전이요?”

“그래, 도전. 어디 한 번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이란 걸 해보아라. 그런 열정과 의욕으로 네 재주를 가꿔보아라. 그런 뜻이었지.”


스승의 말에 정운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결국 주변에서 아무리 도와주더라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스스로이다.


두 사람이 유동주를 두고 이렇다, 저렇다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유동주 자신의 노력이 없다면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경덕관이 한숨을 쉬며 강정운에게 대답했다.


“내가 그냥 좋은 그림을 나 혼자 그렸던 게지. 기한 안에 글을 완성하면 내가 평을 좀 해주고, 구칠월문학상에도 내보라 말하려고 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동기 부여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


한숨을 마저 내쉰 덕관은 짐을 챙겼다.


“나는 가겠네. 엇갈리는 것도 운명인 게지. 자네도 고생 많았어.”


경덕관은 손님용 의자에 놓인 가방과 자신의 모자까지 챙겼다.

강정운이 제 스승을 배웅했다.


“이렇게 몇 번이고 신경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니야. 뭐, 늙은이 기행이었다 생각하게. 또 보자고. 그 아이도 볼 수 있으면 보고. 다음에 올 때는 출소해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경덕관이 쓸쓸한 목소리로 원장실을 나가려던 바로 그 순간.


그 노인의 눈앞을 덮치듯 원장실의 문이 벌컥 열어 젖혀졌다.

동시에 큰 목소리가 원장실에 쏟아졌다.


“워, 워, 원고 완성했어요!!!”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바로 유동주였다.

경덕관과 강정운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덕관이 말했다.


“에잉. 이제서야 원고를 들고 왔다 이 말이야!? 늦었어, 이 녀석아!!”


하지만 덕관은 동주 손에 들린 원고지를 허겁지겁 낚아챘다.

두툼한 원고지 뭉치가 노인의 손에 쥐어졌다.

그런데 강정운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동주, 괜찮나! 안색이 안 좋은데!?”


강정운의 말이 사실이었다.

유동주는 마치 백치처럼 안색이 창백했다.


귀신처럼 파리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만 띄울 뿐이었다.


“그, 그게 중요해요. 빨리 원고나 읽, 읽어주세요.”


그리고 그것이.

유동주가 그 자리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털석!!


유동주는 그 말을 끝으로 그대로 원장실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작가의말

13화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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