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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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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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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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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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DUMMY

15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이곳은 구칠월섬.


본래 무량도란 이름으로 불리던 이 한적한 섬은 100년 전 이곳에 탄생한 한 작가의 업적 탓에 이름을 개명당했다.


그러나 그건 정작 이 바다에 사는 어부들과 전혀 무관한 딴 세상 이야기일 뿐.


무량도니, 구칠월섬이니 바다는 바다고, 섬은 섬이요, 파도는 파도다.


어부들은 구칠월문학관이 소란스럽게 지어진 것 외엔 구칠월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말이다.


“이야, 작가 선생님들이 정말 이곳에 와글와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구칠월섬의 이장은 제 고향의 유일한 명물인 구칠월문학상의 심사를 거들고 있었다.


낮인데도 막걸리를 얼마나 들이마셨는지 얼굴이 불콰했다.


“꺼, 껄껄껗!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만 하십시오! 우리 섬에 이렇게 유명한 양반들이 많이 모인 건 처음입디다!”


이장의 호탕한 웃음과는 달리 구칠월문학관엔 적막하고 살벌한 기운만이 감돌았다.


세 문인이 뿜어내는 흉흉한 기운에 이장은 짐짓 걸음을 뒤로 하고 말았다.


“하, 하핳. 그러면 저는 이만!”


탁상 가운데 앉은 한 노작가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어찌나 큰소리를 내는지 입고 있는 개량한복이 펄럭일 정도였다.


“아무리 구칠월문학상이라지만 꼭 이 섬에까지 심사위원을 불러 야 돼? 작품도 다 변변찮구먼.”


경덕관의 손녀.

또한, 구칠월문학상의 운영위원이기도 한 경지연이 그 노작가를 달랬다.


“이번에 탄생 100주년이잖아요. 시에서도, 이곳 섬에서도 기대가 많아요. 다들 오신다고 해서 얼마나 기뻐하는데요. 이런 훌륭한 문인들을 모셨다고요.”


경지연은 지나칠 정도의 립서비스를 건넸다.

그걸 들은 노작가는 만족스럽다는 듯 안색이 펴졌다.


“그렇지. 하하하학! 내가 훌륭하지! 훌륭하고 말고! 근데 왜 조직위원장은 경덕관 그 노친네를 맡겼어!?”


노작가의 짓궂은 농담에 경지연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

지연의 난처함을 처리해준 건 그 맞은편에 앉은 중년 문인이었다.


“아, 노친네들 또 이러네. 조직위원장이 뭐가 중요해요. KH에서 돈을 따왔으니까 당연히 KH 사람이 조직위를 맡는 거지!”


성질을 벌컥 낸 것은 문학평론가 우공진이었다.

그가 노작가를 다시 몰아세웠다.


“심사나 후딱 보고 회나 뜨러 갑시다. 노친네들 라이벌 경쟁은 언제까지 하는지 모르겠네.”

“네놈은 아직도 어른 공경은 개떡으로 아는구나!”


노작가는 우공진에게 호통을 쳤다.

그는 경덕관을 숙명의 라이벌로 여기는 박철민이었다.


탁상 가장 오른편에 있는 중년의 여성 문인은 둘을 무시한 채 경지연에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중견 소설가 곽선우였다.


“이 인간들 다 놔두고 지연 작가도 가봐요. 뭐, 항상 싸우는 사람들이야. 심사 끝나면 연락 드릴게.”


경지연이 어색한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하, 하하하. 필요한 거 계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경지연이 조심스럽게 문학관의 문을 닫고 나갔다.


심사위원이 앉은 탁상 너머엔 통창이 있었고, 거기엔 바다가 출렁였다.

박철민 몰아치는 파도를 향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은 상금이 1억이라는데 어쩌면 당선작을 못 낼 수도 있겠어.”


박철민의 말에 곽선우가 재밌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건 그거대로 재미 아니겠어요. 그나저나 원래는 상금이 3천 이잖아요. 4배 넘게 증액이라니 대단하네. 경덕관 선생님이 조직위원장 맡을만 하네요.”


우공진이 눈앞에 놓인 작품을 성의없이 넘겼다.

그가 따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여간 돈이 최고야. 돈이 안 되면 작품성도 의미가 없다니까. 그나저나 이번 당선자는 확 주목받겠네. 대한민국 역대 최고 상금이라니. 아, 부럽다. 나도 소설이나 쓸 걸.”


