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20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나는 문학나무 회의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중앙엔 크지 않은 원형 테이블이 있었고, 5명 정도가 착석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제일 큰 출판사라고 하더니 회의실은 소박한데?”
회의실 한편엔 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햇빛이 번질 때마다 무언가 다른 색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나무지?”
내 중얼거림을 받아 대답한 것은 다름아닌 편집장 문혁수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가 나무를 가리켰다.
“우리 회사의 사목입니다. 금목서죠. 유럽 어디에선 금목서를 선물하는 것이 ‘우리는 잘 자랄 것이다’라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문혁수는 그 말과 함께 내 앞에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려놓았다.
“무엇을 좋아하실지 몰라서 일단 차 한 잔 내왔습니다. 금목서와 차 한 잔이 저희가 가장 중요한 작가를 대접할 때 하는 전통 같은 겁니다. 하하하핳.”
편집장의 너스레가 싫지 않았다. 눈가에 자글하게 얹힌 주름이 그의 경력을 말해주었다.
‘뭐, 누구에게나 하는 것이겠지만 나쁘지 않네.’
내 맞은편에 앉은 문혁수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회의실이 소담하지요? 여기가 사실 우리 제일 중요한 회의실입니다. 오붓하게 작가님과 담소 나누는 것이죠.”
“담소요? 오늘 계약서 쓰는 것 외에도 의논할 업무가 좀 있나요?”
내 질문에 편집장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웃음이 많은 사람은 아닌 듯 한데, 나를 편안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오늘 계약서만 작성하고 돌려보낼 거라면 저희가 무진에 갔겠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소년원에게 계시다 보니 다소 답답하실 듯 하여 특별히 외출 요청 드렸습니다. 혹시 괜한 참견이었나요?”
나는 편집장을 보며 씩 미소 지었다.
괜한 참견이라니.
감옥에서 사람을 꺼내주는 데 아주 좋은 참견이지.
“아닙니다. 그러니까 미팅은 핑계고, 저를 꺼내주셨다는 거잖아요?”
“에이, 미팅은 진짜 해야 하는 업무죠. 하지만 회의가 길어지다보면 서울에서 하루 숙박하다 가실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저희가 호텔도 잡아드릴 수 있고요? 하하하, 하하하핳.”
그의 넉살에 나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문혁수 편집장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내게 말을 이었다.
“사실말이죠. 이제 독자는 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이게 작가와의 첫 만남에서 건넬 이야기인가.
문혁수는 나를 향해 뜻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말을 계속 이어갔다.
“구칠월처럼 일 억짜리 공모전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습니다. 문학상 수상작들도 요즘엔 판매량이 줄었죠. 상금만큼만 팔리면 다행입니다. 후원사 도움이 없으면 운영이 힘들죠. 우리 출판사를 총동원해서 마케팅을 해도 판매가 부진해요.”
문혁수는 잠시 물을 홀짝이더니 내게 본심을 꺼냈다.
“예술보단 예술가의 삶에 더 관심이 많은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인플루언서가 아니면 책이 안 팔립니다.”
나는 문혁수를 바라보았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렵지만, 어떤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문학보단 문학인, 작품보단 작가의 삶에 더 관심이 많다는 거죠?”
“그렇죠.”
문혁수는 나를 바라보더니 대뜸 다시 질문을 던졌다.
“작가님이 원하시는 건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인플루언서의 삶을 원하세요? 스타 작가의 삶을?”
나는 이제야 그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떠보고 있었다.
이건 단지 첫 책에 대한 미팅이 아니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당신은 작가로서 어떤 삶을 살 거냐? 앞으로 우리가 더 믿고 지원해도 되느냐?’
나는 그의 시험에 짐짓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답했다.
언제나 내 대답은 하나였다.
“저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진 않아요. 그냥 쓰는 삶을 원해요.”
문혁수는 내 대답이 시시하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쓰는 삶이요? 뭐, 지금도 글을 쓰고 계신데······.”
그의 비릿한 웃음 사이로 권태가 엇비쳤다.
오랫동안 문학인을 상대한 사람이 가질 법한 회의감 같은 것이.
나는 그를 향해 내 본심을 더욱 털어놓았다.
“그런데 말이에요. 편집장님.”
“네?”
