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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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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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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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DUMMY

11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건 시를 쓰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였다.


‘시는 당연히 쓰는 거지.’


시는 당연히 쓰는 거다.

시를 쓸 거냐고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사실 소설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틈틈이 시를 쓰고 있다.


소설 쓰는 원고지 귀퉁이에.

교과서 한 구석에.

때로, 문학실에 굴러다니는 아무 종이에다가 말이다.


물론 그 사실을 강정운 원장이 알 리는 없었다.

정운이 날 쳐다보며 초조해하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내가 시를 쓰기를 바라나?’


강정운이 나를 향해 입맛을 다셨다.


“물론 너야 소설을 잘 쓰고, 지금 쓰는 작품 집필에도 시간이 부족하겠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네 시적 재능이 제법 출중해서······”


그는 말을 하다말고 혼자 다시 입맛을 다셨다.


“아니다. 이렇게 시 쓰라고 권유한 걸 알면 또 경 선생님께서 나를 경을 치겠지. 잠깐······ 경 선생님이 경을 쳐? 푸, 푸하핳.”


강정운은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다가 혼자 웃고 말았다.


아, 이상하다.

아, 북간도에 계시는 우리 어머니.


이 자도 문인이고.

문인이라곤 죄다 나사가 하나 빠진 놈들 밖에 없습니다.


나는 잠깐 강정운의 경을 치고 싶었다. 그는 혼자 폭소하다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너는 아직 어리고, 네 마음 가는 대로 써라. 나 같은 무명 작가가 뭘 섣불리 조언하랴.”


나는 강정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가 대답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강정운에게 제안하고자 하는 게 있었다.

그를 어떻게 하면 꼬실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걸로 거래를 하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제가 시를 쓰면 좋겠어요?”


강정운은 잠시 고민하는 낯이 되었다. 망설이던 그가 대답했다.


“나야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네가 시를 쓰면 좋지.”


잠시 입맛을 다시던 강정운은 진지한 얼굴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일전에 특별한 삶을 가진 사람의 시라면 특별할 거라고 하지 않았냐?”

“그렇죠.”


그렇다.

소년원의 원장으로 수십 년 간 아이들을 돌본 강정운의 삶이라면 특별한 시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얘기를 꺼내지?

강정운이 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네 말에 힘을 얻어 나도 시를 부쩍 쓰고 있다. 하지만 말이야. 유동주.”

“네?”

“네 삶이야말로 시에 담으면 어떻겠니. 나는 원장으로서 우리 원생들이 대충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살뜰히 파악하고 있다.”


나는 강정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단 생각은 했는데, 자세한 신상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유동주. 달바다촌은 나도 익히 들은 바 있는 동네지. 일을 하면서 그곳 출신인 아이들도 많이 만났어. 어려운 동네에서 소년원으로 흘러온 네가 시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면 너의 삶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지 않겠니?”


나는 강정운을 바라보며 마음에도 없는 태클을 걸었다.

시는 쓸 거다.

하지만 지금 나는 강정운에게 시를 고민하는 것처럼 밀당을 하고자 했다.


“글쎄요? 소설로 쓰면 되지 않아요? 소설도 힘이 되잖아요.”

“하지만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고, 시는 자신의 삶을 많이 반영하는 거잖니. 그런 의미에서 하는 조언이야.”


나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긍하는 척하는 연기였다.


“그러면 시도 놓지않고 계속 써보고 싶네요.”


내 연출이 제법 먹힌 듯 강정운은 안도의 표정까지 지어보였다.


이제 내가 원하는 바를 밝혀야 할 때였다.


“그래요? 근데 제가 요즘 고민이 하나 있어서 영 시가 안 써지는데요.”

“고민?”

“그래요. 고민이요. 아시겠지만 소설은 엉덩이 힘으로 쓰는 거지만, 시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써지는 거잖아요.”


강정운이 의아한 기색으로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분명 다른 교도관들에게도 네가 문학에만 집중할 수 있게 신경쓰라고 일렀는데? 뭐 신경쓰이는 게 있어?”


나는 강정운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송송태가 면회가 제한되어 있죠?”

“그렇지. 송송태는 너랑도 다퉜고, 다른 아이들이랑도 몇 번 크게 시비가 붙어서 지금 징계 중이지.”

“면회 제한이 언제까지예요?”

“아마 너희 나갈 때까진 안 풀리는 걸로 아는데? 어차피 송태는 대수로워 하지 않더라. 면회 올 사람도 없다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강정운에게 조금 무리한 요청을 던져버렸다.


“풀어주세요.”

“뭘?”

“송송태 면회 제한 딱 한 번만 풀어주세요. 진짜 중요한 사람이 와서 그래요.”


강정운은 난처한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네가 아무리 부탁해도 그건 안 된다. 징계를 받을 만한 행동을 해서 받은 거야. 무슨 사정 때문에 그걸 풀어줄 순 없어.”


강정운의 태도는 의외로 단호했다. 영 물러빠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단호할 땐 단호한 선생이었다.


하지만 나도 양보할 수 없었다.


“그러면 저도 시 못 써요.”

“뭐?”

“아니, 누군가에게 힘을 주기 위해 시를 써보라면서요? 당장 옆에 있는 사람도 못 도와주는데 무슨 시를 써요?”


강정운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한참이나 노려보던 그는 나지막하게 물었다.


“이렇게 억지를 부릴 만큼 중요한 일이야?”


그의 태도는 진지하고 신중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결연히 말했다.


“네. 어쩌면 송송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 정도로?”


오랫동안 고민하던 강정운은 마침내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면회 시에 나도 뒤에서 참관하는 걸로 한다. 면회 시간도 제한을 둘 거야. 그래야 징계받은 다른 아이들과 공평하니까.”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당연하죠!!!”