공진의 실없는 발언을 철민과 선우가 동시에 제지했다.


“쓰면 뭐 탈 줄 아나!?”

“소설이 그렇게 만만한 건 아니죠.”


두 소설가의 합동 공격에 우공진이 합죽이가 되었다.


“평론가 서러워서 살겠나. 큼. 큼. 그나저나 공모작도 진짜 많네요.”


곽선우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숫자도 역대 최고라던데요? 구칠월문학상 반세기 역사상 가장 많다네요.”


우공진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원고를 힐끗 노려보았다.


“우와. 우리 어깨가 무겁네. 무거워.”


그런데 두 사람의 호들갑과 달리 박철민은 한숨을 내쉬며 원고 뭉치를 한편으로 밀어버렸다.


“심사 끝.”


곽선우가 놀란 목소리로 박철민을 바라보았다.


“벌써 심사 끝나셨어요? 선생님이 가장 많이 가져가셨잖아요?”

“흥. 뭐, 볼 게 없어. 결선 보낼 게 하나가 없구먼. 실험을 가장한 무실력!! 그냥 뻔하고 따분한 이야기!! 다 형편없어!! 소설가라면 정신이 느껴져야지! 정신이!”


우공진과 곽선우가 ‘아무렴 어련하겠어’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는 두 사람도 흥미를 끄는 원고를 찾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곽선우가 박철민의 오른쪽에 놓인 원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님, 원고 하나 더 남으신 것 같은데요? 어쩌나, 우리 선생님 빨리 끝내고 낚시나 가시려고 했던 것 같은데.”

“뭐, 원고가 아직도 남았어!?”


박철민이 짜증 섞인 눈으로 구석에 있던 원고를 집어들었다.


“이거 뭐, 제일 꼴찌로 낸 원고인가보네. 맨 밑에 깔려있어서 못 봤구먼. 쯧쯧. 꼴등으로 낸 원고가 뭐 좋겠어?”


곽선우와 우공진이 박철민의 원고를 힐끔거렸다.

그 원고의 제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였다.


우공진이 박철민의 말에 성의없이 맞장구쳤다.


“그렇네요. 제목부터가 그냥 그런데요? 윤동주의 시를 가지고 제목을 짓다니. 허참. 그렇게 해서 될 거라고 생각하나.”


그런데, 원고를 읽던 박철민의 눈이 점점 휘둥그레졌다.

그는 진지한 눈으로 빠르게 원고를 넘겨갔다.


어찌나 심각한 얼굴로 원고를 읽던지 다른 두 심사위원의 눈길을 잡아 끌 정도였다.


우공진이 박철민을 향해 말헀다.


“그렇게 엉망이에요?”


박철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말 걸지마. 결선에 보낼 작품 찾았으니까.”


박철민은 두 심사위원은 신경도 쓰지 않고 그 작품을 읽어나갔다.

마치 재밌는 소설 앞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어린아이처럼.


**


나는 난처한 눈으로 눈앞의 화면을 쳐다보았다.


이곳은 무진소년원의 문학실.

나는 송송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게 일본어를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말이야?”


송송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가상키보드 써야지.”


송송태의 절망스러운 발언에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냥 키보드도 어렵다. 그런데 가상 키보드는 또 뭐란 말인가.


“으으, 으아아아앙악! 일본어로 시 안 써!!”


송송태가 내 등짝을 가볍게 후쳤다.


-퍽!


“아, 시끄러 죽겠네. 유동주 쓰지마. 쓰지마. 내가 너 좋으라고 쓰라고 했지. 나 좋으라고 쓰라고 하냐!”

“다른 방법 없어?”

“아씨, 더럽게 귀찮게 구네!”


송송태는 내 노트북을 뺏어갔다.

잠시 환경설정을 조작하던 송송태가 노트북을 대뜸 내게 내밀었다.


“윈도우 설정 변경해서 일본어로 입력 가능하게 했어. 써봐.”

“오, 오, 오! 친구여!!”

“유동주 호들갑 금지.”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건드렸다.

그런데 역시나 세상에 쉬운 게 없다는 사실만을 깨달을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난 한글 타자도 겨우 치는데 일어 타자를 어떻게 쳐!”


송송태가 한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맞는 말이네.”


나는 문학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쉬었다.