“전 이미 유명하잖아요. 어제만 해도 기자를 몇 명 상대한 줄 아세요? 벌써 공중파에 얼굴이 몇 번 나왔게요?”
내가 던진 역질문에 그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재차 말을 이었다.
“저는 글을 계속 쓰면 족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이미 아시겠지만 전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난한 동네 출신이에요. 전국민이 다 아는 달동네가 고향이죠. 게다가 소년흉악범이고, 고등학교도 중퇴했어요.”
나는 잠시 숨을 마신 후에 단호하게 마지막 말을 했다.
“제 개인적 이야기를 팔아서 제 책이 팔린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제겐 저만 생각하는 가족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래야 저도 계속 작가로서 쓸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부탁이 하나 있어요.”
“부탁이요?”
부탁이란 나의 말에 편집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의뭉스런 얼굴에 나는 단호하게 마지막 화살을 꽂았다.
“저의 삶을 일부러 팔진 말아주세요. 그러지 않더라도 저는 충분히 자신있습니다.”
내 말에 문혁수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까지 본 중에 가장 진심이 담긴 웃음이었다.
“하, 하하학, 하하하하하학!! 제가 졌습니다. 작가님을 괜히 떠봤네요. 사실 좀 궁금했습니다.”
“궁금이요?”
“네, 경덕관 선생님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작가님 칭찬을 했거든요.”
경덕관.
그 작가가 이 출판사에 다녀갔단 얘기는 얼핏 들은 것 같긴 하다.
최근 손을풀 기자와 나를 연결해준다고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고? 나한테는 소설이나 열심히 쓰라고 잔소리 했는데?
문혁수가 생각에 잠긴 내게 말을 이었다.
“경덕관 선생니밍 본 중에 최고로 재밌는 인간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잘 쓰는 작가는 많아도, 재밌는 인물은 찾기 힘든 시대니까요.”
나는 문혁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중늙은이들 상대하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었다. 기운이 무언가 빠져서 아무 말이나 뱉고 말았다.
“저는 그냥 계속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에요. 인물인지 뭔지는 몰라요. 그냥 출판사가 알아서 잘 해주세요.”
내 대답에 문혁수가 다시 한 번 호탕한 웃음을 내뱉었다.
“하, 하학, 하하하학!! 알겠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잘 모시겠습니다!! 하하하하학!”
듣다보니 조금 거슬려지는데.
그때, 우리의 대화를 가르고 누군가 회의실 문을 열었다.
노랗게 뜬 얼굴의 장년 남성.
그건 화장실에서 몹시 고생을 한 강정운이었다.
“그래, 문혁수. 우리 동주가 얼마나 대단한 문재인 줄 알아?”
나는 의아함에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두 분 아시는 사이에요?”
문혁수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의문에 대답을 했다.
“네, 뭐 징한 사이입니다. 정운이 형이 저보다 3학번 정도 더 선배시죠. 같은 대학, 같은 과, 같은 동아리였습니다.”
강정운이 문혁수를 보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대학 시절 언젠가로 돌아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징한 건 나다. 둘 다 문학 동아리인데, 이젠 그냥 문학 포기한 사람들이 됐지.”
강정운의 말에 문혁수가 핀잔을 주었다.
“에이, 문학을 포기한 건 저 혼자죠. 형은 시인이시잖아요.”
“장난하나? 나는 어디 이름도 없는 무명 시인이고, 너는 문학나무의 편집장이잖아.”
문혁수가 고개를 저으며 실소를 지었다.
“에이, 여기 작가님 앉혀두고 우리 둘이 이래서 무슨 쓸모입니까.”
강정운이 그 말에 수긍하며 내 옆에 와 앉았다.
그가 입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그래, 그건 맞아. 우리 동주가 얼마나 대단한 문재인 줄 알아? 수상작은 읽었어?”
“작품이야 진작에 읽었죠.”
“그래. 그래. 아주 대단한 녀석이야. 소설만 잘 쓰는 게 아니야. 시도 엄청나다고.”
강정운의 칭찬은 과했다.
마치 친구 앞에서 아들을 소개하는 아버지 같았다.
나는 머쓱함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뭐, 아니, 그냥 시와 소설 둘 다 열심히 쓰고 있는 거죠.”