그런데 그 순간, 나의 환호성을 모조리 파묻을 만큼 큰 소음이 들렸다.


-위이잉! 위이이잉! 윙윙이잉!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사이렌 소리였다. 원장실 한편에 있는 붉은 등이 번쩍거렸다.


“뭐, 뭐야!?”


내가 소리친 그때, 원장실 문을 벌컥 열고 한 교도관이 들어왔다.


“원장님! 송송태가 젓가락으로 조원이를 찔렀어요! 찔린 아이는 피가 철철 나고 있습니다!”


강정운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그러면 왜 이쪽으로 왔나! 송송태 그놈을 말려야지!”

“송송태가 아직도 그 아이를 놓지 않고 있어요! 무엇보다 구급차를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원장님!”


비상 사이렌 날카로운 소리가 우리 세 사람을 가로질렀다.

사이렌의 붉은 빛멍울은 강정운의 낯을 불길하게 비췄다.


**


우리는 황급히 송송태를 향해 달려갔다.

강정운 원장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교도관에게 지시했다.


“지금 당장 병원 섭외해.”

“그 다음주에 감사를 나오는데 구급차를 불러도 될까요? 우리 의무실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젓가락으로 조원이를 찔렀다며!”


강정운의 호통에 교도관이 움찔거렸다. 그는 전화기를 들고 복도 저 멀리로 달려갔다.

나는 손톱을 연신 깨물었다.


“송송태 이 자식이 나 보고는 샤프 함부로 던지지 말라더니······”


송송태는 나와 똑같은 9호 처분이었다. 9호는 6개월 수감이었지만, 수감 중 문제를 일으키면 10호로 전환된다.


10호 처분으로 변경되면 송송태는 무려 2년의 수감 생활을 해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눈에 송송태가 들어왔다.

그 애는 조원, 일전에 자신의 팬티를 훔쳐입은 녀석을 뒤에서 잡고 놓지 않고 있었다.


“무, 무슨 초크를 잡고 있어!”


조원의 얼굴에선 피가 흘렀다. 게다가 송송태가 뒤에서 목을 붙들고 팔로 조이고 있는 까닭에 희미한 거품까지 물고 있었다.

나는 송송태를 향해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사람 죽일 거야!? 죽이면 10호도 아니야! 소년 교도소로 이감될 거라고!”


송송태는 차분한 눈으로 그 애를 붙들고 있었다.

나는 그 애에게 달려갔다.


“야, 나와!”


내가 달려드는 것과 동시에 몇 명의 교도관과 아이들이 함께 두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송송태의 팔을 꽉 붙들었다.


“야, 이 X친놈아 떨어지라고!”


송송태는 의외로 순순히 팔을 풀었다. 한데, 더욱 난동을 부리는 건 송송태가 아니라 조원이었다.


“이 X발 너희 무슨 연애라도 하냐!? 둘이 딱 붙어 가지고 글 쓴다고 X랄들을 하네.”


조원은 제 볼에 꽂힌 젓가락을 거칠게 뽑아버렸다.


-콰악!


사람의 몸에서 나면 안 되는 소리와 함께 피가 솟구쳤다.

조원이 그 젓가락을 들고 나와 송송태에게 달려왔다.


“오늘 내가 빨간 명찰 달고 소년교도소 간다!”


그리고 조원이 달려오던 그때.

나는 조원의 발밑에 나뒹구는 종이 뭉치들을 볼 수 있었다.

최근에 내가 계속 들고 다니던 그 원고지.


그러니까.

내 소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조원의 발밑에 어지럽게 구겨져 있었다.


심지어 찢어진 채로.


나는 눈이 돌아간 채 조원에게 소리쳤다.


“이 새끼가 도대체 뭔짓을 한 거야!”


나는 달려오는 조원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버렸다.


-쾅!


나와 그놈의 몸이 맞부딪히고 조원이 소리를 질렀다.


“X발 놓라고!”

“너라면 놓겠냐?”


나는 허리를 숙인 채 녀석의 다리를 붙들었다.

이종격투기처럼 그놈을 그냥 그대로 자빠뜨리려고 했다.


“네가 내 작품 찢었냐!? 송송태랑 그래서 싸운 거야!?”

“그래! 내가 네 같잖은 소설 찢어버렸다! 도대체 왜 너희만 특혜를 받는데!? 누군 X발 수업 듣고 싶어서 듣나!”

“그러면 너도 특활 듣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던가!”


어처구니없었다.

고작 교과 시간에 특활 때문에 문학실에 간 게 질투가 난 건가.


어차피 교실도 감옥.

문학실도 감옥.

방도 감옥.

화장실도 감옥이다. 우리가 갇힌 모든 곳이 감옥인데 누가, 뭘 부러워 한단 말인가.


나는 소리를 지르며 조원을 밀어붙혔다.


“별 게 다 부럽네! 그러면 너도 소설 써! 이 새끼야!!”


마침내 내가 조원을 주저앉힌 그 순간.

아랫배 쪽으로 무언가 쑤욱 하고 들어오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 감각이 느껴짐과 동시에 온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뭐, 뭐야.”


나는 나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조원은 나를 보며 바들바들 떨었다.


“야, 야, 유동주 이 X끼야! 네, 네가 달려든 거야! 난 잘못 없어!!”


나는 내 배를 쳐다보았다.

나의 아랫배에 조원이 들고 있던 젓가락이 꽂혀있었다.

그것도 꽤나 깊숙하게.


“이, 이, 소설도 찢고 배도 찢냐?”



작가의말

11화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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