시, 소설을 번역해서 일본 사이트에 올린다는 계획이 이렇게 실패로 돌아가는가.


“제대로 뭘 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접어야 되나······.”


나는 주저앉아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결정을 내렸다.


“소설은 번역해서 못 올리겠다. 대신 시만이라도 올리련다.”


송송태가 미심쩍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시는 가능하겠어? 지금 보니까 한, 두 글자도 힘든 것 같던데?”

“일단 종이에 손으로 번역을 하고 그 다음에 타자로 옮기면 되는 거지.”

“그렇게 해서 몇 편이나 올리게?”


나는 송송태를 향해 벌컥 성질을 냈다.


“이 자식이 언제는 해외 진출 하라더니 이제는 왜 그만두래!”

“아, 알았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리고.

그렇게.

꼬박 하루가 지났다.


아, 북간도에 계신 어머니.

그 곁에 가게 생겼습니다.


“으, 으, 으아아악.”


다시 문학실.

나는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시를 번역했다.


어제 방에 돌아온 뒤로 계속 내 시를 번역하는데 몰두했고.

날이 밝아서는 문학실에서 번역한 그 시를 입력하는데 몰두했다.


송송태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너 괜찮냐? 눈밑이 완전 까만데? 무슨 팬더인줄.”


나는 문학실 한편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 녀석의 말이 맞았다.


눈가로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와 내 얼굴은 그야말로 푸바오나 다름없었다.


“으, 으아아. 그래도 빨리 번역하고 싶단 말이야.”

“뭘 이렇게 서둘러?”

“너는 젊어서 모르겠지만 이 인생이란 게 생각보다 후딱 끝난다.”


송송태가 나의 말에 기가 찬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동갑 아니냐?”


그래.

너는 안 죽어봐서 삶의 소중함을 모르겠지.


인마, 나는 일분 일초가 아까워.


나는 송송태를 뒤로 하고 노트북에 시선을 처박았다.

그 녀석이 노트북을 같이 겨눠보며 말했다.


“뭐야. 벌써 시 올린 거야? 언제 올렸어?”

“한 2시간 전에.”

“올. 유동주 대박.”


그래. 대박이지, 대박이고야 말고. 나는 송송태의 말을 읽씹 하고 노트북을 다시 보았다.


“조회수 5······.”


나는 빠르게 나가레보시 리터러시를 새로고침했다.

조회수가 달라졌다.


“조, 조회수 6······.”


나의 처절한 비명에 송송태가 화면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네가 여기 게시글 올린 거야?”


나는 힘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니까 여기가 시를 올리는 카테고리인 거지?”


나는 역시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기 옆에 조회수고?”

“아, 그만 물어봐.”


송송태는 대뜸 내 노트북을 뺏어가더니 마우스를 내렸다.


“아, 이 사이트에서도 시는 많이 안 읽히네. 야, 소설 올리는 데도 들어가봐.”


뭐, 시가 잘 안 읽힌다고?

나는 송송태의 말에 소설 카테고리로 옮겨 들어갔다.

그 녀석의 말이 사실이었다.


[13

16

19

45]


비록 거의 무의미한 차이였지만 시에 비해 압도적인 조회수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네? 나랑 비슷하게 올라온 글들도 조회수가 2배 정도 되는데?”


나는 실망감과 함께 다시 내 게시물로 돌아갔다.

조회수는 여전히 6에서 멈춰 있었다.


나와 송송태는 절망의 늪에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렇게 말없이 1시간을 기다렸다.


“악플이라도 누가 달아주면 좋겠다.”

“유동주 너 막상 달리면 싫을걸?”


이후로 우리는 35번의 새로고침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36번째.

나는 소리를 질렀다.


“오, 오, 조회수 7됐어!”


나의 감탄에 송송태는 따분하게 이렇게 답할 뿐이었다.


“네가 눌러서 올라간 거 아니야!”

“아, 아, 아니야야야약!!!”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의 늪에서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내가 소리를 지르던 그때, 문학실 문이 열리면서 강정운 원장이 들어왔다.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송송태, 면회다.”


송송태가 의아한 얼굴로 강정운에게 반문했다.


“면회요? 저를요? 누가요? 올 사람이 없을 텐데?”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래.

드디어 왔구나.


내가 박서완에게 부탁했던 면회객이 드디어 온 것이다.


작가의말

15화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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