나의 대꾸에 문혁수가 놀란 눈을 했다. 휘둥그레 커진 두 눈이 내 쪽을 향했다.
“시도 잘 쓰신다고요? 이야, 그건 말이 안 되는데? 열 여덟이시잖아요? 근데 시, 소설을 둘 다 잘 써요?”
문혁수의 예리한 안광이 내 쪽을 향했다.
‘뭐, 뭐야. 무슨 먹잇감을 포착한 뱀 같잖아?’
나는 부담스러운 눈빛을 피해 시선을 돌렸다.
“아, 아니에요. 그 원장님이 오버하는 거에요.”
나의 둘러댐에 강정운은 눈치도 없이 성질을 냈다.
“아니, 무슨 오버를 한다고 하냐! 내가 보기에 유동주 너는 소설보다 시가 나아!”
강정운이 단호하게 윽박을 질렀다. 그 외침에 문혁수의 눈빛이 또 한 번 번뜩였다.
‘왜, 왜 이렇게까지 눈이 커져?’
문혁수는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시, 시 좀 보여주시죠. 그 계약이나 출간까지는 무리하게 권하지 않을 테니 작품 몇 개만 제가 검토를······.”
문혁수의 말에 강정운이 옆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 귀가 다 아플 정도였다.
“야, 문혁수! 이거, 이거 안 되겠네. 출간 계약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검토를 하자고? 근데 무슨 원고를 보여달래! 이거 순 양아치 아니야!? 동주가 투고 한 것도 아니고, 너희가 보여달라고 해놓고 뭔 검토를 하냐!”
강정운의 윽박에 문혁수가 비지땀을 흘렸다.
“아, 형이 왜 승질이야! 거, 검토가 말이 검토지. 그냥 한번 보고 싶다 이거지!”
중년 두 남자의 싸움에 내가 끼어있는 꼴이었다.
나는 두 사람을 중재하며 말참견했다.
“아, 아, 두 분 다 소리 좀 그만 지르세요. 편집장님.”
“네?”
“보여드릴 수 있는 시가 없어요. 뭐, 아시겠지만 제가 지금 스마트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마트폰은 제가 있습니다. 태블릿도, 노트북도 사용 가능합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문혁수에게 그게 있다 한 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데 저는 시는 보통 손으로 써요. 인터넷으로 올린 시 같은 건 당연히······.”
“당연히?”
고민을 하던 내 머릿 속으로 순간 번뜩이며 하나의 기억이 스쳐갔다.
‘아, 맞다. 일본 웹사이트에 시 올린 거 있지?’
나는 잠시 망설였다.
조회수가 10도 안 되는 게시글을 보여주는 게 창피했기 때문이다.
‘아씨, 완전 폭망인데. 그걸 보여줘?’
생각에 잠긴 나를 문혁수가 채근질했다.
“아, 작가님. 한 편이라도 좋으니 보여주십시오.”
나는 하는 수 없이 문혁수에게 대답했다.
“그, 그 보고 놀리시면 안 돼요. 아, 그런데 제가 일본 웹사이트에 일본어로 시를 올려놨는데 괜찮으세요? 원하시면 대충 해석은 가능한데.”
일본 웹사이트에 시를 올렸다는 내 말에 문혁수가 화들짝 놀랐다.
“일본 웹사이트요?”
“아, 아, 네. 한국엔 시를 올릴 만한 사이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어로 쓴 시를 대충 번역해서 일본 웹사이트에 올려봤어요.”
“직접 번역하신 거예요? 아빠고 같은 번역기 안 쓰시고?”
“그, 그렇죠?”
문혁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작가님, 갈수록 물건이네요.”
문혁수의 부담스러운 눈빛이 더욱 거세졌다.
나는 그 눈을 피해 강정운의 핸드폰을 빌렸다.
“자, 잠시만요. 그 사이트 이름이······.”
나는 검색창을 열고 나가레보시리터러시에 접속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상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시가 왜 사이트 메인에 있지?”
나는 사이트 메인 화면에 있는 내 시를 클릭했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숫자를 목격하고 말았다.
“이, 이게 뭐야?”
화들짝 놀란 내 등 뒤로 중년 남자 두 명이 달라붙었다.
- 작가의말
20화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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